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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남도명품길

2025.02.09. 남해바래길 섬바래길 3코스 노도바래길 탐방

by 하여간하여간 2025. 2. 11.

◎ 남해바래길 섬바래길(조도, 호도, 노도)

남해바래길은 본선16코스와 지선 4개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 후로 최근에 남해도 주변 아름다운 유인도 섬 3곳(조도, 호도, 노도)에 바래길을 만들었다. 섬바래길이라고 한다. 섬1 : 조도바래길, 섬2 : 호도바래길, 섬3 : 노도바래길이다.

 

미조면 안내도

 

 

 

◇  하루 3개 섬바래길 모두 탐방을 위한 뱃시간과 순서

07:50 - 08:00 : 미조항 - 호

08:00 - 08:40 : 호도바래길

08:40 - 08:50 : 호도 - 조도

08:50 - 12:10 : 조도바래길

12:10 - 12:20 : 조도 -미조항

12:40 - 13:30 : 미조항 점심

13:50 - 14:10 : 미조항 - 백련항

14:30 - 14:40 : 백련항 - 노도

14:40 - 17:00 : 노도바래길

17:00 - 17:10 : 노도-백련항 

 

◎ 남해바래길 섬바래길 1-3코스(2코스 : 호도, 1코스 : 조도, 3코스 : 노도) 을 걸으면서

 

한반도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 온 육지가 꽁꽁 얼어 붙고, 눈이 많이 와서 설국으로 변해 있는 2월 중순, 남쪽 바다 한가운데 있는 남해도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바람 없는 고요한 남해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그 청명함과 쪽빛이 눈 부시다.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에서 남해바래길 섬바래길을 간다기에 만사 제치고 동행한다. 

 

오랫만에 청명한 날 남해 섬바래길을 걷고자 새벽 일찍 5시에 광주에서 남해로 출발한다. 하루에 3개의 섬바래길을 다 걸으려면 일찍 서둘러야 했다. 

 

남해군 미조면 미조항에 7시에 도착하여 호도로 출발하는 첫 배에 몸을 싣는다. 호도에서 40분 시간을 보내고 곧바로 조도로 출발하여 조도에서 3시간 20분 동안 조도바래길을 즐기고 12시 20분에 다시 미조항으로 돌아와 싱싱한 횟감에 약주를 곁들인 거나한 점심을 하고 노도로 가기 위해 백련항으로 향한다.

 

백련항에서 출발한 노도호를 타고 노도항에 도착, 노도에서 2시간 20분 동안 노도바래길을 들러보고 백련항으로 다시 돌아와 5시 10분에 광주로 출발한다.

 

남해에 숨겨진 3개의 아름다운 섬의 구석 구석과 해안의 기암절벽의 풍광을 둘러보면서 섬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고 노도에서  '사씨남정기'를 지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생활 모습도 둘러 볼 수 있는 행복한 바래길이다.

 

남해바래길 섬바래길 3개 코스를 하루에 다 둘러보고 여기 그 이야기를 다 담기에 너무 양이 많아 각 코스별로 나누어서 정리한다.

 

미조항에서 점심을 먹고 백련항에 도착 백련항을 살펴보고 노도항으로 출발하여 세번째로 둘러본 섬바래길 3코스 노도바래길 이야기를 여기 정리한다.

 

◎ 백련항에서

 

마을나무(보호수)

 

2006년 12월 15일 남해군 보호수로 지정된 백련마을 보호수는 수령이 약 315년과 215년(2021년기준)으로, 앞으로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유명한 노도가 위치해 있고, 뒤로는 남해 금산의 끝자락인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1983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팽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두 그루로 마을 나무가 군락을 이루었으나 팽나무는 자연적으로 고사하여 지금은 느티나무 두 그루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약 300년 전 을축년 나불(태풍의 사트리) 때 자연 발생된 둑에 나무를 심어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공간을 제공하는 주민들의 애향심과 후손들을 위한 배려의 상징물이다.

 

백련항은 남해 앵강만 동쪽에 위치한 항구이다. 검푸른 남해 앵강만의 거친 파도와 시원함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항구이다. 이곳에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유명하여 문학의 섬으로 지정 받은 노도로 가는 배가 출항한다.

 

남해 앵강만의 시원스러움을 감상한다. 오후들어 약간의 파도가 출렁인다. 늘 바다는 오전에 잔잔했다가 오후가 되면 파도가 출렁인다. 해풍과 육풍의 영향일 것이다. 앵강만 저쪽 높은 산은 설흘산으로 그 아래 해안길은 작년에 남해바래길 10코스로 걸었던 해안이다.

