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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지리산둘레길

2025.04.27. 지리산 둘레길 22코스(산동-주천) 15.9km

by 하여간하여간 2025. 4. 29.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을 둘러싼 80여 마을을 잇는 22구간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해 트레킹이 가능하도록 환형으로 조성되었다.  

 

차량통행이 많은 아스팔트 길, 안전이 우려되는 위험한 길, 해발 고도가 너무 높은 길 등은 연결을 위한 최소한의 구간을 빼고는 제외시켰다.  2007년 1월부터 조사·설계·정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2012년 5월 전체 구간을 개통하고, 2014년부터 순환로를 포함해 22구간이 운영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벅수"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장승은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있다. 벅수는 장승의 다른 말이자 우직하거나 바보스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장승형 이정목이 가야할 길을 가리켜 준다. 그 이정목을 형상화하여 우린 ‘벅수’로 부르기로 했다.

 

지리산 둘레길 '벅수'

 

 ‘지리산둘레길’의 우직함 묵묵함을 잇고자하는 마음이다. 세상은 촌각을 다투듯 바쁘고 정신없지만 지리산에 깃들어 보면 참 우직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숲이 있다.

 

◎ 지리산 둘레길 22코스(산동 - 주천) 15.9km

산행코스 : 산동면사무소 – 현천마을(1.9km) – 계척마을(1.8km) – 밤재(5.2km) – 지리산유스호스텔(2.7km) – 주천센터(4.3km)

지리산둘레길 22코스는 구례군 산동면 산동면사무소에서 남원시 주천면 주천마을까지 15.9km 거리이다.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코스이다. 산동-주천구간은 지리산의 영봉 노고단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고,  특히 봄철이면 현천마을에서 계척마을까지 이어진 산수유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계척마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할머니 산수유나무와 정겨운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구례와 남원을 연결하는 둘레길로 견두지맥의 견두산 자락의 편백나무숲을 지나며 밤재를 넘어가는 약간은 힘든 산행길이다. 3월 말 산수유가 활짝 필 때 이곳을 지나면 온통 노오란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수유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오늘은 4월 말이라 산수유는 지고 온통 연두빛 초록 봄기운으로 파릇 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생기넘친 둘레길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는 길로 "어찌하여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였는가?" 를 생각하며 걷는 역사의 길이다.

 

◎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와 함께 걷는 지리산 둘레길 22구간 (산동면사무소 - 주천) 을 걸으면서

 

2021년 4월 25일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싶어 처음 주천에서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걷기 시작한 후 이런 저런 사연으로 아직 지리산 둘레길 완주를 못하고 4년이 지나서 오늘 지리산 둘레길 마지막 코스인 22코스를 걷는다. 감계무량하다.

 

견두지맥을 산행하면서 밤재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밤재를 지나기도 하고 밤재로 도착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지리산 둘레길 22코스 걸으면서 다시 밤재를 넘으니 그 기쁨이 무엇으로 말 할 수 있을까? 지리산 둘레길 마지막 코스를 걷는다는 기쁨과 늘 동경해 온 밤재를 다시 넘는다는 뿌듯함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을 따라 걷는 역사의 길이기에 한층 힐링되고 보람된 산길이다.

 

이제 지리산둘레길 22코스를 걸어보자

 

◎ 산동면사무소 - 개척마을 산수유 시목지 까지 

 

산동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트레킹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면서 서로 의지하며 즐거운 트레킹을 하길 바란다. 

 

지리산둘레길 22코스 출발 기념 단체 인증 

 

산동면사무소 옆에 세워진 지리산둘레길 벅수 그리고 21코스(방광-산동)와 22코스(산동-주천) 시종점 안내 표시가 반갑다.

 

설렌마음으로 지리산 둘레길 22코스 시작점에 섰다. 산동면사무소에서 출발한다. 

 

지리산둘레길 22코스 출발 이정목(구례 158, 산동0.0km, 주천 15.9km)

 

산동면사무소 담장 밑에 꽃잔디가 유난히도 붉게 피었다. 오늘 우리의 둘레길을 반겨주는 걸까? 

