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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무등산둘레길

2024.08.18. 광주 무등산둘레길 3구간(호남정맥의 길 : 정곡리-경상마을- 유둔재-백남정재-무동마을-이서면-야사리)

by 하여간하여간 2024. 8. 19.

1. 일자 : 2024.08.18.(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대원 14명

3. 트레킹구간 : 정곡리 - 경상마을 - 유둔재 - 백남이재 - 무동마을 - 월정마을 - 용호마을 - 이서면 - 야사리 13.3km

 

4. (국가 숲길*) 광주 무등산 둘레길 3구간(담양 가사문학면 정곡리-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을 개척하면서

국가 숲길로 지정 받기 위하여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에서 야심차게 개척하고 있는 광주무등산둘레길 2차 탐방길에 동참한다. 광주의 역사와 무등산의 생태 그리고 호남 고장의 문화를 아우르며 무등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담는 길을 만들고자 한다. 지난 7월 1차 탐방에 이어 오늘은 2차 탐방이다. 지난 1차 2구간 종점인 정곡마을 보호수부터 시작하여 경상마을-유둔재-호남정맥-백남정재-무동리-이서면-야사리까지 무등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날씨가 무척 덥다. 기온이 30도를 훨씬 넘어 기승을 부린다. 이런 날 호남정맥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이번 광주 무등산둘레길 3구간에 호남정맥 일부구간을 포함하여 걷기로 했다. 땀이 온 몸에 범벅이 되고 가파른 호남정맥  오름길을 오를 때는 초보 대원들은 참으로 힘들어 하는 구간이 있지만 전 대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격려하며 어려운 구간을 잘 넘겨 다행이다. 

특별히 무등산둘레길에 호남정맥길을 포함시킨 것은 호남정맥의 중심 산이 광주 무등산이고 영산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호남정맥의 기운을 체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유둔재에서 백남정재까지 3.7km의 짧지 않는 이 길을 걷는 사람에게 충분히 호남정맥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무동마을에서 야사리로 가는 이서천변을 따라 걷는 길은 무등산 동쪽의 풍광을 온전히 바라 볼 수 있어 참으로 좋은 길이다. 

 

* 국가숲길 :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숲길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산림청이 지정 고시하는 제도.

2024년 3월 현재 우리나라는 총 9개로 1,465.6km지정

 

5. 광주 무등산둘레길3구간(호남정맥의 길 : 정곡리 - 경상리 - 유둔재 - 백남정재 - 무동마을 - 이서면 - 야사리) 

 

◎ 정곡리 - 경상마을 - 유둔재 : 2.8km

 

지난 1차 광주 무등산둘레길 2구간 종점인 정곡리 보호수인 왕버들나무 아래에서 시작한다.

 

준비하고

 

출발 인증 씩씩한 14명의 대원들

 

 

 

정곡리 '정원이 아름다운 집' 앞에서 김명수 대장 오늘 산행 설명

 

무돌길과 겹쳐 걷는다. 

 

무돌길은 51.8km로 광주518민주화운동을 염두에 두고 거리를 매우 제한했기에 무등산 자락의 온전한 역사, 생태, 문화와 삶을 체험하기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이번에 개척하고자 한 무등산 둘레길은 100km를 전후하여 충분한 무등산 자락의 역사와 생태 그리고 문화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능수화

 

미국능수화

 

무등산 동쪽의 화순군 이서면은 오랜 역사와 생태 그리고 문화와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충분히 이서면의 여러 상황을 담아내도록 무등산둘레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이곳은 어느정도는 무돌길과 겹쳐 걷는다.

 

경상길을 따라 들녁을 지나 경상마을을 향해 걷는다.

 

더위는 한창이지만 벼는 익어간다. 더위가 없으면 어찌 곡식이 영글겠는가? 더위는 생명을 영글게 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너무 오랜 기간 계속되니 기후변화에 따른 변화가 아닌가 염려 되기도 한다.

