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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2024.07.21. 거창 덕유산 삿갓봉 원추리, 비비추, 야생화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4. 7. 22.

1. 일자 : 2024.07.21.(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 황점-삿갓재-삿갓봉-월성재-월성-황점(9.5km)

 

 

2007년에 신풍령에서 육십령까지 백두대간을 하면서 힘겹게 오른 삿갓봉을 그 후로 아직 오르지 못했다. 덕유산이나 무룡산이나 남덕유산을 여러 차례 오르고 내렸지만 그 때마다 삿갓봉은 오르지 못했다. 늘 마음속에 그리기만 하던 봉우리이다. 이번에 원산우회에서 덕유산 무룡산과 삿갓봉 구간을 산행한다기에 만사제치고 늘 그리운 삿갓봉을 꼭 만나러 이른 새벽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2007.06.17. 백두대간(빼제-육십령) 산행 때 삿갓봉에서

 

일기예보에는 덕유산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새벽 6시 30분 광주를 출발한다. 거창 황점에 도착하니 하늘이 열리고 날씨가 산행하기에 참으로 좋다. 요사이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는다. 일기예보관들은 힘들겠지만 산꾼들에겐 행운이다. 살다보면 이런 행운이 가끔씩 있어 살맛이 나지 않던가? 산행 내내 짙은 운무가 남덕유산과 서봉을 덥고 있다. 만약 운무가 없었다면 참으로 장쾌하고 아름다운 삿갓봉-남덕유산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으련만, 약간은 아쉽다. 그래도 비를 맞지 않고 산행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가?  원추리와 비비추 등 여름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길은 무척이도 아름답고 즐거운 산행이였다.

 


 

무룡산(1,491m)

 

무룡산은 조선 시대에는 불영봉, 불영산이라고 불렸다. "거창군사" 에 의하면 산은 흰무덤뿌대기라고 부르는 깨끗하고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한다. 무룡산 지명은 용이 춤추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옛 지명인 불영산은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동서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낙동강 수계와 금강수계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정상부분의 암릉지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고 여러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용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암릉코스는 마치 춤추는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황점마을 날등이 있다.

 

2024.07.21. 현재 덕유산 원추리 군락지

 

◎ 삿갓봉(1,418.6m)

 

 

삿갓봉은 높이가 1418.6m이며, 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산 282로 거창 삿갓봉이라고 한다.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 장수군의 세 군의 경계가 분리되는 곳으로 백두대간 상 무룡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우뚝 솟아 수려한 계곡과 장쾌한 산줄기를 거느리며 금강과 낙동강을 가른다. 덕유산과 남덕유산에 가려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정도의 산 봉우리로 치부하지만 높이가 1418.6m로 우리나라 명산에 놓아도 하나도 손색이 없는 산이다.

 

 

낙동강 쪽으로는 삿갓골과 월성계곡을 거느리고 금강쪽으로 토옥동계곡과 원통골을 거느리며 울창한 수림과 원추리, 비비추 등 여름 야생화가 지천에 널리 피어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4. 산행 이모저모

 

황점 마을에서 삿갓재 대피소 들머리

 

삿갓재 대피소를 향하여

 

황점마을 담벼락 아래 봉선화

 

황점 마을에서 만난 왕원추리

황점지구 현위치

 

삿갓골 첫번째 폭포

 

두번째 폭포

 

세번째 폭포

 

삿갓골 청정수

 

두 골짜기 계곡물이 합수되고

 

현위치 : 거리 표시가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네번째 폭포 앞에서

 

네번째 폭포

 

찬찬님

 

황점마을

황점마을에서 3.7km, 삿갓재대피소까지 0.5km, 지금부터 마의 구간

 

산꿩의다리

 

하늘말라리

 

삿갓대피소 100m 전

 

휴~ 다 왔네 무척 힘들다.

 

황강 발원지 삿갓샘에서 약수 한 모금하고

 

삿갓재대피소에 도착 올라온 데크길을 담았다.

 

삿갓대피소 

 

삿갓재대피소에서 점심

 

땀 흠뻑 흘리고 힘겹게 올라 한 잔의 막걸리에 돼지머리 수육 안주 삼아 카~ 이 얼마나 맛있는 점심인가?

