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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4.08.11.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 지리산 원통암 탐방

by 하여간하여간 2024. 8. 16.

 원통암

 

 

원통암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 서산대사가 출가한 절이다.

서산대사(법호: 휴정, 속명 : 최여신, 자 : 현응, 호 : 청허당, 1520~1604)가 15살때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원통암에 들렀다가 숭인장노의 법문을 듣고 출가했다. 서산대사는 삼철굴암, 의신사, 원통암 등에서 수행하던 어느날, 인근 구례 성촌마을을 지나다가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덕평봉 남쪽 아래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온다.

 

옛날에 의신마을 터에 있었던 의신사의 31개 산내 암자 중 하나로 벽송지업(1464~1534), 부용영관(1485~1571), 경성일선(1488~1568), 숭인장노, 추월조농, 원오일진 스님 등 많은 고승대덕이 머물렀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인 원통사는 구한말 화제로 폐사됐으나 1997년 복원작업이 시작돼 인법당, 산신각, 등을 새로 짓고 서산대사 영정을 청허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산대사

 

지리산 원통암 청허당에 모셔진 서산대사 영정

 

휴정(休靜, 1520~1604)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호는 청허(淸虛)이고,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한다.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했다. 15세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을 스승으로 모시고 10여 년 동안 수행했고, 영관의 법을 이어받은 후 금강산 · 묘향산에서 수행했다.

 

 

휴정은 33세 되던 해(1552년, 명종 7년)에 새로 부활된 승과에 합격하여 대선이 되었고, 3년 만에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휴정은 4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동안 묘향산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는데, 그에게 1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73세 되던 해(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평안도 의주로 피난한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했다. 이에 휴정은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모집했다.

그리하여 평남 평원 법흥사(法興寺)에 1천5백여 명의 승군이 집결했고, 그의 제자 유정(惟政)도 1천여 명의 승군을 이끌고 관동 지방에서 와서 도총섭의 승군과 합세했다. 유정은 승군의 대장이 되어 일선에서 실전을 지휘하여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2년 후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85세 되던 해(1604년) 정월, 휴정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자신의 영정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승려 휴정의 영정 글귀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

 

그러고는 결가부좌한 채 입적했다.

 

◎ 원통암과 서산대사

 

 

원통암은 서산대사의 출가지이며 수도처

 

지리산 덕평봉의 남쪽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말 고려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오며 옛의신사(현 의신마을터)의 31개 산내암자 중의 하나로 관세음보살을 모시 도량이다.

대대로 많은 고승대덕이 머물러 수행했으며 특히 조선조 중종때 벽송조사(1464~1534)가 마천골에 초막(현 벽송사)을 짓고 수도함에 많은 제제들이 운집하여 지리산 일대는 대선림이 이루어지고 조선 불교의 법맥도 벽송, 부용, 서산으로 이어지는 3대 조사가 지리산에서 출현했다.

 

 

서산대사(1520~1604)는 평안도 안주태생이며 완산최씨로 아명은 여신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안주목사 이사증의 양자가 되어 성균관에 입학해 학문을 익혔으며, 15세에 동학 5~6명과 함께 지리산 유람길에 원통암에 들렸다가 숭인장노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 21세에 삭발득도 법명을 휴정이라 하였다. 이후 숭인장노와 영관대사의 지도아래 상철굴, 대승암, 의산사, 원통암, 원적암, 은신암 등에서 수행하던 중 남원의 벗을 찾아 봉성(현 구례) 성촌마을 지나다가 낮닭우는 소리에 홀연히 불조의 심인을 깨달았으며, 부용영관(1485~1571) 대사의 법을 잇고 법호를 청허(별호 : 서산)라 하였다.

