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구간. 지리산 속 6개의 산중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는 길로,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등구재와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옛길과 임도 등으로 구성된 두 코스로 되어 있다.
- 금계마을–의중마을–벽송사-모전마을(용유담)–세동마을–운서마을–구시락재–동강마을
4. 산행 소감
기온이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습하고 덥고 기온이 높아진다. 차쯤 산행하기 어려워진 시기이다. 계곡은 아직은 차가워 산행하기가 이르고 이런 시기에는 둘레길이 최고다. 뙤약볕에 지루한 감도 있지만 오늘은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이다. 이구간에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지리산을 처음 둘러 볼 때 추성리 칠선계곡 입구에 있던 지리산 빨치산토벌구역 안내가 인상적이였다. 그 때 백송사 가는길에 인상 깊게 만났던 목장승은 없어지고 새로 만든 목장승이 우리를 맞이 한다. 그 후 오래전에 '구름은 바람없이 갈 수 없고 인생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고 읋픈 지리산 최고의 산꾼! 유목민 대장님과 함께 걸었던 길목에서 석가모니를 석굴에 정교하게 조각하여 모시고 있는 서암정사는 참으로 인상적이였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북한군의 병원으로 사용한 탓으로 완전히 소각되어 자취를 감춘 자리에 다시 절집을 지은 벽송사에 대한 추억이 강하다. 미인송은 잘 있는지 궁금하다. 용유암과 엄천강의 유유함을 오랜 추억으로 담고 있는 구간이기에 이번 구간이 더욱 설레이기도 한다. 오늘 그 설렘을 다시 맛보는 하루였다.
5. 산행 추억
지리산 서암정사
지리산 산맥 위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한국의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추성리 갈림길에서 널찍한 도로를 따라 400m 가량 표지판을 쫓아가면 '백천강하만계류, 동귀대해일미수'(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내 흘러, 바다에 돌아가니 한물맛이로다)란 돌기둥이 참배객을 맞는다.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란 별칭이 말해주듯, 온 도량이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장엄한 마애불로 채워져 있다. 서암정사의 중심은 불경속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바윗굴 속에 재연해놓은 극락전 석굴법당이다. 이곳에는 아미타불을 위시해 8보살,10대제자, 신장단 등이 장엄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돼 있다. 이와 더불어 천연거암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비로전, 독수성, 주산신, 배송대, 용왕단 등은 불경에 담긴 갖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도량 곳곳의 석조 현판과 주련, 비석에 새겨진 글귀들은 광대한 부처님의 진리를 암시하고 있다.
서암정사는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원응스님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류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발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서암정사에는 또 원응스님이 15년간 서사해 완성한 약 60만 자로 이뤄진 금니화엄경(金泥華嚴經)을 비롯해 다수의 사경 작품이 소장돼 있다. 원응스님의 사경은 한국불교에서 단절됐던 사경수행(寫經修行) 전통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다양한 불교 석조각과 한 스님의 사경수행 과정을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곳이 서암정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암정사(함양)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서암정사 사천왕상
사천왕은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말한다. 사대천왕, 또는 호세사천왕으로도 불리며 지국천왕은 비파, 다문천왕은 탑, 광목천왕은 용, 증장천왕은 검을 들고 있다.
예로부터 한국사찰에서는 천연 거암에 부조하여 웅장함과 기상을 높였다. 서암정사 사천왕은 자연바위를 이용해 일렬로 배치한 것이 특징적이다. 석주 쪽으로부터 증장천왕, 광목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의 순서로 부조되어 있다.
서암정사 사천왕상은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상을 참고해 조각했다. 경주 석굴암 사천왕상을 본떠 놓고 조각을 하면서 느낀 것을 사천왕이 밟고 있는 악귀들의 옷매무새가 흔히 역사서에 그려진 왜구들의 모습이라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신라가 추구하는 이상국가인 불국토를 괴롭히는 왜구를 불법을 방해하는 마구니로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석굴암은 동해바다를 멀리 바라다보고 있으니....
그러므로 이런 불가의 밑바탕에는 불력을 빌어 국가를 수호하고자 하느 신라인들의 호국신앙을 읽을 수 있겠다.
서암정사 대웅전 주련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의 몸 법계에 충만하사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일체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시니
隨緣赴感靡不周(수연무감미부주) 인연을 따라 감응함이 두루 하지만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이 보리좌(菩提座)에 항상 계시네
지리산 서암정사 범종원문
나무 남방화주 지장보살/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나무 대원본존 지자보살
원컨대, 이 종소리 온 새상에 두루하여/철의 성곽 어두움 모두 밝히리/우리 조국 남북통일 속히 성취하고/세계가 평화롭고 온 인류는 즐거우며/자비광명은 더욱 빛나 온 세상에 두루하여/법의 바퀴 항상 굴러 끝이 없어라
또한 원컨데
6.25 전쟁으로 인하여 이 강토에 희생자 및 지리산 주변에서 희생된 원혼들과 이 도량 내외 유주무주 고흔들은 원한과 미움 모두 여의고 다함께 아미타불 큰 원의 바다에 들게 하소서
그리고 원하오니
오늘 여기에 모인 대중은 현세에 수복이 산과 바다와 같이 크고 넓어지고 선망부모는 극락세계에서 왕생하며 세세생생에 보살도를 닦아 성불하게 하여지이다. 불기 2552년 무자 세존응화일
지리산은 흔히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품어주심의 의미이다. 실제로 그 시절은 무척 살기에 힘들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숨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 왔다. 아직도 둘레길 여기저기에는 예전에 산비탈을 일구어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리산은 그들을 다 품어 주었다. 신분이나 사상, 출신, 가진 것들을 가리지 않았다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