 

드넓은 앵강만을 담아보고

 

이제 백련항에서 노도항을 오가는 노도호를 타고 노도로 향한다.

 

◎ 섬바래길 3코스 노도 바래길

 

◇ 코스 : 노도선착장 - 노도문학관 - 김만중문학관 - 작가창작실 - 노도편의점 : 2.8km.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으로 남해바래길 섬바래길 3코스 노도바래길을 걷고자 백련항에서 노도호를 타고 노도항에 도착했다. 아늑한 노도항이 우리를 맞아 준다.

 

노도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노도 문학의 섬' 기념물이다. 웬 문학의 섬인가? 의문이 풀린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김만중(서포만필)-

 

옳고 옳은 말이다. 중국을 상국으로 숭상한 조선사회에서 이런 사상을 가지고 우리 말로 소설을 쓴 김만중 선생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노도는 열세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섬으로 서포 김만중 선생(1637~1692)이 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곳이다.  노도는 이를 계기로 문학의 섬으로 지정되어 김만중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쉬어가기 좋은 노도문화관과 2층 규모의 김만중문학관이 설립되었다. 김만중문학관에서는 서포 선생의 다양한 작품들을 이해하기 쉽게 만날 수 있다.

 

남쪽 능선으로는 서포 선생의 대표작품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모티브로 꾸며진 정원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정원은 노도바래길 노선을 벗어나는  선택루트를 따르면 볼 수 있는데, 하루 6회 벽련선착장을 오가는 노도호 운항시간이 비교적 여유가 있으니 함께 둘러 보길 권한다. 

 

모든 곳을 둘러 보고도 여유가 있다면 노도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해도 좋고, 너른 창으로 바다가 가득 펼쳐지는 노도문학관에서 맛있는 캡슐커피와 함께 나른한 시간을 보내도 좋다. 노도바래길은 호수 처럼 펼쳐진 앵강만을 가장 아름답게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구간들을 곳곳에 품었다.

 

노도마을 입구에 서포 김만중 선생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노도는 서포 김만중선생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역사적  귀중한 곳으로 그 가치를 섬의 발전 모티브로 삼아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 지정 받아 거듭나고 있다.

 

어디든 남해 섬에는 방파제가 튼튼하다. 그 만큼 한바다와 맞닿아 태풍이 몰아칠 때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 치기 때문이다. 이곳 노도항 방파제도 예외는 아니다.

 

마을 앞 노모레일 정거장을 지나 노도 바래길은 왼쪽으로 꺾여 급하게 오른다.

 

마을 안쪽으로 향하는 급경사 시멘트 오름길을 오르면

 

노도문학관이 있는 곳에 운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맞이 한다. 상록수이다. 바로 옆에 있는 노도 문학관 너른 창으로 앵강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마시는 캡슐커피는 노도 바래길을 다 마치고 다시 와서 마시기로 한다.  

 

마을길은 오밀 조밀 옛 모습 그대로다.

 

우리는 순방향인 서포 김만중 문학관을 향하여 노도바래길을 진행한다.

 

이곳도 생활수를 지붕 보다 높게 설치하여 그 수압으로 생활에 이용하는가 보다. 섬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다.

 

노도 역시 해안을 끼고 조금 오르면 언덕 같은 넓은 평지가 나오고 그 곳을 일궈 농토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었다.

 

노도에서 바라 본 남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김만중 허묘를 지나 왔을까? 서포 김만중 문학관으로 향한다.

 

서포 김만중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차가 다니도록 시멘트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서포 김만중 문학관을 향하는 노도바래길에는 가끔 나무가지 사이로 남해 짙푸른 바다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그 색깔이 하도 좋아 멍하니 바라보기 일쑤다.

 

서호 김만중 문학관에 도달했다.

 

옹달 샘터

 

노도 문학의 섬 김만중 문학관이다.

 

여기서 잠깐 서포 김만중에 대하여 알아보자. 김만중 문학관 해설사님의 열정적인 해설을 들어며 김만중선생님을 만난다.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김만중(金萬重, 1637년 3월 6일~1692년 6월 14일)은 홍문관 대제학 등을 지낸 조선 시대 중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호는 서포(西浦)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이고, 한글 소설 《구운몽》은 그의 자작 집필 소설이다.