 

원촌 마을

 

산동면사무소가 있는 원촌마을을 지난다. 원촌마을은 옛날 시골 장터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개발 시기의 변화에 아랑곳 하지 않고 외지와 단절이라도 한 것 처럼 거리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이다. 지금은 이런 시골 분위기가 오히려 추억을 되새기며 사람들 마음의 힐링을 제공하고 있다. 원촌마을은 산동면소재지 마을로 두 개의 물줄기(수락천과 서시천)가 하나로 만나는 곳에 있으며 원래는 월촌이라 부르던 것이 원촌으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원’이 있던 곳이라 원촌이라 했다고도 한다. 면소재지의 풍경은 70년대 시골장터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아담하면서 정겹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체 가옥의 80%가 전소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아픈 역사가 있기도 하다. 농협하나로 마트가 있고 산동-주천구간 시종점인 산동면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원촌마을을 지나 원촌길을 따라 걷다가 수락폭포로 가는 방향의 길을 따라서 걷는다.

 

구례 원촌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수락폭포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구례 159번 이정목

 

지리산 둘레길의 이정목에 대하여 아십니까?

 

지리산 둘레길 이정목은 지역 이름이 앞에 붙고 그 지역 순방향 첫 출발부터 번호를 매긴다. 이 '구례159' 이정목은 구례군이 시작되는 곳에서 부터 159번째 이정목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 옆에 코스별 출발지와 도착지를 표시하고 각 각의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산동 0.3km' 와 '주천 15.6km' 는 22코스 산동 출발지로 부터 0.3km 거리이고 종점인 주천까지 15.6km 남았다는 표시이다. 이 두 거리를 합치면 15.9km이다. 이정목 번호가 바뀔 때마다 오고 가는 거리는 더하고 빼면서 총거리는 같다. 이정목을 잘 살피면 내가 지금 어느 지역을 지나고 있고, 코스 시작점으로 부터 얼마를 걸었고, 앞으로 종점까지 얼마의 거리가 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 빨강색은 순방향이고 검은 색은 역방향이다. 이정목의 표기를 잘 살피면 둘레길을 걷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김명수 회장님의 수락폭포 설명

 

수락폭포와 계곡 등 지리산 인근에서 음이온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신 하훈박사님께서 "수락폭포가 떨어질 때 생기는 음이온이 우리 몸에 매우 좋으며 여름철 수락폭포 물맞이 하는 것도 무척 몸에 좋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이 수락폭포를 찾아 명소가 되었다" 고 설명을 듣고

 

늘 그랬던 것 처럼 대원님들 간에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 둘레길은 힐링이고 행복이다. 이 보다 더 확실한 힐링이 또 어디 있겠는가?

 

둘레길을 걸으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능선 너머 하늘금엔 노고단에서 성삼재를 지나 고리봉과 만복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장대하게 흐르고

 

조금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만복대에서 갈라지는 견두지맥이 유유히 흐르고 견두지맥 어디에선가 또 갈라진 산줄기가 장엄하게 내리치면서 온 산하는 푸른 봄기운의 연두빛 세상으로 진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현천마을 향해 간다.

 

지리산둘레길은 마을을 지나고 하천을 건너고 산줄기를 바라보며 지리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수 많은 민초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보는 길이다. 구례 산동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파 농사가 싱싱하게 잘도 되었다. 이 봄 싱싱한 파를 담가 파 김치를 담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나는 특히 파 김치를 좋아 한다. 어릴적 엄마가 파 김치를 많이도 만들어 주셨고, 파 줄기를 송송 썰어서 간장에 고추가루와 이런 저런 양념을 넣고 주물럭거린 파 양념장에 밥 한 그릇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지금도 파를 보면 침샘이 돈다.  

 

지나가는 길가에 철쭉이 예쁘게도 피었다. 철쭉 꽃 너머로 풍요롭게 펼쳐지는 산동면의 산야가 아름답기만 하다.

 

산동면 마을을 지나서

 

현천마을 입구이다. 이곳에서 둘레길 방향은 완전히 90도 왼쪽으로 꺽여서 터널을 지나 현천마을로 향한다. 

 

90도 왼쪽으로 꺽는 이정목

 

19번 산업로 아래로 현천마을로 향하는 터널을 지나야 한다.

