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 일시 : 2020.03.28 (토)
2. 누구랑 : 원산우회 지인 3명
3. 산행 구간 : 도림사-신선대바위-동악산정상-배넘이재-대장봉-형제봉-공룡능선-길상암터-도림사(원점회귀)

◎ 동악산
동악산은 전라남도 곡성군 북쪽에 자리잡은 높이 735m의 산이다. 북쪽 아래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최악산으로 이어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신라 무열왕 7년(660), 원효가 길상암과 도림사를 세울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불린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사였으나 현재는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도림사로 불리고 있다.
◎ 동악산 산행
오랫만에 동악산을 오른다
진달래 숨결이 부드러울 때
8곡 풍광 수려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 올라도 그리운 추억
포근한 엄마품속 같은
편안함으로 또 동악을 오른다.

동악산 도림사 일주문에서 산행 시작

비교적 평온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누군가 넘어질 듯한 바위를 버티도록 버팀목을 세워 놓았다. 아마 간절한 소원과 함께 하였으리라

청류계곡을 지난다. 동악산 정상으로 가는 마른 계곡 입구에서 진달래를 배경으로 한 컷

오드리 산우님도 한 컷

이곳 부터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데크길을 지나서

한참을 급경사로 오르다 보면 능선을 만난다.

가파른 오름 뒤 능선길에서 한 숨 쉬면서 오늘 동행한 산우님들과 한 컷

신선바위 표지석을 지나 신선바위를 만나러 간다.

신선바위까지 0.2km 이정표

올챙이가 거꾸로 머리는 땅속으로 쳐 박고 몸통만 밖으로 향하면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모습일까? 참 재미 있는 소나무이길래 한 컷

신선바위에서 바라 본 형제봉과 대장봉 라인 그리고 청류계곡으로 뻗어 내린 공룡능선

오드리 산우님은 늘 하늘을 날고 싶다. 오늘도 여전히 신선바위 위에서 ~

신선바위에서 나도 한 컷

신변님도 한 컷

오래된 표지석이 더욱 정겹다

동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갈림길 이정목

동악산 정상 오르기 전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신변님은 항상 소년 같이 맑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멋진 오드리님과 암반 속에 수려한 소나무 풍광이 잘 어울린다.

동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바라 본 대장봉 - 형제봉 라인

동악산 정상 인증

신변님

오드리님

함께한 산행길이 행복한 추억길이 되길 기원한다.

동악산 정상에서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본다. 처음 동악산을 오를 때는 형제봉쪽에서 오르고 배넘어재에서 하산하였고 또 한번은 배넘어제를 거쳐 힘들게 동악산 정상을 오르면서 동악산은 힘든 산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오늘은 바로 동악산 정상으로 오른 길을 택해 비교적 쉽게 동악산 정상에 올랐다.

늘 보아도 오드리님은 신선함 그 자체다.

동악산 정상에서 배넘어재로 향하여 걸어야 할 능선길

형제봉과 대장봉 그리고 초악산 어쩌면 백아산 줄기와 저멀리 하늘금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아마 무등산 같기도 하다.

오누이 처럼 다정히

오드리님의 멋진 포즈

배넘어재 가는 표지판

솔향 가득한 암반길을 오르고

배넘어재로 가는 길목에서 되돌아 본 동악산 정상 라인

오밀 조밀 이루어진 암석들 동악산에 악자가 들어간 것은 산 자체가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져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악자는 풍류 악이다. 움직일 동자와 함께 무엇인가 움직여 음악이 들린다는 산이다. 통일 신라시대 원효대사께서 성출봉(형제봉) 아래 실상사를 짓고 수도를 하는 동안 꿈에 16 아라한이 굽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실상사에 모셨는데 그 후 육시되면 음악이 들렸다는 전설과 연관되어 동악산이라고 한다.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서 오르는 긴 능선길. 산꾼들은 이 코스를 잡기도 한다.

곡성 입면 들녁 섬진강과 곡성 입면 농공단지도 보인다.

시야를 조금 왼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무등산이 아련히 조망된다.

배넘어재 육각정 새로 만들었네요

배넘어재 쉼터에서 잠시 휴식

대장봉을 향하여 솔향 가득한 산길을 힐링하며 걷는다. 현위치 형제봉 갈림길

하늘정원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목. 현위치 대장봉 갈림길

대장봉 우회 산길을 지나서 현위치 헬기장

형제봉 아래 기암에서 이상한 포즈 한번 취해보고

오드리님도 아름다운 한 컷

신변님의 가식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고

오드리님의 여전한 포스 포즈. 보는이로 하여금 확 빨려 들어가는 저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동악산이 좋다. 힐링이 좋다.

오붓한 오누이 처럼

형제봉 정상. 성출봉이라고도 하고 동봉이라고도 한다. 보통은 돌탑군이 있는 곳으로 하산하거나 또는 오르거나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길상암터로 하산길을 잡는다. 동악산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서다.

가야할 동악산 공룡능선

공룡능선길을 보다 가까이에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동악 공룡능선 부채바위

형제봉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데크 길 끝에 노각나무가 반긴다.

