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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5.02.08. 보성 천봉산 대원사 탐방

by 하여간하여간 2025. 2. 10.

 

◎ 천봉산 대원사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1교구 본사(本寺)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천봉사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3년(503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백제고찰이다.

통일산라 시대에는 5교 9산 중 하나인 열반종의 8대가람으로 교세를 크게 떨쳤다.

고려시대에는 조계산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 국사가 강화도 선원사에서 팔만대장경 판각불사를 마치고 대원사로 와서, 선원과 승방을 크게 중창하고 선문염송을 판각하여 수행교재로 하였다.

조선 영조35년(1759년) 현정선사가 다시 중창하여, 12암자를 가진 대가람의 면모를 지켜왔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한 극락전과 지장보살도 등은 그 당시에 조성된 것이다.

 

해방 후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건(1948년)으로 극락전만 남기고 20여 전각이 소실되었다. 

1990년 대원사 복원불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선원과 승방, 일주문, 천불전, 성모각, 김지장전, 황희영각, 금종루, 청풍각, 사천왕루 등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천봉산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에는 보물 2점과 지방문화재 2점이 있다.

극락전 안벽에 그려진 관음보살과 달마대사의 벽화는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3월 보물 1861호로 지정되었다. 1766년 조성된 지장보살도와 사왕도는 보물 1800호이다. 

고려 원종 때 조성된 자진국사부도는 지방문화재 35호이고, 대원사 극락전은 지방문화재 8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503년  아도화상이 봉황의 인도로 터를 잡았다고 하는 백제의 고찰이다. 하늘의 봉황이 깃든 성스러운 땅이라는 의미에서 천봉산(天鳳山)이란 이름도 그리 정해진 듯하다.

 

풍수설의 시각으로 대원사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라 하고 대원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은 탯줄에 비유된다. 그래서 이 절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숨진 어린 영령(태아령)을 위로하는 지장기도 도량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인근의 대원사티벳박물관, 백민미술관,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와 연계되는 교육문화탐방 루트가 있어 해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대원산 벗꽃길은 한국 10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다. 6km 벗꽃길은 풍수로 치면 탯줄에 해당되고 절터는 모태에 해당된다. 하늘의 봉황이 내려앉은 봉소형국에 자리를 잡았다.

 

◎ 일주문을 지나 대원사 안으로

 

우리는 한 꽃? 어떤 의미일까?

 

되돌아본 일주문

 

사천왕루을 향하여

 

사천왕루

 

범종 4물인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범종루나 범종각에 두고 번갈아 가면서 33번을 치는데 이 곳 보성 천봉산 대원사에서는 목어와 운판을 중간에 지나가는 문에 걸었다. 이곳 사천왕루를 지나는 문에는 목어에 흰고무신을 한 짝 걸었다. 어떤 의미일까? 목어는 물속의 모든 생명을 깨우기 위해 치는 소리다. 

 

서방 광목천왕은 비파를 들고

동방 지국천왕은 장도를 들고

 

남방 증장천왕은 용의주를 들고

북방 다문천왕은 보탑을 들고

 

김지장 성보박물관

 

김지장성보박물관은 사천왕루를 2층에 마련했나 보다.

 

김지장성보박물관

 

천봉산 대원사 석좌불

 

대나무군락을 지나서

 

연못에 조그만한 다리를 건너

 

주불전인 극락전에 들어가는 입구 연지문으로 들어간다. 

 

연지문에는 머리로 치는 목탁이 달려 있다. 두 손으로 목탁을 잡고 이마를 세 번 치며 ‘나쁜 기억 사라져라. 나의 지혜 밝아져라. 나의 원수 잘 되거라’라고 염불을 외고 들어가야 한다.

 

연지문을 너머서면 바닦에  상중하생품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동그란 발판을 밟고 지나간다.

 

◎ 금종루

 

금종루

금종루에는 범종이 설치되어 있다.

 

금종루 4면에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백제고찰 현판

 

연화불국 현판

 

◎ 대원사 극락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

 

대원사의 큰 법당인 극락전은 불교의 이상세계인 서방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3년(503), 아도화상이 창건한 백제 고찰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의 8대가람이었다.

