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송광사를 찾아서
절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를 이런저런 사연으로 여러 번 들렀지만 부분적으로만 살폈다. 오늘은 순천 송광사를 차분히 살펴보려 한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해 질 녘에 마무리했다. 워낙 큰 절집이라 들여다볼 것이 많고 유서 깊어 정리할 것도 많다.
○ 조계종과 태고종 그리고 천태종의 차이
조계종은 보조국사 지눌이 선종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해 창립한 전통 종단으로, 한국 불교의 주류이다.
천태종은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교종 중심으로 선종을 합친 종파로, 조선 후 명맥이 끊겼다가 1966년 상월스님이 구인사에서 재건했다.
태고종은 1970년 법운대종사가 조계종에서 분리해 세운 현대 종단으로, 고려 태고보우의 사상을 계승한다.
○ 선과 교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전승하는 실천적 수행을 강조한다.
선은 말이나 글을 초월한 직접적인 깨달음을 추구한다.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꽃을 들어 보이거나 발을 드러내는 등의 비언어적 전승 사례가 대표적이다.
명상과 공안(공적 이야기) 수련으로 불성을 스스로 발견한다.
교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통해 이론적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중시한다.
교는 경전 해설과 교리 체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인천교, 소승교, 대승교 등 부처님의 49년 말씀을 아난존자가 전한 바탕으로, 철학적 공부와 원리 이해를 우선한다.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통해 선교를 병행해야 한다고 보았고
의천은 천태종에서 교선일치를 주창했다.
조선 후기 휴정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강조하나 융합의 연장선상에 있다.
○ 나의 생각
선은 실천 즉 수행이고
교는 이론 즉 경전이다.
선교일치가 조계종이고 지눌이 주장함
교선일치는 태고종이며 의상이 주장함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면 되는 것이지, 방법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 순천 송광사 (사적 506호)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종계총림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9년 동안의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정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 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현종 8년 : 1842년)의 대화재, 6.25 한국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 차례의 대규모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산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보물 1467호)등을 비롯해 총 8천여 점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조계총림 송광사

총림이란 많은 스님과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스님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다.

송광사를 비롯 통도사, 해인사, 수덕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7대 총림이라 한다.

송광사는 1969년 조계총림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림의 최고 어른은 방장이라고 한다. 모든 스님들은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으면 강원에서 4년 과정을 이수 후에 구족계를 받고 선원이나 율원에서 수행생활을 할 수 있다.
○ 보조국사 지눌

한국불교의 중천조인 지눌 스님(1158~1210)의 법명은 지눌, 호는 목우자, 시호는 불일보조국사, 탑호는 감로, 성은 정 씨이다. 8세에 출가, 1190년 팔공사 거조암에서 정혜결사 운동, 1200년 송광사로 대중을 이끌고 들어와 11년 동안 계시면서 진각국사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 한국 불교의 중흥과 선의 황금시대를 이루어냈다. 스님은 ' 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 '수심결' '원돈성불론' '절요' '화엄론절요'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고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 송광사 산문

순천 송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거대한 승보종찰송광사불회문이라는 산문이 세워져 있다. 오래된 벚나무에 화려하게 피어난 벚꽃이 송광사 산문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광을 만들어낸다.

승보종찰송광사불회문 현판/학정 이돈흥 서예가 글씨

산문 안쪽

불광보조 길상여의/학정 이돈흥 글씨
부처님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춘다.
좋은 일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 매표소

매표소이다.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양면에 금강역사 부조가 붙어 있다. 아마 금강문 역할을 하나보다.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사찰의 문이나 불전, 불탑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으로, 한국에서는 보통 인왕역사라고도 부른다.

손에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장도를 들고 있다.

매표소 기둥에 붙어 있는 육바라밀을 들여다 본다.
시간이 남은 사람은 천천히 읽고 그 뜻을 의미해 보길 바란다.