 

경상마을쪽으로 가다가 유둔재로 오르는 옛길로 접어들기 위해 좌틀한다. 만약 다시 걷는다면 경상마을로 직진하여 경상마을을 통과 해 경상마을 느티나무를 지나 유둔재로 오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중에 둘레길은 느티나무를 들려 오는 것으로 하자

 

하늘이 맑고 청명하며 무등산 자락은 싱그럽다. 차츰 하늘이 높아지는 것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옛 유둔재로 가는 길을 향해가는 길목에 태양이 장렬히 내리 쬔다. 길가 밭에는 옥수수가 알차게 영글어 가고.

 

지방도 887번 도로는 새로 만든 유둔재터널을 통과하지만 우리는 옛 유둔재로 가는 길을 택해 오른다.

 

왼쪽이 새로난 유둔재터널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옛 유둔재 오르는 길이다.

 

여름 백일홍 꽃이 피어 있는 긴 아스팔트 길을 오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길이다.

 

경상마을을 지나 경상마을 느티나무를 지나 오르면 이곳으로 오른다. 이곳 대나무가 너무 우거져 길이 막혀 옛 아스팔트길로 왔지만 만약 무등산둘레길을 조성한다면 이길을 잘 정비하여 경상마을회관을 지나 느티나무를 보고 이곳으로 오르면 좋겠다.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계속하여 구불 구불 오르다 보면

 

유둔재가 저만치에서 손짓을 한다.

 

아~ 유둔재. 얼마만인가. 2007년 광주길벗산악회와 2010년 광주원산우회를 따라 이곳 유둔재에서 담양 선돌마을까지 호남 정맥을 걸었던 추억이 아련하고 금호리조트를 가는 길에 무수히도 많이 넘었던 고개이다.

 

유둔재란 옛날 군사기지가 있는 고개란 말이다. 호남 정맥이 무등산을 지날 때 이곳 유둔재와 안양산 휴양림 옆 둔병재를 통과한다. 모두 무등산을 중심으로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던 곳이다.  

 

유둔재에서 잠시 쉬어 간다.

 

무등산국립공원 경계 현위치 안내도

 

유둔재에 있는 화장실을 지나면 무등산국립공원 영역으로 들어간다. 호남정맥길이다.

 

◎ 유둔재 - 저삼봉 - 백남정재 (호남정맥 3.7km) - 무동마을 : 5.2km

 

우리가 체험하고자 한 호남정맥 구간은 유둔재에서 백남정재까지 3.7km 거리이다. 

 

 

국립공원 출입로를 지나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시원한 숲 속으로 들어선다.

 

가끔은 경사지고 가끔은 평편하고 대부분 육산인 호남정맥길은 시원하고 싱그럽다.

 

8월의 호남정맥길은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다. 피톤치드가 풍부하고 음이온이 가득한 숲길이다. 가슴을 열고 깊은 숨을 들려 마시자. 머리가 개운해지고 기운도 되살아 난다. 자연 치유 힐링길이다. 

 

구자창 고개를 지난다.

 

고개 이름이 구자창이다. 아마 왼쪽에 있는 자창마을에서 연유하여 구자창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끔은 급경사 오름길이 힘들고 벅차다. 이럴때는 무조건 쉬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잠시 쉬면서 호남정맥을 간략히 살피자

 

◎ 호남정맥

 

호남정맥(湖南正脈)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주화산(珠華山, 600m) 즉 조약봉에서 시작하여 내장산을 지나 전라남도 장흥을 흘러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갈라 광양 망덕산(197m)에서 끝나는 453km의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주로 호남 지역을 지나므로 호남정맥이라 하였다. 

 

 

 

 

호남정맥은 남부의 호남 지방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로 서쪽은 해안의 평야지대, 동쪽은 남원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대로 농경과 산업, 그리고 현격히 다른 생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장흥의 용두산(龍頭山)에서 하동의 섬진강 하구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줄기는 지리산에서 김해의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진 낙남정맥(洛南正脈)과 함께 한반도 남부 해안 지방의 동일한 생활 문화권역을 형성하게 하였다.

