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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섬산행

2019.11.24. 완도 금당도 - 남해 천년의 비경, 숨어 있는 금덩이 보물 섬, 금당도를 아시나요 -전라남도 지정 '가고 싶은 섬' 금당도로 오시라

by 하여간하여간 2020. 10. 23.

1. 산행일자 : 2019.11.24

2. 누구랑 : 원산우회

3. 산행구간 : 가학항-안산-가학산-개기재-삼랑산-오봉산-봉지산-옹금포-(금당8경뱃길)-코끼리바위-남근바위-초가집바위-사봉세우-교암청품-스님바위-부채바위-병품바위-가학항(원점) 

 

4. 산행지도 및 금당해안 일주 코스 

 

 

5. 산행소감

내 고향 금당도 산행을 간다기에 한편으론 설레고 또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대원들은 금당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산행 후 대원들은 모두 한결 같이 숨어 있는 비경을 보았다고 대 만족이다. 다행이다. 나 또한 전국의 명승지를 돌아다녀 보고 많은 섬을 다녀 보았지만 내 고향 금당도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몰랐다. 억겹년 세월동안 해풍에 스치고 파도에 깍이어 만들어진 신이 숨겨 놓은 천년의 비경을 지니고 있는 내고향 금당도가 너무나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내 고향 금당도가 2020. 10. 19일자 전라남도 '2021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되었다. 신비로운 형상를 이룬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해안절벽으로 형성된 금당8경, 세포 전망대, 온금포 해수욕장, 해안일주도로 등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보물 같은 섬, 해양 기행 가사 문학서 '금당별곡'의 배경지 금당도. 천년의 비경을 보고 싶거든 내고향 금당도로 발길을 돌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산행을 마치고 반드시 금당8경 해안 일주 유람을 강력히 추천한다. 마음씨 좋고 친절한 내 친구 금당교회 장로이신 김영관장로님(010-9454-5439)께 부탁하면 친절히 안내해 줄 것으로 믿는다.  

 

6. 금당도 소개

 

동경 127°01, 북위 34°23’에 위치하며, 완도읍에서 31.6㎞ 지점에 있다. 북쪽에는 장흥군 관산읍, 남쪽에는 평일도·생일도, 서쪽에는 약산도, 동쪽에는 거금도가 있다. 면적은 12.49㎢이고, 해안선길이는 28.2㎞로 금당면의 주도이다. 금당도와 동쪽의 고흥반도를 잇는 연육교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원래 금당도(金堂島)라 불리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의 금당도(金塘島)로 바뀌었다. 지명표기가 변화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이곳 일대에 금일(金日), 금당(金塘), 생일도의 금곡(金谷) 등 ‘금()’자의 지명이 많아 금이 채굴된 고사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오봉산을 비롯하여 고도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부지역에 약간의 평지가 있다. 해안은 비교적 넓은 간석지를 이루고, 염전이나 양식장으로 이용된다. 간석지는 섬의 남쪽 해안에 펼쳐져 있다. 섬 남쪽의 만입부에는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연안에 난류가 흘러 비교적 기후가 온화하여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들이 자생하고 있다. 연평균기온 14.3, 1월 평균기온 1.9, 8월 평균기온 25.1, 연강수량 1,282.5㎜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삼국시대에는 오차현(烏次懸)에 속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아현(烏兒懸)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장흥부에 속했다가 1896년에 완도군이 설치되면서 평일면, 생일면과 함께 금당면으로 완도군에 소속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당면평일면생일면 3개 면을 합하여 금일면으로 개편되어, 1962년에 금당도에 금일면 금당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에 금일읍 승격으로 금일읍 금당출장소로 개칭되었다가 1986 4월에 금당도와 비견도, 허우도, 화도의 4개 유인도와 무인도를 통합하여 금당면으로 분리 승격되었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1,084( 531,  553)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524세대이다. 취락은 면의 중심지인 차우리를 비롯하여 육산리에 집중 분포한다. 고흥군 도양읍과 장흥군 회진면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행정구역은 완도군이지만 실질적인 생활권은 고흥이나 장흥권에 속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1.03,  2.03㎢이고 임야 8.78㎢이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마늘·고추 등이 생산되고, 수산물로는 문어·멸치·도미·새우·김·미역해삼전복 등이 있다. 섬 전체적으로는 피문어가 많이 잡힌다. 차우리의 금당광산에서는 도자기 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된다. 장흥군 노력항과 고흥군 녹동항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교육시설로는 금당초등학교와 금당중학교가 있다.

