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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26.05.12. 지리산 바래봉 철쭉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6. 5. 12.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다. 영락없이 비가 온다. 그래도 빗속을 뚫고 출발한다. 마지막 철쭉을 보고 싶어서이다. 바래봉 철쭉말이다. 철쭉 중에 가장 아련하고 슬프고 보고픈 철쭉이 바래봉 철쭉이다.


바래봉 철쭉은 한국 현대사의 애환과 그리움, 사랑과 전쟁의 고달픔이 디범벅된 고달프고 슬프고 외롭고 기막힌 사연을 머금고 피어난 철쭉이기 때문이다.  


바래봉 철쭉 꽃잎에 서린 사연 그 누가 알리오마는, 알고 나면  알 수록, 가슴 가득  밀려오는 슬픔을 어찌 다 감당하리오.


1953년 5월 12일 그날도 이렇게 비가 쏟아졌다. 바위틈에 간신히 빗줄기를 피하고 있지만 이미 옷은 젖은 지 한참이다. 바위지붕 처마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똑똑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빗줄기 속으로 멀리 뻐꾸기 소리가 듬성듬성 들린다. 저 녀석도 나처럼 바위지붕 처마 밑에서 저렇게 짝을 찾느라 울어 되고 있을까?


주 부대는 이미 정령치를 지나 아마 달궁으로 접어들었을지 모른다. 동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며 스르르 잠 속으로 잠겨 들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신작로에 처음 본 자동차가 나타날 때, 온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자동차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다. 자동차에서 풍겨 나온 매쾌한 연기 냄새가 새로웠다.


한바탕 떠들썩한 아이들의 줄달음이 지나고 자동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 마을 아이들은 마을 어귀에 모여 서로 열띤 영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갑수 삼촌이 몰고 온 자동차란다. 갑수 삼촌은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해 사장이 되고 부자가 되었다. 갑수는 좋겠다. 갑수는 곧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영웅담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기가 살짝 들어 몸이 움찔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동수는 가슴 한 켠 텅 비어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알 수 없는 고독함은 또 어디서 밀려오는가?


그날 밤 산 사람들이 쳐들어 오지만 않았어도 나는 지금 이 산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따끈한 우묵 이불 아래 발을 넣고 오손 도손 마누라와 새끼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군경이 눈에 쌍심지만 안 썼어도 어떻게 버터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가득 찬 아침 햇살이 떠오르고 들리는 소문은 어제저녁 군경이 산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눈에 상심불을 뒤집어쓰고 마을로 들이닥친 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 놈이냐? 빨갱이들 하고 내통한 놈이 어떤 놈이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해대며 들이닥친 군경 앞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도망치자.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여 자기도 모르게 마을 뒷산으로 숨어들어 산행활을 하다가 이곳 지리산으로 숨어든 지가 벌써 3년째이다.


빨치산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나도 모르게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날 밤 산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 주었다고 사람의 운명이 이토록 바뀔 수 있는가? 산사람들에게 내가 밥을 준 것도 아니다. 목에 따발총을 들이 되고 밥을 달라는데 어찌할 것 인가?

부엌에 밥이 있다는 눈짓만으로 그들은 허겁지겁 밥솥에 있는 밥을 다 비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무도 모른 일이다.
그냥 있으면 되련만 무엇이 그리 찔렸는지 나도 모르게 산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죽더라도 그냥 있어 볼걸~ 산에 들어온 후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러나 누가 내 진실을 알아주랴 나는 이미 스스로 산으로 도망쳐 왔고 살기 위해 산 사람들과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니길 여러 해이다. 영락없이 빨치산이 되었다.

지리산에 진달래가 피고 나면 철쭉이 핀다.

진달래가 필 때 초등학교 아들 녀석 하고 뒷산에 올라 진달래 꽃잎을 따서 한 광주리 집에 가져오면 "워매 어디서 이렇게 많이도 땋소" 하고 늘 마누라에게 칭찬을 듣곤 했다. 딸레미는 손톱에 꽃물을 드린다고 난리였다.


그렇게 꽃밥도 해 먹고 술도 담고 진달래 꽃떡도 해 먹던 행복한 시골이었다.


