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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남파랑길

2025.02.02. 남해바래길 16코스 대국산성길(설천면행정복지센터 - 남해공용터미널) 16.3km

by 하여간하여간 2025. 2. 3.

◎ 엄마의 길, 남해바래길 251km(본선 16개 코스, 지선 4개 코스)

 

남해는 500년 전부터 '꽃밭(花田)'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아름다운 보물섬으로 산과 바다, 다랭이논, 죽방렴,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다.

 

남해바래길은 남해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을 두 발로 걸어서 완벽하게 만날 수 있는 걷기여행길이다.

 

개통 10주년을 맞아 2020년 새롭게 리모델링 된 '남해바래길2.0'은 총 251km로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로 구성되었다.

 

지선 코스는 코스별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단거리 순환형 걷기여행길로 자가용 이용이 편하게 구성되었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남해 토속어이다.

 

◎ 남해바래길 16코스 대국산성길(설천면행정복지센터 - 금음산 임도 - 대국산성 - 대국산임도 - 해안로 - 이어체험마을 - 남해보건소 - 남해공용터미널) 16.3km

 

대국산성길은 설천면행정복지센터에서 시작한다. 오르막을 따라 금음산저수지를 지나면 곧 아름다운 편백숲 임도가 나온다.

 

끝없이 이어질 듯한 임도를 따르면 삼국시대 축성되었던 대국산성에 이른다. 500m에 달하는 대국산성 성곽을 한바퀴 돌면 남해를 둘러싼 바다 대부분을 파노라마 뷰로 만날 수 있다. 

 

성곽을 돌아 숲길을 지나면 바다를 곁에 둔 길과 조우한다. 한적한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은 어느새 남해바래길의 시작점인 남해공용터미널로 걷는 이를 데려다 준다.

 

◎ 남해바래길 16코스 대국산성길을 걸으며

 

입춘을 하루 앞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남해는 고요하고 따스하고 포근했다. 무엇보다도 확트인 바다를 보면서 그동안 겨울 추위로 움크린 마음이 활짝 열리는 시원한 기분이다.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에서 남해바래길 16코스를 트레킹 하기에 함께 걷는다. 남해바래길 16코스는 본선 16구간 중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이 구간에는 삼국시대 축조 되었다는 대국산성을 걸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삼국시대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속에 이 지역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거친 파도와 세찬 바람을 이기며 갯가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유지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느끼며 걷는 바래길은 참으로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다.

 

마음 편한 대원님들과 이런 저런 세상사 이야기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이해하고 내편이 되어주는 그런 웃음길이다. 남해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좋다.

 

아마 살기 좋은 고장 1위는 남해일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풍성하고 깨끗하고 청정한 고을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해 바래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설천면행정복지센터 - 금음산 임도(1.9km) -  대국산성(3.9km)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앞 남해바래길 16코스 안내 및 현위치

 

설천면행정복지센터

 

남해바래길 16코스 출발점 인증

 

준비운동하고

 

출발 단체 인증

 

설천면치안센터도 보이고

 

설천면우체국도 보인다. 면소재지 다운 관공서가 새롭다.

 

설천면 소재지를 지나 남해일주도로인 지방도 1024번 길을 따라 대국산성으로 향한다.

 

설천중학교 옆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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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넝굴이 멋있는 어느 집의 담벽. 봄이 오면 이곳의 연초록 담쟁이 새싹이 무척이도 예쁠 것 같다. 

 

새남해농협주유소에서 90도 오른쪽으로 꺽어서 금음산저수지를 향한다. 

 

참으로 한가하면서도 아름다운 남해 시골 풍광을 감상하면서 금음산저수지를 향해 오른다.

 

서정적이고 이야기가 있는 남해 시골 풍광

 

남해 다랭이 밭엔 남해 보물초인 시금치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마늘도 싱싱히 잘 자라고

 

어느 고개를 올라

 

금음리 마을 안길에서 또 90도 꺽여 금음산 아래 금음산저수지로 향한다.

