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싶었다. 오랜시간 산행에 집중하다보니 트레킹 기회를 잡지 못했다. 퇴임 후 시간이 좀 여유로와 트레킹을 하여보자 맘먹는다. 지리산 둘레길 뿐만아니라 제주올레길, 남파랑, 서파랑, 해파랑, 평화누리길, 남도명품길 등 각 지역의 트레킹 길을 걸어보자. 그 첫번째로 지리산 둘레길을 제일 먼저 가보고 싶다. 오늘 드디어 그 시작을 한다. 주천에서 운봉사이의 둘레길은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이다. 구룡치를 넘어가는 긴 오름길에 싱싱하게 자란 소나무에서 뿜어나오는 생명력은 솔향과 어울려 그야말로 기분 업, 힐링 구간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에 살던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옛길을 복원한 것이다. 옛길과 똑같지는 않지만 옛 정취와 숨결을 어느정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지리산의 기운이 오래도록 진하게 남아 긴 여운이 온 몸을 휘어 감는다. 기분이 좋다. 앞으로 22구간을 안전하게 트레킹하길 기원하다.
6. 트레킹 추억
지리산 둘레길
- 지리산을 둘러싼 80여 마을을 잇는 22구간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해 트레킹이 가능하도록 환형으로 조성되었다. 차량통행이 많은 아스팔트 길, 안전이 우려되는 위험한 길, 해발 고도가 너무 높은 길 등은 연결을 위한 최소한의 구간을 빼고는 제외시켰다.2007년 1월부터 조사·설계·정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2012년 5월 전체 구간을 개통하고, 2014년부터 순환로를 포함해 22구간이 운영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자 묵었던 이곳에는 헤어릴수 없는 사람들이 쉬었다 갔다. 길이 새로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로 뿌리가 드러나 복토를 하고 서어나무의 안녕을 빌었다. 세월의 녹이 낀 서어나무는 속이 비었다. 비었으나 생명의 줄기를 이어간다. 신비롭다. 개미정자로 일컫는 이곳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 여기서 잠이든 의병장 조경남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 뜯어 위급함을 알렸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 서어나무 쉼터는 재너머 지리산 속 주민들이 남원장을 다녀갈 때 이고 지고 가던 짐보따리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쉬어가던 옛주막터이기도 하다.
사무락다무락이란 곳이다. 작은 돌탑 밭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이다. 다무락은 이곳 사투리로 담벼락이라는 뜻. 사무락은 바람을 뜻하는 ‘소망(所望)’이 변한 말이다. 한마디로 ‘소망을 비는 돌담’이다. 길손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탑에 돌을 하나씩 놓으며 소원을 빈다. 늙은 소나무는 한 발로 서있는 학처럼 외로 꼬고 먼 산을 보고 있다. 그 시선 끝엔 지리산 서북능선 산들이 그림처럼 겹쳐있다.
목돌(목 조임석) 일제 강점기 일제는 1910년부터 백두대간은 물론 한반도 주요 길지 혈맥에 쇠말뚝을 박거나 인위적으로 길을 내어 우리 민족정기의 기와 맥을 끊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남원문화원에 따르면 '이 목돌 역시 일제가 백두대간의 맥을 끊기 위해 노치마을 앞들에 길이 100m, 폭20m, 깊이 40m의 방죽을 파 지맥맥을 끊었고 그 안에 목돌 3기(6개)를 설치했다'고 한다. 노치마을 앞들은 덕음산에서 고리봉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으로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목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이곳에 목돌을 설치, 숨통을 조이도록 했다.
목돌은 가로 120cm, 세로 95cm, 두께 40cm 크기로 반원을 이루며 두개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조임석이 되는데 노치마을 앞들에 경지정리를 하던 중 땅속에서 5개가 발견되었다. 그동안 가정집 정원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13년 제 68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남원문화원이 목돌을 이곳에 옮겨 전시하고 일제의 만행과 악행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표본으로 삼고 있다.
운봉은 해발 450~500m의 고원마을.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를 등에 지고 거대한 평원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땅은 기름져서 부농들도 많다. 조선시대에 운봉은 이씨 왕조의 성지였다. 고려말 이성계가 운봉에서 아지발토란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소위 황산대첩.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선비들도 승전비가 있는 고을 앞에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했다는 것이다. 지리산이 적을 막아주고 들은 넓은 운봉들판을 놓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리산을 경계로 영토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래서 운봉 주변을 둘러싼 지리산 줄기엔 산성터만 여러 개 남아있다.
동편제
전라도 동부지역에 전승되는 소리를 동편제라고 한다.전승지는 전라도 동부지역으로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지역, 즉, 운봉·순창·구례·흥덕 지방 등이며, 웅건(雄健)하고 청담(淸淡)하며 호령조가 많은 우조(羽調) 분위기의 판소리가 특징이다. 시작이 썩 진중하고 구절의 끝마침을 되게하여 쇠망치로 내려치는 듯이 노래한다. 일반적으로 굵직한 시김새를 사용하며, 마디마디 엄성이라 하여 무거운 발성을 쓴다. 동편제 소리는 송흥록(宋興綠)의 법제를 표준으로 하여 전승되어 온 것이다. 송흥록의 소리제는 그의 아우 송광록(宋光綠)과 송흥록의 수제자인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다시 송광록의 소리제는 그의 아들 송우룡(宋雨龍)에게 이어졌고, 송우룡의 소리제는 송만갑(宋萬甲)·전도성(全道成)·유성준(劉聖俊)·이선유(李善裕)·송업봉(宋業奉)에게 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