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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6.04.14. 장흥 가지산 보림사

by 하여간하여간 2026. 4. 14.

○ 장흥 보림사를 찾아서

오랫동안 묻혀둔 숙제를 하러 가자. 늘 가보고 싶었던 절집이다. 물론 예전에 몇 번 들려본 적이 있다. 오늘은 맘먹고 장흥 보림사를 찾아간다.

이제 어느 정도 절집의 기본 용어에 대하여 익숙해졌고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더욱 장흥 보림사가 궁금해지고 맘의 충동질이 거세다. 거침없이 핸들을 잡았다.

보림사에 도착 첫인상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가지산으로 빙 둘러쳐진 산줄기 가운데 아늑히 자리 잡은 안방 같은 느낌이다. 절집도 단순하다.

천년 고찰임에도 이렇게 단순하고 고즈넉할까? 필시 사연이 있겠지? 천천히 돌아보자.

○ 장흥 보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며 동양 3대 보림사 중 하나이다.

보림사는 동양 3보림(인도, 중국,  한국)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온 가람으로 해동선종 종찰이다.

서기 759년 원표대덕께서 터를 잡아 '가지사'라 하다가 서당지장과 백장회해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도의선사께서 821년 이곳으로 귀국하여 염거선사에게 법을 전하고, 다시 체징선사(804~880)께서 법을 전수받아 가지산문의 선풍을 크게 떨치자, 신라 경덕왕께서 교지를 내려 장생표주를 세워 가람의 구역을 확정하고 천 칸의 불궁을 세웠다. 헌강왕께서 절 이름을 보림사로 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선종의 종찰임을 인정하여 주었다.

이후 고려시대에 이르러 가지산문 출신의 최초 국사인 운응 학일(1052~1144) 대선사와 공민왕사인 태고 보유국사(1301~1382)께서 주석으로 머물러 크게 융성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선도량으로 종지를 지켜 1515년 사천왕상을 조성하는 등 50여 동의 전각을 중창하였고 영월 청학(1570~1654) 연담 유일(1720~1799) 응화 유한(1813~1885) 등 많은 선사와 강백을 배출하는 등 한국불교의 선풍을 지켜왔으나 6.25 한국전쟁으로 외호문과 서천왕문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청담, 경산 등 원로스님들께서 이를 중창코자 하였으나 복원하지 못하다가 현 주지인 현광선사께서 1982년부터 대웅보전, 대적광전, 선원 등을 차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보림사에는 국보 2건, 보물 7건, 전남도 문화재 13건, 향토문화유산 4건이 보관 중이다.

또한 보림사에는 선승들이 즐겨 마시는 작설차가 특산품으로 전하고, 비자림과 약수를 비롯 산림욕을 겸비한 당일코스의 가지산 등산로가 개발되어 이곳 보림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가볍게 한다.

○ 보림사 산문

구산선문종찰가지산보림사

평상심시도 선다일미

평상심시도 : 평상심이 바로 깨달음이고, 평상심은 분별이 없고 조작이 없으며 시비가 없고 집착이 없는 인간 본래의 청정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가리킨다.

선다일미 : 차를 마시는 과정이 수행하는 것과 같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보림사는 평지이다.

○ 가지산 보림사 일주문

일종의 일주문인데 기둥이 아니라 전각형태를 띠고 있다.

가지산 보림사 현판

선종대가람/외호문

○ 보림사 사천왕문

사천문 전경

○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

동방 지국천왕과 북방 다문천왕(비파)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이 위치하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

이들의 조성시기는 천왕문에 걸린 목판과 '보림사중창불사기록'에 의하여 중종 10년(1515)에 조성되고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림사 사천왕상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보림사 사천왕상 아래쪽 악귀 형상이 익살스럽다.


○ 보림사 전경

사천왕문을 지나면 확 트인 보림사 전경이 펼쳐진다. 사찰 주변으로 가지산 줄기가 빙 둘러 마치 안방 같은 고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절집이다.

바로 앞에 대적광전이 들어온다.

○ 보림사 남•북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44호)

이 탑은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 대상이다. 두 탑의 규모와 구조는 비슷하다. 이 탑은 1932년에 사리장치를 훔치려다 넘어뜨렸던 것을 그다음 해에 복원할 때 1층 탑신부 사리구멍에서 사리와 함께 조성 내용이 기록된 탑지가 나와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높이는 남 탑이 5.4m, 북 탑 5.9m이다. 석등은 부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등은 지대석을 제외한 기단, 몸체돌, 지붕돌 모두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등은 각 부의 비례가 알맞아 조화도 빼어날 뿐 아니라, 손상 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높이는 3.12m이다. 탑과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고, 또한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어 석탑, 석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으로, 『화엄경』의 연화장세계를 상징한다.