 

초입을 지나서 겉 옷을 벗는 시간이다. 남해 바래길은 늘 날씨가 포근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땐 무척 춥기도 해서 바람막이 겉 옷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이다. 

 

금음산저수지까지는 완만한 오름길이다.

 

금음산저수지

 

금음산저수지를 지나면 평평한 임도가 나온다. 금음산 임도길은 발걸음이 훨씬 편하다.

 

군데 군데 나무가지 사이로 비치는 남해의 올망 졸망 경치도 바라보고

 

금음산 임도길엔 편백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솔가지가 푹신 푹신한 임도길은 비단길을 걷는 기분이다.

 

대원님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깨고 싱그런 공기에 최고의 기분으로 적당한 운동을 하는 트레킹 길이 마냥 즐겁다. 행복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금은보화도 아니고, 이렇게 걷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공감을 얻어가는 순간이 행복이다. 행복을 즐기는 대원님들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금음산 임도는 잘 정비되어 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임도엔 솔향이 가득하고 바람소리와 함께 걷는 트레킹은 최고 만땅이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는 지금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금음산 임도 편백숲을 지나면서

 

싱그런 공기에 편백 숲의 피톤치드로 기분이 최고로 업그레이드 된다. 

 

급하게 꺽어 대국산성을 향하여 오르락 내리락 둘레길에 아기자기 시골길을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

 

바래길이든 둘레길이든 이렇게 자연을 벗삼아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 주중엔 열심히 살고 일요일 하루를 자연 속에 파묻혀 온갖 시름 다 잊고 그져 심없이 넉넉하게 걷는 순간이 얼마나 황홀한 순간인가? 

 

이렇게 걸으려면 우선 건강이 허락해야 하고 시간이 허락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훌쩍 떠나고자 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누구든 할 수 있다. 지금 바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안동장씨 숭조당 가는길 이정표도 만나고

 

대국산성을 향해 걷는 금음산 임도길은 넉넉하고 편안하고 즐겁고 싱그럽고 이야기 꽃이 만발한 행복의 길이다.

 

이곳에서 대국산성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지점이다.

 

대국산성을 오르는 여심은 어떤 마음일까? 예쁜 마음으로 걷고 있겠지? 알 수 없는 여심은 바람결에 실려 이리 저리 흔들리고, 흔들리며 걷는 예쁜 여심 바람결에 나부끼니, 그 바람 또한 여심 때문에 흔들릴까? 진정 예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대국산성으로 향하는 대국산 오름길

 

산성 바로 아래는 상당히 급경사 오름길이다. 나무가지 사이로 금음산이 비치고

 

드디어 대국산 정상에 축성된 거대한 대국산성이 눈에 들어 온다. 삼국시대에 축성했다는 대국산성이다. 

 

삼국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대국산성을 마지막 힘을 다해 오른다.

 

드디어 대국산성. 우선 기념부터 하자. 

 

나도 인증 한장

 

박옥현 노무현재단 광주전남 공동대표님과 한장

 

휴 힘들었네~ 조금 쉬어가십다.

 

◇ 대국산성

 

대국산성 배치도

 

이 성은 설천면 진목리와 비란리, 그리고 고현면 남치리에 걸쳐 있는 해발 375m의 대국산 정상에 돌로 쌓은 성이다. 둘레는 약 1.5km이고 높이는 5~6m, 폭 2.4m이다. 성안에는 연못 터와 건물을 세웠던 주춧돌이 있고, 돌로 쌓은 네모진 경계 초소가 있어 멀리 바다를 감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안팎을 쌓고 그 중간에는 흙을 채워 넣었다.  성문은 동남쪽과 북쪽 두 곳에 있었는데, 동남쪽의 것이 정문으로 여겨진다. 성의 보존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으로 북쪽 일부만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성안에서 출토된 토기조작, 기와, 자기 조각 등으로 보건대 이 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 왜구를 막는데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대국산성에 관한 전설

 

☆ 전설 하나(청이 형제)

 

