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대 명산

2025.10.18. 영암 월출산 하늘아래 첫 부처길 - 미황재 - 도갑사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5. 10. 19.

10월 중순 월출산이 부른다.

며칠 전 월출산을 향했지만 연일 산행으로 피로가 겹쳐 천황봉을 오르지 못하고 구름다리에서 하산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월출산 천황봉을 언제 배알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가까운 지인님이 토요일 월출산을 가자고 한다. 맘속으로는 천황사 코스로 천황봉을 오르고 싶었지만 지인님들은 하늘아래 첫 부처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의견보다는 주변의 의견을 존중한다. 흔쾌히 하늘아래 첫 부처길을 택해 올라 구정봉을 찍고 억새물결이 아름다운 미황재를 거쳐 도갑사로 내려오는 산행을 했다.

절집을 둘러보고 절집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 도갑사 절집을 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도갑사 절집을 담아보자' 천황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도갑사 절집을 담을 것에 만족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늘아래 첫 부처길로 향한다.  

날씨가 좋으면 이 시기 월출산 조망이 끝내줄 텐데 오늘은 처음부터 보슬비가 내리더니 산행 내내 보슬비와 짙은 안개로 이 시기 월출산의 조망은 완전 꽝이었다. 아쉽다.

그래도 좋은 분들과 오른 산행은 여유롭고 편안하고 다정한 산길이었다.

월출산 하늘아래 첫 부처길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하늘아래 첫 부처길은 월출산기찬랜드~대동제~용암사지에 이르는 5㎞구간이다. 
기찬랜드~대동제 구간은 영암군에서, 대동제~큰골~용암사지 구간은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각각 길을 열었다.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김시습, 정약용 등 이름 높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했다고 알려져 ‘명사탐방로’로도 불려 왔다.

산행 초입 대동저수지 위로 노적봉-시리봉 라인은 안갯속에 묻혔다.
보슬비가 내린다. 최악이다.

요 근래 내린 비를 생각하면 저수지 물이 가득해야 할 텐데 이 가을에 물을 많이 쓰는 시기도 아닌데~ 대동저수지 물이 말랐다. 무슨 연유일까?

월출산 국립공원 구역 안으로 접어들고

오늘은 계곡에 물이 철철 넘쳐 계곡물소리가 우렁차다. 기분이 좋다. 사람은 물소리에 편안함을 느낀다. 아마 엄마 배속에 있을 때 경수의 주파수와 같은 파장을 만나면 엄마 뱃속 같은 편암함을 느끼는지 모른다.

상수도 수원지로 들어가는 철문이다. 수원지보호구역임을 명심하라. 대곡저수지이다.

제2 대곡교를 지나

한가로운 길을 지나면

대곡저수지가 나온다. 이곳은 영암일대 사람들의 상수원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다. 잔잔한 호수 위에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정취가 아련한 옛사랑 추억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늘아래 첫 부처길이다.

계곡물이 깨끗하다. 명견지수다. 마음이 청정해진다.

용암사지까지 2.3km 지점 이정표를 지나

다리를 건너고

청수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물소리에 마음을 싣고 그저 편안한 세상이 오길 바라면서 올랐을 옛 선인들의 마음이 되어 쉬엄쉬엄 오른다.  

용암사지까지 1.7km 지점 이정표를 지나고

잠시 쉬어간다.

고도를 높일수록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고 해맑은 정신에 함께한 대원님들과 이런저런 세상사 이야기 나누며 걷는 이런 길이 행복 아니겠는가?
  

울창한 숲 속을 지날 때 잔잔한 운무가 깔린 숲 속은 마치 원시림을 지나는 것 같은 으스스하면서도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옛날 화전민의 집터일까 아니면 무슨 절집 암자가 있었던 곳일까?
  

칡덩굴만이 오랜 세월을 낚고 있다.

절집 암자 터 축대 돌담이 아직 그대로이고

텅 빈 공간에는 생강나무일까? 무성히도 잘 자라고 있다.

