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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3.07.02. 포항 내연산 보경사와 보현암 탐방

by 하여간하여간 2023. 7. 4.

트레킹을 하거나 산행을 하고 그 곳에 자리한 절집에 대하여 여러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리하여 오고 있다. 나의 또 다른 취미가 되었다. 이를 통하여 불교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사뭇 재미 중의 하나다. 이번에는 포항 내연산 보경사이다. 포항 내연산 12 폭포 계곡 숲길 트레킹을 하고 이곳의 유명한 보경사를 찾았다. 신라 때 창건한 절이니 천년의 고찰이다. 보물이 5점 있는데 나는 경내에 있는 2점만 보고 경 밖의  3점은 시간 제약으로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시간이 여유로울 때 다시 찾기로 한다.

 

 

 

◎ 포항 내연산 보경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02년(신라 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대웅전

723년(신라 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745년(신라 경덕왕 4) 철민(哲敏)이 중창하였고, 1214년(고려 고종 1) 주지 승형(承逈:圓眞國師)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완비하였다. 1677년(조선 숙종 3)에는 도인(道仁)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적광전

그때 초한(草閑)이 시주를 얻어 금당을 중건하였고 관음전은 도의(道儀)가, 명부전은 석일(釋一)이, 응향전(凝香殿)은 국헌(國軒)이, 향적전(香積殿)과 국사전(國師殿)은 학열(學悅)이, 열반당은 신특(信特)이, 국사전 정문과 사천왕각 및 식당은 비구니 총지(摠持)와 신원(信遠)이, 팔상전은 지총(志聰)이, 종각은 영원(靈遠)이 각기 분담하여 중건, 중수하였다.

 

또한, 그와 동시에 도인은 청련암(靑蓮庵)을 창건하고 탁근(卓根)은 서운암(瑞雲庵)을 창건하였다. 1725년(조선 영조 1) 성희(性熙)와 관신(寬信)이 명부전을 이건하고 단청하였으며, 성희는 괘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의 사세가 가장 컸다고 전한다.

 

적광전 앞 오층석탑

 

1916년부터 1922년까지는 장욱(壯旭)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고 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쌓았으며, 교량을 시설하고 전답을 사찰에 헌납하였다. 1917년 10월에는 태인(泰仁)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上持殿)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광전 삼존불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대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석가모니의 팔상시현(八相示顯)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

 

이 밖에도 명부전·산신각·원진각(圓眞閣)·일로향각(一爐香閣)·동로각(東爐閣)·누각·수월당(水月堂)·천왕문·일주문·원진국사비각·설산당비각(雪山堂碑閣)·창고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원진국사비와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보경사부도가 있으며, 조선시대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이 있다.

 

 

그 밖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 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부도로는 동봉(東峯)·청심당(淸心堂)·심진당(心眞堂) 등 11기가 있다.

 

현존하는 산내암자로는 동쪽 50m 지점의 청련암과 서쪽 100여m 지점의 서운암, 보경사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문수암(文殊庵)과 보현암(普賢庵)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상태사(常泰寺)·성도암(成道庵)·계조암(繼祖庵)·내원암(內院庵)·대비암(大悲庵) 등의 유지가 있다.

 

 

◎ 포항 보경사 일주문과 해탈문

 

내연산 보경사 일주문

 

해탈문

 

◎ 포항 보경사 천왕문

 

내연산 보경사 천왕문

 

이 건물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는 수문장 격인 사천왕을 봉안 곳이다. 사천왕이란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말한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산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 12년~14년(1686~1688)에 처음 지어졌고, 이후 1761년에 중건한 것이며 모셔져 있는 사천왕은 불기 2524년(1980)에 새로 봉안하였다.

 

서방의 광목천왕과 북방의 다문천왕

동방의 지국천왕과 남방의 증장천왕

 

 

천왕문을 통해서 본 오층석탑

 

천왕문을 지나면 불토국에 온 듯 하늘이 열리고 넓은 마당 가운데 오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절집은 전체적으로 절재된 배치다. 특히 천왕문 - 적광전- 대웅전이 일직선상에 있고 대웅전 뒤에 있는 각 전각들이 옆으로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전체적으로 정돈감을 보여 준다. 

 

 

◎ 보경사 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03호)

 

포항 보경사 오층석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03호)

 

이 탑은 고려시대의 5층 석탑으로 높이는 약 5m이다. 일명 금당탑으로도 불린다.

「보경사금당탑기」에 의하면 도인, 각인, 문원 등이 고려 현종 14년(1023)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1층 기단 위에 5층 석탑을 올린 모습으로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올렸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주는 석탑이다. 

오층 석탑 1층 석탑 뒤에는 부처님 진시사리를 보관한 창문과 문고리 그리고 자물쇠통의 장식이 선명하게 조각되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 포항 보경사 적광전(보물 제1868호)

 

포항보광사 적광전(보물 제1868호)

 

이 건물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건한 것으로 그 후 몇 차례 중수가 더 있었다. 맞배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다포집으로 조선후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보경사 경내의 현존 건물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은 맞배지붕으로 구조적으로나 의장적으로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의 특징적인 건축수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 삼존불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셨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 중심칸에 들어가는 바닦에는 옥으로 된 돌을 깔았다.