 

◇ 신경준의 산경표에 나와 있는 호남정맥의 산이름들!

 

웅치(熊峙)-사자산(獅子山)-운주산(雲住山)-칠보산(七寶山)-내장산(內藏山)-백암산(白岩山)-추월치(秋月峙)-금성산(金城山)-만덕산(萬德山)-무등산(無等山)-천운산(天雲山)-화악산(華岳山)-가야산(伽倻山)-금화산(金華山)-금전산(金錢山)-조계산(曹溪山)-동리산(洞裏山)-송현(松峴)-계족산(鷄足山)-백운산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고 나면 저삼봉 450m 봉우리를 만난다. 유둔재에서 백남정재까지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인증 한 장 남기고

 

호남정맥의 물길을 살펴보면 우리가 가는 방향의 오른쪽은 영산강으로 흐르고, 왼쪽은 섬진강으로 흐른다. 즉 영산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산줄기이다. 백두대간, 정간, 정맥, 기맥, 지맥 등의 개념은 4대강을 비롯한 우리나라 크고 작은 강과 천을 이루는 물줄기의 수계를 이루는 산줄기 개념이다.

 

우리고장의 실학자 순창 신경준 선생님이 작성한 산경표는 농경시대 물줄기를 관리하기 위해 조선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는 물관리 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길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그 길을 통해 물류와 통신 그리고 전쟁에 대비한 국방까지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지리적 기록이다.  

 

따라서 정맥길을 걸을 때는 주변 물줄기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역사와 문화를 사전에 공부하고 물줄기와 역사, 문화 등을 살피며 정맥길을 걸어야 한다. 물줄기를 모르고 산줄기만 걷는다면 겉만 걸었지 속을 모르는 헛공부가 된다. 

 

저삼봉을 지나 완만한 능선길을 걷다가 급경사 내림길을 지나면 비교적 완만한 임도가 나타나고

 

다시 호남정맥길은 편안하고 싱그런 숲길이 된다.

 

백남정재 1.3km 이정표를 지나서

 

백남정재를 향하여 편한길을 걷다가

 

백남정재 0.6km 지점을 통과한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사랑

 

산길을 걷다보면 아타까운 장면을 가끔은 만난다. 어찌하여 이 두 나무는 서로 비벼대며 오랫동안 부대끼며 자랐을까? 사람의 감정으로 보면 서로 사랑하는 연리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도 보인다. 그러나 각각 하늘을 향해 자라지 서로 부대끼며 저리 애타게 성장했을까? 안스럽기도 하다. 이 구간을 지나는 사람은 한번쯤 이 두나무의 애처로운 사랑이야기를 들어주고 가길 바란다.

 

백남정재이다.

호남정맥 상에 있는 이 고개는 담양군 가사문학면 경상리와 무동리를 연결해 주는 고개이다. 오랜 기간 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고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고개이다. 무돌길도 경상리에서 이고개를 지나 무동리로 향한다. 유둔재에서 이곳 백남정재까지의 호남정맥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순탄한 길이지만 부분적으로 급경사 오름길도 있어서 초보 산행자들에겐 힘든 구간도 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숲길이며 완만한 길이여서 무등산둘레길로 그렇게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이제 무동리로 향한다. 이곳에서 무동리 까지는 0.6km 거리이다.

 

백남정재 기념 한 장 남기고

 

백남정재에서 무동리까지는 0.6km 이고 경상리 까지는 0.7km 이다.

 

백남정재에서 300m 아래로 내려와서 만난 국립공원 현위치

인증 한 장 남기고

 

무동리로 하산

 

하산길은 잡풀로 길이 매워졌다. 무돌길정비를 담당한 곳에서 잘 정비를 해 놓길 바란다.

 

북산을 바라보며

 

무동리 마을에서 백남정재로 가는 국립공원 출입로 현위치

 

무동마을에서 백남정재로 오르는 무돌길 안내 이정표

 

무동마을로 내려서고

 

예쁘게 단장을 한 가옥을 지나

 

무동리 마을 안 돌담길

 

이 돌담길에서 한말 의병장 김태원장군이 일본군 요시다를 격살하였다.