33세때 승과에 급제한 후 교종판사, 선종판사 그리고 최고승직인 선교양종판사에 올랐으나 38세되던 가을에 모든직을 내려놓고 여러곳을 만행한 후 지리산으로 돌아와 내은적암, 황령암, 능인암, 칠불암 등에 머물면서 퇴락한 가람을 중수하고 삼가귀감을(유가, 도가, 선가귀감)을 저술했다.

 

훗날 묘향산과 금강산을 오가며 제자들을 지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남에 승군을 조직하고 도총섭(73세)이 되어 전쟁에 참여 큰 공을 세웠으며, 묘향산 원적암에서 85세에 입적하셨다.

대사는 최초로 선종과 교종을 통합했으며 나아가 유, 불, 선 3교를 회통하여 국론을 대통합으로 이끌었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조선불교의 중흥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원통암은 작은 암자이지만 지리산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청룡 백호가 겹겹으로 둘러 쌓이고 앞에는 백운산의 세봉우리가 안산으로 우뚝 솟아있으며, 청학포란형국에 학이 날개짓하며 비상을 준비하는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다 하여 예전부터 천혜의 명당터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구한말에 화재로 폐사된것을 1997년 7월 인법당과 산신각을 복원하고 2011년 11월 서산대사의 우국 애민사상과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위대한 업적을 현창, 계승하기 위하여 도, 군과 신도들의 협조로 서산선문과 청허당 그리고 해우소를 새로짓고 서산대사의 영정을 조성하여 청허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불교의 중흥조이며, 구국의 승병장인 서산대사께서 삭발하고 수행하신 행화도량 원통암을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 게송시(偈頌詩)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소멸되는 것과 같도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그 자체가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가고 오고 하는 것 또한 이와 같도다

 

 

 

◇ 오도송(悟道頌)

 

髮白非心白(발백비심백) 머리는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古人曾漏洩(고인증루설) 옛사람 일찍이 말했던가

今聞一聲鷄(금문일성계) 이제 닭 우는 소리 듣고

丈夫能事畢(장부능사필) 장부의 큰 일 능히 마쳤네

忽得自家處(홀득자가처) 홀연히 본 고향을 깨달아 얻으니

頭頭只此爾(두두지차이) 모든 것이 다만 이렇고 이렇도다

萬千金寶藏(만천금보장) 수많은 보배와 같은 대장경도

元是一空紙(원시일공지) 원래 하나의 빈 종이로다

 

 

 

◇ 해탈시(解脫詩)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인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구인가.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구이며.

흉 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라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말라.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라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며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말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며,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며,

얼기 설기 어우러져 살다가 갑시다.

 

다 바람같은 것이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깊어도 비바람 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며.

 

폭풍이 아무리 세차다 해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세상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내 것도 아닌 것을...

삶도 내 것이라 할 게 없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 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뭘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는 것.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겠소?

살다보면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지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겠소.

기쁜표정 짓는다고 다 기쁜 것도 아니라오.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 랍니까?

 

구름처럼 바람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게 다 사는 거 라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아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디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습니다.

 

 

 

 夜雪(야설) 밤 눈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터이니

 

 

◇ 淸虛歌 청허가

 

君抱琴兮倚長松 (군포금혜의장송)  그대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에 기대나

長松兮不改心 (장송혜불개심)  큰 소나무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我長歌兮坐綠水 (아장가혜좌녹수)  긴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으니

綠水兮淸虛心 (녹수혜청허심)  푸른 물 맑아 마음이 텅 비었네

心兮心兮 (심혜심혜)  마음이여 마음이여

我與君兮 (아여군혜)  나와 그대

 

 

◇ 春日詠懷(춘일영회) 봄날에

 

東風昨夜至(동풍작야지) 東風 불어오는 어제 밤에

病客來山中(병객래산중) 병든 나그네 산사를 찾았네

林鳥已新語(임조이신어) 숲에는 새들이 재잘거리고

野花?欲紅(야생장욕홍) 야생화는 이제 막 붉은 꽃 봉우리를 터뜨리네

人間郭郞巧(인간곽랑교) 인간은 郭郞의 꼭두각시 노름이요

世事浮雲空(세사부운공) 세상사는 뜬구름 같은 것이네

臨濟一聲喝(임제일성갈) 임제 선사의 외치는 한 소리

直開千日聾(직개천일성) 천 일 동안 먹었던 귀가 번쩍 열리네

 

