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5.02.23.(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산행구간 : 지리산둘레길 20코스 : 방광마을 - 수한마을(1.4km) - 지리산탐방지원센터/화엄사음식특화거리(3.2km) - 상사마을(5km) - 오미리/운조루주차장(2.7km) : 12.3km
◎ 지리산둘레길
◎ 지리산둘레길 20코스를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 20코스는 오미에서 지리산 자락을 끼고 방광까지 걷는 길이다. 오늘은 방광에서 오미마을까지 역방향으로 걷는다. 날씨는 맑다. 오늘 둘레길은 파란 하늘이 더욱 매력적일 것 같다. 이 구간은 구례읍을 바라보면서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지리산 자락을 끼고 걷는 구간이다.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를 흘러온 기운이 지리산 노고단에서 90도 껵여 천왕봉으로 향한다. 노고단에 뭉친 커다란 기운이 산줄기를 타고 흘러 금환락지라고 하는 전국 3대 길지인 오미마을에 닿는다. 노고단 아래 이런 기운이 감도는 지리산 자락의 방광에서 오미마을까지 구례 광의 - 토지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요롭고 넉넉한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구간이다.
이제 막 숨을 들이키고 있는 매화 꽃망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봄을 제촉하는 길이다. 구례 산수유 꽃망울이 이제 막 지지개를 켜며 그 화려한 산수유꽃을 준비하는 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단독으로는 존재 할 수 없으며 다른 것들과 인연으로 존재하기에 나의 존재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연기되어 존재할때 나도 존재한다는 불교 화엄사상을 품고 있는 화엄사가 있는 길이다. 화엄사 홍매도 이제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는 길이다. 2월 끝자락에서 봄을 부르는 바람결을 맞으며 살랑 살랑 걷는 길이다.
◎ 지리산 둘레길 이모저모
참새미마을(방광마을을 참새미마을이라고도 한다.)에 도착하여
소원바위도 둘러보고
방광권역마을의 소원바위는 본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던 것으로서 무당들이 자연의 신비스런 힘이 있다고 하여 굿을 하던 바위이다. 일반적으로 사막에 있는 문명은 척박한 땅보다 하늘을 더 숭배하였기에 절대자를 기렸으나, 우리민족은 풍요로운 땅에서 살았기에 하늘 뿐만아니라 땅의 온갖 생명과 물질에 대해서도 자연으로서 존중하고 대우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그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경이롭게 바라봤는데, 아마도 수억살을 살면서 깨지지 않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 바위에게도 모종의 경오감을 느꼈을 것이다.
준비 운동하고
단체 인증 후
스템프도 찍고
방광마을 지리산 둘레길 20코스 오미-방광 종점, 방광-산동 시점
오늘은 방광마을에서 출발한다. 20코스(오미-방광)로 역방향으로 걷는다.
방광마을은 전통을 옛 모습 그대로를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구례에서 노고단을 버스나 자동차로 오를 때 이 마을을 지나 천은사를 거쳐 오른다. 이 마을의 아기 자기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지리산둘레길 20코스 시종점에서 인증한 후
출발한다.
방광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돌담길을 잘 간직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모습을 파손하고 훼손한 다른 마을에 비해 옛 선조들의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방광마을을 명품마을로 만들고자 한 마을 주민들의 뜻이 아닐까?
이곳 돌담길은 왠지 정겹다. 어렸을적 걸었던 동네 마을 길도 이렇게 지그재그 구불구불 돌담길이였다. 돌담을 타고 기어 오른 담쟁이에 새싹이 돋고 연녹색 빛깔이 찬란히 빛날 때 생명의 연주곡이 울려퍼지고 살랑 살랑 실바람에 흔들거린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였지 않았던가? 담쟁이 잎파리를 꺽어 두 눈에 쌍꺼풀을 만들며 서로 웃고 지낸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내년 봄 싱싱한 알토랑을 준비하고 있는 마늘 텃밭이 정겹다.