 

의병장 김태원이 1908년 2월 2일 바로 이곳에서 항일의병 탄압에 악명 높았던 일본군 요시다 부대장을 격살한 곳이다. 어디를 가나 호남 곳곳에는 구국의 충정과 의로운 정신으로 항일 독립 투쟁을 한 역사 현장이 무지기 수이고 의병장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란 약무호남시무국가라고 이순신장군이 말하지 않았던가? 둘레길에서 의로운 정신을 되새긴다. 

 

김태원 의병장 전적지

 

담장 너머 대추가 익어가고

 

으름도 익어간다.

 

◇ 으름 : 목통(木通), 통초(通草), 임하부인(林下婦人)

 

한자명은 목통(木通)·통초(通草)·임하부인(林下婦人)이며, 그 열매를 연복자(燕覆子)라 한다. 학명은 Akebia quinata DECNE이다.

다섯 개의 소엽(小葉)이 긴 잎자루에 달려서 장상(掌狀)으로 퍼진다. 봄에 암자색의 꽃이 피고 긴 타원형의 장과(漿果)가 암자색으로 가을에 익는다.

우리나라 산지에 자생하며, 나무를 타고 잘 올라간다. 열매는 맛이 달고 식용이지만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생김새나 맛이 바나나와 비슷하여 ‘코리언 바나나’로 부르기도 한다.

 

 

무동마을 보호수

 

무동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유선정이라는 정자 쉼터

 

 

◎ 무동마을

 

본래 창편군 외남면의 지역으로 아이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무동, 무동촌 등으로 불러왔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구촌을 합하여 무동리라 해서 담양군 남면에 편입되었고 남면은 2019년 가사문학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마을은 효종(1657) 광산 김씨 김태섭의 부친 김윤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을 때 공훈이 높아 수구촌 뒷산 21정보를 하사 받았는데 이를 관리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와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함양 박씨 박현기가 150여년 전에 입향하고 나주 살던 평산 신씨가 김씨와 혼인하면서 집성촌을 이뤄 마을이 크게 번성하였다.

 

마을 안 돌담길은 죽봉 김태원 장군이 일본군 기병대장 요시다의 목을 벤 호남 최대의 의병 전승지이며 옛 남면초등학교 교정에는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안의 지질 생태문학적 가치가 높은 마을로 무등산 국립공원의 신선대, 억새평전, 시무지기폭포가 가까이 있고 무돌길에도 연결된다. 

 

무동리 보호수 아래 유선정 마을 정자 옆에서 삽겹에 거나한 점심을 하고

 

◎ 무동리 - 이서면 - 야사리 : 5.3km

 

 

오후 일정으로 화순 이서면 야사리로 향한다. 여기서 부터 일정거리는 897번 도로를 따라 걷다가

 

이서면쪽에서 바라 본 무등산의 장쾌한 모습

 

구룡고개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틀고

 

이서쪽 무등산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있는 길을 걷는다. 이곳을 지나면 화순군 이서면으로 접어든다.

 

나무가지 사이로 서서히 다가오는 무등산의 아름다운 조망. 저기 보이는 마을은 화순군 이서면 서동마을이다.

 

이곳에서 무등을 조망한다.

 

화순군 이서면 서동마을 넘머 하늘금에 안양산-백마능선-장군봉-규봉암-무등산 정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 아름다운 무등이여~ 무등을 가장 아름답게 보려거든 이곳에서 무등을 바라 보거라.

 

이서천을 따라 걷고자 하여 잠깐 만난 897번 도로와 헤어져 왼쪽으로 잡아 튼다.

 

이제 이서천을 따라 야사리까지 걸어갈 것이다.

 

풍요로운 이서면 들녁을 바라보며 별산(오산)자락을 감상하며 걷는다. 길가 밭에는 여름 깨꽃이 하얗게 피었다.

 

월성마을에 있는 지효문

 

효자 열여비각이다.

