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4.09.14.(토).
2. 누구랑 : 임상문님과 나 2명
3. 트레킹구간 : 이서커뮤니티센터 - 갑동마을 - 둔병재- 안양산 - 백마능선(안양산 - 장군봉 - 무등01-02이정목삼거리) - 수만리탐방지원센터(15.0km)
4. (국가 숲길*) 광주 무등산 둘레길을 개척하는 이유(필요성)
지오트레킹 김명수대장님께서 정리한 내용이다. 적극 공감한다.
◎ 광주 국가 숲길 무등산 둘레길 예정
광주 국가 숲길 무등산 둘레길 예정
5. 무등산둘레길4구간(백마능선길 : 이서커뮤니티센터 - 둔병재 - 안양산정상 - 백마능선 - 수만리탐방지원센터) 15.0km
◎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이야기
무등산둘레길 4구간을 걸어보러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사실 이 구간은 지난 주 김명수대장님을 비롯한 광주 무등산둘레길 개척팀 대원들이 수만리 중지마을에서 출발하여 역방향으로 백마능선을 거쳐 안양산 정상을 찍고 이서커뮤니티센터까지 탐방을 하였다. 사정이 있어 그 때 참석하지 못하고 추석연휴를 맞아 만사 제치고 평소 친분이 있는 임상문 동생과 이서에서 - 안양산 정상을 찍고 백마능선을 거쳐 너와나 목장까지 순방향으로 탐방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서로 향한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 1000년 된 은행나무와 당제를 지내는 느티나무,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 화순적벽 버스 승강장이 있는 이서커뮤니티센터, 규남 하백원선생 기념관, 하씨 문중 정려인 쌍열문, 충노 목산 비 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하나씩 살펴보고 출발하려 한다.
버스정류장의 '이서커뮤니센터 앞' 표시가 잘 못 표시되어 있다. 건물에는 커뮤니티센터라고 붙여 있고 버스정류장에는 커뮤니센터라고 되어 있으니 외지 사람들은 무척 혼동스러울 것 같다. 이서커뮤니티센터가 맞는 것 같다. 화순군에서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버스를 타고 오려면 광주에서 217-1번을 타고 오면 된다.
화순적벽 버스 정류장은 이서커뮤니티센터 운동장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 야사마을 유래
야사리의 지명은 야사마을의 지명을 취하여 이름하였다. 야사리는 야사마을, 산사마을, 태평마을, 도룡굴(용호)마을, 갑동마을로 나뉘어 있다.
야사마을은 처음에는 평사라고 했고 이후 금사, 사촌, 사천 이라 하다가 야사로 부른다고 전한다.
야사마을의 뜻은 들모실(들에 있는 마을) 이라는 의미를 한자화하여 야사라 하였다. 마을을 세분하면 우데미, 아래데미로 구분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 외서면 야사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동북군 외서면 야사리로 기록되어 있고, 1914년 행적구역개편시 동북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 내서면은 이서면으로 통합되어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용호리, 태평리, 산사리, 갑동리, 야사리)로 편입되었다.
현재 야사리1리이며 2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 야사리는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포함된다.
이서커뮤니티센터 한켠에 위치한 화순적벽 버스투어 대기소
빵으로 철학하는 책빵앗간 -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꼭 이곳 빵집 빵맛을 보고 가길 바란다. 빵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누룩꽃이 핀 발효 빵이여서 부드럽고 독특한 향기가 나는 빵맛이다.
◎ 이서커뮤니티센터
마을 이곳 저곳을 들여다 보려고 눈을 돌려보면 너른 운동장이 있는 옛 학교 폐교에 이서커뮤니티센터라는 명찰이 붙어 있는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른 아침 이서커뮤니티센터에 안개가 자욱하다. 이서 야사리는 여러번 왔다. 오늘처럼 운무가 가득하기는 처음이다. 신비스럽기도 하다. 폐교된 이서분교를 마을 커뮤니티센터로 만들어 잘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이체롭다. 이곳 커뮤니티센터는 여러가지 예술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마을 쉼터이기도 하다.
