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랑 : 광주공고동문산악회원
고교동문산악회에서 김천 수도산 자락 인현왕후길을 걷고 시간이 남아서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3년간 머물렀던 청암사를 둘러보고 싶었다. 유서 깊은 천년 고찰 청암사를 둘러본다.
○ 청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859년(헌안왕 3) 도선(道詵)이 창건하였고, 혜철(惠哲)이 머물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에 의룡율사(義龍律師)가 중창하였고, 1647년(인조 25) 화재로 소실되자 벽암(碧巖)이 허정(虛靜)을 보내 중건하였으며, 1782년(정조 6) 4월 다시 불타자 환우(喚愚)와 대운(大運)이 20여 년 후에 중건하였다.

그 뒤 1897년(고종 34) 경에 폐사되어 대중이 흩어졌으나 1900년대 초에 극락전을 건립하였으며, 이어서 응운(應雲)이 보광전을 건립하다가 입적하자 대운(大雲)이 이를 받아서 완성하고 42수(手)의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11년 9월에 다시 화재로 인하여 전각이 불타자 대운이 1912년 봄에 다시 당우를 건립하였으며, 1940년대 이덕진화상이 정법루(正法樓)를 신축하고 1976년 주지 비구니 진기가 사천왕문을 건립하였다.

1992년에 지형이 중현당(重玄堂)을 신축하고 2006년 상덕이 중수하여 현재 청암사율학승가대학원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육화료(六和寮) · 진영각(眞影閣) · 정법루 · 중현당 · 범종각 · 일주문 · 사천왕문 · 비각(碑閣) · 객사 등이 있고,

계곡 건너 100m 지점에는 극락전(極樂殿)과 1994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보광전(普光殿) · 요사채 등이 있는 극락암(極樂庵)이 있다.

이중 육화료는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 대방채로 이용되고, 극락전 안에는 200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아미타불회도가 있다.
그 외 200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신중도와 진영각에 모셨던 22위의 조사진영은 현재 직지사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또 대웅전 앞에 있는 높이 약 6m의 석탑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1층 석탑에 여래상이 양각되어 있으나 탑신이 4층이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부도 군에는 벽암대사의 사리탑을 비롯하여 태감(泰鑑) · 지성(智性) 등의 공덕비가 있다.

또 일주문 안에는 사적비를 비롯하여 회당비각(晦堂碑閣)과 대운당(大雲堂)의 비각이 있다.

이 절의 부속 암자로는 유명한 수도도량인 수도암(修道庵)과 1905년에 비구니 유안(有安)이 창건한 백련암(白蓮庵)이 있다.
○ 창암사 가람 배치
○ 창암사 탐방

청암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고즈넉한 청암사 가는 길

불영산 청암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 비

해당비각

해당비

대운당비각

대운당비

비석 군
○ 청암사 연혁
김천시 증산면 불영산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조선 인조 25년(1647) 허정 혜원조사에 의해 제1중창이 이루어졌고, 제2중창, 제3중창 이후, 1905년~1912년에 대운병택조사에 의해 제4중창과 제5중창이 이루어졌으며,

1987년 ~ 2005년까지 의정지형, 의진상덕 강백에 의해 강원으로서 명성을 드날려 오다가 1970년대 중단되었으나, 1987년 의정지형, 의진상덕 강백에 의해 비구니승가대학을 설립하여 현재 130명의 학인대중이 부처님의 경전을 공부하고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창암사 대웅전, 청암사다층석탑이 있다.

청암교

사천왕문 앞 풍광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사천왕문 앞 풍광
○ 김천 불영산 청암사 사천왕문

사천왕문(四天王門)은 한국 전통 사찰에서 중심 전각의 바로 전면에 위치한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네 명의 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이 천왕들은 사찰과 불법을 악한 기운과 사악한 무리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하며, 사천왕문을 통과하는 것은 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각각의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맡아 악귀를 쫓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며, 악을 물리치는 무장을 하고 있거나 악기를 들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 보탑과 창을 들고 사찰을 지키며 설법을 듣는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음악을 관장하며 비파를 들고 국토와 백성을 지킨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긴 칼을 들고 만물을 소생시키며 중생의 이익을 넓힌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큰 눈과 입을 가지고 악귀를 물리치며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노란 단풍이 물들어 탐방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온통 노란색 세상이다.

붉은 단풍이 가을을 담아내고

감로수 우비천

다리를 건너

암벽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계곡운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무슨 뜻으로 암반에 이렇게 이름을 새겼을까?
후손들에게 이름을 전하려고 이렇게 이름을 새겼을까?
새겨진 이름은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지만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공덕을 쌓고 백성을 이롭게 하여 민초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 역사에 남으면 이렇게 암석에 이름을 새기지 않아도 후손들이 모두 기억하고 추모하고 옷깃을 여밀 텐데 말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광불화엄경

새로 만든 삼소교
세 번 웃어라 라는 다리인데 늘 웃어라라는 의미겠지
불영산 청암사는 계곡을 중심으로 계곡 오른쪽에 대웅전과 여러 절집이 있고 계곡 왼쪽에 극락전과 보광전 등이 있다. 해남 대흥사 같이 계곡을 중심으로 절집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삼소교를 지나

삼소교에서 바라본 계곡 하류방향

삼소교에서 바라본 계곡 상류방향

중현당과 청암사율원

중현당과 청암사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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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오른쪽 대웅전이 있는 청암사 전경

감로수

진영각
진영각(眞影閣)은 불교 사찰에서 고승(高僧)의 진영, 즉 영정(초상화)과 유품을 모시고 추모하는 전각을 말한다.