옛날, 남해군 설천면 대국산 아래 비란마을에 사이좋은두 형제가 어지러운 세상에도 서로 의지하며 둥글둥글 살아가고 있었다. 그 형제 중에 아우의 이름은 '청'이었다. 두 형제는 나이가 들어 쳥년기가 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처녀는 미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모든 총각들의 눈길을 끌었고 청의 형제도 각각 그 처녀에게 사랑을 호소하였다. 처녀는 형제 중 누굴 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었는데, 이것을 눈치 챈 두형제는 이때부터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형이 아우에게 "청아, 우리들이 이렇게 귀한 세월만 보내며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와 나는 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난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음 택하겠다." 하면서 형은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형이 말하기를 "그녀가 한 벌의 두루마기를 꾸미는 동안 나는 30관의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 길을 갔다 오기로 하고 너는 저기 대국산에 돌로 성을 쌓는 거야. 싫다면 바꾸어서 해도 괜찮다." 하면서 " 이긴 사람이 그녀가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그녀와 같이 사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약속한 일은 그녀가 꾸미는 두루마기 보다 빨리 끝내야만 되지 만약 늦게 끝나면 우리는 깨끗이 그녀와의 혼인은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기로 하자." 하면서 동생 청이의 동의를 구하였다.
청이도 승낙하고 그 해 가을 달 밝은 보름날 밤 처녀는 두루마기를 짓고 형제는 약속대로 일을 시작하였다. 밤이 깊어 달이 서산에 걸릴 무렵에 아우 청이는 성을 다 쌓았다. 그때까지 처녀는 두루마기를 다 꾸미지 못하였고 형 역시 돌어오기 전이었다.

 

그 후 날로 왜구들의 침력이 심해지자 청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자기가 쌓은 성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고 마을의 안녕을 지켰다. 왜구들이 성을 기어오르고 화살이 비 오듯 날아왔지만 청과 마을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산성에는 대포에 맞은 흔적들이 남아 있고 청이 형제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 전설 둘(천장군과 일곱시녀)

 

조선 경종 때, 천씨 성을 가진 뛰어난 장수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하루는 천 장군이 일곱시녀와 성 쌓기 내기를 했다. "너희들 일곱이서 저녁밥을 짓는 일과 내가 성을 쌓는데 누가 빨리 끝내는지 내기를 하자." 마침내 내기가 시작되자 일곱 시녀가 팔을 걷고 밥을 짓는 동안 천장군은 부채 하나를 들고 산허리에 올라서서 바다 쪽을 향하여 천천히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내기에는 이길 생각이 없나 보지?' 일곱 시녀가 내기에 이겼다고 좋아할 때 쯤, 이게 왠일인가? 바다 속에 있던 커다란 바위들이 새까맣게 날아와 소낙비처럼 산꼭대기에 떨어져 저절로 성이 쌓이는게 아니가? 일곱 시녀가 짓는 밥은 아직 채 김이 오르기 전에데....

 

대국산성에는 바다 속에서 날아온 돌임을 증명하듯 성돌에 아직도 굴껍질이나 조개껍질이 붙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천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 대국산성 건물지

 

연지가 내려다 보이는 평탄면에 조성된 정면 5칸, 측면 1칸의 건물지이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내부에 일자형 고래가 설치되어 있어, 실생활에서 주거용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출입구는 동쪽방향이며 정면에 마당이 있어 주거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인 기와의 문양이 오골문인 것과, 많은 수량의 고려도기가 확인되고 있어, 고려시대에 축조된 건물지로 보인다. 이 건물지의 확인으로 대국산성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 대국산 연지

 

산성 안에 설치된 연지로 호안은 계단식으로 축조하였고, 입수구나 출수구는 설치되지 않았다. 평면 형태가 원형이면서 계단식으로 축조된 연지는 거제 폐왕성, 광양 마로산성, 아차산성 등에서 확인된다. 