고려 원종 1년(1260)에는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 국사가 강화도 선원사에서 팔만대장경 불사를 마치고 내려와 대원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영조 7년(1731) 큰 불로 대원사가 모두 소실되었다. 탁오 선사의 원력으로 4년간에 걸쳐 극락전 등 16동의 건물을 다시 복원하였다.

그러나 1948년 여순사건으로 다시금 경내가 소실되었지만, 다행이 극락전만 불길을 피해 보존되었다. 1982년에 붕괴위험에서 해체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관음보살과 달마대사 벽화가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1861호로 지정받았다. 

 

극락전 삼존불

 

 

 

◎ 보성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보물 제1861호)

관음보살도와 달마 대사도는 대원사 극락전 내부의 동, 서 양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서쪽 벽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는 기암괴석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연화 의자에 앉아 있는 백의의 관음보살과 동자를 그렸다.

 

선재 동자는 관음보살의 뒤편에 서서 청조를 안고 있다.

 

동쪽 벽에 그려진 달마 대사도는 선종에서 즐겨 그렸던 혜가단비의 옛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큼직하게 그려진 달마 대사와 달리 혜가를 작게 그려 달마의 모습을 부각시켜 묘사하였다.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원사 티벳박물관에 소장된 [보성천봉산대원사대법당시왕전여중료중창급단청겸지장개금화각첩기문] 이라는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보물 제1800호)를 조성하면서 1767년 대법당 중창 때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운문사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18세기 중후반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활약한 의겸파 화풍을 보여 주고 있다.

 

 

◎ 무량수각

 

 

◎ 명부전

 

 

◎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일괄(보물 제1800호)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일괄」은 호남 지역의 대표적 화승(畵僧)인 색민(色敏)이 수(首)화원이 되어 1766년(영조 42)에 제작되었으며 명부전(冥府殿)에 봉안되었다. 

 

◎ 극락전 옆 탱화지지대

 

극락전 앞 정원에 아기사슴

 

◎ 태안지장보살상

 

절 마당 한켠에 세워진 태안지장보살상.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낙태아의 영혼을 구제하는 보살로, 주변에 작은 동자승 석상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주변에는 여러 동자승 석상들이 세워졌는데 하나같이 머리에 빨간색 비니 모자를 쓰고 있어 애처롭게 보였다.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죽은 뒤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천상이나 극락으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 아도영각

 

산신각, 아도영각, 성모각 가는길

 

◎ 대원사 자진국사 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35호)

 

부도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고려 원종 원년(1260년)에 이곳 대원사를 중창한 송광사 제5대 국사인 자진국사 원오의 사리탑이다.

높이 2.36m, 8각 원형단으로 부도의 몸체에는 '자진원오국사정조지탑'이라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대일경에 나오는 삼자총지진언 '옴', '아', '훔'의 범자가 새겨져 있다.

나머지 6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앙련과 복련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와 탑신 그리고 상륜부가 온전하게 보존된 고려시대 성보이다.

대원사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소중한 성보문화재이다.

 

 

◎ 성모각

 

대원사 성모각

 

절에 지어진 산신각은 통상 단군산신을 모시는 건물인데, 대원사는 단군왕검 어머니 웅녀황비를 모신다. 이름도 ‘성모각’이라고 별칭이 붙어 있다.

 

여산신을 모시는 성모각 모습. 천봉산은 지리산, 계룡산, 모악산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여산신을 모시고 있다

 

◎ 천불전, 김지장전을 향하여

 

 

◎ 천봉선원

 

 

◎ 천봉산 대원사 다래헌

 

 

◎ 수운당

 

 

◎ 묘길상전

 

 

◎ 천불전

 

 

 

 

 

천불전 앞에서 바라 본 대원사 극락전과 명부전

 

◎ 김지장전

 

 

 ◇ 신라왕자 김지장이 중국불교 지장왕보살이 되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신라왕자 김지장스님 일 것이다.

