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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6.05.30. 해남 달마산 미황사

by 하여간하여간 2026. 5. 31.

○ 달마산 미황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미황사 사적지에 의하면 신라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돌로 된 배가 사자(獅子) 포구(현 송지면 갈두항)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金衣人)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 비로자나불상,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40 성중, 53선 지식(五十三善知識), 16 나한, 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지형이 금강산과 비슷하므로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라고 했다.

이에 다음날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바로 미황사인데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달마산 미황사 일원 명승 제50호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 산줄기가 남도의 들녘을 지나 흐르다가 장흥 장덕면 바람재에서 분기되어 땅끝기맥을 타고 흘러 해남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산이 달마산이다.

해남군 현산면, 송지면, 북평면에 걸쳐있고, 천년고찰 미황사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산 이름은 경전(달마)을 봉안한 산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의 지형도에는 '달마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 능선은 마치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이 7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남해의 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을 만큼 풍광이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달마산은 불상과 바위, 그리고 석양빛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특히, 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남도제일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황홀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미황사는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타고, 기록마저 없어졌다. 이후 조선후기 세 차례 걸친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다시 번성했고,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승풍을 크게 떨쳤다.

현재 경내에는 해남 미황사 대웅전(보물 제947호), 미황사 응진당(보물 제1183호), 미황사 괘불탱(보물 1342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 3점이 있다. 발굴조사 등 고증을 통해 옛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정비계획에 따라 복원불사도 활발하다.

○ 미황사 가람배치도


○ 미황사 일주문

달마산 미황사 일주문

○ 미황사 천왕문과 윤장대

미황사 천왕문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108 계단으로 이어진다.

미황사 천왕문 앞뒤로 윤장대(돌리면 경전을 한 권 읽는 의미의 장치)가 있다.

천왕문 윤장대는

팔각형으로 팽이처럼 돌릴 수 있으며, 내부에 불경을 넣어두고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미황사 천왕문에는 가운데 윤장대가 있고 양옆에는 사천왕상이 서 있는데 일반 절집의 사천왕상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천왕상이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것과 달리, 미황사 사천왕상은 포근하고 온화한 느낌의 모습이다.

보탑을 들고

금강저를 들고

금강저는 금강같이 단단하고 예리한 지혜를 상징하며, 불지(佛智)와 견고함(堅固), 번뇌를 끊는 힘, 금강 같은 지혜로 망상 파멸함

윤장/사천왕문 안쪽에는 윤장 현판이 걸렸다.

○ 달마선다원

달마선다원

미황사 경매 수국

달마대사상

자하루

자하루 현판

안심료와 감로당

?

달마선다원에서 바라본 달마산 문바위 기암

대웅전과 달마산 문바위

범종각

미황사 범종

미황사의 아름다움

청운당

대웅전

보물 제947호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 사적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 끝에 도달하였는데,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 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중기까지 12 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했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년)을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였고, 2006년에 삼창 하였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전각이다. 한가운데에는 석가모니를, 좌우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598년에 중창하였고, 1660년, 1754년, 1982년, 2007년에 거듭 중수하였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기도 한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의 협시보살인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196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전불이 협시불보다 살짝 클 뿐 세 불상이 거의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같은 조각승이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반쯤 뜬 눈, 자그마한 백호,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 등으로 볼 때 17세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조각승 인균의 작품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상태가 좋으며, 17세기 조각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종무소

세심당

향적당

명부전

해남 미황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 일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을 비롯하여 총 36구의 조각상이 모져져 있다.
미황사가 크게 중창되던 17세기 중엽에 모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운데 불단 위에는 지장보살상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며,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는 보살이다.

지장보살 뒤에는 목조 광배가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불단 뒤에는 해당 전각에 모셔진 부처나 보살을 그린 후불탱을 걸어 두는데 광배를 놓은 것은 매우 특이한 양식이다.
지장보살의 양옆에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서 있다. 무독귀왕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고, 도명존자는 민머리이다.

삼존상의 좌우에는 저승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상과 동자상, 판관상, 녹사상, 인왕상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우화당

우화당

삼성각

삼성각

삼성각은 칠성여래, 산신, 독성 세 분을 함께 모신 전각으로, 한국 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응진당

보물 제1183호

미황사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 하였다고 전해진다.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희 깨닫고 해달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 한자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 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선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선 맛으로 이름이 높다.
불단 중앙의 연화대좌에는 석가여래가 앉아 있고, 양옆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이 서 있다. 석가여래와 두 제자 사이에 앉아 있는 2구의 상은 부처님을 수호하는 제석천과 범천으로 추정된다.
삼존상의 좌우에는 나한상, 동자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양끝에는 인왕상이 있다.

석가여래상의 불패에는 1772년에 쓴 묵서와 대좌에는 1737년 불상에 금칠을 다시 했다는 기록이 쓰여 있다.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나한상 일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응진은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며, 나한(아라한)은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응진당은 나한잔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십육나한이나 오백 나한을 모신곳이다.

미황사 응진당은 정유래란 때에 불에 탄 후에, 영조 27년(1751)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응진당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상과 16 나한상을 비롯하여 총 26구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보통 1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달마선원


○ 달마산 미황사 탐방을 마치고

땅끝기맥 끝자락에 위치한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미황사를 둘러보고 나니 아주 오래전부터 해야 할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이 뿌듯하다. 미황사 창건 설화가 흥미롭다. 미황사 대웅전과 응진전, 괘불탱 등 국가지정 보물을 3점이나 보유하고 있는 절집이다.
정유재란 때 전각 모두가 소실된 것이 안타깝다. 일본 놈들의 우리 문화 소실 등 패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국방력으로나 기술적으로 일본을 이기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나가길 바란다.
남녘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미황사 더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