본문 바로가기
절집 이야기

2026.06.14. 거창 우두산 고견사

by 하여간하여간 2026. 6. 15.

○ 거창 우두산 고견사

대한불교 조계종 해인사 말사이다.

우두산에 자리한 고견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7년(667)에 의상,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견사라는 이름은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견암, 견암사, 견암선사 라고도 불리어 졌다.

고견사는 해인사의 창건주 순응 이정 스님과 중창조 희랑대사가 머물다 간 곳이며, 고운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는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밭 100결을 하사하고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지내게 한 원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공민왕 7년(1,358) 지희스님이 중수하였고, 1630년  설현, 금복, 종해 스님들의 중건하였고, 1995년 원각 스님이 나한전, 요사채, 약사전을  신축하였으며, 2006년 무영 스님이 대웅전닷집, 천성문, 금강문을 신축하였다.

고견사는 1988년 9월 10일 전통사찰로 등록되었으며, 대표적 문화유산으로는 고견사 동종(보물 제1700호), 고견사 석불(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과 조선 숙종대왕이 내린 강생원의 운영당 현판이 있다.

○ 우두산 고견사 금강문

우두산 고견사 현판

금강문

아금강상 : 사악한 것이 굥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장

음금강상 : 온갖 부정한 것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장

배익천 선생 사적비

고견사 복원 중건기

고견사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임에도 6.25 한국 전쟁 등으로 완전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이 고장 출신 배익천 사장이 어머님의 소원과 불심으로 고견사를 복원 중건하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지금 처럼 길이 나 있지 않은 때, 고견사 중건 자재들을 험난한 산길을 따라 마을 주민들의 헌신적 봉사로 옮겨왔으며 대웅전 대들보를 마을 장정 20여명이 목도로 옮겼으며, 500관이나 되는 대범종을 2km의 산길을 15일이나 걸려 옮겼다는 내용 등이다. 고견사의 복원 중건은 15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어느 곳이나 이런 헌신적인 분들의 봉사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런 귀한 절집을 구경할 수 있으리라.

최치원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요사채

범종각

사천왕을 벽화로 그려 놓았다.

범종각

고견사 범종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내 삼존불

○ 거창 고견사 동종(보물 1700호)

신라시대 고찰인 고견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동종은 1600년(인조 8) 작품으로 높이 97.2cm, 입지름이 59.7cm로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큰 편이다. 전체적으로 엷은 붉은색을 띠는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 음통을 갖추지 않은 두 마리 용을 표현하였는데, 특이하게 용의 이마에 '왕' 자를 새겨 놓았다. 아래 부분에는 제작연대를 기록한 주성기를 기준으로 위에는 연화당초문을 아래에는 운룡문을 음각하여 장식하였는데, 특히 주성기 아래의 운용문은 역동적인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명문에는 설봉스님을 비롯하여 치죽, 득남, 득일 스님 등 제작자와 사찰의 연혁, 제작에 들어간 물품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범종은 조선후기 범종 중에서도 17세기 전반 승장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설봉 스님이 만든 기념비적 작품으로 세부 문양 등의 주조 기술이 정교하게 표현된 점과 함께 보관 상태도 양호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동종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웅전 앞 삼층 석탑

종무소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석조여래입상은 부처의 서 있는 모습을 돌로 새긴 조각상이다.

머리는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혹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얼굴선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으나 눈, 코, 입은 마모가 심하다. 귀는 유달리 길어 어깨까지 닿아 있는 반면, 목은 짧아 삼도*는 보이지 않는다.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발끝까지 덮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다.
옷자락 속에 감춰진 당당한 체구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손 모양은 뚜렷하지 않지만,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을 상징한 시무외인**이고, 왼손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여원인***을 표현한 듯하다.

머리 뒤 신성함을 나타내는 광배는 배 모양을 띠고 있는데, 선을 돋을새김 하여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있다.

두광에는 홑겹의 연꽃무늬와 구슬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불은 전체적으로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 삼도 : 불상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 생사를 반복하는 인과를 나타내며 이치와 현상에 대한 미혹을 이르는 번뇌도, 중생이 행한 선악의 결과를 보여주는 업도, 악행으로 얻는 고통을 의미하는 고도를 뜻한다.

** 시무외인 :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줌을 나타내는 형상.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여원인 :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줌을 나타내는 형상.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운 모양이다.

고견사 전경

고견사 전경

나한전

나한전

나한전 내 삼존불과 500나한

감로수

대웅전 뒤 전각

사성각

보통 절집에는 산신, 칠성, 독성 같은 신앙 대상을 함께 모시는 삼성각이 일반적이다.

사성각에는 산신, 칠성, 독성에 용왕신까지 모신 전각을 의미한다.

사성각 내부

문이 잠겼다. 유리창 넘어로 내부를 담아보려했지만 햇빛으로 담지를 못하고 물러난다.

고견사 전경

고견사 전경

○ 거창 고견사 마애여래좌상

고견사 뒤에 있는 암벽에 마치 전각처럼 오목하게 파서 그 안에 마애여래좌상을 양각으로 새겨 놓았다.

머리는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혹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얼굴은 온화하고 귀는 유달리 길어 어깨까지 닿아 있으며, 목은 짧으나 삼도*가 뚜렷하다.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길게 늘어져 있으며, 손 모양이 뚜렷하며, 불상 뒤 신성함을 나타내는 광배를 두었다.

* 삼도 : 불상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 생사를 반복하는 인과를 나타내며 이치와 현상에 대한 미혹을 이르는 번뇌도, 중생이 행한 선악의 결과를 보여주는 업도, 악행으로 얻는 고통을 의미하는 고도를 뜻한다.

불상 아래에는 두 마리 학이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내가 본 마애여래좌상으로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이 최고이고, 다음으로 고견사 마애여래좌상이 두번째로 정교하고 귀품이 있다. 제작연도는 알수가 없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암벽

고견사 뒤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