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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섬산행

2021.11.17. 완도 금당도 금당8경 유람

by 하여간하여간 2021. 11. 17.

☆ 금당8경 유람

금당도는 완도군에 속한 섬이다.

천년의 비경으로 숨겨진 금당8경을 찾아서 떠난다.

 

▷ 광주(8:30)-장흥 회진 노력항(10:30)-금당 가학항(11:00)-금당8경 유람(13:00)-점심(14:00)-금당 울포항 주변 해안트레킹(15:30)-거금도 우도항(15:40)-거금대교(15:50)-녹동항 저녁(16:50)-광주(19:00)  

 

☆ 금당8경 안내도

 

★ 회진 노력항에서 금당도 가학항까지

내고향 가학항

 

내고향 가학항에 도착하니 가고싶은 섬 금빛 금당 버스가 기다린다. 우린 버스가 아니고 내 친구 김영관 금당교회 장로님이 마련한 배를 타고 금당 8경을 유람한다.

 

★ 금당 8경 관광안내도

 

★ 가학항에서 금당1경 병풍바위를 찾아서 떠나보자(배를 타고 유람한다)

 

금당 1경 병풍바위다.

금당면 육동리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화산암의 주상절리이다. 큰 병풍바위와 작은 병풍바위가 이웃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 이제 금당 2경 부채바위를 찾아서 떠나 보자

 

 

금당 2경 부채바위다.

병풍바위 근처 해안절벽으로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을 이루는 화산암 주상절리이다. 부채살을 활짝 펼쳐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부채바위라 부른다.

 

 

 

 

★ 다시 금당3경 스님바위를 찾아서 유람을 계속한다.

 

 

금당도는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곳이다. 금당산 전체가 주상절리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보다 아름다운 절경이다.

 

해안의 기암들도 오랜세월 파도가 만들어 놓은 걸작들이다.

 

악어바위다. 해변에 석회암이 파도에 침식하여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만들었다.

 

 

거북이 기어오르는 거북바위다.

 

 

해변에 꽃 한송이가 피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응고될 때 이런 꽃 모습의 바위를 만들었다. 독특하다.

 

 

 

 

떡시루바위다.

 

 

금당3경 스님바위다.

금당면 울포리에 있는 바위로 둥글고 반질반질하여 마치 스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금당4경 교암청풍을 찾아서 떠나보자

 

울포항을 지나고

 

 

 

금당 4경 교암청풍이다.

4경은 교암청풍으로 금당면 세포리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끊이지 않는 시원한 바람과 시루떡처럼 늘어선 해상절경을 자랑한다.

 

벌집 같이 바위에 구멍이 수도 없이 많이 뚫려 있다. 아마 석회암이 해풍으로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것 같다.

 

 

 

 

가마바위다. 마치 가마 같이 생겨 가마바위라고 한다. 어떤이는 상여바위라고도 한다. 교암청풍은 이 가마바위(상여바위)에서 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기암을 타고 넘실대는 청정함을 이르는 절경을 말한다. 

 

 

★ 금당5경 사봉세우를 찾아서 떠나 보자

 

 

 

금당5경 사봉세우이다.

금당 5경은 사봉세우로 비에 젖어 삿갓 모양의 봉우리 같은 아름다운 나무군락 이름이다.
세포리 목섬 금당적벽의 깎아지른 기암 사이에 갖가지 형태의 아름다운 나무들 군락이 수평선에 내린 세우와 안개 위에 떠 있는 모습은 흡사 비에 삿갓 모양의 봉우리처럼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금당적벽

 

흑염소 가족이 카메라에 잡혔다.

 

 

금당적벽 

 

 

목섬이다. 

 

 

※ [참조]

또 다른 금당 5경은 연산호 군락지가 있다. 여기서는 유람을 생략한다.

 

금당 5경 연산호 군락지는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소화도(小花島) 주변 해역에서 대규모 연산호군락지가 발견되어 2012년 11월 30일 국토교통부에서 연산호군락의 수중경관 및 학술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기 위하여 소화도 주변 해역 0.81km²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 금당6경 초가바위를 찾아서 유람을 계속한다.

 

바위에 자란 소나무가 신기한다. 물한방울 없는 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금당6경 초가바위다.

금당6경은 초가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중화도(中花島)에 있는 낮은 해안절벽이다. 둥근 초가지붕을 얹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초가바위 또는 집바위라고 부른다.

