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늘 무등을 오르내리면서 친근하게 들렸던 곳.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고플 때 부담 없이 들려 고즈넉한 풍광에 푹 빠져 한참을 새인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
그런 무등산 약사암에 들렸다.
약사암은 모든 중생의 아픔을 구제한다는 원을 세운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이다.
무등산 약사암은 보물 제600호인 석조여래좌상을 주불로 모신 암자이다.
차분하고 아늑한 암자 약사암을 둘러본다.
○ 무등산 약사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本寺)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일주문

약사암 안내

약사암 가람

약사암 가람

약사암은 850년 경 철감선사 도윤이 처음 지어 인왕사라 불렀다 한다. 1094년(고려 선종 11) 혜조국사가 다시 지었고 1390(고려 공민왕 9), 세 번째 지었을 때에 약사암이라 고쳐 불렀다.
1856년(철종 7)에 관찰사 주석면의 협조로 성암, 학산 두 스님이 다시 지었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
대웅전과 요사 5동 그리고 일주문 등은 1974년에 착수, 1984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절에는 보물 제600호인 석조여래좌상과 창건 당시에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약사암 창건 공적비 군

약사암 전경

대웅전으로

대웅전과 삼층석탑

약사암 창건 당시 세웠다는 3층 석탑

약사암 대웅전
○ 무등산 약사암 석조여래 좌상(보물 제600호)

무등산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약사암 대웅전 중심부처로, 질병을 앓은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거친 질감의 화강암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불상 뒷부분에 불상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있던 광배는 없어졌으나 불상과 불상을 올려놓은 대좌는 잘 보존되어 있다.

소라 껍데기처럼 말려 있는 머리칼과 머리 중간 부분에 볼록하게 올라온 육계가 가까이 붙어 있고, 얼굴은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에서 선정의 경지에 이른 자비로움이 느껴진다.

어깨선이 약간 처져 있으나 당당한 체구이며, 허리가 가느러서 상대적으로 가슴 쪽의 양감이 풍부하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입은 가사는 가슴 앞에서 한 번 접었고, 몸에 얇게 밀착되어 있어서 상채의 굴곡을 잘 드러낸다.

향미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발을 무릎 위에 발바닥은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다.

대좌는 전형적인 팔각 연꽃무늬 대좌로, 상대, 중대, 하대를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었다.

표현이 형식화되어 있으며 대좌와 불상의 높이가 1:1의 비례를 이룬다는 점, 유난히 무릎이 넓다는 점 등에서 석굴암 본전불의 특정을 이어받은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600호 표지

운림선원

삼층석탑

운림당 강원

약사암에서 바라본 새인봉

새인봉 풍광

나한전
나한전(羅漢殿)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아라한, 성자)을 모신 사찰의 법당이다. 응진전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보통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 두 제자를 모시고 그 주위에 16나한을 봉안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이곳 무등사 약사암에는 500나한을 모셨다.

서석산 신위

약사암 전경

약사암 전경

약사암 뒤 소나무 숲

약사암 전경

봄을 틔워내는 매화

봄을 부르고 있는 매화

약사암 복수초

약사암 복수초

약사암 복수초

약사암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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