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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23.02.05. 경남 고성 거류산(571.7m)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3. 2. 6.

1. 언제 : 2023.02.05.(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구간 :  엄홍길전시관-문암산-거류산성-거류산-봉림마을-고성동부농협

 

 

4. 산행소감

오늘은 음력 1월 대보름이다. 24절기 중 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입춘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음력 대보름엔 오곡밥을 지어 먹는 세시풍속이 있다. 일년 동안 잡귀를 물리치고 무병 장수한다는 의미로 오곡 밥을 먹는 날이다. 또 오늘은 입춘으로 봄의 문턱을 넘는 날이다. '입춘대길' '가화만사성' 이란 한자 성어를 대문에 붙이고 가정에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남녁의 봄바람을 맞으러 경남 고성으로 향한다. 거류산은 571.7m의 그리 높지 않는 산이지만 마을에서 바라보면 그 산세가 대단하다. 고성 동쪽 거류면에 솟은 거류산은 고성벌판과 당동만에 안긴 아름다운 산세로 찾는 이들이 많다. 고성은 물론 다도해 풍광을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어 특히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3시간 정도면 산행이 가능하다. 정상에 오르면 수천년 전 소가야 때 신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거류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벽은 주로 절벽을 이용하고 그 사이에 돌을 쌓아 보강한 형태로, 둘레는 1,400m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 훼손되고, 현재 둘레 600m, 높이 3m, 폭 4m 정도만 남아있다. 성 남쪽에 문터가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다.

지형상 성내를 서쪽으로 택한 것은 동쪽과 남쪽 바다를 경계하여, 신라는 물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함인 듯하다. 소가야의 중심지였던 고성읍성의 축조시기를 생각하면, 이 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거류산에서 바라보면 당항포 바다가 아름답게 조만된다. 갑오년(1594) 3월3일~6일 사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선 31척을 완전 격퇴시키고 불살라버린 당항포해전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5. 산행추억

 

◎ 엄홍길전시관

 

 

 

 

◎ 거류산 산행 시작

 

엄홍길 전시관 앞에서 단체 인증

 

거류산 등산 안내도

 

산행 초입 이정표

 

산행 초입에는 철쭉나무가 푸르다. 올 봄 4~5월 철죽이 필 때 이곳에서 철쭉 축제와 거류산 산행 마라톤을 하기도 한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의 고향으로 엄홍길 대장님이 직접 참석하여 더욱 자리를 빛내기도 한다.

 

 

거류산 방향으로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이 겨울 푸른 철쭉 밭을 지나고

 

산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한참을 올랐나. 산길에 '종오소' 라는 장승이 반긴다.

 

'나를 따르라' ?

 

한참을 올랐더니 땀이 나네! 아이고 겉옷을 벗자~

 

제법 급경사 오름길을 오른다.

 

오름길은 소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어 솔향이 그윽하다. 이런 산길이 있어 좋다.

 

한참을 오랐나!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하늘금에 벽방산이 우뚝이다. 고성 4대 명산 중에 하나다. 벽방산 아래로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저 멀리에는 남해 통영의 다도해 섬들이 아기 자기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구절산 방향과 그 넘어 다도해를 담았다. 

 

산길을 오르면서 건강한 소나무 그리고 나무계단! 공기가 맑다. 포근하다. 봄이 오고 있다. 오늘이 입춘이던가!

 

전망 좋은 바위 조망터가 나오고

 

고성시와 들녁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전 소가야는 저기 고성시가 있는 곳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대원님들

 

 

전망 좋은 조망터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엄홍길기념관에서 거류산 정상까지 3.2km이다. 이곳이 1.6km로 가운데 지점이다.

 

문암산(459) 표지가 나무에 걸려 있지만 

 

거류산 종합안내도 현위치 : 문암산

 

소나무에 걸린 문암산 표지에서 한 장

 

그러나 돌탑을 쌓고 문암산 정상석을 깜찍하게 올려 놓았다.

 

인증 한 장 남기고

 

거류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워매~ 저기가 거류산 정상이네~ 그란디 저 것은 뭐시다냐? 거북이 아녀! 남해 거북이가 거류산 정상을 향해 기어 오르고 있구만? 