보림사 대적광전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선 순간 자상한 어머니 같은 불상에 압도되어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와 광배는 없어지고 불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언경이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뚝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 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왼쪽에서 보니 이 세상 모든 고통을 안고 삭이며 살아가는 어머님 얼굴이다.

오른쪽에서 보니 우아하고 자상한 사랑 가득한 귀부인 얼굴이다.

대적광전 내부 한쪽 탱화

대적광전 내부 한쪽에 걸려 있는 감매화보살진영

대적광전 앞에서 바라본 보림사

가지산으로 빙 둘러 안방궁처럼 아늑한 분위기이다.

대적광전 앞 남북삼층석탑과 석등

괘불탱 지주대

○ 범종각


○ 대웅보전

대웅보전 전경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절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법당 중 하나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복수의 부처와 보살을 함께 모신 격을 높인 형태의 전각을 말한다.
보통 한 분의 부처만 모시는 경우를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여러 부처(예: 삼신불·삼세불 구도)를 함께 봉안해 격을 높인 것을 ‘대웅보전’으로 부른다.

일반 대웅전 :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웅보전 :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아미타불·약사여래를 함께 봉안하거나, 삼신불·삼세불 구도를 이용해 보다 엄격한 예배 공간으로 꾸민 경우를 말한다.

대웅보전 안의 불상은 송광사 대웅보전 불상을 연상케 한다.

대웅보전에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 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즉,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 등 3세 불상(좌상)을 모셨으며,

각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4대 보살(입상)을 모시고 있다.

현재불임 석가모니불과 후불탱

미래불 미륵불과 후불탱

과거불 연등불과 후불탱

삼세(과거, 현재, 미래) 불과 4대 보살(관음, 문수, 보현, 지장)

○ 명부전

명부전 전경

명부전(冥府殿)은 사찰에서 저승의 세계를 상징하는 전각으로, 보통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시왕을 함께 봉안한다.

명부전 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중생까지 모두 구제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했던 보살이다.

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두고, 주변에 시왕상과 판관, 인왕 등을 배치한다.

○ 시왕 배치

지장보살 오른쪽

제2 초강왕(初江王)
제4 오관왕(五官王)
제6 변성왕(變成王)
제8 평등왕(平等王)
제10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

지장보살 왼쪽

제1 진광왕(秦廣王)
제3 송제왕(宋帝王)
제5 염라왕(閻羅王)
제7 태산왕(泰山王)
제9 도시왕(都市王)

○ 미타전

미타전으로 오르는 계단

미타전은 아미타불(아미타여래)을 주불로 모신 법당을 가리킨다. 이는 극락정토의 주재자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무량수불의 권능을 상징하며, 종종 극락전, 무량수전, 무량광전 등으로 불린다.

○ 장흥 전의상암지 석불입상(전남 유형문화재)
  

원래 전남 장흥군 제암산 중턱에 있는 의상암 절터에 있던 것인데, 1994년부터 보림사로 옮겨 모시고 있다.

몸 뒤의 광배와 목 부분에 약간의  파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 묶임이 높게 표현되었고 얼굴은 계란형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 위까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다.
양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물결 모양의 주름을 만들면서 무릎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미타여래를 표현한 얼굴, 높은 머리묶음, 상채의 옷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사전

조사전(祖師殿)은 역대 조사(종파의 개시자·계승자)나 사찰의 창건주, 중창주, 고승대덕의 영정·위패를 모셔 두는 전각을 말한다.

조사전

해동초조 도의선사 진영

제6세 조사국사 진영

개산조 보희선사 진영

2조 염거선사 진영

태고 보우대화상 진영

○ 요사체

스님이 기거한 요사체이다.