 

 

7. 금당도 산행 추억

금당도를 가기 위해서 도착한 장흥군 대덕면 회진리 노력도항 
노력항여객선터미널 가는 길은 제주도 가는 페리호가 출발한 여객선 터미널이다. 금당도는 다리 지나 바로 노력항에서 출발한다 

 

대합실에서 배표를 끊고
노력항과 금당도 가학항 오가는 배시간이다.
우리를 싣고갈 완도농협 페리2호이다.

 

노력항은 출발하여 금당으로 가는배(미스터트롯 임영웅에 고향으로 가는배는 이럴 때 들어야 한다.) 점점 멀어지는 노력항 이곳에서 30분이면 가학항에 도착한다. 

 

임영웅에 고향으로 가는배를 들으면서 감성에 젓을 때 노력항을 출발하여 30분이면 

 

금당 가학항에 도착, 저 뾰족한 산으로 바로 올라간다.
가학항에 도착하면 금당면 관광 안내도가 선명하다. 
금당팔경길 등산로

1 코스 : 대덕 회진노력항-가학항-안산-멍넘재-가학산-개기재-삼랑산-오봉산-새추목재-봉지산-막끝-가학항(원점)-금달팔경해안일주 유람(선택)-가학항(원점)

2코스 : 고흥 녹동 - 울포리-공산-개기재-삼량산-오봉산-봉지산-신흥리-울포리(원점)- 금당팔경 해안일주 유람(선택)

 

금당 가학항에 도착 기념하고

 

가학항에서 안산으로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초입에 쉼터 데크에서 타고온 배를 배웅하고

 

가파픈 오름길을 오르다 보면 아름다운 금당 다도해가 펼쳐진다. 앞으로 가야할 산줄기가 한눈에 조망된다.
안산 정상에서 보는 환상적인 조망

 

내고향 금당 가학리 마을

나는 이곳 섬에서 15살까지 그러니까 중학교 다닐때까지 살았다. 그리고 뭍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떠난 날 선상에서 나는 한없이 다짐하고 다짐했다.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는 막연하였지만 어린 섬소년은 뭍에서 살기 위해 굳은 각오를 다졌다.

 

지나온 산길을 뒤돌아보며
어느새 가학산 정상 봉수대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가학산 정상

이곳 가학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그 옛날 이곳에서 봉수로 육지와 통신을 하였나 보다.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들면 동네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가학산에서 바라본 거금도 방향 풍광 

저 아래 하트모양의 천혜의 요새가 정유재란 1598년 음 7월 18일 이순신장군 수군 함대 85척과 명나라 진린제독 수군 사선 25척이 19일 절이도 해전을 앞두고 경야를 했던 곳이다.

 

좀더 눈을 들어 보이는 넓은 바다가 절이도(거금도) 해전이 있었던 역사적 현장이다. 

 

1598년 음 19일 일본 수군이 함선 100척을 앞세워 금당도를 침략하기 위해 소록도 앞 녹도(녹동)항에서 출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날 금당도 이곳에서 경야를 한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이 급히 출항하여 일본 수군 100척과 맞붙어 화포와 학익전을 펼쳐 우리 수군 피해 없이 일본 수군 50척을 격파하고 일본 수군 71개를 수급하는 대승을 거둔 역사적 장소이다.

 

절이도 해전 10개월 전, 즉 1597년 9월 진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은 함선 13척을 가지고 일본 수군 수백척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다음 목포 고하도에서 함대를 지어 60척을 보강하고, 군량비를 확보하는 등 군대를 정비하고 군력을 강화하여 고금도로 진영을 옮기고 남해안 탈환을 위해 일본 수군과 맞서고 있었다. 명나라 수군이 도착한지 이틀만에 절이도 해전이 일어나고 이때 명나라 진린제독은 안전한 곳에서 관망하면서 적극 해전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어지만, 이순신장군의 절이도 해전 대승을 보고 조명 연합군에 참여하여 노량진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은 우리를 얕잡아 보고 부녀자를 희롱하고 재물을 약탈해 가는 등 그 행패가 왜놈들과 비슷하였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약소국의 섦음은 매 마찬가지다. 남북이 하나로 통일하고 국력을 키워 온전한 자주 독립국이 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임을 여실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가학산에서 바라본 울포리 방향/ 섬 내륙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풍광으로 기암 절벽과 소나무과 잘 어울린 아름다운 비경이다. 
가학 개기제