 

월정마을회관

 

 

월정마을 앞을 지나서

 

보월월정길을 따라 걷는다.

 

월정리 돌탑 "?"

 

월정리 노인정

 

이제 막 피어나는 벼꽃이 싱그럽고 건강하다. 

 

월정리를 지나 긴 이서천을 따라 이서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 보월월정길. 하늘은 맑고 흰구름 두둥실 떠 있는 정겨운 산골마을은 그야말로 청정구역이다. 이서천을 따라 펼쳐진 이 싱그러운 들녁은 가을에 황금물결로 변하고 무등산 규봉암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산수화를 그린다.

 

긴 이서천을 따라 걷다보면 용호 마을로 접어 들고 용호마을 노인정 앞에서 잠시 쉬어 간다.

 

용호마을 노인정 앞에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

 

잠시 쉬어 간다.

 

용호마을에는 이런 보호수가 많다.

 

용호교를 지나서

 

용호교에서 바라 본 이서천은 광주시민의 상수원인 동복호로 흘러든다.

 

무등산 시무기지폭포에서 흘러온 이서천이 장복천과 안심천의 물을 받아 야사리를 지날 때는 제법 물줄기 큰 천이 된다. 

 

용호마을 마을 표지석

 

 

용호교를 건너 적벽로를 걸으면서 바라 본 야사리 1000년 야사리은행나무 

 

야사1구 

 

야사 제1교를 지나고

 

야사 제1교를 지나면서 이서천에 비친 야사리 

 

동복호로 흘러 들어가는 이서천

 

이서 우체국

 

1000년 야사리 은행나무

 

◎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303호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공손수 또는 압각수(오리발 모양을 닮은 잎사귀)라고도 하며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여 수명이 1000년에 이른다. 원산지는 중국으로서 온대에 분포한다. 꽃은 4월에 잎과 함께 피며 열매는 황색이고 식용으로 한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조 성종(1469~1494 재위) 때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곳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철 따라 자태를 바꿔가며 국운의 융성과 나라의 화평을 알리고 때로는 우는 소리를 내어 전란과 나라의 불운을 알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곳 사람들은 신목으로 여기며 매년 음력 정원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내며 정성어린 보호를 하고 있다.

 

 

야사리 은행나무

 

기념 한 장 남기고

 

야사리에서 바라 본 무등 풍광

 

야사리에서 바라 본 별산

 

동면중학교이서분교(폐교)는 이서커뮤니티센터로 변했다.

 

동면중학교이서분교(폐교) 이서커뮤니티센터 쉼터에서

 

이서커뮤니티센터 옆에 있는 화순야사리 느티나무

 

◇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기념물 제235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197번지

 

야사리 느티나무는 2주로 수고는 23~25m, 흉고 둘레는 4.8~5.3m, 수관지름은 14~18m, 수령은 300~400년 이다.

화순이서면 야사리는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을 따라 주변에 자연촌락이 형성되었고, 15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03호인 이서면의 은행나무와 인접하여 있고, 학교 개교 당시 운동장 시설을 할 때도 마을 당제를 모시는 느티나무로 보호한 것으로 보아진다. 이곳의 느티나무는 할머니 당산나무였고 할머니 당산나무 남쪽에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따로 있었으나 노거수로 고사되어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어 관리하고 있으며 당산나무로 현재도 당제를 모시고있다.

운동장 중앙에 위치하여 생육상태가 양호하고 마을에서 당제를 모시는 당산나무로서 뿐만아니라 향토 문화보전의 장으로서 활용 되고 있다. 

 

◎ 규남 하백원박물관

 

◇ 규남 하백원 선생

 

규남 하백원(1781~1844)선생님은 여암 신경준(1711~1781), 존재 위백규(1727~1798), 이재 황윤석(1729~1791) 등과 함께 조선후기 호남의 4대 실학자 중의 한 분이시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서 태어나서 형조좌랑과 석성현감을 역임하셨다. 관직에 나아갈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생을 고향에서 지내면서 유학은 물론이고 천문, 지리, 율력, 전각, 산술, 서화 등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고, 자승차(양수기), 계영배, 자명종, 방적기 등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었다. 또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85호로 지정된 만국전도와 동국지도를 그리며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탐구도 멈추지 않았다.