  

 

전면 중심칸에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이 결구되어 있는데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을 새기는데 비해 사자상의 조각이 정교하고 국내사례가 적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 포항 보경사 적광전 비로자나불도

 

 

포항보경사비로자나불도는 1742년(영조18) 뇌현, 밀기, 석잠 등 조선 후기 경북지방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높이와 좌우 폭 모두 3m에 가까운 대형 삼배 바탕에 붉은 안료를 칠한 뒤 인물과 의복 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선묘불화이다. 특히 왕실의 금선묘불화에 비해 민중불화의 일종인 삼배 바탕 선묘불화는 18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중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문수, 보현보살과 사천왕 등 권속들이 둥글게 애워싼 원형구도로서, 이렇듯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배치한 불화중에는 이 작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 붉은 바탕과 백색 선묘, 섬세한 필선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장식과 문양 등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오묘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재작 시기와 제작자가 뚜렷하여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 도상 및 선묘불화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포항 보경사 범종각

 

범종각

 

1층에는 범종이 있고

 

2층에는 법고와 목어가 있다.

 

 

◎ 포항 보경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

 

 

이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건한 것으로 그 후 몇 차례 중수가 더 있었다. 현재의 건물에는 1932년의 대대적인 중수에 의한 양식적 특징이 주로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 목조불전으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석조삼존불좌상

본존불(중앙), 제화갈라보살(우), 미륵보살(좌)

 

 

◎ 포항 보경사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세존의 일대 생애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팔폭 화면에 그린 팔상탱화를 모신 전각이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 3년(1678)에 지총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이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주존으로 모시고 양쪽에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모시고 양 벽에 각 네 폭씩 팔상탱화를 배열하였다.

 

 

◎ 포항 보경사 산영각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그런 산신을 모시는 산령각은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알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이 산령각은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한 전각으로 원래 북쪽 100m 산중에 있던 것을 1914년에 현 장소로 이건하였다.

 

 

 

◎ 포항 보경사 원진각

 

 

원진각은 원진국사의 진영과 상을 모시고 그 밖에 사명대사 등 당사에서 수도와 교화를 하시다가 입적하신 대덕스님들의 진영을 모시 전각이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 3년(1678) 큰 불사 때 학열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 포항 보경사 영산전

 

 

영산은 영축산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산불국을 상징한다. 영축산은 부처님이 「법화경 」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를 영산전을 통하여 나타낸 것이며, 이곳에 참배함으로써 사바세계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이 된다. 이 영산전에는 가운제 석가세존을 모시고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응 탄 보현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에 16나한을 모셨다.

 

 

◎ 포항 보경사 명부전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음 생을 받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선과 악의 행위를 심판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하는 관부와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형상화하여 모신 것이 명부전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하고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즉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이라 한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양 옆으로 시왕을 대칭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3년(1677)에 건립하였다.

 

 

 

◎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 승려 원진국사 탑비이다. 원진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51세에 입적하자 고려 고종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렸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려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1224년 작. 보물 제252호. 높이 183cm, 너비 104cm. 비의 이수가 없으며 비신의 양 끝이 접혀 있는데 이것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형식이다. 귀부의 머리는 용머리 모양이며 귀갑문 안에는 왕자가 새겨져 있다. 비신의 상단에는 해서로 된 제액이 있고, 둘레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당대의 문신인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원진국사 부도탑과 서운암 동종 그리고 승탑은 포항 보경사 보물로 반드시 탐방해야 하는데 시간 제약으로 보지를 못했다. 다른분의 블로그 자료를 여기 소개한다.

 

◎ 원진국사 부도탑(보물 제430호)

 

 

 

◎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사인비구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지닌 형태를 합해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시기가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새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다. 이 띠 아래로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연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 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을 새긴 점이 이 종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범종의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후기 종과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포항 보경사 승탑(보물 제430호)  

승탑이란 불교에서 덕이 높은 스님을 화장한 후에 그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세운 탑이다. 포항 보경사 승탑은 고려 고종 때 입적하여 '원진'으로 시호*를 받고 '국사'로 추증**된 신승형의 사리를 모셔 둔 사리탑이다.

 

전체 높이는 4.5m이고 단면 8각형을 기본으로 하였다. 승탑은 기단부(하대석), 탑신(중대석), 상륜부(지붕돌)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의 위 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곷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솟아 있어 당시로는 드문 모양의 승탑이다.

전체적으로 길이가 길ㅉ죽하고 너비는 좁게 표현하였으며,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호 : 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 추증 :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 포항 보경사 경내 이모 저모

 

보경사 안내판

 

 

대웅전 옆 석탑

 

 

포항 보경사 적광전 옆에 있는 소나무! 아름다운 자태와 위용이 범상치 않다. 너무나 아름답다.

 

 

◎ 포항 보경사 탱자나무 (경북 기념물 제11호)

 

 

포항 보경사 탱자나무

경상북도 기념물 제 11호

 

이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여 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6m, 밑부분 둘레 97cm로서 나무 모양은 원형이고 수새는 매우 왕성하가. 탱자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것이 희귀하므로 노거수로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보경사 탱자나무 외에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와 화도면 사기리의 탱자나무가 천연기념물 제78호 및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월당

 

보경사성보박물관

 

 

◎ 포항 보경사 경관 이모 저모

 

 

◎ 포항 보경사 보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