인연설. 좋은 이야기다. 가만히 들여다 보라.

매표소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석주

○ 청량각과 극락교

극락교 위에 청량각
송광사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이 다리를 지나는 순간, 깨끗하고 시원한 마음이 절로 들어 이곳을 지나면 극락정토이다 란 의미이다. 상량에는 뱀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청량각을 지키고 있다.

극락교 현판
극락교를 지나고 나면 가운데 잘 다듬어 놓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무슨 뜻일까?
○ 조계총림대도장 석비

○ 편백숲

편백숲을 지나
○ 조계산송광사적비

○ 청신도 공적비림

○ 다송원

다송원에서 대추차 한 잔 하고
○ 삼도토포사겸전영장 김시풍 선정비

토포사 [討捕使]
예전에, 각 진영에서, 도둑을 잡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나 그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
진영장 [鎭營將] (전영장)
고려 시대, 각 진(鎭)의 으뜸 벼슬. 칠품 이상의 벼슬아치 가운데서 뽑았다.
조선 시대, 각 진영(鎭營)의 으뜸 벼슬. 정삼품 벼슬로 지방 군대를 관리하였다.
○ 하마비

하미비는 주로 궐문, 능묘, 문묘, 서원 등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조선 태종 13년(1413), 왕명으로 종묘와 궁궐 문 앞에 '대소인원개하마'라고 새긴 경계석을 세우고 이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하마비의 연원이다. 송광사 하마비는 왕실 기도처인 축성전을 건립한 이듬해인 1887년에 세운 것이다. 전국적으로 왕실 기도처 역할을 하는 사찰 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비림을 살펴보아야 하지만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고 순천 송광사 사적 안내문을 들여다본다.
○ 송광사 안내도

송광사 안내도를 살펴보고 바로 옆에 있는 송광사 설명 안내를 들여다본다.

순천 송광사
사적
조계산 서쪽에 자리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종찰이다. 신라 말 혜린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때 보조국사가 중창해 정혜결사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 보조국사의 법을 이은 진각국사는 수선사의 전통을 이어 선풍을 크게 일으켜 대사찰을 이루었고 이는 고려 말까지 이어져 16 국사를 배출하여 승보종찰로 불렀다.
고려말 왜구의 침탈로 패허가 된 송광사는 1395년 고봉국사가 중창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부휴 백암대사가 다시 복구했다.
보조국사 중창 뒤 1948년까지 6차례의 대불사가 있었으나 1951년 한국전쟁 중 큰 불이 나 대웅전을 비롯한 사찰 중심부가 모두 불에 탔다.
1955년부터 7년 동안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을 복구했다.
1969년 조계총림이 발족하면서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보전과 30여 동의 전각 등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가 사적인 송광사에는 '16 국사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화엄경변상도, 혜심고신제서,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 등 다수의 국보, 보물과 천자암 쌍향수 등의 천연기념물 등이 있다.
또한 조계산에는 10여 곳의 송광사 산내 암자가 있었지만 현재 불일암, 광원암, 감로암, 천자암, 부도암, 오도암 등이 남아 있다.
○ 송광사 가람배치


○ 송광사 주요 국가 유산

○ 불일서적

○ 송광사 조계문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 일주문
조계문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우에 세운 돌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승보종찰조계총림 현판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한다.
○ 고향수

고향수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께서 송광사에 처음 오실 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꽂으시며 시를 남겼다.
이아동생사 :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아사이역연 : 내가 떠날 때 너도 같이 떠나고
화간이청엽 :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방지아역연 :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다가 보조스님께서 입적하시니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라 하였다. 고향수 이야기는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고, 1886년 순천부사 이범진이 왕실에 보관하던 지도에도 불생불멸이라는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근세에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에 읆기를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나 오시나요. 말세 창세을 뉘어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하니, 이에 송광사 인암 스님이 화답하기를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나무 가지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하였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기리는 속에 고향수는 보조스님께서 송광사에 환생하여 오시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되기를 꿈꾸면서 불가사의하게도 800여 년 동안을 이 모습으로 기다리도 있다.
○ 세월각, 척주당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욕 : 불교에서 재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작은 건물이다. 두 건물의 내부는 비어 있다.
○ 삼청교와 우화각

