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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26.05.17. 순천 낙안 금전산 암릉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6. 5. 17.

순천 낙안 금전산은 여러 번 오를 기회가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안고 있는 산이다.

학창 시절 방학이 되어 광주에서 벌교를 지나 녹동을 거쳐 완도 금당도 집으로 갈 때, 벌교 가기 전 낙안 들녘을 지나면 먼 하늘금에 우뚝 선 바위 산으로 유난히 위엄이 넘친 커다란 산으로 기억된 산이다.

그 뒤로도 산행 후 낙안온천에서 목욕을 하거나, 낙안읍성을 들릴 때, 바로 뒤에 웅장하게 서 있은 거대한 암릉산이 금전산이다.

쇠금자에 돈전자를 가진 산이름도 신기하다. 황금돈이란 이름의 금전산이다.

기암괴석 암릉에 자리 잡은 금강암은 마애불로 유명하다.

꼭 가보고 싶었던 금전산을 오늘에야 오른다. 기대가 크다.

발걸음 : 불재 - 구능수 - 전망대 1 - 전망대 2 - 돌탑봉 - 전망대 3  - 궁글재 - 금전산 - 의상대(원효대, 형제바위, 개바위 조망) - 금강암 - 극락문 - 낙안온천

○ 불재

불재 도착, 산행 준비하고 오늘 함께한 산우님들과 출발 기념 한 장

불재는 도로를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다.

금전산 안내도 현 위치

곧바로 범왕사 방향 콘크리트 길을 따라 오른다.

산길엔 여름 꽃 찔레꽃이 향긋한 꽃향을 품어내며 아름답게 피어나고

산길 표지기 방향으로 급경사로 오르면

밤왕사 입구에 자연석 부처님을 만난다.

법왕사 입구에서 금전산 산길 표지기를 따라 오른다.

급경사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숨이 헐떡일 때, 산능선에 오르고 잠시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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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능수 유래

금전산 중턱에 있는 일명 '쌀바위'는 오래전 처사 한 분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는데 석굴 입구 위쪽에 있는 구멍에서 하루 세끼분의 쌀이 나와 연명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이곳에 손님이 찾아와 쌀이 더 필요하게 되어 쌀이 나오는 구멍을 부지깽이로 쑤셔대자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쌀뜨물만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또한, '쌀바위'아래에 커다란 석굴이 있는데 그 안쪽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둘레 50cm, 길이 1m 정도 크기의 바위샘이 있다.

이것이 바로 구능수(처사샘)이다.

이 구능수는 영험한 신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이 금전산 처사샘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 고전적 신기가 그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시집와 14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이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갖게 된 순천문화유산해설사 '고이케 사나에'씨 일화가 유명하다.

○ 전망대 1

한참을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 능선에서 잠시 쉬는 동안 숲 속에 숨어 있는 전망대를 찾아 나선다.
확 트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이 시원하다. 하늘은 맑고 연둣빛 초록은 이제 짙은 녹음으로 변하며 여름을 부르고 있다.

전망대 1

전망대 1에 서서

전망대 1에서 사진놀이

푸르른 녹음을 지나 한참을 오르다 보면

멋진 전망대 2 암릉이 나타난다.

금전산 불재 코스에서 이런 암릉을 만나다니? 오늘 산행은 행운이다. 볼수록 매력적인 저 바위 끝에 서 보고 싶었지만 참는다. 이제 과유불급이다. 늘 조심 조심해야 할 나이다.

옆길로 오른 두 번째 전망대인 돌탑전망대이다.

돌탑전망대에 서서 기념 한 장

돌탑봉

휴 힘들어~ 이제 여름산행이 시작된다. 구슬땀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시원한 막걸리로 잠시 쉬어가자.

돌탑봉 기념 한 장

돌탑봉 철쭉

돌탑봉 무슨 꽃?

궁굴재로 가는 길에 전망대 3에서 낙안읍성과 낙안들녘을 조망할 수 있어 잠시 쉬어간다.