 

대국산성 연지와 같이 구릉이나 사면에 위치한 연지는 6세기 중반 이전에 처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국산성 연지는 발굴조사 결과 7세기 초반에 축조된 대국산성의 성벽과 동일한 축조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국산성 - 대국산 임도(0.9km) - 해안길(3.3km) - 이어마을 체험장(2.7km)

 

대국산성에서 바라 본 맞은편 금음산에서 녹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풍광. 하늘금엔 하동 금오산이 흰눈으로 덮여 있어 신비롭다.

  

눈을 조금 돌려 바라보니 광양제철 산업단지가 보이고, 이곳 대국산성에서 바라보니 남해안 일대가 한 눈에 훤히 내려다 보인다. 옛날에는 이곳 대국산성에 바다를 지키는 망루가 있었던 것 같다.

 

대국산성에서 다시 내려와 대국산 임도를 걷는다. 이곳 대국산 임도도 금음산 임도 같이 편백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오손 도손 걷는 길이 다정하고 정겹고 행복하다.

 

편백숲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는 바래길이 힘차다.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행복한 길. 걷다가 지치면 쉬어 가는 길. 언제부터 이 길이 있었을까?

 

길.

 

길은 도이다. 사람이 가는 길이다. 서로가 소통하는 길이다. 한쪽을 키우면 다른 한쪽이 작아진다는 것을 아는 길이다. 슬픔이 있으면 저편에 기쁨이 있음을 아는 길이다.  가파른 곳이 있으면 저편에 평탄함도 있음을 아는 길이다. 오름이 있으면 저편에 내림도 있음을 아는 길이고,  곧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한 것을 아는 길이다. 부드럽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한 것을 아는 길이다. 길은 늘 거기에 그대로 있다. 그 곳을 사람들이 지나면서 길이 된다. 모든 사람이 지나는 길이 진정한 길이고 진정한 도이다.

 

한참을 내려 왔나 급경사 회전 길목이다. 180도를 돌아 임도길을 따라 내리막 길을 걷는다.

 

소나무가 무성히 잘 자란 전형적인 남도의 섬 자락 풍광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소나무를 해송이라 한다. 해송은 생명력이 강하고 잘 자라서 방풍림으로도 많이 심는다.

 

동비마을 앞 버스 주차장까지 왔다. 오전엔 여기까지 걷고 

 

모두 남해읍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오후 바래길을 걷는다.

 

◎ 동비마을 - 해안길 - 이어체험마을(2.7km)

 

오후 바래길을 시작한다. 오후 남해 바래길 16코스는 주로 창선도를 앞에 두고 바다 곁은 지나는 해변길이다. 

 

동비마을 안으로 접어들어

 

동비마을 안을 지나면

 

갱번마루

 

해안가로 향하는 설천로 148번길인 농로를 지난다.

 

창선도와 남해 바다가 보이고

 

남해바래길 16코스는 이제부터 남해안 해변을 따라 줄곤 걷는 길이다.

 

남해 해안은 타원형의 아늑한 포구가 많다. 창선도를 바라보고 있는 남해 동쪽 해안은 비교적 포근하고 잔잔하여 해안엔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고 풍성한 수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또한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하여 바닷물의 들고 남이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다.   

 

동비교를 지나고 긴 해변길을 따라 걷는다.

 

해안의 굴곡이 아름다운 자연 미를 듬뿍 담고 있는 바래길 16코스는 평온하고 잔잔하며 갯내음 나는 사람사는 동네를 지나 간다. 보는 곳마다 남해의 독특한 풍광미를 담을 수 있어 멋지다. 

 

우정의 바래길이다. 김○ 문화관광해설사님이시다. 연배가 같아 친구가 되었다. 늘 쾌활하고 매사를 활달하게 대하는 그녀는 자상한 리더쉽의 소유자이다. 옆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듬뿍 챙겨주는 참 좋은 친구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남해 바래길은 마음 편한 대원님들과 이런 저런 세상사 이야기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이해하고 내편이 되어주는 그런 웃음길이다.

 

따스한 우정을 마음에 새기며

 

즐거운 바래길

 

육지에서 빗물에 쓸려 내려오는 여러 오물들을 걸러 바닷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갯가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 구조물이다.