 

반가운 거북이와 입맞춤을 해 본다. 아슬 아슬 입맞춤 하느라 힘들다 

 

장수거북바위

거류산 8부 능선에 위치하여 정상을 향해 기어 오른 것만 같은 거북바위는 자손이 귀한 집안의 아낙네가 오르면 '자손의 번창과 장수 그리고 재물운도 따른다'고 하는 설도 전해오고 있다.

 

엄홍길기념관에서 2.4km 지점 이정표를 지난다. 

 

휴게소 고개이다.

 

 

거류산의 유래

 

고성 향토수호사 거류산성 편에는 거류면의 우뚝한 산봉의 좌우로 나란히 솟은 군자봉 등잔봉 주의를 둘러싼 성으로 2000년 전 소가야의 산성이라 하여 태조산이라 불렀다. 세종조의 지리지에는 가라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가지 문헌을 종합해 보면 원래 소가야의 주산으로 격에 맞는 명칭인 산지조종의 관으로 태조산으로 이름한 것을 조선조 말엽에 와서는 거류산이라 이름하였다. 이 산정의 샘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자연수가 솟아나고 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이 산정에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다. 또한 이 산정에는 명당이라 하여 밀장한 사례들이 있어 가뭄이 계속되면 묘를 파야 비가 온다고 믿어 군민이 일어나 묘를 파고 시위를 하는 사건도 많았다고 고성 향토수호사에 적고 있다. 그리고 이 산아래 22개 마을에는 장원급제를 비롯한 많은 인물이 배출 되었다.

 

◎ 고성 거류산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고성 거류산성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조성된 산성으로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에 있다. 거류산성은 소가야 신라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전하고 있으나 발굴 조사 결과 나말려초에 축조된 것으로 확이되었다. 

 

거류산성은 고성군의 동쪽에 위치한 거류산(571,7m)의 정상부에 있는데, 얕은 계곡을 2개 포함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은 거류산 정상부 구릉과 남동사면에 축조하여 고성읍내에서 잘 보이며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게 축조하였다.

 

북쪽 부분에는 경사가 급한 벼랑이 있어 성곽을 축조하지 않은 곳도 있으므로 미완결형으로 추정되고, 전체 둘레는 약 1,381m이다. 평명 형태는 자연 지세에 맞추어 축조되어 부정형이며, 성내에는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소가야 마지막 왕의 피신처로도 사용되었던 거류산성은 신라가 가야를 합병함으로 폐성이 되었지만 그 일부를 복원하여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체성의 축조 방법은 일부는 큰 자연 암반이 있을 경우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벽돌처럼 가공한 자연석으로 크기 35*25cm, 22*17cm로 가공하여 바른층 쌓기로 축조하였다. 수직으로 쌓지 않고 계단식으로 들여쌓았으며, 현재 잘 남아 있는 곳의 높이는 2m 정도이고 동쪽의 성곽은 대부분 복원되어 있다.

 

 

고성 거류산성 기념 한 장 남긴다.

 

감자님이 예쁘게 잘도 담아 주셨다. 감사한다.

 

거류산성 기념하는 대원님들

 

거류산성의 의미를 되새기며

 

거류산성을 지난다.

 

거류산 정상 0.2km를 남기고 이정표

 

돌탑무리를 지나

 

◎ 거류산 정상

 

거류산 정상석 인증

 

거류산

거류산은 고성에서 동쪽으로 3km 가량 떨어진 들판 가운데 솟아 오른 해발 570.5m의 고성의 명산으로 산 모양이 알프산맥의 마터호른산과 닮아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 불리운다. 먼 옛날 여염집 규수가 부억에서 밥을 짓다 밖을 나와 보니 산이 움지이는 것이 보였다. 그 아낙이 놀라서 '산이 걸어간다'라고 소리쳤고 산은 누가보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니 그자리에 서고 말았다. 걸어가던 산이라는 뜻으로 '걸어산'으로 불리다 오늘날 거류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거류산의 지명 변천사

소가야 : 태조산 → 조선초 : 거리산 → 조선말 : 거류산

 

한반도를 닮은 당동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류산 정상에 오르면 눈부시게 푸른 다도해의 아름다움과 특히, 한번도를 닮은 당동만은 등산의 피로를 확 날려버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뽐내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거북바위와 한반도를 닮은 당동만! 왼쪽 하늘금엔 구절산이다.

 

거류산 정상에 있는 장군샘터와 거북바위 방향 이정표. 우리는 거북바위를 만나러 간다.