방광마을 골목길을 돌고 돌아가다 보면
마을 안쪽 귀퉁이에 남근석을 만난다. 옛 선조들은 대를 잇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고 자식을 많이 낳고 잘 기르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전쟁으로 사람 목숨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대에는 많은 자식을 갖는 것이 큰 복이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방광마을에서도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석을 동네 골목에 세워 자식 농사를 잘 짓도록 하는 바램을 담아 동네 안에 남근석을 새웠는지 모른다. 전국에 동내 안에 남근석이 있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임진택 대원님과 기념 한장
임진택 대원님은 참 친절하다. 배려심이 많아 늘 자상하고 따뜻하다.
마을 안 둘레길은 90도 급하게 꺾어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방광마을의 유래
문헌기록이 없어 확실치는 않지만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천은사를 창건할 당시 주변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798년 둔천리 훈포로 불리다가, 1914년 광의면으로 합병하면서 방광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구전에 의하며 판관이 살았다 하여 판관마을이라 불렀으나 판관이 변형되어 판괭이로 바뀌고 다시 방광으로 개칭되었다. 마을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500년 된 당산나무 3그루의 보호수,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며 매년 당산제를 모시는 제단, 마을 뒤에 자리한 마을 수호 지킴이 바위(소원바위), 마을 중앙에 있는 아버지 감나무(150년)가 있는데 이는 마을을 수호하는 3대 지킴이로서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 2005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구축된 참새미마을제공 쉼터, 황토한옥펜션, 친환경농산물가공공장, 도농교류 활성화센터는 마을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방광마을 회관
방광마을 보호수 3그루
아름다운 돌담벽화를 어찌 여심이 그냥 지나가겠는가?
보호수
방광마을 보호수 3그루를 지나서
방광마을 정미소를 지난다.
오래된 정미소가 정겹다.
이제 방광마을과 헤어지고
너른 들녁을 지나면서 파란 하늘이 오늘 따라 유난히도 청정하다.
노고단에서 뻗어내린 지리산 산줄기 넘어 하늘금을 그으며 흰 눈이 아직도 선명히 덮여 있는 노고단 모습이 경외롭다.
재잘재잘 무엇이 저리도 즐거운지?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 들어도 기분은 만땅이다. 이런 공기를 마시면 살 것 같다. 숨통이 터진다고 할 때 그런 기분이다.
들녁길은 넉넉해서 좋다. 직선이지 않아 좋다. 구불구불 하니 적당한 속도를 유지해서 좋다. 그래서 여유롭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곧은 길보다는 굽이굽이 흐느적 거린 구부러진 길을 만들어 놓았다. 막걸리 한 잔하고 흥얼 거리며 집으로 향한 촌노의 여유는 직선보다는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이 더 여유롭고 행복하고 운치있게 어울리지 않았겠는가?
둘레길 이정표 넘어 저기 하늘금 산줄기는 견두지맥이다. 서시천을 따라 만복대에서 분기하여 흐르는 오른쪽 방향의 큰 산줄기이다. 오늘 둘레길 20코스를 걷는 내내 저 견두지맥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친구처럼 옆에 두고 오미 마을로 향한다.
방광마을 입구 느티나무 쉼터
방광마을 입구 이정목
방광마을 이정석
돌아본 방광마을. 하늘이 참 예쁘다.
?
광의면방광리교차로
광의면방광리교차로를 건너서
수한마을 입구 표지석
수한마을을 향하여 넉넉한 지리산 자락 둘레길을 걷는다.
수한마을 벽화 앞에서
수한마을 벽화
수한마을
수한마을 이정목
수한마을 우산각 또는 모정(茅亭)이라 불린다.(지오 김명수 회장 설명)
우산처럼 원뿔 모양(우산각)의 마을 공동재산인 휴식처이다. 최근에는 팔작지붕 형태가 많다.