송광사 삼청교는 일주문을 거쳐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계곡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삼청교는 능허교라고도 하는데, 네모난 돌 19개로 무지개 모양(홍교) 다리이다.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1707년(숙종 33년)에 다리를 만들고 1774년(영조 50) 보스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화각은 삼청교 위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우화각 안에는 송광사를 찾았던 옛 문인들이 쓴 많은 시가 걸려있다. 우화각에 걸린 '송광사' 현판 글씨는 혜강 김규진이 썼다.

우화각 지붕은 입구에서 보면 여덟 팔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보이고, 출구 쪽에서 보면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처럼 보인다.
○ 육감정

송광천에 살짝 내밀어 마치 조선조 선비의 집처럼 지어 놓았다. 송광천과 육감정 그리고 삼청교와 우화정이 조화롭게 연출한 이 모습이 송광사에서 가장 멋진 전경이다.

육감정과 삼청○각 두 개의 현판이 함께 붙어 있다.

육감정의 아름다운 모습
○ 침계루


○ 사천왕문

삼청교와 우화각을 지나면 바로 사천왕문 전각이 가까이 붙어 있다.
○ 사천왕상 (보물 제1467호)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석들과 살면서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송광사 사천왕문 안에는 1628년에 조성된 4구의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2004년 보수 과정에서 다량의 불경 등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다문천왕과 지국천왕
일반적으로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드는데

증장천왕과 광목천왕
송광사 사천왕상은 진흙으로 빚어 만들었다. 희소성을 인정받아 2006년 보물 1467호로 지정받았다.

바깥쪽엔 사천왕문, 안쪽에는 천왕문이라는 현판이 붙여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앞으로 종고루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사자루인 침계루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왼쪽으로는 임경당과 종무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축대 아래에 감로수로 목을 축일 수 있다.
○ 사자루

송광천 쪽에는 침계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안쪽으로는 사자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주로 강학을 하는 곳이다.
○ 임경당

임경당은 육감정과 연결된 전각이다.
○ 혜제원(종무소)

종무소를 보고 다시 종고루로 향한다.

종고루 쪽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절집 구조가 아름답다.
○ 종고루

송광사 범종루에는 종고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치마에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이다.

2층 종고루

종고루로 불전 4물 또는 사중사물인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배치하고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송광사 대웅보전

지금의 대웅보전은 1951년 한국전쟁으로 소실 후 1988년 송광사 8차 중창 당시 다시 지어졌다.

송광사 대웅보전

대웅보전에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 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즉,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 등 3세 불상(좌상)을 모셨으며, 각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4대 보살(입상)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 실내는 촬영금지다. 선답자의 블로그 자료를 활용한다.

대웅보전의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3세 불상(좌상)과 4대 보살상(입상)은 대단히 거대하여 경이로움마저 든다.

조계산이 연꽃 모양으로 그 중심에는 송광사가 있어 연꽃(송광사)을 가라앉힐 수 있는 석탑과 석등이 없고, 스님 공부에 방해가 된다 하여 풍경과 주련(기둥이나 벽에 써 놓은 글귀)이 없는 3무 사찰이라고 한다.

108평 규모의 대웅보전은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으로 현대 한국 전통건축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 비사리 구시

송광사 3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이다.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봉갑사 근처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그 용량은 2,600여 리터에 달한다. " 송광사지"에 따르면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밥을 짓는 것에 사용했다고 한다.
○ 감로수

○ 송광사 약사전(보물 제302호)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이다.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1637년 소실된 것을 1640년에 중창한 것이다.