 

원촌초등학교를 지나 면소재지를 벗어나면 19번 국도 밑으로 난 지하통로를 통해 현천마을로 들어간다. 꾸준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현천마을 주차장에 닿는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마을정자에서 옷매무새를 만지고 가기도 한다. 현천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 견두산의 모양새가 현(玄)자를 닮았고, 옥녀가 빨래를 했다는 내(川)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 앞 아담한 저수지에는 봄이면 산수유 꽃그림자가 어리고, 산수유와 돌담이 어우러진 마을길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현천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자운영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자운영 꽃밭에서 추억 한 장

 

감나무에도 새봄이 무르익고

 

현천마을 현천제를 배경으로 

 

현천마을 쉼터인 현천정

 

현천마을 유래

 

맨 처음 화순 최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며, 실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50여년 전에는 100호가 넘는 대촌을 이루었으나 현재 49호만 남았다. 마을 지명은 마을 뒷산인 견두산이 "현" 자형으로 되어 있고 뒷내에는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 같이 빨래를 하고 선비가 고기를 잡는 어웅수조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형용하여 "현천"이라 하였다.

 

현천마을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

 

현천정 뒤에 있는 마을 당산나무

 

현천마을 주차장에서 둘레길은 오른쪽으로 꺽여 현천제 둑방을 타고 걷는다.

 

현천제는 수면이 고요하고 주변 산자락이 수면에 반사되어 그야말로 대칭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산수유가 활짝 필 무렵 전국의 진사님들이 산수유 꽃과 어울어진 대칭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많이도 찾는 곳이다.

 

현천제 둑방길을 걸으면서

 

현천제의 아름다움을 되돌아 보고

 

현천제 한쪽 정자를 담아 본다.

 

정자 쉼터에서 잠시 망중한 시간을 가지고

 

이제 현천제와 헤어지려는데, 산수유 꽃잎이 지고 남은 자리에 산수유 열매가 푸르게 얼굴을 내밀고 현천제와 정자가 어울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이제 견두산 자락 지리산둘레길 22코스로 접어 든다.

 

견두산 자락 지리산 둘레길은 이미 푸르름으로 숨가프게 짙어가고 풍요로운 생명의 노래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대원님들은 봄기운 가득한 초록세계의 환희속에 건강한 발걸음을 내딛고, 마음은 창공으로 훨 훨 날아 따스한 봄날의 기쁨을 만끽한다.

 

가끔씩 만나는 봄의 전령사들! 붉은 철쭉이 유난히도 예쁘게 피어 지나는 발걸음을 잡는다. 나를 봐주고 가세요. 나를 안아주고 가세요. 나를 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가세요. 나를 생각하며 또 사랑스런 누군가를 생각하세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철쭉을 뒤로 하고 행복한 둘레길을 걷는다.

 

 

감나무 잎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느라고 쉼이 없다. 강렬한 봄 햇살에 지친 모습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샘솟는 순간이다.

 

연관마을 당산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연관마을 이정목

 

연관마을

 

현천마을 앞 저수지 둑을 따라가면 지리산둘레길은 고샅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가로질러간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연관마을이다. 조선 중엽 고씨가 남원으로 가던 중 산 밑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고 길조라 여기고 정착 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설촌 당시 산밑에서 연기가 피어난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은 연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느티나무 그늘 아래 한적한 쉼터를 조성했다. 산등성이를 타 넘어가는 고샅길과 농로가 계척마을까지 이어진다.

 

연관마을 유래비

 

조선중엽에 고씨가 남원으로 가던 중 산 밑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것을 보고 길조라고 여기고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설촌당시 산밑에서 연기가 피어난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은 연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연관마을에도 이처럼 마을을 떠난 경우가 있다. 집 주인은 떠나고 산골짜기엔 폐가만 동그라니 서서 세월의 무상함만 지키고 있다. 그래도 한 때 언젠쯤엔가 아름다운 자연 속 이집에서 두 부부가 자식새끼 낳고 농사지으며 하늘같이 땅같이 알뜰 살뜰 사랑을 나누며 서로를 신뢰하고 행복한 꿈 속에 소박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폐허로 만들었을까? 산업화가 되고 세상이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서 자식 새끼들은 너도 나도 도회지로 떠나면서 시골은 황폐화 되고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았다가 이제 그 노인들 마다 저 세상으로 떠나고 나면, 주인 없는 폐가는 저토록 쓸쓸히 이 땅을 지키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견두산 자락을 끼고 아기 자기 계곡을 지나고 산등성을 지나지만, 군데 군데 확트인 조망터가 있어 환상적인 조망을 바라볼 수 있다. 만복대에서 갈라진 견두지맥 능선과 수락폭포 물줄기를 형성한 골짜기 사이로 4월의 푸른 봄기운이 힘차게 피어 오른다. 