정자가 양반의 휴식공간이라면 모정은 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여름철 농사일을 하다가 잠깐 쉬어가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수한마을 유래
우리 마을은 민족의 영산이요,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자락 아래 화엄사와 천은사 그리고 섬진강물이 어우러지는 이곳에 최초 경주 김씨 3세대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을 피해 개기한 후, 대대손손 풍요롭고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변모해 가고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은 물이 차갑다 하여 물한리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한마을로 개칭되었으며, 지금도 깊은 산중에서 내려 오는 물과 암반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장수촌의 비결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여순반란사건(1928년) 당시 지리산에 은거했던 빨치산의 소행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마을이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오면서, 특히 1960년대 새마을사업 등으로 마을을 재건하여 이제는 지리산 둘레길 거점마을로서 방문객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조상들의 피땀 어린 정성을 감사하면서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마을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주민들의 뜻을 여기에 담는다.
보호수
수한마을 이정목
수한마을 회관
수한마을 돌담길을 돌고
돌아
이색적인 정원을 가진 주택을 지나면서
수한마을 물이 차가와 물한리라고 부른 수한마을 샘을 지난다.
수한마을과 헤어지고
"하늘은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다" 무슨 뜻 일까?
이제 둘레길은 서서히 지리산 자락으로 더 가깝게 다가 간다.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진다.
언덕배기에 올라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막걸리도 한잔하고
다시 출발
한가한 지리산 자락 둘레길은 시원하다. 즐겁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금의 견두지맥에 둘러쳐진 구례 들녁은 올 농사를 위한 겨우살이에 가뜩이나 온 몸을 움크리고 용을 쓰고 있는 듯 하다. 황망하지만 그래도 쓸쓸하지 않는 것은 올 봄 찾아 올 봄 기운이 땅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을 유연하게 돌고 돈다. 그냥 곧게 가면 좋으련만 이렇게 돌아 가는지? 가난한 마음의 생각이다. 곧게 가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곧은 것과 구부러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같은 것이다. 곧은 것이 합쳐저서 구부러지는 것이 되고 구부러지는 것이 만나서 곧은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에 따라 곧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한다. 눈으로는 구부러져도 마음으로 곧게 가면 곧장 가는 것이다.
수로와 이정목
지리산 자락에는 지리산 자락 경사면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위쪽에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모내기철에는 이곳에 맑은 물이 콸콸 흐르지만 지금은 겨울 농한기라 물이 흐리지 않는다.
둘레길은 지리산리조트가 있는 이곳에서 90도 꺽여 왼쪽으로 이어지고
수로를 따라 농로와 함께 길게 걷는다.
둘레길은 90도 꺽여서 농로와 헤어져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 든다. 이곳 이정목을 자나치면 그냥 먼길을 갔거나 헛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주위 할 지점이다.
둘레길은 소나무가 잘 자란 산길로 이어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 산길이 즐겁고 편안하다.
가끔은 오르기도 하고
구례상수도처리장
새로 만들어 놓은 구례군 상수도처리장을 끼고 오른다.
구례상수도처리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이정목
구례상수도처리장 주변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오른다.
숲길로 이어지고
새로 만든 상수도처리장 둘레를 따라 걷는다.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의 너덜 지역을 지나기도 한다.
솔잎이 덮혀 너덜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너덜지역이다. 소나무가 참 잘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잘 자라는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의 지리적 특성은 안내가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궁금하다.
월등파크호텔과 화엄사음심특화거리로 가는 도로를 만난다.
화엄사음식특화거리로 가는 둘레길
화엄사음식특화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오전 둘레길 시간이 여유가 있어 지리산화엄사를 들려 본다.
지리산 화엄사에 대하여서는 아래 블로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화엄사에 대하여 알고 싶은 분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길 바란다.
2024.02.17. 전남 구례 화엄사 - 홍매화 탐방
2024.02.17. 전남 구례 화엄사 - 홍매화 탐방
◎ 화엄사 홍매화 화엄사 홍매화는 2월말에서 3월 중순이면 활짝 필것 같다. 화엄사 홍매화 촬영 대회가 2024. 2. 25(일)~3.23(토) 동안 개최된다. 남녁의 홍매화가 개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lyj1749.tistory.com
2025.02.23. 올해도 아직은 홍매화는 피지 않았다. 3월 22일까지 기다려 봐야 겠다.