석회암이 수억년의 파도와 해풍으로 침식되어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이다.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면 클린턴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바로 옆에 버섯 바위가 있다. 

 

 

 

★ 금당 7경 코끼리바위~금당8경 남근바위를 찾아서 떠나보자

 

 

 

금당7경 코끼리 바위와 금당8경 남근바위이다.

금당 7경은 코끼리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대화도(大花島)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절벽의 기암이 코끼리가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금당 8경은 남근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대화도(大花島)에 있는 코끼리바위 바로 옆에 위치하며 남근 형상을 한 바위가 높이 솟아있다. 

 

 

 

석회암이 파도와 해풍으로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자연 최고의 걸작품이 여기 또 있다.

 

사자바위다. 사자가 눈을 부릅뜨고 바다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 금당 8경을 유람을 마친다.

 

전국 어디를 가봐도 금당도 같이 아름다운 해안이 없다. 금강산이나 설악산 제주도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다고 같이 탐방한 탐방객들의 탄성이 연속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백악기 한반도에 화산이 폭발하고 여기 저기 새로운 지형이 형성될 때 금당도도 주상절리와 석회암이 동시에 형성되었을까? 금당도 북쪽은 주로 주상절리로 이루어졌고 남쪽 해안은 비교적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수억년을 지나오면서 파도와 해풍으로 침식되면서 천혜의 비경을 만들어 놓았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수억년 숨겨진 금덩이 섬 금당도 해안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해안을 제대로 볼려면 금당8경 유람 코스를 택해 꼭 유람을 해보시기 바란다.  

 

 

※ 금당8경 유람 연락처

김영관 : 010-9454-5439

유람비 : 1회당 20만원~25만원(인원이 따라 조정함)

 

내 친구 금당교회 김영관 장로님이시다. 그는 참 좋은 친구이고 친절한 친구이다. 누구든 금당8경을 유람하고 싶거든 착한 나의 친구 김영관 장로님께 연락하면 친절히 안내하여 주리라 믿는다.

 

★ 금당 울포항- 거금 우두항- 거금대교

이제 울포항으로 다시 돌아와 거금도 우두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거금대교를 거쳐 광주로 향한다.

 

 

 

(참고자료)

울포항 새김돌에 새겨진 금당팔경은 문인 김홍기(金弘基)가 금당도의 아름다움을 보고 노래한 것으로 오늘날 금당8경과 사뭇다르다. 
 
孔山霽月鬱浦歸帆赤壁淸風角岩牧笛
(공산제월울포귀범적벽청풍각암목적)
箕峰細雨花島暮雲鶴嶺落照寺洞曉鐘 
(기봉세우화도모운학령낙조사동효종)


해설 :
비개인 공산에 달빛이 밝게 비치니 울포의 저녁 노울에 길게 비친 돛단배
적벽에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가지 청풍에 한들한들
우뚝 솟은 바위 틈새로 목동의 피리소리 구슬프구나
봄비에 젖은 기봉의 아지랭이  화도의 저녁노을 하늘에도 총 천연색
석양은 학봉의 나무가지에 걸려 붉게 붉게만 비치네
이른 새벽 적막을 깨며 들려오는 종소리 청아함에 심취하네  
 

 

1경은 공산제월(孔山霽月)로 맑게 갠 하늘에 뜬 밝은 달을 가리킨다. 
“둥근 보름달이 공산 위에 걸쳐 사방을 가득 실은 달빛 아래 유림들의 도를 닦은 공부자의 담화를 이루었던 것이 공산제월이 아니냐.”

2경은 사동효종, 성산효종(寺洞曉鐘, 聖山曉鐘)으로 이른 새벽에 들려오는 절의 소리다.
명산인 일명 ‘복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절골에서 불경을 시도하는 새벽 종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맑은 정신을 깃들게 한 것에 대한 감탄이다.

3경은 기봉세우(箕峯細雨)로 비에 젖어 삿갓 모양의 봉우리 같은 아름다운 나무군락 이름이다.
세포리 목섬 금당적벽의 깎아지른 기암 사이에 갖가지 형태의 아름다운 나무들 군락이 수평선에 내린 세우와 안개 위에 떠 있는 모습은 흡사 비에 삿갓 모양의 봉우리처럼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4경은 울포귀범(鬱浦歸帆)으로 율포로 들어오는 만성의 돛단배의 모습이다.
양편 기슭으로 울창한 노송도 아름다운데 한갓 비견도가 앞에 가로놓여 작은 호수를 이루고 돌아오는 황포돛배가 떠 있는 모습은 물수반 위에 놓은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5경은 적벽청풍, 교암청풍(赤壁淸風, 轎岩淸風)으로 가마바위로 불어오는 청아한 바람이다.
세포리 포안 입구엔 가마바위가 위치하고 있어 맑고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고 오고 간 배 손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그 옆으로 늘어선 기암절벽은 해상 절경을 자랑한다.