 

아기 자기 둘레길에서 바라 본 아름다운 풍광

 

둘레길은 편안하게 지나기도 하고

 

평탄하게 걸었던 둘레길은 이곳에서 90도 왼쪽으로 꺽여 산등성으로 향한다.

 

편백숲을 지나기도 하고

 

급경사 오름길도 지나

 

이제 계척마을로 향해 간다.

 

새로 세웠는가? 구례 169-1 이정목이다. 길을 새로 내거나 변경된 경우 새로 이정목을 새운다. 이곳도 새로 길을 내면서 이정목을 세웠나 보다.

 

산동-주천구간/계척마을 지리산 둘레길 안내

 

산동-주천구간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에서 기념 한 장

 

고개마루 정자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정을 나누고

 

계척저수지가 보이는 둘레길을 따라 1000년 된 산수유 시목이 있는 계척마을로 향한다.

 

계척마을은 울창한 숲으로 그림 같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은 90도 꺽어 오른쪽 방향으로 계척마을 안으로 향한다.

 

옛 모습이 살아 있는 계척마을 돌담길

 

계척마을에는 수령이 350년 되는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재단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당산재가 열리나 보다.

 

계척마을 당산나무인 3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

 

 

계척마을

 

계척마을은 산동면의 대표적인 산수유마을 가운데 하나다. 계척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1000년쯤 됐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나무가 있다. 그 옛날 중국 산둥(山東)성의 처녀가 구례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와 심은 산수유 묘목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전설이 있다. 

 

그러나 ‘할머니 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산수유 시목은 어느 산수유 나무 보다 크고 웅장하다. 

 

지금도 젊은 나무 못지않게 활짝 꽃을 틔운다. 산수유 시목지 앞은 광장으로 조성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쉬어갈 정자가 있다. 

 

이순신 백의종군 기념관 앞 광장에서 지친 몸을 쉬며

 

막걸리 한잔으로 쉬어 간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조선의 운명을 새롭게 바꾸고 7년 조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백의종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흰 옷을 입고 군에 근무하는 것" 이지만, 관리가 벌을 받아 관직과 보직이 삭탈당한 상태로 충군하는 것임

 

'1597년 2월 26일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한성 의금부에 투옥된 이순신은 28일간의 옥살이 후 4월 1일에 풀려난다. 이 후 초계(경남 합천 율곡)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을 하도록 명령을 받는다. 이순신 백의 종군은 4월 1일 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8월 3일까지 120일 동안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조선 수군 재건 계획을 세워 칠천량해전의 패배를 딛고 조선의 운명을 바꾼 명량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의 구례 순천 백의종군 행적

 

이순신 장군은 410여 년 전 구례현을 지나 순천부에 권율장군을 만나러 가면서 남도 백의종군길을 나섰다. 1597년 초 이순신은 참담하였다. 4월 1일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권율은 순천부에 있었다. 이순신은 권율을 찾아 순천으로 향한다. 백의종군길에 모친상이라는 비보를 듣는다. "부고를 받고 뛰쳐나가 둥그러지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 와 있었다. 길에서 마주하는 가슴 미어지는 슬픔을 어찌 다 적으랴"( 난중일기, 1597. 4. 13) 이어지는 백의종군길은 상중에 서둘러 길을 떠나 이동하였다. 천안, 공주, 논산, 익산, 삼례, 임실, 남원, 구례, 순천을 거쳐 도원수가 있는 순천부에 당도한 날이 4월 27일이었으니 27일간의 긴박하고 고단한 여정에 몸과 마음은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중 순천은 이순신이 처음으로 도원수와 교감한 장소이다. 17일간 묵었던 순천부 백의종군길은 남해안 일대의 정찰과 지휘부와 교신을 통해 전략을 재구상한 길이였다. 구례현 백의종군길은 이순신 장군의 호남에 대한 인식이 깊게 나타나 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간 권율의 이동을 살피고 이원익 체참사를 만나 국난극복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순신에게 구례백성과 구례현감의 따뜻한 배려는, 그에게 재기의 신념을 주었던 길인 샘이다. 다시한번 애민의 마음으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확실한 신념을 다지게 하는 길이었다. 백의종군길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구례, 순천 종군길에 나타난다.