2025년 제 5회 "구례 화엄사 화엄배" 홍매와 들매화 사진 콘테스트 개막 홍보 자료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
오후 둘레길을 시작한다.
노고단 아래 화엄사골로 흘러내린 마산천을 따라 상큼하게 걷는다. 마산천 물은 참으로 기막힌 물이다. 이 물이 노고단 코재에서 물길을 틀어 화엄사골로 흐른다. 원래는 노고단에서 무냉이골로 흐르는 물은 만수천을 따라 구례 산동면 심원과 남원 산내면 달궁을 거처 인월 임천으로 흘러서 진주호에 잠시 머물렀다가 남강을 따라 흐르고 결국에는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물이다. 그러나 아마 구례군에서 그랬을까? 구례군 지역인 무냉이골 물을 수로로 유도하여 코재에서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계곡으로 흐르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곳을 갈 때마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라고 칭찬을 하곤하였다. 지리산물은 대부분 낙동강으로 흐른다. 다행이 노고단 물은 구례군의 현명한 조치로 섬진강으로 흐르고 있다. 산꾼들은 안다. 물줄기가 산줄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물들은 생명이 되어 수천년 흐르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마산천 물줄기는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코재를 거쳐 화엄사계곡으로 흐르고 만수천이 되어 섬진강으로 흐른다.
이 기막힌 물줄기를 건너면서 구례군의 현명한 조치를 다시 한번 칭찬한다.
만수천 물을 건너고
만수천 이정목
만수천을 건너면서 우리 대원들은 이 물줄기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져 즐겁게 건넌다.
겨울 만수천 물줄기는 차갑게 느껴지지만 깨끗하고 청아하다.
사실은 지리산을 종주하다 보면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의 경계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어쩐일인지 만복대에서 삼도봉까지 백두대간은 전남 구례군에 속해 있다. 그러다 보니 노고단 물줄기를 구례군에서 섬진강으로 유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나는 호남인으로 섬진강을 좋아해서 노고단 물이 섬진강으로 흐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노고단 물은 백두대간을 도계와 군계로 구분하여 "산자분수령"(산은 스스로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스스로 산을 넘지 못한다.)"에 따라 낙동강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조금 이상한 도계와 군계는 이제라도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생활 문화 중심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만복대에서 삼도봉까지 백두대간을 구례군에 속하게 도계와 군계를 구분한 이유를 아신 분은 댓글로 설명해주시길 바란다.
만수천을 지나면 둘레길이 90도 꺽여 왼쪽으로 이어지고
이제 부터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 자락의 둘레길을 걷는다. 마산면 일대의 지리산 둘레길은 대부문 지리산 자락의 산길을 걷는 구간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을 지나
조그마한 수류지를 지난다.
둘레길 이정목은 길이 서로 교차할 때 또는 갈림길에서 방향을 알도록 세워 놓았다. 혹여 둘레길을 걷다가 길이 헛갈릴 때는 주변을 살펴 이정목의 방향을 참고하여 걸어야 한다.
소나무가 잘 자라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둘레길을 걷는다.
청내골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고
새로운 터를 개발하고 있는 개발지를 지나서
둘레길은 90도 꺽이고
또 걷다보면
따스한 햇살이 깃드는 포근한 둘레길을 지난다. 매화나무가 봄을 향해 기지개를 펴고
지난해(2024년) 2월 17일 순방으로 이곳을 지나갈때는 매화가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고 있었는데, 오늘은(2025년 2월 23일) 아직 매화는 피지 않았다. 시절이 더 늦어진 것 같다. 올 겨울 추위가 더 매섭게 맹위를 떨쳐서 그런가?