 

왼쪽으로 바다를 두고 평온한 바래길을 걷는다.

 

이어마을 표지석이 반긴다. 

 

이어어촌체험마을 체험장. 

 

반원을 그려 돌로 뚝방을 쌓고 바닷물이 들어 올 때 같이 들어온 물고기가 바닷물이 빠질 때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독특한 방식의 석방렴이 신기하다. 오랜시간 경험으로 만들어낸 갯가 사람들의 삶의 지혜이다. 저 구조물은 그물과 다르다. 작은 코를 만들어 지나가는 고기는 모두 걸리도록 하는 그물과 달리 자연스럽게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잡는 방식이다. 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는 방식이다. 자연의 이치를 넘어서지 않는 자연이 내 준 그 만큼에 만족하는 방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저토록 자연과 함께 어울러져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지고 살았다. 자연을 개발하거나 파괴하지 않는 지혜 속에 행복한 삶을 영위한 것이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 남해 석방렴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하는데, 주로 경상도·전라도 연안에서 멸치·고등어·새우·전어 및 기타 작은 잡어를 잡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만입(灣入)한 간석지의 경사가 약간 급한 곳을 골라 반원형이나 ㄷ자형의 돌담을 쌓아 만들었다.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조수와 함께 고기들이 들어오면, 썰물 때에 돌담의 밑부분에 구멍을 뚫고 밀어 넣어두었던 통발을 들어내어 그 속에 든 고기를 잡았다. 통발을 밀어넣지 않는 석방렴도 있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석방렴 안의 조수가 절반 이상 줄었을 때 그 속에 갇힌 고기를 자루가 달린 그물로 떠올렸다.

 

돌담의 폭은 2자 정도였고, 길이는 짧은 것이 30∼40칸, 긴 것은 100칸이나 되었다. 제주에서는 주로 멸치를 잡을 목적으로 직경 1자 정도의 돌을 폭 3자, 높이 4∼5자 정도로 쌓아올렸는데, 돌담의 내부면적은 대략 30평 내외에서 60∼70평 정도였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그 돌담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어어촌체험마을

 

바래길가 소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솔가지 사이로 오후 햇살이 뉘엿뉘엿 눈부시게 빛난다.

 

경남 남해와 사천 사이에 창선도가 가로 놓여 이곳 바닷물이 두 해협을 통과하면서 일어나는 심하게 빠른 물길 가운데 죽방을 놓고 빠른 물길을 이용하여 멸치를 잡는 죽방렴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어체험마을(2.7km) - 남해공용터미널 (3.6km)

 

저기 나즈막한 숲속 잔등에 선소왜성이 있다.

 

남해 선소왜성(南海 船所倭城)은 남해군 남해읍 선소리에 축조된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은 일본식 성곽(왜성)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 13척으로 일본왜선 130척을 상대하여 크게 승리한 명량해전에서 참패를 당한 왜군은 전의를 잃고 물러나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는 남해안 일대 요충지에 성을 쌓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아마 남해 선소왜성도 그때 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울산왜성을 비롯해 합포왜성사천왜성남해왜성순천왜성 등이 지어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일본 침략군 약 16만 명이 조선에 침입하다.
1594년 군사 조직의 필요성으로 훈련도감을 설치하다.
1598년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다.

 

1593년 4월 왜군이 한양에서 경상도 일대 해안으로 물러난 이후 지루하게 이어지던 강화 회담이 끝내 결렬되자 1597년 8월에 일본이 재차 조선을 침공하였다. 정유재란이다. 9월, 왜군은 충청도 지역까지 북상했으나 조선과 명나라의 거센 반격으로 더는 진격하지 못했다. 이어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왜군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11월에는 완전히 패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피해가 컸지만 5년 뒤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유난히도 무잡이한 노략질과 부역 및 아녀자들의 희롱 등 이루말 할 수 없는 패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였다.

