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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남파랑길

2025.04.06. 남해바래길 15코스(설천면행정복지센터-노량선착장) 7.2km

by 하여간하여간 2025. 4. 7.

◎ 남해바래길 이란? 

      251km, 본선 16개 코스, 지선 4개 코스, 섬바래길 3개 코스

 

개통 10주년을 맞아 2020년 새롭게 리모델링 된 '남해바래길2.0'은 총 251km로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 섬바래길 3코스로 구성되었다.

 

남해는 500년 전부터 '꽃밭(花田)'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아름다운 보물섬으로 산과 바다, 다랭이논, 죽방렴,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다.

 

남해바래길은 남해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을 두 발로 걸어서 완벽하게 만날 수 있는 걷기여행길이다.

 

지선 코스는 코스별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단거리 순환형 걷기여행길로 자가용 이용이 편하게 구성되었다.

 

섬바래길은 남해도 주변 아름다운 유인도 섬 3곳(조도, 호도, 노도)에 바래길을 만들었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남해 토속어이다.

 

◎ 남해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설천면행정복지센터 - 양떼목장 - 구두산임도 - 노량공원 - 남해각 - 노량선창장) 7.2km

 

코스 : 설천면행정복지센터 - 눈내목욕탕미술관 - 양떼목장 - 구두산임도 - 노량공원 -  남해각 - 노량선착장 7.2km

 

구두산목장길은 노량선착장을 출발해 새롭게 변신한 남해각과 아름다운 벗나무길을 지난다. 남해대교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노량공원을 거쳐 이후 구두산 임도를 따라 산 정상 부근까지 오른다.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을 지나는 임도를 따르면 남해의 볼거리 중 하나인 양떼목장 두 곳을 차례로 거친다. 목가적인 풍광을 뒤로하고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바다를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목욕탕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변신한 눈내목욕탕미술관을 거쳐 설천면행정복지센터에 닿는다.

 

남해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을 걸으며

 

길가엔 벗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전국 어디에나 봄꽃이 만발하고 진달래가 울굿불굿 야단이다. 그야말로 봄이다.

 

우울했던 정국도 대통령 파면으로 마무리되고, 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희망 가득한 봄을 맞아, 4월 첫 주 산행을 남해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로 떠난다.

 

이 길은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이 있었던 남해 들머리에서 출발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구국애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해변에 길게 이어지는 벗꽃길이 푸른 바다와 어울어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는 길이다.

 

따스한 봄철 각 종 생명이 대지의 기운을 받아 찬란하게 탄생하는 그 희열을 만끽하는 길이다.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설렌 남해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을 걷는다.

 

◎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과 함께 떠나는 남해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을 걸어보자

 

코스 : 설천면행정복지센터 - 눈내목욕탕미술관 - 양떼목장 - 구두산임도 - 노량공원 -  남해각 - 노량선착장 7.2km

 

◇ 설천면행정복지센터 - 눈내목욕탕미술관 - 양떼목장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앞 남해바래길 15코스 안내 및 현위치

 

남해바래길 15코 출발 인증하고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 남해바래길 이정표

 

이 방향표지를 처음보는 사람은 무척이나 헛갈릴 것이다. 빨강색 방향표지는 순방향 표지이다. 그러니까 남해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방향이다. 파란색 방향표지는 역방향 표지이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방향이다. 파란색 15는 남해바래길 15코스 역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걷고자 한 방향이다.

 

준비운동하고

 

남해바래길 15코스 출발 기념

 

설천면행정복지센터에서 시작한다.

 

오늘은 남해바래길 15코스 역방향으로 걷는다. 남해바래길 15코스 역방향은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앞 도로를 건너 설천치안센터와 남해설천우체국 사이로 길게 내려간다. 

 

바래길 15코스는 설천초등학교를 향해 남양마을 안길로 접어든다.