 

 

숙종(肅宗)의 정비 인경왕후의 친정 아버지 김만기의 동생이며, 임술삼고변(壬戌三告變)에 가담했던 김익훈은 작은아버지가 된다. 숙종이 장희빈을 총애할 때 숙종의 면전에다 조사석의 베갯머리 송사냐고 물었다가 바로 파직되기도 했다. 기사환국 이후 남인의 정치보복으로 유배된 후 배소에서 사망한다.

 

1680년(숙종 6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서인 노론계열 중신으로, 한글 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증조부는 문원공 김장생으로 저명한 성리학자이자 서인예학의 태두였다. 그는 조광조에서 시작되어 백인걸을 거쳐 이이, 성혼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후에 김집, 안방준 등을 거쳐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윤선거, 윤문거 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일찍이 아버지가 순절하여, 무심한 동리 아이들로부터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 놀림당하였으나, 어머니 윤씨는 지극정성을 쏟아 형제를 가르쳤다. 그는 후일 소설을 좋아하는 늙은 어머니를 위해 저서인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을 언문(한글)으로 지었다.

 

 

- 작품과 사상

 

《구운몽》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조선 숙종 때 소설 문학 및 서민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편,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 김만중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씨남정기》에 대해 당시 인현왕후를 옹호하기 위해서 쓴 정치소설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역사 속의 《사씨남정기》는 명나라 때 있었다는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역사소설이다.

 

김만중은 주자주의가 지배하는 조선 왕조에서 집권 세력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주자주의로 일관했을 법하다.

 

하지만 훌륭한 가문이라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때문인지, 주자주의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기도 하고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함으로써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당시의 보편 문어였던 한문으로 써야만 글로 여겼던 당대 분위기에서 김만중의 이 같은 자각은 매우 선각자적인 것이었다.

 

서포 김만중 문학관에서 서포 김만중선생을 만나고 산능선에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주제로 문학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바래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포김만중 문학공원을 향해 오른다. 급경사 오름길에서 서포 초옥을 만났다. 서포 김만중 선생이 이곳 서포 초옥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나 보다. 스스로 열악한 환경을 찾아 유배생활의 규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올곧은 조선 선비의 끗끗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이곳 외딴 섬에서 겪은 외로움을 조선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겨내면서 냉철한 붓끝으로 어머님께 받치는 순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를 저술할 때 어떤한 마음이였을까? 

 

남해군에서 노도를 '노도문학의 섬'으로 지정 받아 김만중 소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주제로 문학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 그 사연을 정리해 본다.

 

◇ 사씨남정기

 

1. 사씨

 

조정의 대간 벼슬을 지내다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고 귀양을 간 급사 사후영의 딸로 본명은 사정옥이다. 아버지를 닮아 품행이 바르고 고운 성품을 지닌 규수로 자라 남자주인공인 유연수와 결혼을 한다.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해 남편에게 두번째 부인을 들일 것을 권유하여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교씨를 첩으로 들인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교씨로 인해 집안은 여러가지 분란이 일어나며, 사씨 역시 교씨의 농간에 의해 아들과 헤어져 쫒겨나는 신세가 된다.

 

2. 유씨

 

명나라 개국공신의 후손으로 어렸을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유씨와 고모 두부인의 손에 성장한다. 본명은 유연수로 학문이 뛰어나고 지혜로와 젊은 나이에 장원 급제한 수제이다. 마음이 어진 성품의 여자 주인공 사씨와  혼인을 한다. 부부 금실은 좋으나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고민한 끝에 부인 사씨의 간청으로 교씨를 두번째 부인으로 들인다. 하지만 새로 들인 교씨의 농간에 속아 첫번째 부인을 내쫒고 유배를 가계 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인물이다.

 

스토리 1. 유씨와 사씨의 혼인

 

3. 교씨

 

얼굴이 예쁘고 재주가 많으나 가난한 선비의 아내보다는 부잣집 첩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 많고 교활한 인물로 본명은 교재안이다, 본래 벼슬을 하던 집안에서 자랐으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이모집에서 성장한다.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한 사씨의 소계로 유씨의 두번째 부인이 된 후 아들을 낳아 유씨와 사씨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첫번째 부인인 사씨가 아들을 낳게 되자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또한 집안의 문사로 들어온 동창과 정을 통하여 사씨를 쫒아낼 계획을 모의 한다. 