사방 1칸으로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불전이며 대들보가 없이 공포만으로 짜 맞춘 천장이 독특한 건물이다.
○ 송광사 영산전(보물 제303호)

이 건물은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1368호로 지정되어 있는 후불탱인 영산회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시는 영산대회탱과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 (1639)에 창건되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범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 부처님 일대기를 표현한 팔상도를 모신 전각이다.

1639년에 중창하였으며 내부에 모셔진 후불도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산전의 내부는 촬영금지이다. 차마 촬영할 수 없어 삼배만 드리고 그냥 나왔다.
여기 문화재청 자료를 올린다.
영산회상을 그린 후불탱과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다.

후불탱

팔상탱(도솔래의상)

팔상탱(비람강생상)

팔상탱(사문유관상)

팔상탱(유성출가상)

팔상탱(녹원전법상)

팔상탱(설산수도상)

팔상탱(수하항마상)

팔상탱(쌍림열반상)
○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 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 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 송광사 지장전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원을 세운 보살로 삭발한 모습이다.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시왕은 인간이 살아 있을 당시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분을 가리키며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사십구일까지는 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소상), 2년(대상) 때에 차례로 각 왕에게 가서 생전에 지은 선악업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 응향각

왼쪽부터 응향각, 용왕각, 칠성각, 산신각 네 전각이 한 건물에 배치되어 있다.

이 네 전각은 사찰에서 토착 신앙을 불교적으로 수용한 공간을 가리킨다. 산신각은 산신, 칠성각은 북두칠성, 용왕각은 용왕을, 응향각은 사찰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별도 전각명으로 쓰인다.

산신각 : 산신을 모신 전각이다. 산신은 보통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송광사 산신각은 별도로 설법전 뒤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연초에 재를 지낼 때만 개방하고 보통은 이곳 산신각에 참배한다.

칠성각 : 북두칠성과 연결된 칠성신을 모신 전각이다. 수명장수와 관련된 신앙 성격이 강하다.

용왕각 : 용왕을 모신 불일이다. 사찰 자료에서는 토속신앙 전각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응향각 : 이 이름은 표준적으로 널리 고정된 대표 전각명이라기보다, 개별 사찰의 전각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제까지는 일반인이 탐방할 수 있는 영역이고 다음부터는 스님들이 선을 수행하는 선원영역이다.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금줄을 넘었다.
○ 법성료

선방이다.

법성료 쪽에서 바라본 출입문
○ 선열문

영산전쪽에서 선열당으로 들어가는 문
○ 해청당

영산전 옆으로 4 각형 모양의 건물로 스님들이 개인적으로 수행을 하는 선방이다.
○ 불일문

지장전 뒤 목우현 사이에 있는 문으로 행해당 등 스님들 수행처인 선방으로 오르는 문이다.
○ 운월루

목우헌의 한쪽에 있는 일반 선비들 집 같은 누각이다.

해청당 뒤안길
○ 목우헌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이다.
○ 정수원

스님들 선방이다.
○ 선열당

선방이다.
○ 해우소

스님들 전용 해우소로 일반인 출입 금지.

선열당 앞 선원 영역의 선방을 담았다.

송광천을 바라보고

대안문을 지나

송광사 선방 구석구석을 둘러보자.

송광사 선방

송광사 선방
스님들이 선 수행을 하는 선원 영역을 탐방하고 다시 일반인이 탐방할 수 있는 관음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다시 나와 지장전 옆에서 종고루 방향 전경을 담아보고 관음전으로 향한다.
○ 관음전

본래 성수전이라 하여 1902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사액된 왕실기도처로 1903년 건립되었다. 1957년 성수전 앞에 있던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음보살상을 이안하고 한국전쟁 복구 불사 천일기도 이후 계속해서 천일기도가 이어지고 있는 기도처이다.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이라 하여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도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관음전 앞에서 바라본 음향각과 승보전 방향 전경
○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보조국사 감로탑 오르는 계단