 

내려오는 길목 암릉에서

 

 

거류산 전망대 갈림길 이정표

 

 

◎ 당항포 해전(1594. 갑오년 3.3 ~3.6)

 

거북바위에서 바라 본  당항포 

 

저기 당항포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시를 받은 어영담이 일본 수군을 완벽하게 격침시켰다.

 

 

난중일기 내용

 

1594. 3. 3 : 맑음.  ~ 중략. 유시에 벽방의 망장(제한국)이 보고한 내용에. "왜선 여섯 척이 오리량, 당항포 등지에 들어와 흩어져 정박해 있다."* 고 한다. 그래서 바로 전령을 내려 수군의 대군을 소집시켜 흉도** 앞바다에 진을 치게 하고, 정예선 서른 척은 우조방장 어영담이 거느리고 적을 무찌르도록 했다. 초저녁에 배를 출발 시켜 지도에*** 이르러 밤을 보내고 사경에 출발했다.

 

* 갑오년 3월 10일에 올린 「임진장초」를 보면, "3월 3일에 벽방의 제한국 등의 보고에, 오늘 새벽 큰 왜선 열 척, 중성 열네 척, 소선 일곱 척이 영등포에서 나오고, 스물한 척은 고성 당항포로, 일곱 척은 진해와 오리량으로, 세척은 저도로 향하고 있다.' 라고 했다.

** 흉도 : 경남 거제시 사동면 오량리 고개도(고개섬)

*** 지도 : 경남 통영시 용남면 지도

 

1594.3. 4 : 맑음. 사경에 배를 출발시켜 진해 앞바다에 이르러 왜선 여섯척을 뒤쫓아 붙잡아서 불태우고 저도*에서 두 척을 불태웠다. 또 소소강**에 열네 척이 들어와 정박했다고 하기에 조방장과 원 수사(원균)에게 나가 토벌하도록 명령을 전했다. 고성 땅 아자음포***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 저도 : 경남 마산시 구산면 구복리에 딸린 섬. 돌섬

** 소소강 : 경남 고성군 미암면 두호리 하천(지금은 고성천)

*** 아자음포 : 경남 고성군 동해면

 

1594.3.5 : 맑음. 겸사복(윤봉)을 당항포로 보내 적선을 쳐부수고 불태웠는지를 탐문케 하였다. 우조방장 어영담이 급히 보고한 내용은 "적도들이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밤을 틈타 도망했기에 빈 배 열일곱 척을 남김없이 쳐부수었다."고 했다. ~ 생략

 

1594. 3. 6 : 맑음. 새벽에 망군이 보니, 적선 사십여 척이 청슬*로 건너온다고 했다. 당항포 왜선 스물한 척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긴급 보고가 왔다. ~ 생략 

 

* 청슬 : 경남 거제시 사등면 지석리

 

 

 

응포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여 지휘체계를 재정비하고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전력보강에 박차를 가했다. 명과 왜가 주도하는 종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전쟁은 소강 국면이였지만 왜군은 부산과 영남 해안 일대에 증원병력과 전선을 증원하여 새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었다. 왜적들은 인접지역의 민가를 약탈하여 분탕질을 계속하여 민초들의 고충은 날로 커져가고 있었고, 견내량 안쪽을 수시로 정탐하며 조선 수군의 방비를 시험하고 서해로 진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견내량 전방 당항포에 왜선이 출현했다는 정보를 받은 이순신 장군은 지체없이 출동명령 내렸다.  이 때 연합함대의 전선 규모는 124척에 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장군은 우선 20척의 예비대를 견내량에 위치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케 하고 31척의 선봉대를 어영담이 지휘토록하여 출격시켰다. 또한 본대는 영등포와 장문포 일대에서 학익전을 형성하여 부산방향으로의 적 도주를 차단함과 동시에 적 증원병력을 저지하도록 하였다. 당항포에서 바라볼 때 부산 방향으로 가기 위해사는 영등포 앞을 지나야 하고 서해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견내량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장군은 적의 이용 가능한 통로를 미리 막아버리고 정예함선 31척을 당항포로 투입시켜 섬멸하는 작전을 시행한 것이다.