코끼리 바위란다. 이곳을 여러 번 지났지만 코끼리로 보진 못했는데 지나가는 산꾼이 외친다. 코끼리 바위라고~ 그렇게 보니 코끼리 같네

영암을 포함한 남도의 백성들 중에는 조선 유교사회의 천민 계급으로 태어나 천박한 계급의 굴레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까막눈 달달 봉사로 평생 동안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 이하의 차별과 괄시를 받고 억울하고 괴로울 때, 그들에게 유일한 마음의 위안이 되는 메시지가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란 희망이지만,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 큰골 맑은 계곡물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 사이를 걸어서 고달픈 세상에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구정봉 아래 아늑한 용암사 부처님을 알현하러 올랐을 옛 백성들을 생각하며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오른다.

급경사 철계단을 지나

원시림 울창한 숲 속을 지나

암반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신성하다.

큰골은 자연생태가 싱싱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

이끼는 생태가 살아 있고 주변 환경이 청정하고 상급일 때 잘 자란다.

오를수록 안개가 자욱하다. 혹여나 안개가 걷히고 청명한 하늘을 기대했건만 기대와는 반대로 영 걷힐 생각이 없다.
  

안개 자욱한 숲길을 걸으며 나름 운치 있는 느낌 속에 함께한 대원님들. 늘 건강하길 기원한다.

안개 자욱한 분위기는 또 다른 신비로움과 영험한 느낌을 주기에 새롭다.

용암사 부도탑 2구이다. 안내가 없어 누구의 부도탑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용암사가 번창했을 때 용암사에 큰 영향을 미친 스님이었을 것이다.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 용암사지 아래 대나무 숲길을 지나

파릇파릇 머우대가 한창인 용암사지에 도착했다.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용암사지는 기암괴석이 많아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구정봉 아래 있다. 300평에 가까운 부지에 수많은 기와조각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건물이 있던 자리임을 알게 한다

용암사지 약수터

약수터 안쪽 맑은 청수

1955년에 용암사라고 쓰여있는 기와가 출토되었다. 또 삼층 석탑 주변 부지에서 주춧돌이 많이 발견되어 옛날 사찰 터 임을 확인하였다. 실재 용암사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지] [영암군 산천]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사찰의 건립 내력이나 부대시설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전해오고 있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다.

◎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283호)

이 석탑은 본래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었는데 현재는 용암사지의 서남쪽에 있는 일명 탑봉이라 부르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1996년에 석탑을 보수할 때 아래층 기단에서 백자 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사리32과, 철편 11점 등이 수습되었다.  
 
* 사리호 :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단지

용암사지 한쪽 구석에 있는 절구통

마애여래좌상을 알현하러 가자

◎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 호)

마애여래좌상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마애여래좌상은 바위 면을 약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마애불을 새겨놓았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8.6m이고, 불상의 신체 높이는 7m이다. 불상의 몸체 일부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웅대하고 장엄하게 보인다. 
불상의 눈은 옆으로 길고 끝이 올라가 있으며, 어깨와 팔의 표현이 느슨하며, 얼굴 표정이 경직되어 있다.

이러한 유형의 불상은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오른쪽에 높이 90cm 크기의 동자상이 돋을새김으로 조성되어 있다.

월출산에 있는 국보인 마애여래좌상은 아마 내가 본 마애여래좌상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애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훈풍에 미소 지으면서 세상풍파를 견디어 왔으리라. 그 많은 백성들의 눈물을 어루만져주고 그 많은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바라보면서 그저 조용히 차별 없이 보듬어 주었으리라.  

그러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절집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 마래여래상을 만나 보았지만 월출산 마애여래좌상만큼 탁월한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다. 

정말이지 어제 막 제작한 작품처럼 윤곽이 뚜렷하고 작품성이 탁월한 마애여래좌상이다. 
참으로 정교하고 품격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오래전에 이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을 만났다. 그때는 이 마애여래좌상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이런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 후 여러 번 마애여래좌상을 만났고 그 아름다움과 고귀한 가치를 알고부터는 월출산을 오를 때마다 보고픈 마애여래좌상이다. 오늘 다시 알현하니 마음이 흡족하고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든다

가까이 가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온화하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은 온 중생의 근심과 애환을 모두 다 품어 안아주는 큰 부처님 모습 그대로이다. 