무슨 놈의 전쟁이 나서  누구를 위해 총질을 해대는지 모르게 마을 사람들은 밤에는 산사람들에게 낮에는 군경에게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가 원수가 되어갔다.


그때도 서북능선 팔랑치에 철쭉이 진저리 나게 붉게 피어났다. 늘 올랐던 팔랑치 고개 마루 철쭉은 예전 철쭉이 아니었다. 그립고 고독하고 원망스러움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철쭉이었다.


철쭉 꽃잎에 박힌 점들이 무슨 환영인양 묘한 매력으로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꽃술이 춤을 추고 그 뒷마당에 하얀 소복의 천사가 너울너울 어깨춤을 추면서 함께 너울거린 한바탕 춤 세상은 한가한 오후 햇살에 빛나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동수는 그립고 보고픈 마누라와 새끼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살아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며 허멀건 하늘을 쳐다보며 싱겁게 웃음 짓고 있었다.


바래봉 철쭉은 그 때나 지금이나 붉게 피어나고 있다.


○ 발걸음 : 용산마을 주차장 - 운지암 - 바래봉 삼거리 - 식수대 - 바래봉 - 팔랑치(왕복) - 운지암 가는 길(비탐) - 용산마을 주차장(11km)


○ 산행 시작

용산마을 주차장엔 5월의 꽃 이팝나무 꽃이 흰 눈처럼 하얗게 피었다.

이팝나무꽃

지리산 허브밸리를 지나

바래봉 철쭉 축제장 각설이는 여전히 활기차다. 비가 개고 산행을 마무리하면 이곳에 들려 야관문 막걸리에 한 바탕 놀고 가리라.

광주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가 출발하려는데 하늘이 열리고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용산마을에서 출발 운봉 바래봉 철쭉 표지석과 포토존

출발 기념 한 장

운지암까지 숲길은 싱그럽다. 어제 내린 비로 청청한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깊은숨을 들이켠다. 살 것 같다.

임도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다. 바래봉까지 4차선 임도길은 신작로 길이다. 급경사이긴 해도 비가 오는 날 걸을 만하다. 원래 계획은 전북학생수련원에서 출발하려 했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걷기 좋은 길을 택해 용산마을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바래봉을 향해

바래봉으로 오르는 초입 하늘이 열리고 날씨가 언제 그랬야 하는 것처럼 비가 그치고 운무가 서서히 끼면서 그림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맞은편 수정봉 산줄기에 운무가 서서히 끼더니 몽한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오손도손 오늘은 또 어떤 산행 추억을 만날까?

다래꽃


바래봉 탐방로 시작

한참을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고

병꽃

제비꽃

철쭉이 반긴다.

싱그런 등로 양 옆으로 줄곧  화려하게 피어나는 철쭉이다.

연녹색 녹음과 어울리는 붉은 철쭉이 영롱한 자태를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현 위치

빗방울 한가득 머금고 무슨 날개로 춤을 출까? 저리 고민하는 흰 철쭉이 매혹적이다.

싸리꽃

산사나무꽃

휴~ 힘들다. 급경사 오름길은 끝나고 지금부터는 평탄한 철쭉 길이다.

바래봉 삼거리 이정표

오랜만에 만난 ○디님 과 한 포즈

구상나무길을 걷고

쭉 뻗은 구상나무를 배경으로 추억 한 장 남기고

나도 한 장

오손도손 걷는 철쭉 길은 행복이고 우정이고 낭만이다.

본격적인 바래봉 철쭉군락 속으로 들어간다.

며칠 전 800m 급 황매산엔 철쭉이 다 져가는데, 이곳 바래봉은 1,000m 급 고도로 이제 철쭉이 만개하고 있다. 200m 차이에도 개화시기는 현저히 다르다.

몽롱한 안개가 더욱 신비스러운 운치를 자아내고 빗방울 먹은 철쭉 꽃잎은 더욱 붉은빛을 발산하고 있다.

바래봉 아래 오름계단

계단 옆으로 진붉은 철쭉이 화려하게 피었다.

