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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4.09.22. 장흥 천관산 탑산사 탐방(아육왕탑-한국불교 태동지 탑산사(큰절) - 반야굴 - 폐사된 탑산사)

by 하여간하여간 2024. 9. 23.

2022.11.20. 천관산을 오를 때 탑산사 주차장에서 「반야굴- 한국불교 태동지 탑산사(큰절) - 아육왕탑」을 탐방했던 내용과 거의 방치된 2024.09.22. 탐방한 천관산 탑산사를 여기 소개한다.

 

★  2022.11.20. 탐방한 「반야굴- 한국불교 태동지 탑산사(큰절) - 아육왕탑」 탐방

 

◎ 아육왕탑

 

아육왕탑

 

아육왕탑은 ‘천관산기’, 《삼국유사》, 《석보상절》, 《월인석보》, 《지제지》 등에 나온다.
아육왕(아소카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병(舍兵)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 아사세왕((阿舍世王)이 세워 놓은 탑에 있는 사리를 모두 다 꺼내고 또 다른 일곱 탑에 있는 사리도 모두 다 내어 금은(金銀), 유리(琉璃), 파려(波瓈)로 8만 4천 통을 만들어 사리를 나누어 담고 또 금은 유리 파려로 8만 4천 개의 병(甁)을 만들어 그 사리를 통에 담고 또 무량한 백 천 개의 번당(幡幢)과 덮개를 만들었다 … 왕(아육왕)은 밤에 귀신들을 시켜서 칠보를 가루로 8만 4천 개의 보탑(寶塔)을 만들고 야사존자(耶舍尊者)에게 명하여 손가락을 펼쳐 8만 4천 개의 줄기에 광명의 빛을 발광케 하고 날랜 귀신을 시켜 한 광명의 빛줄기를 쫓아가서 그 빛이 다다르는 땅에 한날한시에 탑을 세우게 하니 … 너희들은 가서 준비만 옳게 하고 있으면 내가 아수라(阿修羅)를 시켜 월식(月食)을 일으키고 사천하(四天下)가 다 함께 북을 칠 것이니 그때 맞추어 세우도록 하여라 하시여 그 귀신들이 월식을 할 때 8만 4천 개의 탑을 모두 다 함께 세웠던 것이다 ….

그 탑이 진단국(震旦國(발해, 삼국)에 아직도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 전라도의 천관산(天冠山)과 강원도의 금강산(金剛山)에 이 탑이 있으며 신령하여 영험(靈驗)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아육왕이 이탑을 세운 해는 려王(려왕) 46년 무진(무辰年)으로서 기원전 833년이었다.

인도의 아소카왕(아육왕)은 인도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함으로써 마우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다.
아육왕은 아소카왕의 한국어 번역어이다.

 

 

아육왕탑의 의미를 잘 알지만 진시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내려오면서 올려다 본 아육왕탑 모습

 

 

 

연화동 서쪽 꼭대기에 있으니 거석이 겹쳐서 오층을 이루어 공중에 외로이 서 있다. 청람이 반쯤 거둘 때에 계곡 저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것이 으뜸인데 참으로 절관이다. 탑 아래쪽의 조그마한 석대는 가섭이 쉬던 돌이요. 그 동쪽 아래 석봉이 나즈막히 길게 연달아 있는 곳이 가섭봉이라 한다. 선조시대에 탑 상층 절반이 무너져 떨어졌다.

 

 

◎ 천관산 탑산사(큰절) -  한국 불교의 태동지이며 최초의 진시사리가 들어온 곳이다. 

이곳 천관사 탑산사(큰절)이 원래 천관산 탑산사인지 아니면  탑산사주차장 위에 있는 탑산사(폐사되어 방치됨)이 원래 탑산사인지는 자료가 없어 모르겠다. - 독자들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처음 천관산 탑산사를 올랐을 땐 참으로 허름한 볼 품없는 절집이였다. 전쟁으로 소실된 뒤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모습이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젠 제법 절집다운 모습이다. 이제야 알았지만 천관산 탑산사에 천관보살을 모시고 있다. 팔만대장경에 의하면 천관보살이 많은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서 불법을 전했다고한다. 그 자리가 천관산 탑산사이다.