2024.02.17. 지리산 둘레길 20코스(오미-방광 12.3km)
2024.02.17. 지리산 둘레길 20코스(오미-방광 12.3km)
1. 일자 : 2024.02.17.(일) 2. 누구랑 : 광주공고 동맥산악회 3. 산행구간 : 지리산둘레길 20코스 : 오미마을 - 용두갈림길 교차로 - 하사마을 - 상사마을 - 황전마을 - 지리산남부탐방안내소 - 수월리 -
lyj1749.tistory.com
지리산둘레길 20코스 순방향(오미-방광) 후기입니다. 참고하세요
팔각정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마산면 지리산 자락 둘레길을 걷는다.
마산면 둘레길에서 조망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구례읍을 바라본다. 오전에 출발 할 때는 청정한 하늘이 오후엔 미세먼지로 뿌였다. 그래도 오산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가 선명하다. 반갑다.
나는 왜 섬진을 만나면 어릴적 함께한 그리운 조카들이 생각나는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순박했고 아무 때 묻지 않는 섬 소년 그대로 였다.
아마 섬진은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깨끗하고 순박하고 아무 때 묻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또 산길을 걷고
마을 길을 걸어서
무슨펜션을 지나서
이곳에서 이정목을 잘 살펴 헛갈리지 않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둘레길은 자락길을 지나고
상사마을 이정목
90도로 꺽여 방향을 틀어
다리를 건너고
상사마을 위로 둘레길은 아늑히 지난다.
상사마을을 오른쪽에 두고 하사마을로 향한다.
구례 오산 방향
◇ 오미- 방광 사이를 지나는 상사마을 지리산 둘레길
방광마을을 잇는 12km의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을 가장 많이 오가는 구간 중 하나이다.
구례분지를 보면서 농토와 숲길을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 있다. 지리산 탐방안내센터에서는 지리산과 역사를 살피고 종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운조루, 쌍산재, 곡전재 등 고택의 정취와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 상사-하사 마을
신라 흥덕왕 때 승려 도선에게 미인이 모래위에 그림을 그려 뜻을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라 불렀던 것이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하여 상사, 하사 마을이 되었다.
◇ 화엄사
신라 진흥왕 5년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화엄경의 두글자를 따서 절이름을 붙였다.
◇ 매천사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황현선생은 선비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소실천하신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리산 둘레길 20코스 설명 안내를 지나서
지리산 둘레길 20코스 구간에서 가장 헛갈린 구간이다. 역방향은 이정목을 따라 걸으면 헛갈리지 않지만 순방향(오미에서 방광으로 걸을 때)으로 걸을 대는 대나무 숲에 가려진 이 이정목을 못 찾고 바로 상사마을 안쪽으로 곧장 가기 일수이다.
이곳에서 헛길리지 않길 바란다.
하사마을로 향하면서
하사마을로 향하는 당몰샘로를 만나서
당몰샘로를 따라서 하사마을로 향한다.
하사마을 앞에는 너른 들녁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오랜만에 본다. 논 가운데 허수아비. 울긋 불긋 차려입고 어디를 가시나?
하사마을 우산각 또는 모정이다.
하사마을 홍살문을 지나서
◇ 홍살문이란?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태극 문양은 네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삼태극, 이태극 및 빛을 넣는 삼태극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태극 문양 위의 지창(枝槍)은 2지창과 3지창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이 홍살문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세워진 장소로 보아서는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하사마을 버스정류장
당몰샘
상, 하사 마을은 구례군 간전면 양천 마을과 함께 전국 최장수 마을로 꼽힌다. 이곳 사람들은 장수의 비결로 심산유곡의 깨끗한 환경과 ‘당몰샘’을 꼽는다. 당몰샘은 “지리산 약초 뿌리 녹는 물이 다 흘러든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
당몰샘
1986년 고려대 예방 의학팀의 수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한 마리도 없는 전국 최상의 물로 판명됐다. 이 마을 토박이 성씨인 의성 김씨 일가에 의하면 그 선조가 조선 말기에 명당을 찾아 전라도 고을을 헤매던 중 당몰샘을 저울로 달아보니 물 무게가 다른 곳보다 많이 나가고 수량도 풍부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하사저수지를 지나서
용두갈림길 교차로를 지난다.