 

◇ 花雨(화우) 꽃 비

 

白雲前後嶺(백운전후령) 앞뒤 산봉우리엔 흰 구름 떠 있고

明月東西溪(명월동서계) 동서로 흐르는 시내엔 밝은 달 떠있네

僧坐落花雨(승좌낙화우) 스님 앉은 곳에, 꽃 비 떨어지고

客眠山鳥啼(객면산조제) 客이 잠드니, 산새가 운다

 

 

◇ 贈消遙太能 증소요태능 소요태능에게

 

斫來無影樹 (작래무영수) 그림자 없는 나무로 장작을 만들어

憔盡水中 (초진수중) 물거품을 태우나니

可笑騎牛者 (가소기우자) 어허 우습 도다 소를 탄 사람아

騎牛更覓牛 (기우갱멱우)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구나

 

 

◇ 題一禪庵壁 제일선암벽

 

山自無心碧 (산자무심벽) 산은 스스로 무심히 푸르고

雲自無心白 (운자무심백)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구나

其中一上人 (기중일상인) 그 가운데 앉아있는 한 사람

亦是無心客 (역시무심객) 또한 무심한 나그네 일세

 

 

◇ 四也亭 사야정

 

水也僧眼碧 (수야승안벽) 물은 스님의 푸른 눈과 같고

山也佛頭靑 (산야불두청)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일세

月也一心印 (월야일심인) 달은 변치 않는 한 마음이고

雲也萬卷經 (운야만권경) 구름은 만 권의 대장경일세

 

 

◇ 望高臺 망고대 높은 봉우리에서

 

獨立高峰頂 (독립고봉정)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서서보니

長天鳥去來 (장천조거래) 높고 넓은 하늘을 새들만 오가네

望中秋色遠 (망중추색원) 바라보니 가을색은 아득히 먼데

滄海小於杯 (창해소어배) 바다는 술잔보다 작게 보이네

 

 

 讀罷楞嚴 독파릉엄

 

風靜花猶落 (풍정화유락) 바람 자도 꽃은 오히려 지고

鳥鳴山更幽 (조명산갱유) 새 울어도 산은 더욱 그윽하네

天共白雲曉 (천공백운효) 하늘과 더불어 흰구름 밝아오고

水和明月流 (수화명월류) 물은 밝은 달과 함께 흘려가네

 

 

◇ 人境俱奪 인경구탈

 

梨花千萬片 (이화천만편) 배꽃 천,만 조각

飛入淸虛院 (비입청허원) 빈집에 날아든다

牧笛過前山 (목적과전산) 목동의 피리소리 앞산을 지나가건만

人牛俱不見 (인우구부견) 사람도 소도 보이지 않는다

 

 

◇ 讚佛 찬불

 

觀他也不妄 (관타야불망) 남이 보는 것도 허망함이 아니요

覺自亦無生 (각자역무생) 나를 깨닫는 것도 역시 無生이로다

出世訶何事 (출세가하사) 출세하여 무엇을 노래하랴

人人本太平 (인인본태평) 사람마다 본래가 태평한 것을

 

 

◇ 積石寺 柱聯 적석사 주련

 

見聞覺知無障애 (견문각지무장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데 장애가 없고

聲香味觸常三昧 (성향미촉상삼매) 소리, 향, 맛, 촉각이 언제나 그대로 삼매로다

如鳥飛空只마飛 (여조비공지마비)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그냥 날아갈 뿐

無取無捨無憎愛 (무취무사무증애) 취함도 버림도 없고 미움과 사랑도 없어라

若會應處本無心 (약회응처본무심) 만약 대하는곳마다 본래 무심임을 안다면

方得名爲觀自在 (방득명위관자재) 비로소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리라

 