 

스토리 2. 유씨를 유혹하는 교씨

 

유씨의 집안에 두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교씨는 겉으로는 착하고 첫번째 부인 사씨를 존경하는 척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기 질투하는 인물이다.  유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름다운 가락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유혹한다. 어느날 기생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교씨를 본 사씨가 정숙한 여인으로써 옳지 못한 행동이라며 크게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이를 계기로 교씨는 사씨를 더욱 시기하고 미워하게 된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유씨와 교씨가 사랑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4. 동청

 

사대부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행동이 바르지 못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란다. 여자와 술을 늘 가까이 하고 놀기를 좋아하다 보니 집안은 더 어려운 형편이 된다. 이에 고향을 떠나 돈 많고 권세 있는 집안을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 먹는 식객으로 살아간다. 이집 저집 다니다가 유씨의 집에 문사로 들어오게 되어 유씨의 산림을 맡게 된다. 하지만 사씨가 동청의 본심을 알고 의심하자 교씨와 정을 통하며 사씨를 쫒아낸다. 훗날 자신의 꾀로 인해 배신과 죽임을 당하게 된다.

 

스토리 3. 시기하는 교씨

 

결혼한지 십년이 지나 첫번째 부인인 사씨가 아들을 낳게 된다. 사씨가 낳은 아들은 골격이 크고 기상이 씩씩하며, 할아버지 유현을 닮아 유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교씨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첩의 자식이라며 홀대를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씨를 시기하며, 유씨에게 사씨를 험담하나 유씨는 개념치 않는다. 이에 화가 난 교씨는 친한 점쟁이 집향을 불러 유씨의 사랑을 되찾을 방법을 의논하고, 사씨를 내쫒을 간악한 음모와 간교를 꾸민다.  

 

스토리 4. 교씨의 불륜

 

유씨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갖은 음모를 꾸미던 중 유씨의 집을 음탈하려는 남자가 집사가로 들어온다.동청은 영리하고 일을 잘 처리하여 유씨의 믿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동청이 정직하지 못하고 간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씨는 그를 경계한다. 사씨가 동청을 의심하자 교씨는 동청을 자신과 편으로 만들기 위해 은밀히 동청과 정을 통한다. 또 유씨가 사씨와 지내는 날이면 동청을 처소로 불러 사씨를 없엘 계획을 함께 꾸미고 후일 유씨도 없애고 둘이서 함께 살기로 약속까지 한다.

 

스토리5. 교씨 아들의 죽음

 

사씨를 모함하기 위해 동청은 교씨의 아들 장주를 죽일 것을 제안하나 차마 그녀는 아들을 죽이지 못한다. 이에 동청은 몰래 교씨의 심복인 하녀를 시켜 장주의 목을 눌러 죽인다. 뒤늦게 아들이 죽은 것을 알게 된 교씨는 크게 슬퍼하지만 자신들의 계략이 들낄까 무서워 진짜 범인을 말하지 않는다. 이에 유씨가 범인을 찾기 위해 하녀 설매를 야단치자 사씨가 장주를 죽이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하여 춘방이라는 하녀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스토리 6. 쫓겨나는 사씨

 

교씨와 동창의 농간으로 교씨의 아들 장주를 죽인 법인으로 몰리게 된 사씨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유모가 사씨의 아들 인아를 대리고 집밖으로 나오자 사씨는 복받치는 슬픔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인아를 안고 운다. 그 모습을 보는 하인과 하녀들, 그리고 관리들 모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함께 슬퍼한다. 사씨는 집을 떠나 시부모님을 모신 선산 아래에 초가를 얻어 머물기로 하나, 교씨의 음모에 의해 다시 먼길을 떠나는 신세가 된다. 

 

5. 묘혜 스님

 

유씨의 고모인 두부인 부탁으로 남해관음화상에 사씨가 쓴 글을 받아 온다. 묘혜스님이 받아 온 글을 통해 사씨는 지헤롭고 예의 바른 규수임을 인정받아 유씨의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된다. 또 교씨의 음모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 도망 다니던 사씨가 갈 곳이 없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다. 훗날 사씨의 꿈에 나타난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따라 배를 타고 물에 빠진 유씨를 구해준다. 사씨의 아들 인아를 키원준 임씨의 친인척이기도 한다. 사씨와 유씨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도움을 주는 중요한 조력자이다.

 

스토리 7. 사씨 아들의 유기

 

스토리 8. 동청에게 쫓기는 유씨

 

스토리 9. 유씨를 구하는 사씨

 

스토리 10. 부부의 재회

 

동청이 보낸 장수들의 추격을 피해 강물에 빠진 유씨는 때마침 강을 건너온 배에 올라 목숨을 구한다. 한숨을 돌린 유씨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인사를 하는데 상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고마운 인사를 하려던 유씨의 눈 앞에 있는 여인은 바로 사씨였다. 그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씨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씨도 유씨를 용서하고 부부의 연을 다시 맺는다. 그리고 혹시나 살아 있을 수 있는 아들 인아를 함께 찾기로 한다.

