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8.(일)
영암 월출산 기찬묏길 1구간
(천황사 주차장 - 기찬랜드)
영암버스터미널에서 바라 본 월출산
간밤에 눈발이 날렸다. 월출산에 하얀 설화가 피었다. 월출산은 기가 충만한 산이다. 어느 곳이든 불이 타오르는 듯한 산세는 화승의 기운을 듬뿍 담고 있다. "기의 고장 영암" 이라 함은 월출산을 두고 한 말이다. 월출산은 기의 산이다. 화기의 산이다.
월출산을 중심으로 천황사주차장에서 용산마을까지 영암군에서 기의 고장답게 기찬묏길을 만들어 놓았다.
억새꽃잎사이로 타오르는 월출산
기찬묏길은 기가 가득한 산길이라는 뜻이다. 월출산 산자락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 사이로 펼쳐진 아기 자기 편안한 산책길이다. 오래전부터 영암 기찬묏길을 걷고 싶었다.
월출산을 오르면서 기찬묏길을 부분적으로 걸었지만 처음부터 온전히 걷지는 못했다.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오늘 천황사주차장에서 시작한 기찬묏길 1구간을 걷고 싶어서 광주에서 9시 영암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남도인의 애환이 담긴 국도 13번을 따라 버스는 10시 30분에 영암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월출산을 바라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난다. 하얀 눈으로 덮인 월출산 풍광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월출산 천황봉은 하얀눈으로 덮였고 정상에는 설화가 만발하였다. 월출산은 사시사철 그 풍광이 색다르지만 오늘 설화가 만발한 월출산 풍광은 가히 일품이다.
◎ 영암터미널 - 천황사주차장(5.5km)
천황사주자차장까지 가는 길목에서 바라 본 월출산
기차묏길은 산자락에 만들어져 있어서 기찬묏길을 걷노라면 막상 월출산 정상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버스터미널에서 기찬묏길 출발지인 천황사주차장까지 마을 길을 따라 월출산을 바라보며 그 기운을 받으면서 걸었다. 설화가 만발한 월출산 풍광을 바라 볼 수 있어 행운이다.
늘 함께 걷는 이 길은 오손 도손 우정의 길이고 이런 저런 행복의 길이며 굽이 굽이 즐거운 길이다.
탑동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황사주차장까지 마을길을 걸으면서 기운차고 아름다운 월출산 풍광에 푹 빠진다.
기찬묏길은 참으로 아늑하고 싱그럽고 기가 충만하다. 텅빈 마음속을 싱그런 월출산 기로 채우는 기찬묏길이 좋다.
천황사주차장까지 가는 길목에서 바라 본 월출산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이다.
흔들이는 억새 사이로 월출산 기가 충천하고
그 세찬 기운을 어루만지는 여심은 즐겁기만 하다.
월출산국립공원 표지에서 바라 본 월출산
셀카
천황사주차장 국립공원 월출산 표지석
월출산 정상엔 설화가 만발하였다.
천황사주차장 월출산 표지석에서 설화가 만발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장
오늘 트레킹을 함께한 대원님들 출발 인증
아직 가을을 부여 잡고 있는 예쁜 단풍나무 아래서
멋진 단풍을 배경으로 조요셉님이 담아 주셨다. 감사하다.