쉼터에 피어나는 수세미꽃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예쁘게 피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은 수세미꽃이 반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노오란 꽃 잎을 보라~ 자연이 잉태한 작품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디 이곳 수세미 꽃 뿐이랴! 들에 핀 모든 야생화가 다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던가?
◎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야사리 이서커뮤니티센터 운동장 한켠에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느티나무 한쌍이 거대하게 서 있다. 운무에 쌓인 오늘 같은 경우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으시시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고 무엇가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기념물 제235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97번지
야사리 느티나무는 2주로 수고는 23~25m, 흉고 둘레는 4.9~5.3m, 수관지름은 14~19m, 수령은 약 370~4000년이다.
화순 이서면 야사리는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을 따라 주변에 자연 촌락이 형성되었고, 15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03호인 이서면의 은행나무와 인접하여 있고, 학교 개교 당시 운동장 시설을 할 때도 마을 당제를 모시는 느티나무로 보호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곳의 느티나무는 할머니 당산나무였고 할머니 당산나무 남쪽에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따로 있었으나 노거수로 고사되어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어 관리하고 있으며 당산나무로 현재도 당제를 모시고 있다.
운동장 중앙에 위치하여 생육상태가 양호하고 마을에서 당제를 모시는 당산나무로서 뿐 아니라 향토 문화보전의 장으로서 활용 되고 있다.
◎ 쌍열문과 충노 목산 비
마을 입구에 허름한 비각이 보인다. 무엇인가 마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아 가까이 들여다 본다.
◎ 쌍열문 정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 37-1번지
열녀 동복 오씨부인은 진사 하대붕(1535~1605) 공의 아내인데,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출병한 남편이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 못 전해 듣고 자결하니 왕께서 정려를 세우라고 명하였다. 종 목산 역시 "내 어찌 홀로 살리오?" 하고 또 자결하였다.
◇ 정려란?
조선시대,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유고를 숭상한 조선사회에서는 충과 효가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가치였다. 따라서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에게 나라에서 왕이 특별히 정려를 하사하여 그 뜻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숭고한 가치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또 다른 한 분 열녀 하씨 부인은 정랑 하대란의 딸로 충의위 이득춘의 아내인대, 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 앞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진사 하대붕 공은 당대의 사표이었으며, 그 아우 참군 하대표 공은 임진왜란 때 호종하기었다. 그 조카 금사 하윤구 공도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다. 재종제 하대인 공도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전사하고, 정량 공의 손자 주부 하종해 공도 병자호란 의주전에서 큰 공을세웠다.
정려는 학당과 전도에 있었는데, 병암 하영청 공이 야사로 옮겼고, 정의공이 중수기를 지었고, 1933년 죽와 하응락 공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야사리 입구 마을 표지석
야사리는 하씨 집성촌으로 하씨 문중에서 정유재란 때 많은 분들이 의병으로 전쟁에 나가 왜군을 물리치고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중에 적군에게 포로가 되거나 전사한 의병들의 부인들은 스스로 자결하고 그 노비들도 따라서 자결하는 충과 효의 열녀 마을이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무등산 자락 야사리에 이렇게 훌륭한 하씨 문중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형제들의 의병활동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이곳 야사리 하씨 문중 의병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화순과 역사학자들이 더욱 연구하여 이렇게 훌륭한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고 그 위대한 조상들의 혁혁한 공로를 기념하고 정신을 이어 받아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규남 하백원 기념관
야사리에는 또 다른 하씨문중의 훌륭한 분이 계신다. 바로 규남 하백원 선생이시다. 호남 4대 실학자 중의 한분이신 규남 하백원 선생을 만나러 가보자.