부채바위를 오르려면 하심이 필요하다. 마음을 내려 놓고 욕심없이 올라야 하나보다.

산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마음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하심 또 하심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

부채바위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고 아슬 아슬하다. 태양을 등지고 어둡게 산우님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서로의 간절한 소망을 위로하고 기원하면서

나도 같이 한 컷

아름다운 부채 바위에서 멋진 모습. 사실은 매우 아슬 아슬 한 상태이다.

신변님과 한 컷

낭만 포즈 늘 이렇게 건강히 즐거운 산행을 하면 좋겠다.

오드리님과 신변님도 낭만 포즈 한 컷

부채 바위의 아슬 아슬함을 무릅쓰고 추억을 남긴다.

더 이상은 위험지구라 가지 못하고 이제 길상암터로 하산 하여야 한다.

도림사 하산길에 고즈넉한 길상암터를 만난다. 먼 옛날 이곳에 원효스님이 길상암을 짓고 도를 닥고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열여섯 아라한이 굽어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음날 성출봉(형제봉)에 오르니 열여섯 아라한이 있어 길상암에 모셨는데 그 후 육시가 되면 음악이 울러펴졌다는 길상암이다.

지금은 돌담 흔적만 덩그라니 있다. 언젠가 도량 높으신 스님이 오셔서 다시 길상암을 중창할 날을 기원한다.

청류9곡 중 하나인 해동무이 앞에서 산우님들과

신변님과 함께
◎ 도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 1813∼1888)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중심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나한전(羅漢殿)·명부전(冥府殿)·약사전(藥師殿)·응진당(應眞堂)·궁현당(窮玄堂)·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고,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며,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이다.
문화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도림사괘불이 있는데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절 앞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남아 있고, 절 앞 계곡에는 반석이 좋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림사 보광전

도림사 전경

도림사 보광전 앞에 연리지 나무가 있다.

도림사. 수도하는 스님들이 숲을 이룬다는 절 이름이다.

도림사

도림사를 지나고

도림사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청류구곡(淸流九曲)
도림사(道林寺) 앞을 지나는 계곡이 청류계곡이다. 계곡 이름을 붙인 사람은 구한말 선비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1876∼1921)과 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다. 두 사람은 청류계곡 굽이마다 구곡(九曲)이라 이름을 붙이고 글을 새겨놓았다. 제1곡은 주차장 앞에서 시작된다. 제1곡은 쇄연문(鎖烟門), 제2곡은 무태동천(無太洞天), 제3곡은 대천벽(戴天壁), 제4곡은 단심대(丹心臺), 제5곡은 요요대(樂樂臺), 제6곡은 대은병(大隱屛), 제7곡은 모원대(暮遠臺), 제8곡은 해동무이(海東武夷), 제9곡은 소도원(小桃源)이다.

1곡 쇄연문. 지욱한 운무에 뒤덮인 문


2곡 무태동천


3곡. 대천벽. 하늘의 은혜를 머리에 이고 있는 벽



4곡 단심대. 충성스런 마음을 표현한 누대

도림사 계곡에 있는 제4곡 단심대 ~
4곡(四曲) 단심대(丹心臺)는 일편단심을 다짐하는 반석이다. 그 옆에는 서산강론(西山講論)이라는 큰 글자 아래 모두 9명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병순을 비롯해 당시 단심대에서 회합을 했던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박병선은 의병이었고, 정봉태는 훗날 연희전문학교에 7대를 모아온 가문(家門) 장서 묵용재 1만 권을 기증한 사람이다. 새긴 날짜는 정사년(1917년) 음력 오월 병신일이다. 장성 출신 위정척사파 의병장 노사 기정진과 손자 송사 기우만이 즐겨 찾던 곳이다. 조병순 또한 독립운동가였다. 서산강론 4년 뒤 조병순은 곡성경찰서에 끌려가 고문 끝에 죽었다. 1921년 그가 죽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장지연이 곡성까지 찾아가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장지연은 그 한 달 뒤 죽었다. 2011년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서훈을 박탈당하기도 한 장지연은, 죽을 때까지 지사(志士)의 죽음을 슬퍼한 우국지사였다. 진짜 변절자라면 조병순 유족들이 왜 도끼로 그를 처단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맞았겠는가. 청류계곡 바위에는 이런 글들이 우글우글하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우국지사들 단심(丹心)을 읽지 않으면 도림사 청류계곡은 절반도 보이지 않는다. 경치 속에 숨은 역사와 문화까지 즐거운 입체적인 풍경, 문화산수(文化山水)다.

5곡 요요대. 물을 좋아하는 지혜로운 자와 산을 좋아하는 어진 자가 노니는 누대


6곡 대은병. 진정한 은사가 은둔하는 곳


7곡 모원대. 날은 저물고 갈길은 멀다 라는 의미를 지닌 누대



8곡 해동무이


9곡 소도원. 중국 복건성 무이산 제6곡에 위치한 '도원동' 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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