김지장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500년이 되는 696년에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24살에 출가하여 지장이라는 법명을 받은 뒤 신라에서 선청이라는 흰 삽삽개 한마리와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라는 볍씨와 조, 금지 차라는 신라차를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구화산에 이르러 초인적인 고행과 뛰어난 법력으로 그곳 사람들을 교화하다가 99세 되는 7월 30일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내가 열반한 뒤 내 몸을 화장하지 말고 돌함에 넣어 두었다가 세 해가 지난 뒤 열어보아라. 만일 그때까지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하여라" 스님의 유언에 따라 세 해가 지난 뒤 돌함을 여니, 얼굴은 살아 있는 듯하고 살갗은 부드럽고 향내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797년 구화산 남대에 등신불을 모시고 그 위에 법당을 지으니, 오늘날 구화산의 육신보전이 바로 그것이다. 신라왕자 지장스님의 육신성도를 통해 중국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게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불교에 육신보살의 전통이 생겨났다. 자장스님이 열반하신 음력 7월 30일에는 중국에서 가장 성대한 종교 축제가 열리고 있다. 중국 당시집에는 김지장스님의 <송동자하산 차시 한 편이 실려 있다. 호랑이한테서 구해 준 고아 아이가 절에서 살면서 적막함을 이기지 못하자 시 한수를 지어 마을로 돌려보내니, 이 시가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라 할 수 있다. 대원사에서는 지난 2001년 김지장스님의 위대한 자취를 전하기 위해 김지장전을 건립하고 김지장삼존불을 봉안하였다. 김지장전 벽면에는 김지장스님의 일대기를 14개의 벽화로 그려 소개하고 있다.    

 

 

김지장전에서 바라본 대원사 전경

 

 

◎ 대원사 김지장전 상량문

 

천봉은 무등의 모산이니 창창한 하늘이 보리수 위에 내리고

대원은 이도의 가람이니 훈훈한 옛바람이 일천구름을 이끌고 오는도다.

 

백제의 열반화여 발우마다 둥근 달이 떠오르고

고려의 자진사여 푸른산에 피어난 무봉탑이로다.

 

오호라 문수봉 금빛바람은 밑없는 허공에 숨고

주암호 은물결은 향기로운 구름을 일으키니 때는 신사년 춤삼월 이십오일이로다.

대원사 가람 동쪽 문수봉 자락 신령한 터에 구화산의 육신보살 김지장전을 모시네

 

오늘 대들보 올려 어기영차 상량올리니 사부대중과 천룡팔부 비와 구름 꽃과 나무

어화 벗님네야 우리 손 잡고 육방의 노래를 불러보세

 

대들보를 동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금까마귀 솟구친다. 하늘가득 푸른 쪽빛 깊은 꿈 깨고 보니 나의 고향 여기로세

대들보를 서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서쪽바다로 해가지니 동족하늘에 달이 뜬다. 금빛 하늘에 천년학 돌아오니 옥수로고 금화로다.

대들보를 남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깊은산 옥빛샘물 감로향이 서리고 푸른이끼 돌길마다 약초로세 무생초로세

대들보를 북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미륵의 발밑이로고 밑없는 향기 바다로고 백천의 북두불빛이 빈가슴에 아롱지네

대들보를 위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둥근 달 떠오르니 법계가 맑고 마음속 부처 웃으니 일만번뇌 흔적 없네

대들보를 아래로 내리세 나무아미타불

옛바람 거문고에 이니 삼생이여 꿈이 아닌가 신선은 옷자락에 산빛을 물들이네

 

바라옵나니 이 도량의 영가는 해탈하고 귀신은 어둠을 벗어나지이다.

백호은 계수나무를 돌며 놀고 상서로운 구름을 불러오니 하늘에는 해 달 별의 기운이 밝게 영글고

도량을 찾는이마다 오복이 넘쳐지이다. 다시 바라옵나니 이 산중을 찾는 이들 삼업과 육근이 청정해지고 가는이 옷섶마다 둥근 달 품고 가소서

 

세존열반 2545년 음력 3월 25일 서기 2001년 4월 8일

천봉산 대원사 석현장 합장

 

황희영각으로 향하면서 돌아본 대원사 전경

 

◎ 아도영각에서 바라본 전경

 

 

◎ 장군샘이 유래

 

장군샘은 천봉산 호적봉의 정기가 깃든 물이다.