기찬묏길 설명-김명수 지오트레킹회장님
오늘은 기찬묏길 1구간을 걷는다. 천황사주차장 - 기체육공원 - 기찬랜드 (5.3km)
◎ 천황사주차장 - 기체육공원(신성대 탐방로 입구) 3.8km
출발 인증 한 장
기찬묏길 1구간 출발
창밖엔 흰 싸라기눈이 휘날렸다. 을씨년스럽다. 봄에 하얀 꽃잎을 자랑하던 목련이 온몸을 움츠리고 겨우살이 준비를 꼼꼼히 하고 서 있는 화단 너머 거리에는 사람들이 내린 눈을 휘날리며 분주히 지나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그는 갑자기 마음 한켠에 불같은 이상한 감정이 올라와 숨을 헉헉거리고 있었다. 젠장 왜 이런단말인가? 가끔씩 눈이 내릴 때 특히나 첫눈이 내릴 때 그는 이런 증상을 겪고 있었다. 단전으로부터 올라온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어찌할 줄 모르고 심한 통증으로 가슴을 쥐어뜯듯 아랫배를 부여잡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첫눈이 내리면 내내 잊고 있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쏟아져 이리 안절부절 못 하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미치도록 보고픈 그리움이다. 숨 막히도록 보고픈 그리움이다.
함께 걷는 이 길은 힐링길이다.
그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중 3학년 방과 후 교실이었다. 어느 때 처럼 무료한 시간이었다, 진종일 녹초가 된 수업을 마치고 또 보충수업이라니 멍청이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방과 후 교실로 새로 하얀 소녀가 들어 왔다. 백합처럼 곱고 예뻤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한 분단 건너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다소곳이 수업을 들었다. 그는 그 순간부터 온통 수업이 들리지 않았다.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저리 예쁜 사람이 있을까? 한 송이 꽃이었다. 부드러운 볼에 오똑한 코와 반달 같은 커다란 눈동자는 지금까지 그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예쁜 소녀였다. 아니 정신이 혼미하여 도통 제정신이 아니였다. 누구지? 누구지?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동네 초등학교에 전근 온 선생님 딸이란다. 와~ 탄성을 질렀다. 우리 동네에 산단다. 그럼 같이 등하교 길에 한번 씩 볼 수 있겠구나! 생각만해도 설레고 떨리고 안절부절 못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 이 길은 행복의 길이다.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지긋지긋한 섬 생활이 지겨워 꼭 육지로 도망가 살리라는 굳은 각오도 이제는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그녀를 볼 수 있으려면 그녀가 고등학교를 진학한 광주로 그도 가야 한다. 그래야 그녀를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순진한 섬 소년은 그날부터 모든 것이 즐거웠다. 학교를 가면 그녀를 먼 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어 좋았다. 뭍으로 도망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고등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해 열심히 한 공부를 이제는 더욱 열심히 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모두가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이 길은 사랑의 길이다.
공부는 쉬웠다. 그냥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면 그만이다. 모든 페이지를 그림책으로 외워버렸다.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억의 되새김질을 하고 또 하고 하였다. 혹시나 기억이 안 된 페이지는 바로 집에 와서 다시 보고 또 보고하여 통째로 외웠다. 그러니 교과서가 모두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요하여 밑줄친 부분까지 그림으로 선명하게 외우고 되새겼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참으로 쉬웠다. 좋은 성적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누구 물어보면 그만의 공부 비밀이다. 젊은 날 한번 외운 내용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단단히 외우고 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되새김질이 잘 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외우면 될 걸~ 왜 외우지 않지?
탑동약수터을 향해서
그녀가 무척이나 그리울 땐 커피를 타서 진하게 마시고 숨을 들이켜 한숨을 몰아 쉬고 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인 것 같다. 사무실 한켠의 연탄 난로 위 노오란 양쟁이 주전자에서는 뜨거운 짐이 무럭무럭 나오고 있었다. 혼자 우두커니 바라보는 차창밖 눈발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지런히 숫자를 입력하고 있을까? 돈 다발을 한 움큼 쥐고 부지런히 세고 있을까? 그녀는 여상고를 졸업하고 서울 금융업체로 취업하여 서울로 갔다. 광주에서 서울로 떠나기 얼마 전 그는 아직 한 번도 그녀에게 그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는데 큰 맘 먹고 어느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소주잔이 한 두번 오고 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핵심에서 벗어나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가 보다 하는 느낌만 받은 술자리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탑동약수터
옥아 잘있니? 눈이 온다. 첫눈말이다.