 

적함 규모는 31척이였는데 어영담이 이끄는 선봉대는 3월 4일 새벽 야음을 이용해 은밀히 접근하여 기습 공격을 가함으로써 현장에서 10척의 배를 격침시켰다. 나머지 21척의 배는 당항포 안으로 도주하였으나 독안에 든 쥐의 형국이었다. 5일 새벽 어영담의 돌격대를 당항포 포구 안으로 돌격시키니 적들은 육지로 도망가버리고 남은 배 21척은 모두 불살라버렸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전투력을 바탕으로 적의 도주로와 증원병력의 통로를 모두 차단하여 포위망 안에 적을 고착시키고 과감한 돌격으로 적선을 모두 격침시킨 실로 완벽한 작전이였다.

 

지금은 고요한 호수 같은 당항포 앞바다지만 1594년 3월 3일에서 6일까지 당항포 해전이 있었을 때 그 긴장감과 회오리 치는 전장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순신 장군의 철저한 전략과 완벽한 준비 그리고 목숨을 내건 어영담 장군과 조선수군들의 용감한 자세 이런 모든 것들이 당항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실로 고개 숙여 깊은 마음으로 그날의 함성을 듣는다.

 

 

◎ 거북바위와 당항포  풍광

 

거북바위에서 소나무 사이로 당항포를 배경으로 기념 몇 장 남긴다.

 

 

 

거북바위는 오름길 능선에서 바라 보아야 거북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장

 

당항포와 앞에 보이는 구절산과 한반도 닮은 당동만과 하늘금의 벽방산을 파노라마 기능으로 담았다. 사진을 누르면 실제 크기로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거북바위에서 바라본 거류산 정상과 거류산전망대

 

하산길에 만난 기암에서 한 장

 

거북바위 아래 이정표 우리는 감서리로 하산

 

 

감서리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되돌아 본 거류산 정상과 거북바위 위용

 

하산길 조망터에서 

 

하산길 조망터에서 당항포 바다와 청명하고 파란 하늘을 담았다.  

 

거류산에서 1.0km 이정표 감서리로 향한다.

 

이정표

 

감서리로 가는 길목에 조망터에서 한반도를 닮은 당동만을 바라본다.

 

당항포 방향 경관

 

바로 앞에 구절산이 우뚝이다. 오늘 A코스는 구절산과 구절산 기암능선 - 구절폭포 - 폭포암 - 출렁다리를 오른다. 구절산에서 바라보면 갑오년 당포항 해전이 있던 역사적인 당포항이 더욱 선명히 보였을 것 같다. 구절산은 다음에 기회에 오르기로 한다. 

 

한번 더 한반도를 닮은 당동만을 조망하고 하산을 한다.

 

하산 중에 만난 멋진 소나무

 

감서리로 그냥 직진하여도 되지만 선행자가 봉림마을로 향한다.

 

봉림마을을 향해서

 

봉림마을 향해 간다.

 

봉림마을로 가는 길목에 이정표

봉림마을과 당동리는 이곳에서 정반대로 갈라진다. 우리는 봉림마을로 향한다.

 

마을로 하산

 

워매~ 매화가 피었네! 올해 두번째로 만난 매화다. 지난 주 하동에서 만나고 이번주는 고성에서 매화를 만났다. 입춘이다. 남녁 꽃소식은 복수초가 제일 먼저이고 다음이 매화인데 무등산 복수초를  아직 못 보았다. 무등산 복수초도 이맘때 쯤 예쁘게 활짝 피었겠지?

  

봄의 전령사 매화를 보니 기분이 좋다. 활짝 핀 매화 꽃 잎술이 앙증맞다. 참으로 반갑고 예쁘다.

 

남녁엔 벌써 봄이 왔다.

 

봉림마을에서 바라본 구절산과 거북바위! 저기 뾰쪽 보이는 봉우리는 거북바위다.

 

봉림마을회관 경로당

 

봉림마을 앞 차도(거류로)에서 좀더 멀리 바라보니 거류산 정상이 빼꼼이 보인다.

 

거류면 당동리 쪽으로 이동하면서 거북바위와 거류산 정상이 뚜렷이 구분되어 보인다.

 

좀더 댕겨서 담아 본다.

 

 

오늘 경남 고성 거류산을 오르면서 거류산성과 거북바위, 한반도를 닮은 당동만 그리고 갑오년에 벌어진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 해전의 역사적 흔적을 살펴보았다. 의미 있는 산행이였다. 함께한 대원님들과 걷는 길은 항상 힐링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