이 샘물을 마시면 기혈이 열려 호랑이처럼 힘이 세 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보성군은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호국의 성지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는 이순신의 문장은 보성군 열선루에서 작성된 것이다.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군량을 마련하고 군기를 수선하여 전투준비를 하였다. 

장군은 위장과 장이 좋지 않아 복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때마다, 발효차와 고뿔차를 끓여 마시며 복통을 치료하고 전투준비를 할 수 있었다.

보성 대원사의 천봉떡차와 장군샘물은 이순신 장군의 복통을 치료한 여험한 샘물이다

 

 

◎ 용샘의 유래

 

산의 신은 산신이며 물의 신은 용왕이다.

물을 함부로 낭비하고 물이 오염되면 용왕이 분노하여 기근과 홍수가 찾아온다.

보성 지역에 오랜 가뭄이 용샘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데, 기우제가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비가 내렸다고 전한다.

 

 

◎ 보성녹차 시배지

 

보성 대원사는 보성녹차의 뿌리이다.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3년(503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는 동진을 통해 마라난타 스님이 들어왔다.

그가 창건한 영광 불갑사, 나주 불회사, 보성 징광사는 백제불교와 백제 차문화가 시작된 곳이다.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헌다용 은제 찻잔이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 차문화를 다시 쓰게 하였다.

대원사는 고려 중기대 송광사 16국사 중 제 5대 자진원오국사가 가람을 중창하고 다원을 확장아였다.

자진국사는 대원에서 선문염송을 판각하여 수선교재로 삼고 다선일미의 차 문화를 일으켰다.

 

대원은 시간이 사라진 시간이요

천봉은 춤이 사라진 춤이거니

누가 대원의 물로 천봉의 차를 달여

이순신 장군께 올릴 수 있을꼬?

 

 

◎ 국가중요농업유산 보성(대원사) 고차수(350년) 군락지

 

 

 

 

◎ 영의정 방촌 황희 선생 영각

 

황희선생은 조선 세종시대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하시며 청사에 빛나는 위업과 송공이 지대하시어 역사 인물 가운에 온 국민들의 추앙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선생은 90평생에 76년 동안 관직에 헌신하시며 그 중 24년은 재상으로 국정을 총괄하며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이룩한 정치가며 청백리로 오늘까지 모든 공직자들의 귀감이요, 세상사람들의 어버이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자랑스러우며 공경함이 만고에 길이 빛날 분이시다.

 

대원사와 선생의 인연은 1419년 고시 남원에 유배되어 근신하시니 경서와 시운 등을 탐구하던 중 동향의 대선배이신 대덕고승 자진원오국사께서 높은 수행과 선도로 종풍을 크게 진작시킨 대원사를 찾아 사찰의 환경개선과 불사에 조력하였다고 한다.

 

 

그 후 1757년 선생의 넷째 아들 직신공께서 인근 파부현 지금은 겸백)에 터를 잡고 살면서 정책적으로 탄압받던 대원사를 보호하였다.

이와 같이 사찰을 발 보살펴 주신 선생과 아들 직신공의 거룩한 송덕을 영원히 기리고자 대원사 선도들이 영각을 건영하고 선생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여순사건으로 대원사가 불타면서 소실 되었다. 대원사 복원불사를 추진하면서 영각을 복원하고 황씨 광주보성 종친회의 협조로 2002년 (임묘) 사월 초파일에 선생의 영전을 모사하여 다시 봉안하였다.

 

◎ 수관정

 

죽음(잠)을 권하는 정자인 ‘수관정’이 나온다.

 

 

 

◎ 쉼터

 

 

◎ 수관정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전경

 

'빨간 모자 동자승'은 보성 대원사의 또 다른 상징이다. 이 동자승은 낙태나 유산으로 죽은 태아령을 의미한다. 대원사는 인연을 맺지 못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뜨개질로 만든 털모자의 흰색은 아버지, 붉은색은 어머니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