보조국사 감로탑

감로탑은 맨 아래에 2단의 대좌를 놓고 그 위로 내귀퉁이에 각을 이룬 또 다른 대좌를 끼워 넣었는데, 이러한 형식은 매우 특이한 형식이다. 맨 아래 2단의 대좌는 그 위에 있는 돌들과 석질이 다른 점으로 보아 1926년 이 탑을 해체 복원하면서 새로 끼워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위에는 희미하게 연꽃무늬를 새긴 복련석이 몸돌을 바치고 있으며 그 위에 8각의 지붕돌과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고려 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 (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웠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감로탑에서 바라본 삼일암, 설법전 방향 전각들

검로탑 앞에서 바라본 응현당 문수전 방향 강원 전각들

대웅전 뒤 새로 세운 불이문

불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

조선 세조 7년(1461)에 지어진 건물로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이다. 부엌 상부 지붕에는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지붕에 구멍을 내고 그 위에 조그만 솟을지붕의 형식으로 환기구멍을 장치한 것이다.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따르고 있는 승방건축으로 희귀한 구조와 양식을 지녀 한국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 응진당

석가모니부처님과 16나한을 모시는 전각으로 정면 3칸의 맞배집이다.

1504년 처음 지어진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내부에 모셔진 석가모니후불탱과 16나한탱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삼일암

하사당과 응진당 사이에 있는 전각이다.

삼일암 현판은 안쪽에 걸려 있다.
○ 설법전

설법전(說法殿)은 불교 사찰에서 법문을 설하는 전각이다. 큰 법회, 강설, 예불, 교육 같은 의식과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쓰인다.

금강계단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불교에서 승려에게 계를 수여하는 계단을 뜻한다.

○ 법왕문

○ 수선사

○ 자음당


자음당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정혜문을 지나
○ 국사전(국보)

지눌 스님을 비롯해 송광사 16국사 진영을 모시고 있다. 국사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있으며, 가사와 장삼을 수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국사전 내부의 연꽃무늬로 장엄한 천장은 건물 안쪽에 걸쳐 우물 정자 모양을 하고 있다.
국사전은 출입 금지이다. 16국사 진영을 알현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안쪽을 살필 수가 없어 아쉽다.

대신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16국사 진영을 알현한다.
○ 풍암영각

출입금지다.
○ 행해당

○ 길상헌

○ 목우헌


목우헌 앞으로 다시 내려와

대웅전 옆에서 국사전 방향 아름다운 백일홍나무를 담아본다.

대웅전 옆에서 올려다본 설법전과 수선사

대웅전 뒤 옛 불이문/ 지금은 잠겼다.

송광천 건너 화엄전을 살펴보자

화엄전은 굳게 닫혔다.

외곽만 몇 장 담아본다.

화엄전 전경

화엄전 옆 대나무 숲길

화엄전 내부 일부를 돌담 너머에서 담았다.

화엄전 뒤 돌담길

화엄전 전경을 마지막으로 담고 다시 삼청교로 내려가자.

삼청교와 우화각 송광사에도 봄빛이 물들고 있다. 이맘때 연녹색 봄 색은 참으로 아름답다.

삼청교와 우화각을 다시 담고

대웅전을 다시 담아본다.
지금부터는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영역으로 출입금지이다. 외관만 바라보고 지나간다.
○ 무념문

무념문은 굳게 잠겨 일반인은 출입 금지다.
○ 성적문

성적문(불일국제선원)도 일반인 출입 금지
○ 문수전

점화실과 대지전
○ 중현당


효봉영각에서 바라본 중현당과 도성당

효봉영각에서 바라본 중현당
○ 도성당



도성당 아래 산수유 나무

응현당, 문수전, 중현당, 도성당 모두 강원 영역으로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외부 모습만 보고 다시 탐방길을 걸어
○ 해우소