 

설천초등학교를 지나고

 

내일을 꿈꾸다, 설천초등학교 담장 안으로 벗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눈내목욕탕미술관/ 오래된 마을 목욕탕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놓았다. 눈내 문자 디자인이 새롭다.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벽면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목욕탕과 미술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를 서로 연결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창의적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새로운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제들이 많다는 시사점을 얻는다.

 

어떤 작가분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 하늘과 바다가 내 품에 스며드는 여유있는 일상을 그리다.

 

동화나라님과 함께

 

후미의 천사님들과 함께

 

오늘 함께한 윤○○님도 한 컷

 

설천면 남양마을 회관을 지나서

 

다시 마을 들길로 이어지고

 

봄바람 살랑살랑

보리밭 푸른 물결 넘실대는 시골 풍광이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찌 이곳을 그냥 지나가리오. 지오트레킹의 후미 천사님들의 활짝 웃는 미소 너머 남해 푸른바다가 한 폭의 산수화다.

 

마을 안길을 지나고

 

담장아래 수선화가 무척이나 반긴다. 

 

두릅도 새 봄의 기운을 받아 새로 태어나느라 힘겹다. 

 

지난 겨울 내내 차가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싱싱한 알뿌리를 영그느라 여념이 없는 마늘이 싱싱하다.

 

마을 안길을 지나

 

남해바래길 표시를 따라 

 

남해일주도로 1024번 지방도로를 만나고/ 문의마을 표지석

 

설천 친환경 유자 가공 공장 옆 산길로 오른다.

 

남해바래길 15코스는 해안길이 아니고 구두산 정상을 넘어 가는 트레킹길이여서 초보자에겐 약간 힘든 구간이 될 것 같다.

 

마을 안길을 오르면서 유난히도 예쁘게 핀 유채꽃을 만났다. 모든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를 대하는 마음에 따라 예쁘기도 하고 하찮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도 한다. 존재는 그대로인데 그 의미는 순전히 내 마음에 달렸으니, 세상이 옳고 그르다는 것도 다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건강한 남해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며 걷는 남해 바래길 15코스

 

남해바래길 표지

 

등대풀이 예쁘게 피어나고

 

산자고도 만나고

 

유채꽃 밭에서 분에 넘친 호강을 누린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느라 분주한 봄날 환희

 

냉이꽃이 만발한 남해 풍광

 

모진 겨울 해풍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해해송

 

이제 바래길은 양떼목장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바래길 중간에 만난 동백꽃/ 지난 겨울 화려하게 피었난 자태를 서서히 저물고 있다. 품격있게 당당하게

 

한참을 걸었나.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겹동백이 하려하게 피고

 

상상양떼 목장과 양모리학교를 향하여 바래길은 계속 오름길이다.

 

구두산 보광암을 지나고

 

흰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양떼목장을 향해 오른 길 위로 유난히 청명한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감나무에도 새 잎이 파릇 파릇 돋아나고

 

흰민들레는 쉽게 보기 어려운데 이곳에는 흰민들레가 많이도 자생하고 있다.

 

5개마을공원묘원을 지나서

 

상상양떼목장과 양모리학교 이정표를 지나

 

남해 양떼목장 양모리 학교 전경

 

남해 양떼목장 양모리학교 입구

 

양떼목장 - 구두산임도 - 노량공원 - 남해각 - 노량선착장

 

구두산임도 갈림길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곳까지가 오름막길이고 이곳에서부터 노량공원까지는 편백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구두산 임도를 따라 걷는 내림막길이다. 

 

이제 구두산임도 편백나무숲을 따라 노량공원으로 향해 내려간다.

 

용강마을 갈림길 이정목

 

노량공원으로 향하는 임도 

 

구두산 임도 삼거리 이정목 앞에서 기념 한장

 

노량공원으로 향하는 대원님들

 

노량공원으로 향하는 긴 임도길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 왔다. 남해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고 바래길도 종점을 향해 간다.

 

남해대교와 노량진대교 그리고 노량 해협

 

노량공원에 도달하고

 

노량공원을 향해 차도를 건너서

 

노량공원에서 점심을 하고 유채꽃과 벗꽃이 만발한 남해 노량마을 벗꽃길을 걷는다.