지금은 차도가 시원스레 나있지만 내가 중학교 다니던 1970년경에는 이 비탈진 고개(220m)를 넘어 추우나 더우나 매일 산길을 걸어서 2km 떨어진 이웃 동네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손수 만든 단어장을 들고 걸으면서 단어를 외우고 매일 통문장으로 영어를 외우던 기억이 새록 새록하다. 그 땐 집에서는 가사를 돕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기에 우리는 3년 내내 걸으면서 순전히 공부를 한 샘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친구들끼리 공부할 내용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서로 웃고 떠들며 다녔던 지난 시절이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였다.

 

울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면 공산을 지나 육동마을을 거쳐 이곳에서 오봉산 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그러나 나는 가학항에서 산행을 하였기에 바로 오봉산 방향으로 잡아 든다. 

 

삼랑산 정상에서 추억한장
한참을 오르다 보면 금당도에서 가장 높은 삼랑산에 이른다. 내가 어린시절 살았던 가학리와 천관산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저 멀리 하늘금 속으로 숨어있는 산이 천관산이다. 나는 어릴적 바닷가에서 저 천관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천관산만이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뭍이였고 그 뭍을 늘 동경하며 보냈다. 나는 뭍에 나가 살리라. 그리고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도시에 있는 상급학교에 가야한다. 매일 같이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던가? 산에 가 땅에 떨어진 솔잎을 갈퀴로 긁어 모아 한짐씩 짊어지고 오면서도, 한여름 땡볕에 녹두를 따면서도, 추운 겨울 땡땡 언 손을 불면서 김을 하면서도 나는 열심히 머리속으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공부할 내용을 늘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교과서 한권을 통째로 그림 보듯 외우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알수 없는 먼 미래에 성공한 내 모습을 상상하면 그 힘든 가사일도, 머나먼 산길(등교길)도 나에겐 힘들지 않았다. 천관산은 나에게 꿈을 키워준 어머니 같은 산이다. 

 

삼랑산(219.8m) 블야 100대 명섬 인증은 여기서 한다.
산길 중간 중간 만나는 주상절리 기암들
내 어린 시절 늘 보았던 마을 앞바다이다. 

바다 한가운데 높은 산이 약산이며  사이사이 떠있는 옹기종기 섬들은 어릴적 낚시다닌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곳이다. 1970년대는 김양식장 적지여서 전국에서 일본 수출품을 가장 많이 생산한 곳이고 소득 또한 최고(개가 500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소득이 높았다)였지만 이제는 미역과 다시마 톳 등의 양식장으로 변해서 어민들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금당 사람들이겐 특히 우리마을 가학리 사람들에겐 보고 중에 보고이다.

 

금당도 바위에는 바위손이 많다. 담이나 대하증, 산후출혈, 이뇨, 천식 등에 좋다는 바위손이다.
오르고 내리기를 몇번 오봉산에 도착 인증
새추목재/봉지산을 지나 막끝까지 가야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산행은 마치고 배길로 금당8경 유람을 하기 위해 옹금포마을로 내려간다.
금당8경 유람을 위해 내려온 옹금포 마을/ 저 마을 뒷산 암봉이 봉지산이다.

 

금당8경 비경을 유람하기 위해 배에 오른 대원들!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친절하고 심성 좋은 내 친구 김영관 가학교회 장로님께서 친히 금당8경을 안내해 주어서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다. 금당8경 해안 일주 유람을 강력 추천하며 희망하는 분은 김영관장로님(010-9454-5439)께 전화하면 친절히 잘 안내 해주리라 믿는다. 물론 약간의 경비는 부담해야 한다.

 

금당 8경 첫번째가 코끼리 바위와 두번째가 남근바위이다. 숨은 그림 찾듯 찾아보세요. 보이시나요?
억겁년동안 해풍으로 스치고 깍여 자연이 만든 비경
대원님들이 좀더 가까이 가자고 하면서~ 
기암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기암들
심성 좋은 선장이 바위에 내려 준다. 가까이 가서 본 해안 바위
지금도 해풍과 파도에 의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기암 절벽의 아름다움
기념하고
신기한 기암
낚시를 하면서 한가한 여가를 보낸는 낚시꾼들이 또한 부럽다.