평소 야사리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나에게는 있다. 규남 하백원선생 때문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 중심의 학문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백성을 이롭게 하는 학문이 진정한 학문이다" 라고 가르치며 몸소 백성 곁에서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발명하고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만국전도를 제작하고 동국지도를 만든 그의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에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도지정 유형유산(2005.12.27. 지정)
화순군 이서면 백아로 3109(야사리 164)
규남 하백원(1781~1844)은 화순군 이서면 출신으로 여암 신경준(1712~1781), 존재 위백규(1727~1796), 이재 황윤석(1729~1791)과 함께 호남 후기 4대 실학자 중의 한 분이다. 규남은 실학은 물론 유학과 천문, 역학, 산술, 서화, 전각 등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규남 하백원이 1811년 제작한 우리나라 지도인 동국지도는 우리나라 전도와 팔도 등 총 9장으로 제작되어 있다. 세계지도인 만국전도는 중국에 온 선교사 알레니(1582~1649)가 제작한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1821년 그린 지도이다. 규남 하백원의 동국지도와 만국전도는 조선후기 지도로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2011년 12월 개관한 규남 박물관에는 규남 하백원의 선 후대의 유물 11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동국지도와 만국전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양수기인 자승차의 제작 도면를 그리고 설명한 「자승차도해」 보령과 안면도 일원을 여행하며 남긴 「해유시화첩」, 적벽에서 세번의 임술년(1682, )에 열린 시화의 모은 「적벽심」, 홍대용, 서유구 등 다양한 인물들과 주고 받은 편지 등 있다.
규남 하백원 박물관은 아침 일찍 문이 잠겼다. 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소개하고 싶지만 아쉽다.
대신 2021년 11월 6일 방문했을 때 작성 해 놓은 블로그로 대신한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꼭 야사리 규남 하백원 기념관을 방문해보도록 강추한다.
2021.11.06. 조선시대 호남이 낳은 4대 실학자 규남 하백원선생을 찾아서 (tistory.com)
야사리를 둘러보는데 시간이 한참 흘렀다. 어느새 자욱한 아침 안개가 사라지고 하늘이 청명하고 맑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지만 벼는 여물어가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둔병재를 향해 출발한다.
◎ 이서커뮤니티센터 - 둔병재
야사1교를 지나면서 다리 위에서 바라본 이서천과 저 멀리 하늘금에 무등산의 장엄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지난 3구간 탐방 때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간다. 둔병재로 가기 위해서이다. 혹시 시간이 나는 사람은 야사리 이서커뮤니티선터에서 화순 적벽 투어 버스를 타고 화순 적벽을 탐방하길 권한다. 화순적벽은 한국에서 꼭 가보아야 할 3대 명소이기도 한다. 김삿갓이 아니드라도 조선 시대 내노라는 선비들이 모두 이곳 화순적벽을 들려 시를 짓고 풍류를 노래했던 곳이다.
지난 3구간 탐방 때 들렸던 화순이서 은행나무를 멀리서 보고만 간다. 1000년을 간직한 은행나무이다. 규남 하백원 생가도 보인다. 시간이 나는 사람은 들려보길 강추한다.
용호마을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용호마을(도룡굴마을)에 도룡굴이 있는 모양인데 지난 3구간 탐방 때 들러보지 못했다. 나중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들러보리라.
용호마을 표지석에서 인증 한 장 하고
용호마을(야사 3구) 표지석
야사리에는 전봇대가 많아 무등산을 온전히 담지를 못했다. 이곳에서 전기줄 없이 온전하게 무등을 담아 보려 했는데 결국은 전기줄이 나왔다. 그래도 무등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바라보며 걷는 둘레길이 싱그럽다.
이서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를 지난다. 야사리에서 이서면사무소까지는 적벽로를 따라 걷다가 이서면사무소 부터는 규남로를 따라 걷는다.
규남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갑동리에 다다른다. 갑동마을 입구에 큰 나무가 반긴다.
◎ 갑동마을
갑동마을은 원래 마을 입구에 도구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한때 도구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갑동이라 하는데 그 연원은 산 아래 가장자리에 위치하므로 갓글 또는 갓등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갑 자를 취하여 갑동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설로 장감산 아래 위취한다 하여 갑봉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 앞산이 말이고 갑동이 장군의 갑옷에 해당된다하여 갑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갑동마을을 세분하면 우데미, 가운데고삽, 말데미로 나뉜다. 현재는 야사4리이며 1개반이 있다.
갑동마을 버스정류장
갑동마을(야사리 4구) 입구 표지석
갑동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헤어져 규남로를 따라 규봉로로 향한다.