전망대 3

궁글재 도착

궁굴재 기념 한 장

유난히도 건강히 잘 자란 소나무가 정겹다.

잠시 쉬어가자.

금전산 정상 이정표

금전산 정상석과 돌탑

누군가 저리 정성으로 돌탑을 쌓았을까? 무엇이든 간절함이 있어야 이루어진다는데, 이 돌탑도 누군가의 간절함으로 쌓았나 보다. 늘 보고 싶었던 금전산 정상 돌탑이다.

금전산 정상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금전산의 하이라이트 금강암과 마애불, 원효대와 의상대 그리고 형제바위와 개바위 등 기암괴석을 맞이하러 하산이다.

의상대 전망바위

의상대 전망바위에서 서서

의상대전망바위 아래 산신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산신각이 별도로 없고 나전에 그냥 산신과 호랑이와 동자상을 기도처로 모셔놓았다.

이곳에서 곧장 가는 샛길이 있는데 이 샛길로 가면 원효대로 가는 길이다. 위험하여 출입금지 구간이다. 돌아선다.

산신상에서 잠시 내려오면 거대한 암릉이 나타난다. 이곳이 의상대이다.

맞은편에 거대한 암릉이 있는데 원효대이다.

의상대와 원효대가 금강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기막힌 조화이다.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두 분은 신라 중기 고승으로 불교 공부를 하러 중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칠흑 같은 밤에 길을 잃고 산속에서 누워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바가지 물이었다. 원효대사는 그 순간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하고 깨달음을 얻어 유학길을 포기하였고(선), 의상대사는 그대로 유학길에 올라 불교 경전 공부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교).

두 분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깨달음에 이른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는 두 분의 가르침인 선과 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와서 지눌국사께서 '선과 교가 따로가 아니고 하나다'라고 가르쳤다.

원효대사는 불교경전을 읽지 않아도 선 수행을 통하여 모든 대중은 부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의상대사는 불교의 이론과 사상을 정립 한 고승으로 화엄(모든 존재는 서로 인연, 연기로 연결된다) 사상을 통하여 모든 대중은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초기 불교에서는 선과 교가 대립된 개념으로 갈등을 불러왔지만

고려 시대 지눌국사에 의해 선교일치, 정혜결사를 통하여 선(불교이론)과 교(마음 수행)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며,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의 말씀(이론)에 기인하여 마음을 닦는(수행) 불교 수행법을 정립하였다.

뭐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방법은 다 똑같다. 배움과 실천의 문제다.

오늘날 교육의 문제는 배움만 있고 실천이 없는 것이다. 교만 있고 선이 없는 것이다. 학만 있고 습이 없는 것이다.
이론만 있고 실습이 없는 것이다.

교 - 배움 - 학 - 이론 다 같은 말이다.
선 - 실천 - 습 - 실습 다 같은 말이다.

배움과 실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공부다.
이론과 실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공부다.
선과 교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깨달음을 얻는다.
실천하지 않는 배움은 빈탕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이론만 있고 실습이 없다. 그러니 이론은 잘 외워서 만점을 맞아도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자가 많지 않다.
차라리 이론은 몰라도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더 낳지 않을까?

교는 몰라도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문을 공부하고 차분히 불교경전을 읽을 수 있는 승려들이나 교를 실천하지 어찌 일반 백성이 그 어려운 경전을 터득할 수 있겠는가?

'교와 선은 모두 따로가 아니고 하나다'라고 하지만 일반 백성에게는 교는 언발에 오줌누기고 선을 통하여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래도 더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굳이 따진다면 나는 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천하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란 말이다.

금강암 돌탑

이곳 금강암에는 석탑이 없다. 아마 이곳에 흔히 있는 돌을 주어다 석탑대신 돌탑을 쌓았나 보다. 석탑이나 돌탑이나 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노력 아니겠는가?