왜~
그냥 니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럼 올라와
참말로
응
알았어
한모금 약수로 기운찬 월출산 기운을 넘긴다. 물 맛이 일품이다. 월출산 기운이 온 몸의 피로를 씻어 내린다.
전화를 끓고 허둥지둥 어떻게 시간이 간 줄 모르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수도 없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4시간 서울길을 재촉했다. 늦은 시간이라 서울은 한밤중이다. 택시를 타고 그녀가 사는 주소를 물어 골목 골목을 지나 택시에서 내렸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마음이 꽁당꽁당 이다.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숨을 몰아 쉬고나서 초인종 반응을 기다렸다. 몇 번을 누렸지만 기척이 없다. 아직 퇴근을 안했나? 기다리자.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12시가 다 되가는 시간에 어스름한 골목 모뚱이에서 그녀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술에 취해 있었다.
탑동약수터 현위치
당황스러웠다.
왠일이냐는 식으로 쳐다본 그녀에게 할말이 없었다.
너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느냐는 표정이다.
순간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단풍이 수북히 쌓인 대나무 숲길은 참으로 운치가 있다.
야 너 어디 갈데 있니? 없으면 내 옆방에 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자고 가라.
한마디 남기고 그녀는 뚜벅 뚜벅 계단을 올라 2층 옥탑방으로 향했다.
난처했다. 어찌해야하나?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12시가 넘은 이 시간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도대체 전화 속 한마디에 속도 모르고 이렇게 허둥지둥 올라온 그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녀의 마음에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한 그 자신을 탓할 뿐이다. 그냥 너무 보고 싶어서 너무 보고픈 맘이 앞서 이렇게 행동한 자신이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다.
대나무 숲 길에 아직도 가을을 부여 잡고 흐느끼는 단풍이 애처롭다.
그래 이 시간 어디를 가랴. 잠이나 자고 가자. 그녀가 혼자 사는 2층 옥탑방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여자의 분냄새가 진동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기찬묏길은 왼쪽으로
주야 나 애인이 생겼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무엇하는 사람인데
응 같은 회사 사람인데 키도 크고 잘 생겼어. 나이도 3살 위야 축하해죠.
환장하겠네 뭐라고? 애인 생겼으면 전화로 올라 오라고 한 것은 뭔데?
설마 이렇게 올라 올 줄은 몰랐지. 그냥 니가 보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한번 말해 본거야. 너 참 순진한 애구나. 너 나 지금도 좋아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때까지 나를 보면 몰라서 묻냐?
나도 니 맘 알아. 나도 널 좋아했어.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고 키가 조금 작은 것이 맘에 걸리지만. 그런데 서울 와서 그 선배를 만나면서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 그 선배 옆에 있으며 왠지 행복해. 맘이 좋아. 훨칠한 키에 준수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면 그져 오래 오래 같이 있고 싶어. 오늘도 그 선배와 데이트하고 오는 중이야.
알았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첫눈이 오니 너무 니가 보고 싶어 이렇게 허둥대고 올라왔다. 너에게 부담이 되었으면 미안하다. 이해해라
오늘 저녁 여기서 조용히 자고 내일 아침 내려가마.
왼쪽으로 오르면
밤새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 자신이 초라하기도하고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놈이 밉기도 하고 이루형용 할 수 없이 허전하고 쓸쓸하고 쪽팔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아 훵하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와 계단 난간에 시 한수를 걸어 놓았다. 시가 있는 기찻묏길은 참으로 여유롭다.