사마마을을 지나 지방도로 897번인 규봉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무등을 바라본다. 저기 광석대가 뚜렷이 보이고 규봉암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저기 규봉암에서 바라본 옹기종기 산줄기 사이로 펼쳐진 이서면 황금들녁의 풍광은 참으로 아름다운 보습이다. 아직은 벼가 완전히 황금상태는 아니지만 조금 지나면 정말로 아름다운 황금들녁이 된다.
무등을 바라보며 매일 같이 영글어가는 볏날이 올 가을도 풍요를 약속한다.
규봉로를 따라 둔병재로 향한다.
길고 지루한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안양산휴양림이 있는 둔병재에 도달
◎ 둔병재-안양산 정상-백마능선- 무등 01-02 이정목삼거리 - 수만리탐방지원센터
둔병재는 유둔재와 같이 둔자를 지명에 쓰고 있다. 아마 이곳 둔병재나 유둔재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고개라는 뜻일 것이다. 무등산을 중심으로 호남 정맥이 통과하는 고개로 전쟁이 일어나면 동서로 군사들이 이동하는 길목이기에 이곳이 군사적으로 요충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안양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이나 같은 곳이다.
안양산을 오르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입장료가 2천원인데 안양산만 오른다고 하니 천원으로 깍아준다.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하기도 하다. 그냥 통과하는 길은 없을까?
사실 이 산길은 2004년 1월 18일 호남정맥을 하면서 통과한 길이다. 그때 둔병재에서 안양산을 올라 백마능선을 거쳐 장불재 - 규봉암 - 광일 목장- 신선대- 북산 - 유둔재로 걸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로부터 꼭 20년만에 다시 둔병재에서 안양산을 오른다. 감개무량하고 설렌다.
설렌마음을 담아 인증 한 장 남기고 안양산으로 출발한다.
입구엔 왕대나무가 무성하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저런 추억을 쌓아 가고, 어쩌다 그 추억을 더듬을 기회가 오면 이렇게 설렌 모양이다. 마치 고향집 어머니 품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싸리꽃이 반긴다.
안양산 휴양림 이정목을 지나고
본격적인 안양산 등산 입구에서 인증 한 장
20년 전 호남정맥을 할 때 안양산 등로는 곧바로 정상을 향해 급경사 오름길이였다. 무척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오늘 오른 안양산 오름길 초입은 국립공원에서 지그재그로 부담되지 않게 나무계단을 심어 편하게 오르도록 잘 정비하여 놓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활엽수 숲이 국가 숲길로 손색이 없다. 산행 초보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무척 무덥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숲 그늘 밑을 지나는 발걸음은 상쾌하다. 다만 산모기가 극성이다.
부분 부분 돌계단도 만들어져 있고
8부 능선까지 지그재그 오름길을 오르다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사뭇 경사가 심해 진다. 땀이 비오듯이 흘러 온 몸을 적신다.
안양산 휴양림에서 1.3km 지점에 쉼터가 있다. 잠시 쉬어간다.
안양산 휴양림에서 1.3km 이정목, 안양산 정상까지 0.7km 남았다.
이제 정상 가까이 다가간다. 산길은 온통 수풀이 우겨져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다. 아마 국립공원 동부사무소에서 이곳을 정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손길이 모자란 모양이다. 조속히 이곳 산길을 잘 정비했으면 좋겠다.
울창한 숲길을 지난 하늘이 보이고 억새가 가득한 길을 오른다. 땀이 비오듯 한다.
조망이 터지고 남녁의 산그리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답다기 보다 남녁의 민초들 힘겨운 삶이 다가온다. 저기 산그리매 사이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남도민들의 애환이 벅차게 다가오며,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언제 피었나! 억새 한 줄기가 아름다운 풍광을 품어안고 있다.
한참을 올라 안양산 하단 300m 지점 안전쉼터이다. 더우기 커다란 소나무 밑이라 더욱 시원한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그늘이 드리운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간다.
다시 안양산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등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다.
안양산 바로 아래에서 셀카 한 장
고도를 높일수록 남녁의 산그리매가 선명히 다가온다.