금강암 마애불

이런 높은 곳에 이리 정교한 마애불이 있다니 놀랄만하다.

나무대자비 관세음보살

낙안 금전산 금강암 관세음보살 마애불은 인도불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머리에 높은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버드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호리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중생의 병을 고치고 고통을 구제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다.

낙안 금전산 금강암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보통 절집에는 대웅전이 중심 전각인데 극락전을 중심 전각으로 하기도 한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는 전각은 극락전이나 무량수전 또는 극락보전이라 하기도 한다.

금전산 금강암 극락전 내부에는 미륵불인 청동아미타불반가좌상을 모셨다.

금전산 금강암 극락전 청동아미타불반가좌상

이곳 금강암 극락전 아미타불반가좌상은 청동일까? 목조일까? 아무리 봐도 청동일 것 같다. 청동으로 만든 아미타불반가좌상이다.

극락암에서 내려다본 기암

금강암에서 올려다본 의상대

금강암에서 내려다본 낙안 들녘과 낙안읍성

○ 금강암 연혁

금강원은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에 속하는 호남 제일 관음기도 도량으로써 전남 순찬시 낙안면 상송리 산 1-1번지, 금전산의 남서쪽 팔부능선 중턱아래는 절벽이고 위는 20m 바위 아래 자리하고 있다.
본 금강암은 백제 27대 위덕왕 24~25년(577~580)에 검단 선사께서 창건하신 유서 깊은 고찰로 통일 신라 때 의상대사께서 중수하시고 고려 때는 보조국사께서 송광사의 아리아로 세우시고 호남 제일 관음기도 도량으로 명맥과 법풍을 이어왔다. 원통전, 지장전, 삼성각, 선원 등 부속건물을 지닐 정도의 규모 있는 사찰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여순사건으로 소실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고봉국사께서 수행하시고 대중과 함께 선풍을 드날리며 수도한 곳으로써 관음 신앙을 진작시킨 이름 높은 관음도량이다.  

또한 암자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원효대가 있고 서쪽에는 의상대가 있으며 의상대 후면에는 관음좌상불이 있으며, 또한 비가 와서 물이 고여 있을 때에는 부처님의 상호가 자연 그대로의 암벽에 나타난다.
또한 그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고 기기묘연하며 계곡에 보이는 암벽이 다 관음이요 작은 금강산이라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불심을 자아 나게 하는 호남 제일의 관음청정기도 도량으로 그 위치나 주위의 산세로 보아 천년을 넘는 아득한 옛날부터 수행승들이 찾아들던 것을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1992년 이전에 폐사되어 방치되었던 사찰이 오랜 각고의 결실 끝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러 지금도 계속하여 수행정진과 사찰발전에 여념이 없다.

붓꽃

험준한 바위 사이 높은 담벼락을 쌓고 조그마한 공간에 극락전을 얻졌다.

극락전에서 하산

절벽 아래로 아슬아슬 하산길이다. 반대로 금강암을 오른다면 무척 힘들 오름길이다.

극락문

극락문을 통과하고

극락문은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석문이다.


아래에서 오른다면 이 문을 들어서면 극락정토로 오르는 문이 될 것 같다.
지리산이나 월출산 통천문과 비슷하다.

극락전이 있는 의상대 기암절벽

그 절벽에 붓꽃이 피었다.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붓꽃 향연

무거운 암반을 짊어지고 저리도 어려운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가?

원효대이다.

의상대와 원효대를 아래에서 바라봤다.

원효대는 출입금지여서 아래에서 바라만 봤다.

원효대를 바라보고

한참을 내려오다 만난 기암

낙안온천입구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 낙안 금전산 산행 마무리

금전산은 금강암 - 원효대 - 의상대 - 형제바위 - 개바위 등 기암절벽이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산이다. 오랫동안 가보고 싶은 산이기에 오늘 산행은 기대되고 설레고 더욱 힐링 산행이었다.
한여름으로 치닫는 시기에 낙안 금전산을 마무리하니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