 

벗꽃이 만발하고 유채꽃이 화려하게 피어 푸른바다와 어울러진 환상의 풍광을 감상하며

 

남해 해안 벗꽃길을 걸어보자.

 

해안가 도로변에 오래된 벗꽃길이 화려하다.

 

잠시 한가로운 호강을 누린다.

 

긴 벗꽃길을 따라 봄소풍 봄마중

 

남해바래길 표지

 

한국의 아름다운길을 따라 

 

참 아름답다. 잠시 망중한

 

봄바람에 취하고 벗꽃에 취하고 기쁨에 취한 순간! 즐겁게 살자.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런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까지 60여년이 흘렀다.

 

가녀린 꽃망울과 눈맞춤도 하고

 

화려하게 핀 벗꽃길을 따라

 

온통 흰꽃으로 뒤덮인 꽃길을 걷는다.

 

늘 함께한 동화나라님

 

노량마을 선착장과 주차장 

 

아름답게 핀 벗꽃 아래서 

 

남해대교를 아름답게 담아 보고자 했다.

 

남해각 휴게소를 지나

 

남해각의 역사

 

누구든 개발시대를 거친 세대는 이곳 남해각 수학여행 추억이 생생할 것이다. 남해각에서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바라보는 것이 그 당시에는 가장 화려한 여행지였으니까?

 

국민고향 남해로 오세요

 

남해각 쉼터에서 바라본 노량마을 풍광

 

노량마을 선착창으로 향하는 바래길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남해바래길 15코스 종점인 노량선착장에 도착

 

남해바래길 15코스 안내판

 

남해바래길 15코스를 마무리한다. 남해바래길 15코스가 7.2km 정도 이기에 시간이 남는다. 남은 시간에 남해바래길 지선2구간인(3.2km) 노량바래길을 걷자.

 

◎ 남해바래길 지선 2구간 노량바래길 3.2km

 

남해바래길 지선2구간인 노량바래길 산행코스 :  노량선착장 - 거북선전시관 - 남해충렬사 - 노량공원 - 산성산탐방로 - 레인보우전망대 - 노량선착장 3.2km

 

◇ 거북선 전시관

 

거북선

 

거북선 전시관 내부

 

거북선 내부

 

◎ 남해 충렬사(사적 233호)

 

충렬사는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의 유구를 처음으로 안치한 것을 기려서 순국한지 30년째 되던 인조6년 (1628)에 지역의 선비들이 초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효종 9년(1658)에 다시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 준 편액을 받았다. 

사당 앞에는 우암 송시열이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짓고 등춘당 송준길 쓴 충무이공묘비가 있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 내삼문, 외삼문, 청해루 등이 있다. 사당 후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초빈했던 곳에 가묘가 있다. 사당을 세운 이후에는 충렬사 옆의 호충암에서 희방사의 승장 1명과 승려 10명이 교대로 사당을 지켰다.

 

◇ 이충무공 가묘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이 승리로 끝날 무렵인 1598년(선조31년) 음력 11월 19일 아침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였다. 장군의 주검은 관음포를 출발하여 이 곳 충렬사에 잠시 초빈 되었다가 고금도를 거쳐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이 가묘는 당시 이순신 장군을 충렬사 부근에 임시로 안치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조성한 무덤이다.

 

◇ 사당

 

충렬사 사당

 

이순신 장군 영정

 

충민공비

 

충무공비

 

◇ 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 

 

 

남해 충렬사 내삼문 안에 있는 이 비는 통제사 정익의 유지를 받는 학사 민정중의 부탁으로 우암 송시열이 1661년 11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글로 지은 것을 동춘당 송춘길이 글씨를 쓴 것이다.

1663년 현종이 통영 충렬사와 함께 남해 충렬사도 현종의 편액을 받아 사액사당으로서의 위상을 높이자 통제사인 박영지와 김시성이 묘비를 세웠다.