대웅전 앞 단풍나무에도 가을 소식이 전해지고

진영각은 ㄱ자 건물이다.

청암사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청암사 대웅전은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세워진 불교 건축물이다. 여러 차례 화재로 인해 타서 없어진 것을 고쳐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11년에 다 타버린 건물을 3년에 걸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전 내에는 후불탱, 산신탱, 산중탱, 칠성탱, 독성탱 등 여러 점의 탱화와 목조여래좌상이 있다.


청암사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옆면 2칸이다. 팔작지붕에는 청기와를 얹었다.

청암사 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청암사 다층석탑은 청암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높이 4.21m의 석탑이다. 1912년에 청암사 주지 대운대사가 이 탑을 상주에서 옮겨 왔다고 전해진다.

이 석탑은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을 올린 모습이다. 1층 옥신석의 사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다.

정법루(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정법루(正法樓)는 사찰 내에 있는 누각 건물로, 대웅전 전방에 자리하고 있다. 정법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이며, 스님들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각은 2층 구조로 아래 공간과 위층 모두 문으로 닫혀 있어 그 밑으로 통과하지는 못하며, 옆으로 돌아가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현재 종각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청암사 대웅전, 육화전, 진영각, 정법루 등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청암사 대웅전 옆 해태상

대웅전 안 목조여래좌상

고즈넉한 대웅전 앞 다층석탑

육화료 옆 붉게 물든 단풍나무.

육화료/청암사승가대학

육화료

육화료 앞 나무

정법루 옆모습/맞배지붕

요사채/스님 생활공간

청암사 대웅전, 육화료, 정법루 전경

법종각/계곡 건너편에 있다.

극락교

범종각 옆모습

극락교를 지나오면서 바라본 중현각, 진영각, 대웅전, 정법루 등 전경

이제 계곡 왼쪽에 위치한 절집을 탐방하자.

계단을 오르고 나서 극락전과 보광전 방향으로 발걸음

극락전을 향하여

극락전은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이곳 청암사에 기거할 때 비록 서인시분이지만 왕비였던 분이기에 사대부가의 집처럼 새로 지어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나중에 극락전이라 했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는 법당으로, 무량수전(無量壽殿) 또는 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불린다.
불영산 청암사 극락전은 일반 사대부가의 집처럼 ㄱ자 형태이면서 채색이 없는 특징이 있다.

극락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대웅전 일원 전경

대웅전 일원 전경

이곳 극락전은 일반 사대부가의 집처럼 담장이 있고 담장 안에 ㄱ자 건물로 되어 있다. 인현왕후가 3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며 지냈다.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대문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극락전을 담았다.

보광전

보광전
청암사 보광전은 조선 숙종 15년에 장희빈의 무고로 인해 인현왕후가 폐위되었을 때 복위 기도를 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건축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911년에 화재로 인해 다 타 버린 후 이듬해 다시 지어진 것이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옆면 2칸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지녔다.
현존하는 전통 건축 가운데 다포 양식과 익공 양식이 절충되어 있어 조선시대에서 일제 강점기로의 건축 양식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보광전 내에 있는 42수 관음보살 상

보광전 내부



백화당

인현왕후가 보광전으로 기도하러 가는 길

이제 보광전에서 돌아가자.

돌아 나오면서 바라본 극락전 담장과 극락전
마치 사대부가의 집처럼 지었다. 인현왕후가 불편하지 않도록 한 청암사의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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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부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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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탑





청암사 부도탑 입구

청암사 해우소

해우소

옛 해우소

옛 해우소

극락전을 돌아 나오는 길에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청암사 단풍

청암사 탐방을 마치고 잠시 쉬어간다.

찻집

~산 폭포

돌아 나오는 길목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광

탐방을 마치고 돌아 나오면서 바라본 계곡 풍광

나무아미타불 서각

고즈넉한 길에 붉은 단풍이 매력이다.

주차장 인근에 새겨진 나무아미타불 서각
○ 천년고찰 청암사 탐방을 마치고
조선 19대 왕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모략으로 폐서인이 되어 3년간 머문 청암사를 둘러보았다. 청암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이곳 청암사는 여러 번의 화재로 절집이 수난을 많이 당했다. 그때마다 훌륭한 큰 대사님이나 후견자가 있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천년고찰 치고 국보나 보물이 한 점도 없는 것은 어인 일일까?
인현왕후를 위해 사대부가의 집처럼 절집을 짓고 편하게 지내도록 한 청암사의 배려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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