 

  

아름다운 천관산 탑산사 모습

 

 

이제 제법 절집다운 규모를 갖추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이다.

그런데 바로 장흥 천관산에 있는 탑산사도 적멸보궁이라는 것이다.
탑산사 왼쪽 위에 돌탑이 있는데 이 아육왕탑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만약 이곳에 정말 전설속의 아육왕탑에 진신사리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의 불교 역사가 바뀔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기원후 4~5세기경 삼국시대에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고 하며 지금까지 1600년의 역사라고 한다.

아육왕탑에서 진시사리가 나온다면 한국의 불교역사는 2100년을 뛰어 넘는다. 500년을 앞서간다.

 

 

탑산사는 한국불교 태동지이며 최초 적멸보궁, 부처님 진신사리가 들어온 곳이라고 한다.

 

 

탑산사에서 잠시 인증 몇 장 담고

 

 

탑산사 대웅전 앞 정원은 넓지 않지만 담너머 바라보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넉넉한 대덕 들녁과 남해 바다와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완도 관내 섬들이 연출하는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풍광속에 가슴 저 밑에서 저려오는 아련함을 느낀다. 일년 내내 농사일에 뼈가 빠지고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고달픔을 어디에서 위로 받았을 수 있었을까? 

 

 

고려시대 불교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고 온 백성이 부처라는 통치 이념으로 백성을 귀하게 여겼지만 이조시대 유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왕권 중심의 통치이념에서 엄격한 계급사회를 만들고 천민들의 애환을 나몰라라 하였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성군이 있었을지라도 하급의 지방으로 내려오면 지방 토속 양반 탐관오리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백성들의 피를 빨아 자기 배를 채우는 극악무도한 짓을 얼마나 흔하게 저질렀던가? 하물며 임금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암울한 시기의 백성들은 얼마나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감옥에 쳐여졌던가?  그들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절집이였다. 절집에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의 고달픈 삶을 지탱했는지 모른다.

 

 

 

탑산사 대웅전

 

탑산사에는 천관보살이 있다. 천관산과 천관보살은 어떤 관계일까? 

 

 

탑산사 내부

 

화엄 80권이 탑산사로 들어왔는데 화엄 80권에 보살주처품에 천관보살 이야기가 나오고 해인사에 가면 팔만대장경에 천관보살 경전이 나온다.
이 책이 화엄 80권인데 그중에 화엄경 보살주처품 32권에 보면 동남방에 지제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천관보살이 제자 1천을 데리고 법을 설한 산이다. 라고 나온다. 이 기록에 의하면 천관보살이 천관산에 머물러서 제자들에게 법을 연설한 산이다.

 

 

7세기에 번역된 80화엄에 지제산(천관산)과 천관보살이 언급되어 있다.

 

 

번역본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동남방에 지제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이 거기 있으며 지금 천관보살이 권속 1천보살과 함께 가운데 있으며 법을 연설하느니라. 라고 나온다.

 

 

천관보살이 천관산에 있다고 해서 천관산이라고 하고 강원도에도 문수보살이 있어서 문수산이라고 기록이 나온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대수긴나라왕소문경이 나오는데,  그때에 천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고 오른 어깨를 들어내며 오른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당과 개성으로 찬탄하였다.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으로 "우리 인간이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 하는 말씀의 경전이다.

 

 

그때에 미륵보살, 천관보살, 대덕아아난다등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리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경 이름은 대수긴나라왕소문경이라 하고 또 선설불사의법품이라고도 한다. 그대들은 이런 것으로 받들어 지녀라.

 

 

탑산사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인 천관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사찰이며 존재 위백규의 [지제지]에 천관산 89개 암자 중 중심 역할을 한곳으로, 탑산사의 내용은 [석보상절] [동문선]에 기록되어 있으며 부처님 사리를 모신 아육왕탑이 있는 한국불교가 태동한 성지이자 남방불교의 전래지로 알려져 있다.