 

조선후기 성리학만이 학문이라고 생각한 선비들에게 농, 공, 상 등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승기, 계영배, 방적기 등을 발명하고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등을 그려서 서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개화기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은 쇄국정책에 반대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적 안목을 기르는 실학 선비로써 모습은 산청 시천면 남명선생을 만날 때 처럼 나를 놀라게 했다. 조선후기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있을 때 그의 탁월한 '실학적 유학'이 지향하는 이념인  실용주의와 이용후생학을 추구한 실학 선비로써 중앙 정계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고향 이서에서 실학 학문을 탐구한 그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사뭇 크다.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학문의 실질적 목적이라고 가르친 그의 가르침은 내 가슴을 후벼파고 들어와 온 몸을 꼼짝 못하게 했다.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몇 번을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복받쳐 오른 알 수 없는 전율이 나를 꼼짝할 수 없게 한다. 출세와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한 오늘날 학자와 리더자들이 우글거린 이 시대에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라는 시대를 넘어 만고 진리를 실천한 규남 하백원 선생이시여~ 그의 영전 앞에 오랫동안 묵념을 올린다. 

 

전남 화순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1781~1844), 전북 순창 신경준(申景濬,1711~1781), 전남 장흥 위백규(魏伯珪,1727~1798), 전북 고창 황윤석(黃胤錫,1729~1791)은 호남실학 4대가로 꼽혀온 인물이다. 그 외에도 나경적, 오달운, 이윤성 등 대표적인 실학자들이 많다.

 

실학자하면 다산 정약용을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목민심서 등 많은 저술을 통하여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화순 이서의 규남 하백원선생은 전혀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우리 고장 선비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내 자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참을 규남 하백원 선생 기념관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느라 무등산 규봉을 바라보았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출신으로 무등산 규봉의 남쪽이 고향이라고 하여 호를 규남이라고 한 규남 하백원선생님 영전 앞에 고개 숙여 존경과 미안함을 깊이 드린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하여간의 산따라 물따라 블로그

2021.11.06. 조선시대 호남이 낳은 4대 실학자 규남 하백원선생을 찾아서 (tistory.com) 를 참고하길 바란다.

 

◎ 쌍렬문 정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 37-1

 

열녀 동복 오씨부인은 진사 하대붕(1535~1605)공의 아내인데,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출병한 남편이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 못 전해 듣고 자결하니, 왕께서 정려를 세우라고 명하였다. 종 목산 역시 "내 어찌 홀로 살리오" 하고 자결하였다. 

 

열녀 하씨 부인은 정랑 하대란의 딸로 충의위 이득춘의 안내인데, 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 앞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진사 하대붕 공은 당대의 사표이었으며, 그 아우 참군 하대표 공은 임진왜란 때 호종하시었다. 그 조카 금사 하윤구 공도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다. 재종제 하대인 공도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전사하고, 정랑 공의 손자 주부 하종해 공도 병자호란 위주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정려는 학당과 전도에 있었는데 병암 하영청 공이 야사로 옮겼고, 정익공이 중수기를 지었고, 1933년 죽와 하응락 공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충노 목산 지비

 

동복 오씨 부인과 하씨 부인의 쌍렬문 정려

 

 

정려란?

예전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야사리 1구 마을 표지석

 

오늘 광주무등산둘레길 3구간(담양 가사문학면 정곡리 - 화순 이서면 야사리)을 개척하면서 호남정맥의 울창한 숲길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였고, 아름다운 이서면 무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과 이서천을 따라 형성된 촌락 모습이 한없이 정겨웠다. 야사리의 규남 하백원 실학자를 만날 수있는 것은 행운이였으며, 무동리 구한말 의병장 김태원장군의 요시다 격살 현장 그리고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때 야사리 하씨 문중 사람들의 충의에 찬 결기와 그 부인들의 정절을 기리는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