 

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 구례 순천구간의 안내이다. 백의종군로 구례구간의 7구간은 석주관 가는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이순신 백의종군로는 한양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충청도, 전라북도의 여산, 삼례, 전주, 임실을 거쳐 남원, 구례, 순천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러나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각 지자체마다 해당하는 부분까지만 안내하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조금 헛갈릴 것 같다. 국가 단위로 한양에서 순천까지 길을 하나로 연결하여 똑 같이 안내하면 좋으련만, 지금은 각 지자체 마다 안내를 하고 있으니 사정을 감안하여 이순신 백의종군길을 이해하길 바란다. 

 

◎ 계척마을 - 밤재 까지

 

이제 계척마을에서 밤재로 향한다.

 

밤재로 향하는 이정목

 

방향을 바꾸고

 

견두산 자락의 둘레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른다.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풍요로운 들레길을 걷고

 

둘레길의 지루한 오름길은 마음 편한 친구와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 것이 제일이다.

 

구례 산골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느끼며 걷는 둘레길에  봄기운이 완연하고, 온 천지는 연두빛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가고 있다. 

 

하늘은 파랗고 온 산천은 푸르름으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무척이나 마음 설레일 것이다.

 

이런 길을 걷을 수 있어 행복하다. 둘레길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기다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살피며 걷는다.

  

수령 600년이 넘는 당산 나무인 푸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을 지키며 부러지고 꺽이고 벗겨지고 이러 저런 상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끗끗히 서서, 이 땅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땅의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으니 그 위용이 어찌 간단한 모습인가? 참으로 위대하고 당당하다.

 

지리산 둘레길에 체육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산골에 큰 예산을 들여 체육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용한 사람이 없어 시설은 썩어가고 수풀만 무성하여 폐허가 되어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공무원이 한심하기 이를데가 없다.

  

이제부터 지리산둘레길은 밤재를 향하여 급하게 오른다.

 

왼쪽으로 급하게 꺽여 오르고

 

왼쪽으로 급하게 꺽는 방향을 기르킨 이정목

 

이제부터 밤재까지 오름길은 상당히 급하게 오르면서 힘든 구간이다.

 

군데 군데 쉼터가 있어 고단한 사람은 쉬어 가련만 쉼터 마저 오랜 세월에 허물어져 간다. 수리가 필요하다.

 

지리산둘레길 산동-주천 구간의 밤재 오른 길목에 편백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계척마을에서 밤재로 올라가는 길목에 조성한 숲이다. 구례군에서 조성한 이 숲에는 수령 30년을 헤아리는 수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편백나무숲 가운데를 관통한다. 편백나무숲에는 산책로가 여러 갈래 있는데, 지리산둘레길 이정표 벅수가 잘 세워져 있어 헷갈리지 않는다. 또한 벤치와 화장실, 평상도 있어 다리쉼 하기 좋다. 편백나무숲을 지나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편백숲을 지나면서 피톤치드 향기 그윽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이다.

 

완만한 오름길을 지루하게 오르면 군데 군데 전원 주택이 있는 마을을 지나고

  

밤재터널이 지나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밤재로 향한다.

 

밤재로 향하여 완만하게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지루하게 오른다.

 

콘크리트 임도 길은 지루하지만 비교적 편안한 길로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나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잡다한 생각을 떨치며 걷는 구간이다.

 

길고 지루한 임도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저기 끝에 밤재가 다가온다.

 

드디어 밤재 이정목

 

스탬프도 찍고

 

밤재 정상석에서

 

박옥현 노무현재단호남지역 공동 대표님과 함께 기념 한장을 남긴다.

 

밤재

 

구례와 남원을 가르는 고개다. 지리산 서쪽 줄기로 동쪽으로 숙성치, 서쪽으로 견두산이 이어져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과거에는 19번 국도가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러나 1988년 길이 800m, 폭 9.7m의 밤재터널이 뚫리면서 옛길이 됐다. 

 

밤재는 밤나무가 많아서 생긴 지명이라고 하며 한자로 율치라고도 하였다. 간이 화장실이 있고 밤재 정상의 정자는 어느 해 태풍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그 옛날 밤재 터널이 없었을 때 버스를 타고 넘나들던 이 고갯길은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남쪽의 구름도 재를 넘어가기 어려워 비가 되어 내린다는 밤재에서 쉬어간다.