 

금당8경 세번째 초가집 바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초가집을 만들었을까? 

 

초가바위
남해를 지키는 사자 바위의 위용이 대단하다.
바다와 하늘이 파랗게 이어지며 연출해 내는 아름다운 풍광에 모두들 조용히 사색에 잠긴다. 
금당 8경 네번째 사봉세우를 향하여 우리를 싣은 배는 바다를 헤치고
금당팔경 네번째 사봉세우/ 가는 뱃길 마다마다 아름다운 풍광에 대원들 넋을 잃고
어디를 보든 아름답고 신기하여
추억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워매! 여기는 또 어디당가?
사봉세우다
금당적벽
사봉세우를 지나면서
금당팔경 다섯번째 교암청품을 향해 가면서
금당8경 다섯번재 교암청풍/ 대원들의 추억 담기를 위해 바위에 내려주고
추억을 담느라 정신들이 없네요
나도 한장
교암청풍을 뒤로하고 이제 또 다른 비경을 기대하며 

 

금당 8경 여섯번쩨 스님바위/ 나는 아무리 보아도 스님같지 않는데 남들은 다들 스님 같다네요
악어바위도 신기하고 
이제 부채 바위와 병풍바위를 보러 서서히 앞으로

 

주상절리가 뚜렷히 보이는 기암들로 이루어진 금당산(성인봉)
금당8경 일곱번째 부채바위

 

 

천년의 비경을 숨기고
금당산 절경
주상절리의 완결판 천년의 비경 병풍바위
이리보아도 아름답고
저리보아도 아름다운

 

천년의 숨겨진 비경을 간직한 금당8경의 여덟번째 병풍바위 
아름다운 병풍바위는 계속 이어지고
금당도 앞바다에 떠 있는 질마도와 시리섬
한척의 애기배가 떠 있는 모습이다.
바다 한가운데 큰 여(바다 밑에 있는 암반)가 있어 뱃길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등대를 세웠다.
질마도는 섬 가운데 넓은 평지가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낚시와 해수욕을 같이 즐기면서 여름밤 낭만을 경험하기 바란다.
청정한 금당도에서 키운 미역은 전국 제일 품질을 자랑하며 이 미역을 먹고 자란 전복 또한 일품이다.
질마도 갯가에서 투망도 던지고
한마리도 못 잡았지만 투망 하나는 기가 막히게 던졌네요/ 우리의 금당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가학항에서 노력도가는 배를 타고 이제 집으로 향한다.

 

9.  금당별곡

 

금당별곡 한글가사

 

수우옹 위세직

 