별산 방향 풍광
호랑나비 한마리가 엉겅퀴 꽃잎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이
화순 만년산 방향 시원한 풍광이 시야에 들어온다. 황홀하다.
하늘이 열리고 아기 자기 어울어진 남녁 산그리매가 오르면서 지친 힘거움에 보상이라도 한 듯 참으로 넉넉히 다가온다.
안양산 정상이 코 앞이다. 억새물결이 심상치 않다. 안양산 억새가 기대가 된다.
드디어 안양산 정상 도착
안양산 정상 도착 기념 셀카 한 장
무등이 격하게 반긴다.
안양산 정상석
안양산 정상석 인증
안양산 정상엔 억새가 한창이다.
키를 넘는 억새의 향연이다.
안양산 억새를 만나러 내심 기대를 갖고 올랐는데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참을 안양산 억새 밭에서 사진 놀이 삼매경에 빠지고
안양산 억새 밭을 배경으로 무등을 바라 본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색다르다.
늘 광주 쪽에서만 무등을 바라보다가 정 반대인 안양산 쪽에서 바라 본 무등산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후 걸어야 할 백마능선도 바라보고
천지인 무등산 정상과 광석대와 규봉암 그리고 지공너덜과 석불암까지 확대하여 담아 본다.
안양산 정상 억새와 춤을 추고
이리돌고 저리돌고
ㅋㅋ 즐겁다.
소년적 애기 같이 히죽 히죽 걸어보고
한참을 놀다가
억새와 함께 주변 풍광을 담았다. 만년산 풍광
화순 방향 풍광
백마능선 풍광
억새와 파란 창공
이제 백마능선으로 접어든다. 키를 넘는 울창한 억새 밭을 지나는 기분은 참으로 좋다. 누가 이 기분을 알까? 이 길은 봄에는 철쭉이 일품이다. 가을에 억새가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지를 몰랐다. 봄과 가을에 이 길을 거닐어 보길 강추한다.
넉넉하고 고즈넉하게 천천히 사색에 잠겨 걷는다. 억새의 속삭임을 들으며 걷는다. 억새가 묻는다, 너 잘 살았니? 뜸금없는 물음이다.
글쌔~ 잘 산다는 기준이 어떤 것인가? 그냥 물어본다면 "다시 태어나도 이 보다 더 열심히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라고 대답한다. 참으로 쉼없이 달려온 삶이다. 이제 조금 천천히 살란다. 쉬엄 쉬엄 살란다. 앞만 보고 살아 왔던 그 길을 뒤도 보고 옆도 보면서 살란다. 그래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건강히 살아야제~
아~ 바람이 스치운다. 억새에 이는 바람결이 싱그럽다.
산철쭉나무가 고사하고 있다. 어떤 이유일까?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 같다. 큰 일이다. 인류의 재앙이 우리가 아는 것 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끝임없이 전 세계를 무한 경쟁에 내몰고 중앙 아시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끝이 없으니, 어찌하랴! 인류가 공멸하는 순간! 그때 가서 후회 한들 이미 때는 늦었는걸~
백마능선 억새 길을 걷고 싶었다. 키를 넘는 억새 밭 바람결을 느끼고 싶었다. 너울거린 억새 숲 사이로 파란 하늘과 어울어진 백마능선 억새 길을 느끼고 싶었다. 참으로 아름답다. 기분이 너무 좋다.
누구든 이 억새길을 걸어보길 강추한다.
한참을 억새 밭길 사진 놀이를 하다가
세 줄기 가지로 뻗어 자란 소나무도 만나고
철쭉 군락지를 지나서
이곳부터 잘 정비된 백마능선길을 걷는다.
기온이 덥다 보니 철쭉이 정신을 잃었나? 왠 9월에 철쭉꽃이여~
중간에 통신탑을 지나고
들국화갈림길 쉼터 이른다.
편안하고 잘 정비된 백마능선길을 걷다보면 안전쉼터가 나온다.