◎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맞은편에 있는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건너편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연휴로 조성하였는지 모를 삼층석탑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석 암석 위에 기단을 얹고 3층 석탑을 옹골차게 올려놓았다. 정교하지 않지만 어딘지 무게 중심이 잡혔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투박한 우리 마을 동네 어르신 모양으로 잘난 체 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3층 석탑이다. 다만 그 오랜 세월의 흔적을 안고 서 있는 기품이 대견할 뿐이다.  
 
아마 뭇 중생들이 이곳 삼층석탑에 올라와 맞은편 마애여래좌상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마애여래좌상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향로봉과 구정봉 암릉 산줄기와 어우러진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오늘은 짙은 안개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아쉽다.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장쾌하게 흐르는 월출산 노적봉 산줄기 방향을 바라보며 그 옛날 고달픈 삶을 살았던 이 땅의 민초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이곳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곧바로 구정봉으로 오른다.

구정봉 가는 암릉길

안개가 걷혔다면 참으로 장쾌한 천황봉 기암괴석 능선길 풍광이 펼쳐지련만 오늘은 모든 것이 아쉽다.

구정봉 가는 능선길 기암

구정봉 아래 이정표

구정은 기대한 암릉 위에 오랜 세월 산성비로 화강암이 녹아 만들어진 9개의 구멍이 있어 구정봉이라 한다.
 

구정봉에서 바라본 월출산 정상과 월출산의 거대한 위용. 구정봉은 아래에서 바라보면 큰 바위얼굴 모양의 거대한 암릉이다.

기암

베틀굴 내려가는 길목에 거북이 상 바위

베틀굴

구정봉에서 내려오다 보면 맨 먼저 나타나는 곳이 입을 떡 벌린 형상을 하고 있는 베틀굴이다. 이 굴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베틀굴 안쪽 물웅덩이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 굴속에는 향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 부르기도 하여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 쪽에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에 월출산의 신비를 더 해주고 있다.

베틀굴 맞은편 천황봉 오름 능선길에 남근석이 우뚝 서 있다. 베틀굴과 남근석의 조화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월출산의 정기를 나타내는 신기한 모습이다.

베틀굴에서 향로봉 방향으로 오르면서

향로봉 아래 이정표

현 위치

억새밭을 향해

가는 길은 암반길이다.

구절초도 만나고

이제 억새밭 미황재로 향하는 산길도 안개로 완전 곰탕이다.

짙은 안개는 내내 자욱하다. 하늘이 내준 만큼에 만족하자. 다음을 기약한다.

기암 앞에서

이정목

미황재로 가는 길

기암

안갯속에 묻힌 기암

미황재 가는 길목에서 만난 구절초

미황재도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미황재

억새밭 미황재 현 위치

억새밭

미황재 억새밭도 잡풀이 무성하여 억새밭 은빛 풍광은 옛말이 되었다.

억새밭

억새밭에서 도갑사 하산길은  급경사 하산길이다. 중간쯤 이정목을 지나면서부터 비교적 완만한 산길로 이어진다.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편안하고 싱그런 숲길이다.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을 따라

다리를 건너서

여러 번의 계곡물을 건너는 다리를 건넌다.

이곳 계곡물도 큰골만큼이나 청수이다.

도갑습지 안내

도갑습지

미황재에서 도갑사로 내려오는 월출산국립공원 마지막 안내 만약 도갑사에서 미황재로 오른다면 이곳이 월출산 국립공원 첫 들머리이다.
  

도갑사에서 미황재로 오르는 첫 들머리 이정표

도갑사 도선국사비각

도갑사에 대해서는 절집이야기 도갑사 탐방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중요 몇 곳만 올리기로 한다.

대웅보전

광제루

국○제일선종대찰

도갑사 일주문에서 기념 한 장을 남기고 오늘 하늘아래 첫 부처길  - 구정봉 - 미황재 - 도갑사 산행을 마무리한다.

짙은 안개가 산행 내내 자욱하여 월출산의 수석전시장 기암괴석 풍광을 보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함께한 산우님들과 우정을 나누며 걷는 행복한 산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