일신에 병이 들어 만사에 흥미 잃어

죽림 깊이 원()과 학() 벗 삼으니

십년 서창의 옛사람 시 뿐이다

일생호인 명산 노래 우연히 기리 읊어

만고의 시 문호를 역력히 세어보니

여덟 시선, 천년 후 이을 사람 그 누군가

강산풍월 한가한지 여러 해라

분분한 세상사 나도 싫어 풍월주인 되려하여

명승 선경 반세를 늙어있다

앞 산 아침 비에 봄빛이 빼어나니

산꽃 피는 곳이 흥미도 하고많다

학과 같은 벗 선자들을 이때에 만나보아

황금단 지어내어 참동계 묻자하여

송료를 받쳐내어 일엽편주 실어두고

만 리 안개 물결 임의로 띄워내니

옆서 화담은 눈 앞의 가경이요

흰 마름꽃 붉은 여귀꽃 노 위에 향기롭다

산형도 좋거니와 수세도 가이 없다

청강 백구야 묻노라 가는 길이

삼신산 내린 활기 이리로서 어디 멀며

도원도 지난 곳은 어느 물로 내리는고

월계수 노 흘리저어 가는 대로 놓았어라

연거푸 돌아보아 곳곳이 가리킬 제

상서로운 구름 하나 바다 위에 검어 있다

온자한 학의 소리 십리에 들리거늘

향기로운 노 빨리 저어 날듯이 들어가니

부용화 피는 거동 반공에 솟았는데

올 때 듣던 그 소리 이 땅에서 날세라

평사에 닻을 내려 고운 노을 헤쳐보니

묘 아래 물 위 그 사이가 천 척이다

기상이 만천하니 파릉이 이 같은가

대저 그 이름 이제 보니 과연하다

안개 속에 배를 내려 석로로 올라가니

아름다운 풀과 꽃이 곳곳에 피어있고

옥 같은 궁전에 금경이 골마다 널려있다

한제의 금경을 언제 여기 옮겼으며

와황보천은 어이하여 해천에 떨어진고

좋고도 맑은 기상 갖음도 갖으시고

돌로 만든 연꽃 운작대는 이런 데 이름이라

아미산 적벽강에 추경 춘상 이러한가

적송자 안기생은 우화등선 이러한가

반산에 흘러 쉬어 제일봉 올라가니

일진 선풍 양 겨드랑이 비껴 불어

양 옷자락에 표표히 불어 심신 청랭하니

봉래산 소식을 거의 아니 들을소냐

왕자요대에 벽도만 늙어있고

낭옹의 돌 절구에 노을만 잠겨있다

돌 모서리 높이 베고 바다 경치 다시 보니

어렴풋한 바다 위에 만첩강산 여기저기

창망한 운해가에 일편 어주 오락가락

눈 아래 모든 경치 색색이 자랑하니

건곤의 이 조화를 뉘라서 알아보리

성관 쓰고 월패 차기 꿈에나 보자하여

소나무 뿌리 높이 베고 낮잠을 잠깐 드니

푸른 옷 동자 나를 잡아 봉래산 건너 뵈네

송요주 가득 부어 나 잡고 저 권할 제

장생에게 묻는 말을 반튼 채 못 들어

구고 일성에 선몽을 놀라 깨니

긴 연기 하나 허공에 오른 데 흰 달이 천 리로다

안개 낀 물가 파도 잦고 물길도 끝이 없다

상아 돛 다시 꾸며 만화도로 내려가니

산 그늘 눈오는 밤 자유의 큰 흥이라

석강 추월에 백야의 시정이라

지난 경치 좋거니와 야경이 더욱 좋다

모래 사장 자던 기러기 조수 소리에 절로 깨어

삼강 연월에 함께 놀자 우는 듯

물 아래 놀던 상아 거문고 꺼내 탈 제

남풍 오현의 성음을 전하는 듯

노 두드려 물길에 올라 타 (흥에 겨워 머무를 제

서산에 달이 지고 동쪽 골에 날이 나니

금빛 물결 넘실거려) 온 강이 어지러울 제

안개 낀 물가 배를 매고 낙화를 따라가니

새벽 안개 찬이슬이 초의에 젖을세라

산아래 벽도는 옛봄을 그저 띄어 뒷주인을 기다리고

골짜기 그윽한 난은 바람 끝 향기로 날려 아뢰는 듯

해객은 무심하여 백구를 따르거늘

선인은 어디가고 황학만 남았는고

온갖 꽃 향기 흩은 곳에 옥소를 비껴 부네

벽해 청천에 백학이 날아든다

어화 황홀하여 내 아니 신선인가

일배주 자조 부어 취하도록 먹은 후에

삼화루 빗겨 앉아 물밑을 굽어보니

월계에 씻던 비단 어느 물에 밀려오며

낙포에 날던 선녀 어이하여 잠겼느뇨

수색도 기이하다 다시금 살펴보니

호산에 피는 꽃이 물아래 비칠세라

가 없는 이 경개를 일폭에 옮겨내어

서시와 안기 만나 대동전에 보냈던들

오룡이 그린 가릉 이 산수와 어떨런고

풍광도 한이 없고 의사도 끝이 없다

애 닳을사 이 내 몸이 선녀와 연분 없어

속세에 미련 있어 향관을 생각하여

강산에 기약하고 백구와 맹세하여

빈 배를 다시 타고 오던 길로 찾아오니

못다 본 남은 경을 글귀에 영량하고

도기려지 호구는 천만고에 과연하다

산창을 다시 닫고 초조히 누었으니

만리 강천에 몽혼만 잦아있다

어이타 갑 없는 강산풍월을 절로 가게 하는고.

 

 

금당별곡 각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