 

밤재에 올라 대원님들과 신발 벗어 던지기 놀이도 하고

 

견두산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생명 평화경

 

산림청, 사단법인 숲길, 남원시,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구례군 합동으로 지리산 둘레길 조성 경위와 가치 그리고 의미를 잘 정리한 안내이다. 생명평화경의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 보니, 우리 인간들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를 잘 말해 놓았다. 감명을 받는다.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산길을 걷고 자연 속에 살고자 한 사람은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왜적침략길 불망비/ 극일과 평화의 새로운 다짐을 위하여

 

임진년(1592년) 침략으로도 모자라 왜적 통치자는 정유년(1597)에 재침을 명하였고 다시 악귀가 된 왜적은 빼앗고, 불사르고, 베고, 찌르며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구례를 거쳐 남쪽으로 보이는 원촌에 이르렀다.

여기, 밤재를 가운데로 동쪽의 숙성재와 서쪽의 둔산재를 짓밟고 넘은 침략군은 북쪽으로 보이는 남원성을 포위하여 민,관을 비롯한 조명 연합군 1만여명을 도륙하였다. 당년 추석 전후의 일이다. 살인귀 왜적은 코베기와 노예화를 위한 인질 포획을 시도했으나 살아 있는 생명은 없었다. 약탈, 겁간, 방화, 살육의 잔재만 남았을 뿐이었다.

 

갑오년(1894)에도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토벌군이 되어 토끼몰이를 하면서 북에서 남으로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을사늑약(1905), 경술국치(1910)로 우리나라와 민족을 집어삼킨 일제는 이 고개를 약탈과 지배의 수단인 신작로로 만들었다.

왜적 일본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잘못이 작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비롯한 모든 침략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면서 하늘을 칼질하는 인류 최악의 범죄다. 그런데도 일본은 단 한가지, 단 한번의 공식적인 반성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옛 침략의 환상속에 또 다른 침략의 칼날을 갈고 있다. 이에 일본을 극복하지 않은 한 우리에게 평화는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되새기고, 성찰과 실천을 다짐하기 위해 더럽고 잔혹한 왜적 침략의 족적이 찍혀 있는 이 자리에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이 석비를 세운다.

 

2017년 9월 26일, 남원시, 구례군,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얼마나 의기충천한 결기인가? 

 

밤재 이 길은  왜적 침략의 길이니 절대로 잊지마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왜적의 잔인한 도륙 상황

갑오년 동학농민군 토벌군으로 토끼몰이

을사늑약과 경술국치의 수탈을 위한 신작로 개설   

 

산행과 둘레길을 걷는 사람은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천명한 이 극일을 위한 결기를 다시 한번 새기고 일본을 이겨야 우리의 진정한 평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 볼 일이다.

 

 

지리산둘레길 안내도

 

앞밤재

 

이곳은 지리산 서쪽 줄기로 동쪽으로 숙성치, 서쪽으로 견두산이 이어져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밤재는 밤나무가 많아 생긴 지명이라고 하며, 한자로 율치라고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명을 받아 권율 도원수가 있는 순천으로 가기 위해 남원에서 구례로 향할 때, 밤재를 거쳤다.

 

밤재의 남원쪽 고개에 세워진 이정목/이제부터는 남원 땅이다.

 

밤재에서 점심을 하고 잠시 쉬어 간다.

 

◎ 밤재 - 주천 까지

 

이제 남원 주천으로 향한다. 줄곧 내림길이다. 오후 둘레길을 안내하는 김명수 광주지오트레킹 회장 

 

편안한 내림길이 계속되고

 

긴 내림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엔 평화와 배려, 따스함이 함께한다. 

 

남원쪽 견두지맥 산자락을 따라 굽이 돌아 주천으로 향한 둘레길에 봄기운이 만연하다.

 

긴 내림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방도 19번 도로를 만나고

 

19번 지방도로 터널을 지나 웅치윗길을 따라 차로로 잠깐 지난다. 

 

주차장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고

 

주천으로 행하여 유스호스텔  옆 지리산과학영농조합법인 옹벽을 따라 걷는다.

 

담쟁이 잎에 연록색 빛깔이 싱싱하게 빛나고 

 

주천으로 가기 위해 19번 도로를 넘어야 하는데, 지하터널을 통해 건너기 때문에 둘레길은 지하터널 방향으로 향한다.

    

지리산 유스호스텔 옆 19번 도로 지하터널을 지난다.  