용두마을 표지석
GS칼텍스 옆에서 잠간 오름길을 놓쳐서는 않된다. 이곳 돌레길 이정목도 언덕위에 숨어 있어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곳이다.
마지막 숲길을 지나면
편안한 소나무 숲길이 나오고
오미저수지로 90도 꺽여 내려가는
나무계단을 지나면
이제 마지막 오미 저수지를 지나고
오미저수지 둑을 편안하게 걷고
오미마을 들녁 넉넉함을 감사하면서
한옥펜션도 구경하고
한옥펜선 앞으로 흐르는 개울도 구경하고
오미마을 지리산 둘레길 20구간 시종점에 도착
인증하고
오미정에 있는 스탬프도 찍고
지리산 둘레길 20구간을 마무리 한다.
◇ 오미마을
영조 52년(1776년)에 문화류씨 류이주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에 운조루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전에는 오동이라 불렀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하여 오미리라 불리고 있다.
오미리 지리산 둘레길 20구간 오미-송정 시종점 이정목
이제 지리산 둘레길 20구간을 마무리 하고 오미마을 운조루를 비롯한 오미마을을 살펴보자
오미마을 버스정류장
오미마을 운조루 가면서 이순신장군의 백의 종군길을 만나고
◎ 운조루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운조루길 59)
국가민속문화재 제8호
운조루 앞에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
운조루와 왕시루봉
집 앞에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은 아마 수기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산은 양이요 물은 음이기에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 조상들의 토속적 풍수지리 개념이 적용되었으리라?
운조루 표지석
◎ 타인능해 쌀둑
이곳 주인이 [타인능해]라는 배품을 실천하는 곳이다. 배고픈 사람이 언제라도 쌀을 가져가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타인능해]라는 쌀독을 마련해 놓았다.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스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북 이념 갈등으로 부자들이 많은 수난을 당할 때, 이 집만은 구례에서 백성들로 부터 보호를 받았던 유명한 집이다. 배품의 상징이고 교육의 현장이다.
◎ 구례 운조루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8호)
구례 운조루 고택은 영조 52년(1776)에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것으로, 조선 시대의 양반 가옥의 대표 건물이다.
풍수지리설에 다르면 집터가 "금환락지" 형제로 남한 3대 길지의 하나라고 한다.
집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ㅡ' 자형이나 'ㄱ'자 형 안채가 많은데, 이와 달리 운조루 고택은 'ㄷ'자형의 안채와 'T'자 형의 사랑채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 형식이다.
이 형식은 경사욱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운조루를 세우기 시작한 해는 1771년으로 유이주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고 살았던 집의 형식으로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운조루는 7년 이라는 긴 공사 기간을 거쳐 1776년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의 초기 모습은 1800념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전라 구례 오미동 가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20구간을 마무리할 쯤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기온이 급강하 하더니 눈발이 휘날린다. 오전에 선명했던 지리산 자락도 눈발 속에 희미하게 갇히고, 차가운 구례 오미리 거리에서 나는 형과 동생이 한국전쟁 전후 국군과 빨치산이 되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다가 어떻게 어떻게 형의 자수 권유로 어렵사리 동생은 내일이면 경찰서로 자수하겠다고 하면서 오랫만에 어머니가 지어주신 집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사이 장모님의 소변길 뽀시락 거린 소리에 동생은 다시 지리산으로 도망가 버리고 결국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기구한 사연을 가진 집안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머니와 장모님의 원한 사이에서 큰아들과 며느리가 겪는 참으로 암담한 기구한 운명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남북이념의 갈등과 한국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한을 떠올렸다. 언제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이 깊은 상처를 쌍방간 메워갈수 이을런지?
돌아오는 버스 차창에 스치는 구례들녁은 말 없이 넉넉하기만 하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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