해우소 앞을 지나 효봉영각으로 향한다.
○ 무무문

○ 효봉대종사사적탑

○ 조계사조종정 효봉대종사비

○ 효봉영각

안쪽을 볼 수가 없다.
지금부터는 공양간 영역이다.
○ 화진당

○ 자제원


자제원(선호당)

자제원 안 장독대

자제원 안체

자제원(선호당) 앞에서 도성당 방향 산수유 나무 전경

성보박물관을 찾아가는 길목

해우소 앞을 지나 이제 성보박물관을 찾아 가자.
○ 후원

후원을 올려다 보고

후원 전경
○ 불일쉼터

○ 송광사 성보박물관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송광사 창건 연혁과 역사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송광사 말사에 있는 각 종 불교 문화재와 귀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송광사 괘불과 괘불함

실제가 아닌 성보박물관에 걸려 있는 사진을 담았다.


○ 송광사사적지도


○ 불•법•승 삼보사찰

○ 송광사의 이름 유래

○ 송광사 창건과 역사

○ 송광사 템플스테이



○ 탑전으로 향한다.


○ 구산선문

○ 적광전



목우가풍
○ 탑전


탑전을 알현하고 계곡을 거쳐 율원으로 향한다.
○ 송광사 율원

송광사 율원은 계율 전문교육기관으로 일종의 사법연수원 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한 계율을 어긴 스님들에 대한 조사 및 징계도 같이 하는 곳이다. 즉 검찰과 법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송광사 뒤 언덕배기에 있다.
○ 송광사 보조국사비
이 비는 송광사를 크게 일으킨 보조국사(1158~1210) 출가 후 행적과 업적을 새겨 놓은 비이다. 1201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제자 혜심이 중심이 되어 보조국사의 행장을 모아 왕에게 탑비를 세워줄 것을 주청 하여 세워졌고, 이후에 비가 파괴된 것을 1678년(숙종 4)에 다시 세웠다. 보조국사의 호는 목우자이며, 법명은 지눌이며, 호는 불일 보조국사, 탑호는 감로이다. 출가 전의 성씨는 정 씨이다.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고 평생을 수선에 힘썼으며, 정혜쌍수*를 주장하여 조계종의 기틀을 세웠다.
*정혜쌍수 :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불교 수행법

○ 부도전

송광사 보조국사비를 비롯한 큰 스님들의 부도전이다.
○ 감로암



무량수전

무량수전 내부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조계산

감로암 앞에 언덕에 있는 원감국사비

불일암으로 가는 오름길에 누군가의 비들이 서있다.
시간이 좀 있으면 자세히 들여다볼 것인데 시간에 쫓긴가. 해가 저물기 전에 불일암을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쁘다.
○ 불일암

불임암 입구

불일암 설명

법정스님이 목욕 청정하였다는 목욕간이다.

불일암

불일암 현판

무소유 삶을 가르친 법정스님이 살아생전 앉아서 명상을 한 나무의자이다. 그의 검소하고 청백한 삶을 상징한다.
○ 제7대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

자정국사 부도탑

자정국사 묘광탑을 참배하고 다시 돌아와

불일암 앞에 있는 나무

누구든 차 한 잔 하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하여 놓았다.
고즈넉한 산속 절집에 앉아 차 한 잔 하는 동안 복잡한 상념들이 다 없어지고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고요해진다.

비구법정 부도탑

해는 너울너울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불일암의 고즈넉함에 마음 또한 고요하여 법정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새기며 불일암을 떠난다.

요사채

돌아오는 무소유길엔 대나무 바람이 부드럽게 스친다.

무소유길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알 듯 말 듯 무소유 마음으로 내려온 발걸음이 가볍다.
내일은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웅다웅 일상에서 그래도 잠시나마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새겨 마음 가운데 두고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보고 숨 쉬고 느끼고 비우고 생각하며 행동해 보리라.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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