안전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오늘은 발걸음의 주제는 억새와 백마능선이다. 지난 온 산길을 되돌아 본다. 안양산이 벌써 아득하다. 억새꽃잎 사이로 그려지는 남녁의 산그리매가 무척이도 그립게 다가온다.
내가 사랑한 남녁이여~
민주의 열망 부여 잡고 그토록 흐느끼며 아파했던 남녁이여~
갖은 차별 마다 않고 끗끗히 견디며 새끼들 키워내는 남녁이여~
모진 풍파 이겨내며 알알이 영글어 피맺힌 목숨 키워내는 남녁이여~
뇌성 번개 천둥 벼락 쳐도 묵묵히 그 자리 그 바람 그 숨결을 지키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흐르는 세월을 잔잔히 노래하는 남녁이여~
아~ 생각만 해도 가슴 먹먹한 남녁이여~
나의 친구이며, 어머니이며, 꿈속의 여인인 너를 사랑한다.
장군봉을 오른다. 무등에서 보면 이곳 장군봉은 풍성한 여인의 젓가슴 모습을 닮았다. 생명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어머니의 젓가슴이다. 이곳 장군봉에서 바라 본 무등은 사뭇다른 느낌이다.
장군봉과 백마능선
장군봉 암릉 정상에 가지전 암릉에 섰다.
살아온 흔적을 돌아본다. 잘 살았는가? ㅋㅋ 자꾸 되돌아 보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25여년을 매주 산을 오랐지만 오늘 백마능선 장군봉에서 맞이한 하늘과 바람 그리고 무등산의 풍광은 왜 일까? 친근하고 아름답고 흐뭇하다.
무등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볼 수 있어 무척이나 행복하다.
앞으로 이 산길이 국가 숲길로 지정 받아 누군가 이 산길을 걷길 강추한다. 꼭 한번 억새가 피어나는 초가을에 걸어보라고~
아침에 출발한 이서면 들녁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막 노오란 빛을 띠고 있지만 조금 지나면 저곳은 황금 들녁으로 변하고 풍요와 청명함이 어우려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다.
장군봉과 무등산 정상
장군봉 정상 암릉으로 향한다.
장군봉 정상에서 바라 본 수만리와 만덕산 그리고 만덕산 너머 화순들녁의 남녁 산그리매
화순너릿재 방향 풍광. 우리는 앞으로 저곳으로 탐방길을 잡으려 한다.
장군봉 꼭대기 암릉에 섰다. 임상문 후배가 기다려서 담아준 그림이다. 무등산에서 바라보면 장군봉은 여인의 젓가슴 모양이며 꼭대기 암릉은 젓꼭지 모양이다. 어릴적 어머니 젓꼭지를 물고 생명의 영양분을 빨아들이 듯 나는 숭고한 기분이 되어 장군봉 꼭대기에 섰다.
여인의 애트한 사랑의 젓꼭지 보다는 어머니의 무한하고 무조건 적인 사랑의 젓꼭지에 섰다.
무등의 평등한 세상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며 차별 없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다. 정의가 넘치는 사랑이며 평화로운 사랑이다. 자유로운 사랑의 향연을 만끽하며 나는 장군봉 꼭대기에 오랫 동안 서서 이 무더운 가을을 맞이한다.
창공을 향해 화살도 날려보고
마지막 환희로 양팔 벌려 무등을 안아 본다.
장군봉에서 바라본 안양산과 남녁의 산그리매
앞으로 걸어야 할 백마능선 산길과 장불재
장군봉에서 무등산을 온전히 담아 본다.
아 위대한 무등이여~
아 평화로운 무등이여~
아 차별없는 무등이여~
아 정의로운 무등이여~
아 자유로운 무등이여~
아 민주의 무등이여~
온갖 생명이 우주와 통하고
모든 질서가 그냥 그대로 자리한
자연 그대로인 무등이여~
끝임없이 변하는 우주천지의 질서속에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우는 무등의 위대함을 이 가을의 길목에서 한없이 행복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련다.
한줄기 바람이 억새를 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가녀린 흔들림도 이 아름다운 억새 꽃을 피우는 위대한 자연의 깊은 용트림이라는 것을 알고,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한참을 이런 저런 사색으로 멍청히 걷노라니
어느새 능선암을 지난다.