 

어수리

 

관중

 

비비추

 

비비추

 

월성재 2.4km 지점

 

참취 꽃

 

산수국

 

모시대

 

긴산꼬리풀

 

산꿩의다리

 

이끼와 바위떡풀

 

오르고

 

드디어 삿갓봉

 

함께한 대원들

 

 

삿갓봉에서 바라본 황점 마을

 

깊은 운무에 뭍히고

 

 

삿갓봉에서 환희

 

삿갓봉 송신탑

 

꽃향유

 

산수국

 

비비추

 

삿갓재 대피소에서 1.0km, 월성재까지 1.9km 지점

 

걷고 

 

덕유산 삿갓봉 원추리

 

참고로

 

무룡산 원추리 군락지 

 

 

 

다시 돌아와

 

모시대

 

하늘말나리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덕유산 삿갓봉 원추리

 

오르고

 

남덕유산과 서봉은 짙은 구름에 숨었다.

 

삿갓봉에사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백두대간 

 

무룡산이 용이 춤을 춘다면 이곳은 용 꼬리에 해당된다.

 

삿갓봉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비비추 동네

 

삿갓대피소에서 1.7km 지점

 

뒤돌아본 능선길

 

앞으로 가야할 삿갓봉 능선길

 

걸어온 삿갓봉을 배경으로 한 장

 

늘 함께한 동화나라님

    

늘 함께한 임상문 후배님

 

동화나라님

 

저 장쾌하고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무엇이 장쾌하고 무엇이 아름다운가?

운무가 쌓였다 사라지고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짙은 녹음이 끊임없이 짙어지고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이 변하는 저 위대한 자연의 질서를 자세히 보라. 저들은 왜 저렇게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하는가? 어떤힘으로 변하고 누구의 명령으로 변하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돌아본 삿갓봉

 

그냥 자연의 거대한 힘이며 질서이며 명령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나와 너, 인간이 아무리 어떤 생각과 힘을 가지고 어떤 명령을 내린다고 한들 저 위대한 자연의 질서가 한시라도 멈추거나 틀린적이 있던가?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인간의 생각과 관계없이 자연의 위대한 질서는 그냥 돌아가고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가 알아야할 아름다움이란 이 끊임없이 변하는 위대한 자연의 질서를 아는 것이고 그 위대한 자연의 질서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성실히 살아가는 과정이 이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이며 언젠가 생을 다할 때 그냥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질서인 것이다. 슬프거나 기쁠일도 아니다. 그냥 태어나고 - 성실히 살고 - 병들고 -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성공이니, 슬픔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로 본다면 참으로 하짢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은 스스로 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하늘이 부여한 가치에 충실하고 있다. 지금 살아 있는 동안 성실한가? 지금 살아가는 일에 성실한가? 지금이 지나면 또 다른 지금이 계속 다가오기에 늘 지금 성실하라. 이것이 자연이 주는 명령이며 인간 또한 이 자연의 명령에 충실하는 것이 천지만물에 스며 있는 가장 위대한 근원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A코스 선두

 

월성재 현위치

 

월성재

 

동자꽃

 

월성마을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삿갓봉 능선

 

월성계곡 하산길에 만난 여러 계곡물

 

하산완료 직전 30분 동안 소나기를 흠뻑 맞았다.

 

마지막 다리

 

월성마을 현위치

 

버스가 다니는 덕유월성로를 만나고

 

황점마을 원점회귀

 

황점마을 계곡 물놀이

 

오늘 황점-삿갓봉-황점 덕유산 삿갓봉 원추리, 비비추 산행을 마무리 한다. 2007년 백두대간을 하면서 힘들게 올랐던 삿갓봉 추억이 아련한 산행이다. 실로 18년 만에 덕유산 삿갓봉을 만났다. 아름다운 산행 추억이다.

 

 

참고로

 

박공삼형제 항일사적비

 

경남 거창군 죽상면 월성리 황점마을에는 의사 박공삼형제 항일사적비가 있다.

산꾼들에겐 산행이 바빠서 이곳 박공산형제 항일자적비를 둘러보지 못하지만는 이 깊은 산골에 항일 투쟁 이야기가 있다.

 

박공삼형제 항일사적비는 경남 북상면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한 박화기, 박수기, 박민기 삼형제의 항일애국정신을 기리고자 2004년 11월 6일 건립되었다.

 

 

박공 삼형제는

 

1905년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의병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1905년 안의군 북상면(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거의 한 오일선 의진에 참여하여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이후에는 문태서 의진과 제휴하여 전투를 치렀고 각지에서 모인 덕유산 의병 200여명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거창전투, 1908년 구천동 전투, 1908년 9월 삿갓골 전투 등을 치르면서 항일 의병투쟁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1909년 10월 밀정 최고미의 밀고로 박화기·박수기는 무주수비대에 의해 피체되어 순국하였다. 이후 박민기는

1912년 4월 26일 안의군 북상면 양지리에서 밀정 최고미를 처단하였으며, 이러한 활동으로 피체되어 191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2005년 본 사적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