 

스토리 11. 사씨와 아들의 재회

 

누명을 벗고 다시 벼슬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유씨는 사씨와 행복하게 지내지만 아들 인아를 찾을 길이 없다. 후사를 걱정하던 사씨는 예전에 큰 도움을 얻은 임씨를 마음에 두고 유씨에게 권유한다. 임씨는 유씨의 집으로 시집을 오면서 어린 남동생을 대리고 온다. 이때 유모와 임씨의 남동생이 서로 기억하고, 임씨의 동생이 잃어버린 사씨의 아들 인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씨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을 끌어 안고 목놓아 운다.

  

 

6. 단죄받는 교씨

 

유씨 집에 들어와 사씨를 음모하여 쫓아낸 이후, 유씨를 배신하고 사씨의 아들 인아를 유기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동청이 죽은 후 재산을 모두 챙겨 남진이라는 자와 도망가지만 도둑을 만나 몰락하게 된다. 이후 교씨는 이름을 조질함으로 바꾸어 기생으로 지낸다. 본인의 죄를 알지 못하고 유씨의 부인이였던 것을 떠들고 다닌다. 이를 알게 된 유씨는 사람을 시켜 교씨를 집으로 부른다. 유시의 집인 줄 모르고 따라온 교씨는 유씨와 사씨를 보고 깜짝 놀란다. 교씨는 그간의 죄로 인해 큰 벌을 받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스토리 12. 다시 찾은 행복

 

어려운 시련을 겪고 다시 만나게 된 유씨와 사씨, 그리고 아들 인아는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세월이 흘러 두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임씨는 세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인물이 좋고 머리가 영특하여 아버지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유씨와 사씨는 함께 해로하다가 여든이 넘어 세상을 떠났다. 임씨 역시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마친다. 사씨는 집안에서 부녀자들이 지켜야할 도리인  내훈을 몇 권이나 지었고 열여전도 세권이나 지어 후세 사람들에게 전한다.

 

 

 

◇ 구운몽

 

 

김만중 문학공원 탐방을 마치고 다시 내려와 노도 바래길을 걷는다.

 

노도바래길에서 바라본 금산 보리암을 나무가지 사이로 당겨 본다.

 

사철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노도바래길을 따라 걷는 편안한 힐링길

 

노도바래길 북동쪽 방향에 나무가지 사이로 남해 금산 보리암이 비치고

 

해가 서산으로 저물어 가는 저 바다 끝은 돌산 반도이며 햇살에 나부끼는 윤슬이 참으로 아름답다.

 

노도 바래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남해 설흘산 아래 넓게 펼쳐지는 앵강만을 바라 본다. 노도 바래길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곳도 노도 사람들의 어렵고 힘든 삶의 터전인 다랭이 밭이다.

  

다랭이 밭길 사이로 편안한 노도바래길을 걷다 보면

 

 

남해 앵강만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 볼 수있는 구간을 지난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남해 설흘산과 앵강만을 담았다. 사진을 누르면 더욱 아름다운 남해 앵강만을 커다랗게 감상할 수 있다.

 

풀 기능으로 남해 설흘산과 앵강만을 한장에 담아보고 

 

눈길을 조금 오른쪽으로 돌려 미쳐 담지 못한 남해 앵강만을 온전히 담아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앵강만 풍광이다. 아마 노도바래길 중에서 으뜸 풍광이기도 할 것 같다. 

 

노도에서 남해 앵강만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에 펜션이 자리 잡고 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나의 노도바래길도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

 

노도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아름다운 노도마을 풍광을 감상하며

 

유난히 예쁜 파란 지붕을 가진 집을 배경으로 남해 앵강만 풍광을 담았다. 

 

이제 노도 바래길 종점이다. 시간이 남은 사람은 이곳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사서 바로 아래 노도문학관에서 너른 창으로 남해 앵강만을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마시는 것도 노도바래길을 걷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를 맞아 준 마을 안 상록수와 헤어지고 

 

노도항구에 마련된 모노레일 정거장을 구경하고

 

이제 노도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벽련항으로 출발할 노도호가 벌써 와서 우리를 기다린다.

 

마지막 노도 문학의 섬 기념물과 작별하고 노도바래길을 마무리하면서 남해바래길 섬바래길(호도, 조도, 노도) 탐방을 마무리 한다.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