 

비각에 편액된 보천욕일은 중국 고서인 「회남자」 에 나오는 여왜가 무너진 하늘을 보수한 이야기와 「산해경」 에 나오는 태양의 신 회화가 열 명의 아들을 목욕시켜 하늘을 밝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훈을 비유하고 있다.

 

◇ 내삼문

 

 

◇ 외삼문

 

 

◇ 청해루

 

 

 

남해 충렬사를 지나서 노량대교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노량공원에 닿는다.

 

노량공원에 예쁘게 핀 명자나무꽃

 

노량공원에서 다리쉼을 잠시 한 후 길을 건너 산성산 탐방로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편백숲길을 만난다.

 

◇ 산성산 탐방로

 

남해바래길 지선 2구간 노량바래길 산성산 탐방로를 걷자.

 

노량해전 설명 안내

 

레인보우전망대로 내려오는 계단

 

◎ 레인보우전망대(누각)

 

노량해전이 있었던 노량 해협을 바라볼 수 있는 레인보우전망대(누각)

 

레인보우전망대(누각)에서 바라본 노량해협

 

저 잔잔한 바다에서 1596년 조,명 연합함대 수군과 일본수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당시로 돌아가서 노량해전을 살펴본다.

 

◎ 노량해전

 

노량해전은 1596년(선조31) 11월 19일에 남해 노량 앞바다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이다. 이 해전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수군은 일본 수군과 치열한 접전 끝에 대승리를 거두었다.

 

아무런 명분없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침략군의 철수를 유언으로 남기며 사망하였다. 이에 모든 일본군들이 순조롭게 철수하고 있었으나, 순천왜교성(고성)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은 육지와 바다에서 조,명 연합군의 포위를 당하여 위기에 직면하였다. 

 

고니시의 구원 요청을 받은 남해와 사천의 일본군은 대대적인 구원 함대를 편성하여 왜교성으로 진격하였다. 왜교성 앞바다를 차단하고 있던 조,명 연합함대는 일본군 구원함대를 격멸하기 위해 급히 노량 수로로 이동하였다. 이윽고 임진왜란 해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해전은 19일 새벽 2시경부터 시작하여 정오 무렵에야 끝났다. 결과는 조, 명연합함대가 일본 함선 2백여 척을 격멸한 대승리였다. 연합함대의 선봉군으로서 조선 수군의 적극적인 공격작전, 이순신의 탁월한 지휘통솔과 함께 조, 명 연합군의 화공전법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수군도 통제사 이순신과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 현감 고득정 등 여러 명의 장수들이 전사하고,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도 전사하였다.

 

우리는 늘 이순신 장군만 역사에서 주로 기억하지만, 사실은 그와 함께 해전에 참여한 수 많은 백성과 장수들의 죽음도 똑같이 귀중하고 소중히 기억해야 하고 역사적 평가도 높이 기려야 한다.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 현감 고득정 등 여러 명의 장수들과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도 똑같이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야 하며 높이 칭송해야 하고,  역사에 길이 남겨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은 아침 동틀 무렵 맞이한 죽음의 순간에도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는 유언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안위보다 전황을 걱정하는 위대한 장수로서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량 해전은 조, 명 연합 작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서, 임진왜란 동안 가장 큰 전가를 거둔 해전이였다.

 

노량해전의 종식과 더불어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남해대교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이제 남해바래길 지선 2구간 노량바래길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 남해바래길 15코스를 마무리 하면서

 

화창한 봄날 남해 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을 걸었다. 봄 향기 물씬 풍긴 흰진달레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바래길을 걸었다. 벗꽃이 화려하게 핀 벗꽃길을 걸었다.  화려하게 수놓은 유채꽃 설렘을 안고 걸었다.

남해바래길 지선 2구간인 노량바래길을 따라 1596년 이순신장군이 사망한 노량해전 현장을 바라보며 그의 구국애민 사상을 생각하며 걸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였다.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늘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는 길이였다. 늘 이렇게 걸을 수 있길 바라는 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