 

이 땅에서 이순신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과 육지의 의병들에 의해 일본군을 몰아냈지만 조선 백성의 삶은 피패해질대로 피패해져 이루 말 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해안 일대를 점령하고자 여러곳에 조성해 놓은 왜성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며 국가가 무능하면 백성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길이다. 시간에 쫒겨  선소왜성을 들리지 못해 아쉽다.

 

 

긴 아스팔트길을 지나다 보면 선소마을을 지난다. 선소마을에는 선소해안탐방로가 설치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탐방한다. 

 

선소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거북선이나 함선을 만든 곳을 말한다. 여수에 있는 선소는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 선소마을도 함선을 만든 곳이였을 것 같다. 남해 선소마을은 누가 어떤 배를 만들었지 자료가 없다. 

 

이곳 남해는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패퇴하는 일본수군을 끝까지 쫒아가 무찌르면서 정작 본인이 이 마지막 전투에서 왜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한 곳이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마라." 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한많은 생을 마감한 이순신 장군의 얼이 새겨진 곳이다.

 

임진왜란 중에 원균과 서인들의 중상 모락과 역모까지 얽어 맨 선조의  정략에 휘말려 삼도수군통제사 관직을 박탈당하고 참수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원익과 권율 그리고 유성룡, 정탁 등의 간청으로 간신히 살아 고향으로 백의종군하면서 느낀 그의 비애가 얼마나 컸겠는가? 어쩜 전쟁이 끝나면 또 서인의 중상 모락이 불을 보듯 뻔한 세력 다툼 속에 희생될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어쩜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는지 모른다.

 

전쟁통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부인을 포함한 그의 가족이 쑥대밭이 되었으면서도 나라를 구하게 위해 불철주야 남해바다를 지켜낸 그의 가슴에 얼마나 깊은 한스러움이 많았겠는가?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그의 개인적인 희생에 연민의 정이 마음을 후벼판다. 이길을 걸으면서 그의 숭고한 애국 애민 정신을 기리고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  

 

남해 바닷가와 헤어지고 이제 남해읍을 향해 긴 걸음을 한다. 서산 해가 너울 너울 기울려가고 있는데 대원님들 발길은 지쳐 힘들어 가네. 왜 이다지도 길은 멀까? 

 

남해 들녁엔 새봄 맞이 밭갈이가 시작되고

 

저모퉁이만 돌면 종점이다. 어서가자 벗님네야. 훨훨날아 어서가자. 흥얼 흥얼 어서가자.

 

동산제 저수지

 

이제 저기 저녁 햇살이 나부끼는 남해읍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남해문화원을 지나고

 

건강도시 남해 보건소를 지난다.

 

남해보건소를 지나서

 

남해바래길 16코스 종착지인 공용터미널을 앞에 두고 건널목으로 건넌다.

 

오늘의 종착지 남해공용터미널

 

남해바래길 16코스 대국산길 종점, 01코스 바래오시다길 시작점, 지선인 01-1코스 읍내바래길 시작점 안내판

 

남해바래길 16코스 종점 안내판 앞에서 인증 한장 남기고, 남해바래길 16코스 트레킹을 마무리 한다.

 

◎ 남해바래길 16코스를 마무리하면서 

 

포근하고 따뜻하고 고요하고 평온한 남해 바래길 16코스를 마무리한다. 삼국시대 축성된 대국산성을 만나고 산성에 전해지는 지극한 사랑이야기 전설도 살펴보고, 금음산과 대국산 임도길 편백 숲길의 이국적인 풍광 속 싱그러움도 느껴보고, 창선도를 앞에 두고 고요한 남해바다 풍광에 흠뻑 빠져 갯가 사람들의 풍습도 살펴보고 남해 선소마을과 선소왜성을 지나면서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민 정신을 기리며 걷는 역사 문화 탐방길을 대원님들과 이런 저런 세상사 이야기 나누며 걷는 길은 행복이고 웃음이며 즐거움의 길이였다. 내 인생의 후반기를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면서 걸일것 없이 바람부는데로 눈이 오는데로 그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오늘은 행복한 웃음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