그런 그녀가 친척 결혼식장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갔다. 그의 순진한 사랑을 독차지한 그녀가 그렇게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갔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지나서
학창시절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순간들! 크리스마스 때 밤새 카드를 만들어 사랑 가득한 맘을 담아 보내고 받았던 그리운 순간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내릴 때 책가방을 들고 계림동 오거리 만두집을 누비며 깔깔거리며 즐거웠던 그리움! 파란 하늘을 보아도 그녀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아도 그녀에게 주고프고 매일 만나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속삭였는지 모를 어깨동무! 영화관에서 혹시나 모를 손잡이를 기대했지만 허무로 끝나는 허망한 순간들! 방학이 되면 고향집에 내려와 해안을 거닐며 좋아했던 모습들! 라면만 먹어도 배가 부른 순간들이 지금은 먼 하늘 속으로 훨 훨 날아 가고 있었다
영암체육관이 보이고
월출산 향로봉 산줄기를 타고 천년학이 되어 훨 훨 날아 가고 있었다. 그리움으로 가득한 월출산 기찬묏길을 따라 하염없이 날아 가고 있었다.
◎ 기체육공원(신성대 탐방로 입구) - 기찬랜드 1.5km
산성대 탐방로 입구에서 한장 / 기체육공원은 신선대 탐방로 입구 아래로 조성되어 있다. 우리는 바로 기찬랜드로 향한다.
신성대 탐방로입구에서 박옥현 노무현재단 광주공동대표님과 함께
황톳길도 만나고
화려한 단풍은 아직 가을이다.
월출산 정상엔 흰 눈이 쌓였지만 산락엔 빨간 단풍이 한창이다.
셀카 한장
수북히 쌓인 단풍
단풍나무 아래서 망중한 - 박옥현 대표님께서 담아주셨다.
수북히 쌓인 단풍길을 걸으며 행복 만땅.
기찬랜드
계곡을 따라 기찬묏길은 이어지고
소나무 숲길 사이로 아기자기 기찬묏길 숲길이다.
굽이 굽이 단풍이 참으로 아름답다.
아늑한 단풍길을 걷노라면
월출산 기찬랜드 0.4km 지점이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마지막 울창한 숲길을 지나면서
인증 한 장 남기고 기찬 랜드로 향한다.
◎ 기찬랜드
기찬랜드엔 가을 국화 축제가 열렸다.
트레킹 종료 기념 한 장
◎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선생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선생 생가터
김창조는 1856년 7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습적인 율객(기악 연주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재인(당시의 신분제도에서 천민에 속하는 직업적 음악가들에 대한 명칭) 계층에 속했던 그의 음악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농사를 겸하는 빈곤한 처지에 있었다.
김창조가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들어선 것은 그의 나이 30세(1885년)부터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엄격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음악계의 흐름이 흥행적이며 세습적인 것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과 자기 예술을 공개함에 있어서도 범상치 않은 절제를 준수하였다는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1890년(35세) 이후에는 연주와 창작 그리고 후진양성을 병행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1890년부터 1895년 사이에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산조(散調)라는 하나의 음악 형식을 개척하였다. 그는 산조를 가지고 광범위한 대중(군중) 앞에 출현하였다. 전주와 광주를 위시한 전라도 일대와 경상도 대구 등지를 무대로 동서를 오가며 활동했다.
김창조의 활동이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다고는 하나 그가 뿌린 산조의 씨앗은 도처에서 뿌리를 박기 시작했고 더욱 넓은 범위로 대중화되었다.
1915년(60세)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옮겨온 후 활발한 연주활동과 아울러 후진을 위한 교육사업도 병행하였으며, 1916년(61세)에 전주로 거처를 옮겨 전주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후진육성사업을 병행하였다.
1919년 8월 광주에서 생(64세)을 마감하였으며 근세민간 기악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빛나는 공적을 남긴 분으로 가야금 산조를 작곡함으로써 모든 산조음악의 효시가 되었다.
◎ 2024 영암 월출산 국화 축제
기찬랜드에는 국화 향이 가득하고 저 멀리 하늘금엔 월출산 정상 천황봉 설화가 손에 잡힐 듯 만발하였다.
2024. 월출산 국화 축제 입구
기찬랜드 입구에서 오늘 트레킹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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