출입금지 구역에도 이제 철쭉나무가 제법 자라 화려한 철쭉꽃을 피워낸다.

차츰 고도를 높일수록 바래봉 철쭉이 화려하게 피아나고

바래봉 철쭉

바래봉 오름 계단과 어우러진 철쭉

바래봉 철쭉

바래봉 철쭉

시시각각 변하는 운무가 만들어내는 몽한적인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래봉 철쭉

화려한 바래봉 철쭉

화려한 바래봉 철쭉

운무가 끼어 더욱 신비롭고 영롱하게 피어나는 바래봉 철쭉


바래봉 철쭉

한쪽으로 잠시 운무가 조망을 열어준다.

바래봉 정상석 기념

정상석 기념

정상에서 서서

바래봉 정상석에서 대원님들과

함께한 대원님들(서툰 산악회)

환상적인 바래봉 조망이 터진다.

바래봉 하산길 시시각각 변하는 조망을 감상하며

기쁨

환희


지리산 천왕봉 방향 풍광

지리산 주 능선 방향 풍광

노고단 방향 풍광

바래봉 하산길 서북능선 방향 조망

그곳에 길이 있다. 길이 있어 걷는다. 걷다 보면 길이 된다.

바래봉 전망대

전망대와 철쭉 그리고 환상적인 운무 순간

바래봉 철쭉

바래봉 흰 철쭉

식수대로 내려와서 점심을 하고 오후 산행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팔랑치까지 철쭉을 보고 다시 돌아와 용산마을로 하산이다.

환상적인 철쭉 산행이다.

지리산은 운무에 쌓이고 바래봉 철쭉은 더욱 선명히 붉은 빛깔로 되살아 난다.

팔랑치로 가는 길목 철쭉

철쭉 속에서 기념 한 장

빗망울과 철쭉

빗방울과 철쭉

연철쭉

연철쭉

팔랑치 가는 길목에서

몽환적 분위기 속에 화려하게 피어난 철쭉

저기까지만 가자

팔랑치 철쭉

돌아선다.

돌아오는 길목 철쭉

돌아오는 철쭉이 더욱 검붉다.

현 위치

파랑치를 지나

돌아오는 산길에 선 대원님들

현호색

연철쭉 군락

바래봉 철쭉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하산길은 운지암으로 내려가는 비등로를 택해 내려간다.

4차 선 신작로 임도길 보다 산죽이 우거지고 소나무 향기가 싱그런 비등로 산길로 하산이다.

소나무 향기가 은은한 산길은 더욱 촉촉이 젖어 싱그럽다.

두○비님 덕분에 이런 명품길을 걸어본다. 두○비님께 감사한다.

운지사를 잠시 들려간다.

청신녀 만덕화

운지사로 들어가는 길

운지사는 조그마한 절집이다. 절집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도도량 같기도 하다.

소박한 장독대

대웅전

대웅전 삼존불(가운데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관세음보살, 왼쪽에 지장보살)

보통은 석가모니불 좌우에 관음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이곳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인가 지장전이 특별히 아직은 없다.

요사채

산신각

산신

밖에 산신께 경배하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호랑이를 타고 다닌 산신

돌아오는 길에 운지사를 담았다.

범종각

지리산 운지사 범종

운지사를 담으면서 오늘 선행을 마무리한다.

○ 바래봉 철쭉산행

올해 철쭉은 이제 1,000m 이상에서 핀다. 바래봉은 1,000m 이상이다. 빗속을 뚫고 바래봉을 향하는데 혹시나 지고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산행시작부터 날씨가 개고 화려한 붉은 철쭉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 전후로 이곳 지리산 서북능선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현상 부대의 빨치산들을 잠시 생각하는 철쭉 산행이었다. 아련한 철쭉이 붉게 피는 날 영문도 모르고 산에 들어와 빨치산이 되고 군경 대 토벌 작전으로 소리 없이 사라진 이 땅의 억울하게 죽어간 빨치산을 생각하는 철쭉 산행이었다. 자기 이념이 분명해 빨치산이 된 사람은 그런다고 하더라도 영문도 모르고 빨치산이 되어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들의 죽음을 언젠가는 다시 역사적 평가를 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