능선암에서 바라 본 무등산 정상. 서서히 천지인 정상의 모습이 하늘금에 나타난다.
수만리와 만덕산 그리고 남녁의 들녁
장불재 뒤로 광주시가지가 하얀색으로 다가온다.
장불재-입석대-서석대-인왕봉-지왕봉-천왕봉의 산줄기가 차분하면서도 거대하다. 저 산줄기가 호남정맥길이다. 모든 물줄기는 저 산줄기 오른쪽으로는 섬진강으로 흐르고 왼쪽으로는 영산강으로 흐른다.
아직 천왕봉 정상이 공군군사지역이라 개방하지 않았지만 송정리 공군 군공항이 옮겨지면 저기 무등산 정상 군사시설도 옮겨 간다고 한다. 그 때가 되면 무등산 정상을 통하여 호남 정맥길을 온전히 걸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국의 모든 산꾼들은 무등산 정상을 꼭 한번 밟아서 호남 정맥길을 온전히 걸어보고 싶어 할 것이다. 기대가 된다.
지나온 백마능선길을 되돌아 본다. 백마를 타고 온 장군이 무등을 안고 정의의 깃발을 들고 적을 물리치러 가는 형국이다. 화순 이서 용호마을 도룡이 거대한 용이 되어 그 장엄한 모습으로 꿈틀거리며 승천을 하러 무등 입석대로 향하고 서석대를 지나 하늘로 승천하는 형국이다.
장불재 통신탑. 멀리서 보아도 잘 보이는 장불재의 상징이다. 저 통신탑은 라디오 방송 송출 통신탑인데 그 기능이 약화되어 조만간 철거할 계획이란다.
이제 백마능선길을 마치고 무등 01-02 이정목 갈림길에서 수만리 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물봉선화가 예쁘게 피었다. 이맘 때 무등산에는 어느곳이든 물봉선화가 활짝핀다.
고도 900m 높이에 북방산개구리가 서식하는 늪이다.
보호지역이다.
하산길은 급경사 내림길이며 길목엔 물봉산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집간 누님 생각이 나는 꽃이다. 고생만 죽게하고 시집 간다고 딸랑 옷보따리 몇 개 짊어지고 시집가던 누나가 뭐가 그리 서러운지 내내 눈물짓던 얼굴엔 저 물봉선화 꽆잎처럼 빨간 입술이 무척이도 예쁘게 보였던 누나였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누나이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뒤 영영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누나만 생각하면 목이 메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물봉선화 천국이다.
이 산길은 수만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장불재를 거쳐 무등산 정상인 서석대까지 가장 단코스로 오르는 산길이기에 산꾼들이 많이 찾은 산길이여서 비교적 정비가 잘 된 산길이다.
한참을 울창한 숲길을 내려와 오늘 종점인 수만리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의 탐방 안내와 현위치
너와나 목장에서 목을 추기고 잠시 쉬어간다.
갈증이 심하게 난다. 물이 떨어져 조심스럽게 너와나 목장 주인에게 물을 요청 했더니 두말하지 않고 시원한 청정수를 내민다. 고맙다. 지친 나를 보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쉬어가란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아 미안한 마음으로 쭈볏 쭈볏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구든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물이 필요한 사람이게는 물을 준다면서 미안해 하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넉넉하고 배려심이 깊은 주인이시다. 우리 어머님이 어릴적 그랬다. 마을 사람이든 외지에서 온 사람이든 지나가는 사람에게 언제나 식은 밥이라도 그냥 주고 같이 먹고 가야 당신 맘이 편하다고 한 양반이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지만 그때의 어머님 처럼 너와나 목장 주인님도 그런 넉넉함을 가지고 있어 감동이다.
너와나 목장은 염소고기 요리만 한단다. 언제간 내가 손님을 초대할 일이 생기면 꼭 수만리 너와나 목장으로 모시고 와서 이 넉넉한 주인의 배려심를 듬뿍 먹어 보리라. 날씨는 덥고 힘든 산행이였지만 마지막 너와나 주인 덕분에 행복한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