서기 800년(신라 예장왕 1년)에 통영화상이 창건하여 아육왕의 연기설화와 관련된 탑 동쪽에 사잘을 세우고 이에 연유하여 탑산사라 이름 하였다고 [동문선]에 나타나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기로 추정되는 탑산사 석등과 금동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탑산사 대웅전에 있는 천관보살 철불상이다. 천관산 탑산사 천관보살 천불상은 주조로 만들었다.

 

천관보살 철불상의 뒤에는 주조한 시기가 나와 있다.
명나라 영락 6년(1407) 7월 20일 이다. 그럼 올해가 2022년 이니까 주조한지 615년이 지났다.

 

 

탑산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 천관보살이 안치되어 있있다.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치커리

 

 

◎ 탑산사 범종

 

탑산사에는 범종각이 없다. 탑산사 범종은 보물로 지정되어 해남 대흥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산사 범종

 

 

 ‘계사십월일낙산면, 탑산사화향도상현지, 장목어비호장주(?)중산촌동원, 금종입중팔십근인 (癸巳十月日落山面, 塔山寺火香徒上玄智, 長木於非戶長住(?)仲山寸同愿, 金鍾入重捌拾斤印)’로 읽혀진다.

 

 ‘만력이십일년십이월일내▨변총, 통주성어탑산사종취래파, 조▨▨종▨동철수합입납, 반본사상철물대시주(萬曆二十一年十二月日乃▨変銃, 筒鑄成於塔山寺鍾取來破, 造▨▨鍾▨銅鐵收合入納, 返本寺上鐵物大施主)’ 

 

 

어쩌면 아주 오랫 전에 이곳으로 어머님도 기도하러 오셨을까? 대덕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절이니 그럴 수 있겠다 쉽다.

 

 

저 아래 대덕에서 부터 걸어 올라오면 하루는 걸렸을 험한 길이였을텐데 어머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러 오셨을 것이다. 

 

 

 

어머님의 숨결을 찾아 먼 하늘을 본다. 

 

 

천관산 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탑산사는 깊은 기도처이기도 하다. 남녁과 남해 섬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져주는 기도처였을 것이다.  수수하고 단아한 절이다. 고달픈 백성들의 절규를 들어주는 절다운 절이다. 이 아름다운 순수한 절을 맘에 세기면서 탑산사를 떠난다.

 

 

  

이제 탑산사와 이별하고 하산한다. 탑산사주차장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

 

 

깊은 산죽 터널을 지나고

 

 

천관산 계곡마다 싱싱히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

동백나무 숲

 

◎ 반야굴

 

 

반야굴

 

 

 

반야굴 설명문

 

 

등산로와 갈림길 이정표

 

 

탑산사,  연대봉 닭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갈려져 있다.

 

탑산사 주차장이다.

 

★  2024.09.22. 탐방한 탑산사주차장 위에 있는 또 다른 천관산 탑산사

이곳이 원래 천관산 탑산사인지 아니면 천관산 8부능선에 있는 탑산사(큰절)이 원래 탑산사인지는 자료가 없어 모르겠다. - 독자들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 천관산 탑산사

 

제법 절집 수준의 탑산사(큰절)은 어러번 들렸지만 하산지점 탑산사주차장 위에 있는 탑산사는 지나가기만 했지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차분히 들여다 본다.

 

천관사 탑산사 표지석을 지나

 

해우소를 지나면

 

막다른 곳에 수풀이 우거지고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탑산사 가는 길은 완전히 수풀로 묵혀 있다. 거미줄이 겹겹이다. 폐사인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거미줄을 헤치며 어렵게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옯긴다.

 

수풀이 무성히 우거진 희미한 길을 따라 어렵게 발걸음을 옮긴다. 

천관산 탑산사라는 입구 표지석을 보면 분명 거대한 절집이 있으려니 하고 기대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10m도 안되서 완전히 폐사된 절 같다.