 

지하터널을 지나고

 

둘레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지고 온갖 야생화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주천으로 가는 둘레길은 이렇게 오르기도 하고

 

평탄한 길을 걷기도 하고

 

골짜기를 내려서기도 한다.

 

녹음이 짙게 두른 둘레길은 참으로 기분 좋은 길이다. 완연한 봄기운을 받아 새생명이 움트고 온 천지가 푸른 세계로 변한 숲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은 평온하며 새로운 기운이 샘솟는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인가? 우주 자연의 위대한 작품이기에 감히 인간으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광이다.

 

골짜기를 건너고 또 다시 산길을 오르고

 

급하게 오르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오른 고갯길에서 잠시 쉬어 간다.

 

졸졸졸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가다 보면 작은 계곡을 만난다. 골짜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가는 싱싱한 야생 화초가 무성하다. 

 

용궁마을을 향해 아름다운 숲길을 내려간다.

 

용궁마을 입구이다. 

 

이제 용궁마을로 접어들면서 평탄한 둘레길을 걷노라면

 

무너미골에서 흐르는 계곡을 만나고 깨끗한 물줄기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를 씻고 세수를 하고 나니 살 것 같다. 시원하다. 

 

무너미 계곡에서 땀을 씻고 무너미고개를 넘어서 용궁마을 저수지로 향한다. 옛날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밤재와 숙성치 두 갈래였는데 내용궁마을 초입에서 길이 만난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은 숙성치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해 볼 일이다. 

 

장안제를 거처 용궁마을로 가는 이정목을 지난다.

 

견두지맥 능선길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푸른 하늘을 지키는 소나무 한 그루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굽이 굽이 돌고 도는 지리산 둘레길에 봄 야생화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90도 꺽여 왼쪽으로 향하는 둘레길을 따라 

 

용궁마을로 향하면서

 

용궁마을로 향하는 정문등 이정목을 지나면 배롱나무가 유명한 류익겸효자비각(정문등)에 닿는다. 

 

 

◎ 류익겸효자비각(정문등), 배롱나무

 

용궁마을로 내려가다 보면 고려시대의 효자 유익경지려가 있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어머니의 똥을 맛보고 병의 경중을 가늠하고 설중에 고사리를 캐러 교룡산 골짜기를 헤매고 요천의 얼음을 깨고 쌍잉어를 구해 드렸다는 효자의 이야기다. 

 

그 효행을 기려 세운 비각 옆에 수령이 약 300년 되는 보기 드문 백일홍나무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수백년을 그 자리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고목나무에 인사하고 비각에 들러 툇마루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감모제 출입문

 

감모제

 

류익겸효자비각(정문등) 전경

 

관리가 되지 않아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문중에서 관리를 못한다면 남원시에서 지방문화제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조상들의 효사상을 교육하는 귀한 장소로 거듭나길 바란다. 

 

평탄한 둘레길을 지나서

 

용궁마을로 향한다.

 

갑자기 더덕향이 진동한다. 더덕밭을 지난다. 싱싱하고 건강히 자란 더덕순이 예쁘다.

 

장안저수지를 지나고

 

본격적인 용궁마을에 접어 든다.

 

용궁마을 안길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90도 꺽여지는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내용궁마을 이정목 앞에서 인증 한 장

 

용궁마을

 

용궁마을은 산이 병풍을 두른 것 같은 분지에 자리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영제봉이 마을 뒤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로 흘러 내린 물을 저장하는 장안저수지와 용궁저수지가 있다. 용궁은 특별히 경치가 좋고 분위기가 좋은 곳을 이르는 말로 바닷속 궁궐 같다 하여 용궁마을이라 했다 한다. 전망이 좋고 임산물이 풍부한 용궁마을은 구례 산동과 더불어 봄이면 산수유로 유명하다.

 

안용궁마을(내용궁마을) 입구 마을 표지석

 

안용궁마을 입구 표지석 앞에서 기념 한 장

 

내룡교를 지나고

 

용궁교와 만나는 곳을 지나

  

내용궁마을 방향 표지석을 지나서

 

용궁마을 표지석

 

 

용궁마을을 지나 외평마을로 향하는 둘레길로 접어 든다.

 

외평마을로 향하는 둘레길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외평마을 향해 걷다 보면

 

견두지맥 능선길이 하늘금에 유유히 흐른다.

 

외평마을로 접어 든다.

