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와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를 잇는 구간.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산행하는 즐거움이 있는 산길로,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른다. 예전에는 장날을 따라 장사꾼들이 함양, 산청, 덕산을 오갔던 보부상 길이었다.
4. 산행 소감
지리산 둘레길 5구간(동강~수철)은 아주 오래전에 어떤 산악회를 따라 지나간 추억이 있다. 산행 초보때다. 상사폭포가 인상적이였다. 누군가 저기가 왕산이며 필봉산이라고 하면서 참 좋은 산이라고 말 할 때만 해도 부럽고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이번 구간은 왠지 고향에 가는 것 같은 설렘이 있다. 왕산과 필봉산도 가본터라 이번 구간은 왠지 차분하고 포근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슴 저린 구간이기도 하다. 이 구간에는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 있다. 예전엔 이곳을 지날 때 그냥 추모공원이구나 하고 지났는데 이번은 다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한국전쟁 중에 저질러진 수 없이 많은 양민 학살 흔적들을 마주하며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산청과 함양 지리산 자락에서 우리 국군이 빨치산 공비 토벌 작전을 실시하면서 무고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 때 희생당한 700여명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새운 추모공원이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다. 사실은 공원이름을 산청함양양민학살사건추모공원이라고 해야 맞다.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며 옷깃을 여민다.
슬픔과 고통의 음지(陰地)의 과거를 극복하고 역사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상생(相生)의 양지로의 화합을 창출해 나가 미래의 초석을 낳는 디딤돌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임.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이 곳은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합동묘역으로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인 "견벽청야"라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서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학살하였던 바, 이 때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모신 묘역이다. 합동묘역 조성과 위령탑 건립은 1996년 1월 5일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공포와 1998년 2월 17일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의원회의 사망자 및 유족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2001년 12월 13일 합동묘역 조성 사업 착공 이후 4년에 걸친 공사진행으로 준공에 이른 것이다. 이 묘역에서는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국민은 하늘과 같고 역사는 정의의 편에 있으며 인명은 절대의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희생된 영령들이 우리 후손에게 남겨 주고 있는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산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 관광명소로는 생초조각공원, 동의보감촌, 지리산 둘레길이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신 냉전체제가 새롭게 형성될 때 공산당을 반대한 우익 청년들이 대거 월남하여 서북청년단을 만들어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고 좌익은 빨치이고 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유난히도 독하게 무고한 양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였다. 이승만은 정권을 잡기 위해 이들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고 이승만의 비호아래 서북청년단은 제주 4.3을 일으켰고 남한 전역에서 경찰과 군인이 되어 무고한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였다. 그 잔혹함이 어찌나 컸던지 백색테러집단이라고 하였다. 지리산 자락 산청과 함양에서도 우리 국군이 지리산 빨치산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면서 대량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일은 두고 두고 가슴 아픈일이다. 얼마나 애통하고 가슴찢어지는 일인가?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억울한 죽음들이 저렇게 이땅에 뭍혀 통곡하고 있지 않는가? 억울하게 학살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이땅의 자주통일과 인권, 평화, 생명 사랑을 염원하며 옷깃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