 

◇ 金剛山彌勒峯偶吟 금강산미륵봉우음 금강산 미륵봉에서

 

坐斷諸人不斷頂 (좌단제인불단정) 만인이 못 끊는 분별심을 앉아서 끊으니

許多生滅竟安歸 (허다생멸경안귀) 하고 많은 생멸이 마침내 어디로 갔는가

飛塵鎖隙安禪久 (비진쇄극안선구) 참선이 익으니 나는 티끌이 틈을 막았고

碧草連階出院稀 (벽초연계출원희) 외출이 드무니 푸른 풀이 층계까지 이어졌네

天地豈能籠大用 (천지기능롱대용) 천지가 어찌 대용을 가두겠는가

鬼神無處覓玄機 (귀신무처멱현기) 귀신도 현기를 찾을 곳이 없네

誰知一衲千瘡裏 (수지일납천창리) 뉘라서 알 거요, 헤진 누더기 속에

三足金烏半夜飛 (삼족금오반야비) 세 발의 금까마귀가 밤중에 나는 줄을

 

 

◇ 示碧泉禪子 시벽천선자 벽천선자에게

 

閃電光中坐 (섬전광중좌) 번쩍이는 번갯빛 속에 앉아

對人能殺活 (대인능살활) 사람을 대하면 능히 죽이고 살리네

無頭無尾棒 (무두무미봉)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몸둥이로

打破虛空骨 (타파허공골) 허공의 뼈를 쳐서 깨뜨린다.

十年呑栗棘 (십년탄률극) 십 년을 밤송이를 삼키며 수행했건만

猶是野狐精 (유시야호정) 아직도 참선이 그릇된 야호정 일세

若欲敵生死 (약욕적생사) 만약 생사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寒灰爆一聲 (한재폭일성) 불꺼져 차디찬 잿 속에서 임제의 할을 들어라.

莫要會佛法 (막요회불법) 불법을 깨닫으려 하지 말고

大臥三條椽 (대와삼조연) 세 서까래 위에 크게 누우라

道人宜痴鈍 (도인의치둔) 도 닦는 수행자는 마땅히 어리석고 둔해야 하나니

令我憶南泉 (령아억남천) 나는 南泉선사를 생각한다

 

栗= 밤나무. 野狐精= 들 여우의 넋. 會= 깨닫다. 宜= 마땅이.

 

 

◇서산대사 臨終偈(임종게) 입적하며 깨달음을 후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글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일랑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더라

 

◎ 서산대사와 함께하는 지리산 옛길(서산대사길 : 신흥~의신)

 

서산대사(1520년~1604년)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출가(1540년)하여, 휴정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신흥~의신 주변에는 쌍계사, 칠불사, 의신사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신흥사가 있었던 신흥마을과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을 연결한 4.2km의 이 길은 서선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르는 동안 오가던 옛길이다.

지금의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었다.

 

 

 서산대사길을 걸어 원통암을 오르고 화개천 계곡에 풍덩~ 힐링 만땅 피서

 

서산대사길은 화개천을 따라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걷는 숲속 산책길이며 서산대사가 수행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 화개천의 맑은 물이 계곡의 기암들 사이를 헤치며 흐르고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그야말로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걷기 좋은 길이다.

 

오늘 여름철 숲속 그늘과 맑은 물소리를 벗삼아 서산대사길을 쉬엄 쉬엄 걸어서 의신마을에 도착, 점심을 먹고 원통암에 올라 서산대사의 출가 수행한 궤적을 체험하고 다시 의신마을로 내려와 의신마을 화개천 계곡에 온 몸을 풍덩 담그고 흘린 땀을 씻어 내는 순간 극락이 따로 없는 힐링 만땅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