 

외평마을 안길을 지나

 

원촌초등학교 담벽을 따라

 

원천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노학수공의 처 해주정씨의 효열정문 

 

노학수 처 해주정씨 효열실기

 

원천초등학교 담벽을 따라 외평마을 안길을 걸어서

 

이제 외평마을 회관을 향해 외평마을 안길을 지난다.

 

◎ 외평마을

 

외평마을은 주천면의 면소재지이다. 원래 마을이 배모양 같다고 하여 뱃들로 불렸는데, 이것이 밖들로 와전되어 지금은 외평(外坪)이라 불린다. 외평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산제와 함께 산신제를 올렸었다. 외평마을에는 수령이 200년 쯤 되는 감나무 당산이 있다. 지리산둘레길 산동-주천구간과 주천-운봉구간의 분기점이며 지리산둘레길 남원주천센터가 있다.

 

외평마을 회관

 

이제 지리산둘레길 22코스 종점인 지리산둘레길 남원주천 안내센터에 도달한다.

 

남원 035, 산동 15.8km, 주천 0.1km 이정목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 안내 센터

 

지리산둘레길 벅수와 1코스(주천-운봉) 시작점과 22코스(산동-주천) 종점 안내판 앞에서 인증하고 오늘 지리산둘레길 22코스를 마무리한다.

 

지난 2021년 4월 25일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시작할 때, 기념 했던 남원 지역의 지리산 둘레길 안내판과 4년만에 재회 기념 한 장을 남긴다.

 

오늘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코스인 22코스를 마무리하면서 주천면 지라산둘레길입구 남원 정령치 순환버스 승강장에 앉았다.

4년전 추억이 새록 새록하여 감개무량하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무엇을 했길래 아직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있는가? 물론 매주 산행을 쉬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을 다니다 보니 이렇게 늦어지고 있다. 전체 22구간 중에 4구간을 아직 걷지 못했다. 조만간 빨리 마무리해야 겠다. 

 

◎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남원지역)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 협상이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1월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이때 왜군의 거짓정보를 접한 선조는 이순신장군으로 하여금 부산포로 가서 일본군을 맞아 공격하라고 명하나, 장군은 불가한 이유를 들어 왕명을 따르지 않다가 의금부에 투옥되고 4월 1일에야 다시 풀려나게 된다.

이때 조정은 그에게 경남 초계(지금의 합천)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계급 없이 전쟁터에 임하라라는 '백의종군'을 명하는데, 이로부터 120일 후인 1597년 8월 3일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받기 전까지 백의종군하며 움직인 동선을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라고 한다. 서울을 출발한 장군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북도의 여산, 삼례, 전주, 임실을 거쳐 남쪽으로 향하는데 4월 24일 부터 4월 25일 까지 남원과 운봉에서 이틀을 머문다.

이때 권율 도원수가 순천에 있다고 소식을 접하고 합천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향하게 된다. 남원의 백의종군로는 장군이 남원에서 구례로 가는 2박 3일간의 여정을 담은 구간이다. 이순신 장군의 고독한 발자취를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보자.

 

 

남원지역의 이순신 백의종군길

 

오수교차로 - 월평정류소 - 사매교차로 - 오리정휴게소 - 뒷밤재 - 축천교 - 동림교 - 월락삼거리 - 이백초등학교 - 양가저수지 - 여원재 - 운봉초등학교 - 주천 외평마을 - 밤재 - 구례(남원구간 53.1km)

 

◎ 지리산둘레길 22코스 트레킹을 마무리 하면서

 

오늘 밤재를 오르는 구간에서 조금 힘들었지만 견두지맥 견두산 자락 굽이 굽이를 도는 아기 자기한 지리산둘레길은 설레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걸었다. 늘 이 구간이 궁금했다. 오늘 이 구간을 걷고 나니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한 것 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한천마을의 추억과 밤재를 거쳐 견두산 산행 추억이 새롭고, 개척마을 산수유 시목이 반갑고,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길이 남다르게 다가온 하루였다. 앞으로도 건강히 이 길을 걸을 수 있길 바래본다. 

 

◎ 참고자료 지리산둘레길22코스 구간에서 만난 4월 봄철 야생화

 

골담초꽃

 

마가목

 

모과

 

구슬붕이

 

병꽃

 

블루베리

 

각시붓꽃

 

족두리꽃

 

매미꽃

 

매미꽃

 

매미꽃

 

병꽃

 

불르베리

 

모과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