 

그래도 그렇지 가보자. 옛날 탑산사가 화려할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닐었을 돌담길이 새월의 침묵을 안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이 물웅덩이는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법당으로 가는길 50m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혹시 법당엔 스님이 계시나?

 

절집은 완전히 이상하다. 누군가 이곳에서 기도하는 곳이였을까? 일반 절집은 아니다.

 

거대한 바위를 지붕 삼아 석굴이 앞에 참선중 들어오지 마세요 표시가 있다. 혹시 저곳에 스님이 참선중일까?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뒤에 있는 법당을 찾아 오른다. 으시시 하다. 여러상황을 보아 이곳 탑산사는 주인을 잃고 오랫동안 짙은 안개에 뭍혀 있는 것 같다.

 

나무가지 사이로 맞은편 불영봉과 거북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오랫동안 침묵속에 뭍힌 장흥 천관산 탑산사

 

그 옛날 아육왕이 8만4천개의 사리탑을 일시에 세울 때 동방에 지제산 중턱에 사리탑인 아육왕탑을 세웠을 때 이곳 천관산 탑산사의 영광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수천년의 세월을 침묵속에 뭍히고 있는가?

 

돌담에 얹어진 기와장 만이 그 옛날 화려했던 역사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법당이 이다. 너무나 초라하게 방치된 법당이다.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그 옛날 천관산보살이 천여명을 거느리고 법문을 설하였다는 그 화려한 절집은 어디로 가고 어찌하여 지금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불교의 다른 지역의 절집들이 화려하게 중흥하고 있는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장흥 천관산 탑산사는 이렇게 세월속에 뭍혀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안타깝다. 한국불교의 태동지가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되다니? 한국불교의 모든 신도들이 통탄해 마지 않을 일이다.

 

계곡으로 통하는 길은 완전히 묵혔다. 

 

돌아나오는 길에 수풀 사이로 다가온 불영봉이 선명하다. 불영봉은 부처님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영봉과 거북바위

 

불영봉을 당겨본다.

 

불영봉

 

미타봉의 북쪽에 있으니 큰 바위들이 무더기로 쌓여 봉우리를 이루었고 네모꼴의 기둥 같은 돌이 그 꼭대기에 높이 솟아 엄숙함이 부처님 영상과 같다.

청람이 그 하대를 가리고 불두가 높이 솟아 구름 밖에 있으니 황홀하여 마음이 팔려서 가히 말을 주고 받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된다. 참으로 절묘한 경관이다.

 

오랜 세월 기왓장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쓸쓸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돌아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오랜 세월 기왓장 마저 무너지고, 저 무너진 기왓장이 언제 다시 화려한 절집으로 부활할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여 본다.

 

누군가 큰 뜻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잊혀져 오랜 침묵속의 절집을 다시 부할해주길 바란다.

 

한장 한장 기왓장이 언젠가 화려게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하늘을 향해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슬하다. 그러나 기왓장 너의 희망이 이루어질 날이 언젠가는 있겠지? 기다려 봐라~

 

탑산사 출입문 일종의 일주문인가? 그러나 그 형태가 이상하다. 마치 일본 절집 같은 분위기가 난다. 혹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승려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일본불교를 전파하다가 해방 후 사라졌을까? 암튼  상상이다. 천관산 탑산사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아쉽다.

 

돌아나오는 길목에 상사화 몇 그루가 이슬을 가득 머금고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어 반갑다.

 

상사화 꽃술에 맺힌 이슬방울을 담아 보려고 애 써 본다.

 

 

탑산사는 폐사가 되어 세월속에 뭍혔지만 계절 따라 변하는 세월은 오늘도 화려한 꽃망울을 뿜어내고 있다.

 

천관산 8부능선에 있는 큰절은 어느정도 절집 규모를 갖추어 가지만 이곳 탑산사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어 마음이 무척이나 무겁다. 누군가 큰 인물이 나와 하려했던 그 옛날 천관산 탑산사의 영광을 부활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