○ 삼성각

삼성각 전경

삼성각은 삼성 즉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한 공간에 함께 봉안한 전각을 가리키며, 승려·신도들이 재물·수명·복을 기원하는 장소로 쓰인다.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

가지산 아래 아늑한 대웅보전과 명부전 전경

○ 가지산보림사사적비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보물 제158호)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지선의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는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머리를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운 모습이다. 등 뒤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전체를 덮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정식해 놓았다. 비몸돌에는 보조선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웅대하게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명'이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다.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비로,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보림사 보조선사탑으로 오르는 돌담길에는 담쟁이가 한참 봄을 피워내고 있다. 아름답다.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보물 제157호)

보림사에 세워져 있는 사리탑으로,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보조선사(804~880)는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흥덕왕 2년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희강왕 2년(837)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문성왕 2년(840)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을 가르쳤다. 헌안왕 3년(859)에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라 하고, 탑 이름을 '창성'이라 내리었다. 탑은 바닥돌부터 지붕돌까지 모두 8각으로, 통일신라 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8개의 큰 연꽃조각 위에 놓인 탑신의 몸돌은 앞, 뒤에 문짝 모양을 그 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꼭대기에는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륜(바퀴모양의 장식), 보주(연꽃봉우리모양의 장식)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  

보물(제157호) 표지석

○ 이름 없는 불상

이름 없는 불상 몸체만 남았다. 설명이 없다.

보림사 전경

○ 선방

불이문

선방은 지금은 폐가처럼 텅 비어 있다.

요사체로 통하는 입구

요사체

관음료

관음료 전경

관음료 장독대

관음료에서 조금 위로 오르면 차나무와 비자나무 숲 속에 요사체가 나온다.

○ 요사체

요사체 출입문

요사체

스님이 출입금지란다. 외부만 담았다.

주변이 온통 차밭이다. 관리를 하지 않나 보다. 잡초로 엉키어 엉망이다.

다시 절집으로 내려오는데 벚꽃이 우아하게 피었다.

절집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카메라에 집중한다.

이럴 때는 잠념이 없다. 왜 그럴까?

잡념은 생길 때도 있고 생기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일에 관심이 생길 때 잡념은 싹 사라진다.

그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잡념이 생기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사실 잠념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은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상태다. 언제나 잡념이 없는 평온하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수 없는 명상 등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지이다. 이런 경지를 우리는 선이라 한다.

돌아본 요사체와 관음료

가지산 줄기 아래 고즈넉한 절집 풍광

다시 절집으로 내려오면서 보림사 입구 고즈넉한 돌담을 담아 본다.

○ 요사체 : 청쟁인원림궁

요사체

자목련

청쟁인월림궁 현판

○ 보림약수

한국의 명수 보림약수 기념탑

보림약수

한국 최초의 야생차밭과 비자나무 숲에서 내려오는 보림약수는 '한국의 10대 사찰 명수'로 선정되었다.
몸에 좋은 미네랄 성분(셀레늄, 주석, 철, 등)으로 항암작용, 노화방지, 피부병,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보림 약수는 대웅보전 앞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있다.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은 휴관이다.

보림사 전경

해우소

장흥 보림사 동 승탑으로 오르는 길

○ 장흥 보림사 동 승탑(보물 제155호)

보림사는 통일신라시대 선종 9산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가지산파의 중심사찰로, 헌인왕 4년(860)에 왕의 권유를 받아 체징이 창건하였다. 동부도는 보림사 동쪽 숲 속에 있는 여러 승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각 부분이 8각으로 깎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윗부분이 높게 이루어진 반면,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이 작고 낮아 안장감이 떨어진다. 잘 정돈된 구조가 돋보이며 머리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도 아 승탑의 소중함을 더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졌으면서도 고려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승탑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보림사 부도탑

동 승탑에서 내려다본 부도탑 전경


○ 장흥 보림사 서승탑(보물 제156호))

돌아오는 길에 들려야 하는데 잘 못 알고 들리지를 못했다. 무척 아쉽다. 여기 선답자의 자료를 참조하여 정리한다.

서부도는 2기로 보림사의 서쪽, 봉덕리 구석마을 버현아마 앞에 위치하고 있다.
두 부도가 모두 팔각원당현으로 기본 형태는 같으나 장식이 약간 다르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1941년도에 도굴꾼들이 이를 쓰러뜨렸으나 4년 후 다시 복원하였다. 부도 넢이는 3.6m, 3.2m 이다.

○ 장흥 보림사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깔끔하고 아늑한 절집이다. 휘황찬란하지 않아도 고풍스럽고 품격이 살아 있는 절집이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인자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주물로 만든 저 도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통일신라시대 주물 기술도 놀랍지만 저 비로자나불 목형을 깎은 도공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었을 것 같다. 그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절집을 탐방하다 보면 불교의 껍질만 보고 진정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인 깨달음에 대한 내용은 담지 못하고 있다.

이 블로그의 취지는 불법의 심오한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절집 배치와 각 전각들의 의미 그리고 그것의 문화적 가치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불교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