6경은 화도모운(花島暮雲)으로 한 덩이 구름처럼 떠가는 진달래 꽃동산 같은 작은 섬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분홍꽃 진달래가 한창이면 작은 섬이 온통 꽃동산처럼 아름다운데 잔잔한 수면의 은색 비단 위에 덩실덩실 떠 있는 모습은 둥실 떠가는 한 덩이 구름과 같은 곳으로 표현된다.

7경은 학령낙조(鶴嶺落照)로 황금빛 저녁놀이 비단처럼 깔린 해상의 곱디 고운 자태다.
고요히 저물어간 해상은 잔잔한데 해는 재 넘어 바닷속에 잠겨 가고 황금빛 저녁노을이 비단처럼 깔려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쏘냐.

8경은 각암목적(角岩牧笛)으로 뿔바위 위로 들려오는 초동의 피리소리다.
봉동리 뒷산 뿔바위에 나무 하고 소 먹이는 초목동들이 올라앉아 버들줄기를 꺾어 만든 통피리 자유곡은 봄소식을 알려오고 농촌의 한가로운 한 장의 정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금당면은 아름다운 금당도의 비경을 31경으로 애기하고 있다.
 
제1경 :    화도(꽃섬)의 용머리
제2경 :    세포리의 금당적벽(赤壁)
제3경 :    육산리의 금당 금강(金剛) 
제4경 :    육산리의 평풍바위 
제5경 :    울포리의 흔들바위와 중산굴  
제6경 :    울포리의 송암절벽
제7경 :    가학리의 시루섬
제8경 :    육산리 부채바위
제9경 :    육산리의 매봉
제10경 :  세포리의 구양해변
제11경 :  차우리의 멱서리바위
제12경 :  세포리의 가마봉
제13경 :  세포리의 할미바위와 영감바위
제14경 :  쇠뿔바위와 쇠똥바위
제15경 :  육산리의 복개산
제16경 :  차우리의 신작지
제17경 :  차우리의 궁캔이 동굴
제18경 :  세포리의 굴앞동굴
제19경 :  방석바위와 해변
제20경 :  차우리의 공산(孔山)
제21경 :  중바위와 여담산골짜기
제22경 :  육산리의 마섬
제23경 :  남생이 바위
제24경 :  사자바위
제25경 :  차우리의 옥섬 상어굴
제26경 :  차우리의 필봉과 적벽
제27경 :  육산리의 금당수원지
제28경 :  육산리의 중골
제29경 :  육산리의 노적바위
제30경 :  가학리 댈출과 적벽
제31경 :  가학리 질매섬

 

※ 팔경이란 어디에서 오는 말인가? 금당별곡과 금당팔경

 팔경은 중국의 소상팔경에서 시작했다. 동정호의 남쪽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곳을 11세기 북송 때 화가 송적이란 사람(10세기 이성이란 사람이 처음 그렸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설이 있지만)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리면서 널리 퍼진 것으로 정리한다. 

이것이 고려에 전파돼 소상팔경을 모사한 것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송도팔경이다. 그랬던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전국 팔도에서 팔경의 형태로 아름다운 경치를 지정하는 것이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조선의 문인들은 소상팔경 속 그림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인용해 시와 그림 등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것, 관동팔경과 단양팔경이 대표적이다. 

관동은 대관령의 동쪽으로 현재 망양정과 월송정은 경북에 편입, 삼일포·총석정·시중대는 북한에 속한다. 동해안의 명승지에는 정자나 누대가 있어 선조들은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빼어난 경치를 노래했다. 고려 말 문인 안축(安軸)은 경기체가 '관동별곡'에서 총석정·삼일포·낙산사의 경치를 읊었고, 조선 선조 때 문인 송강 정철은 자신의 가사문학인 '관동별곡'에서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와 관동팔경을 노래했다.

단양팔경에서 도담삼봉은 이름난 조선의 선비들이 그림이나 시문에 단양의 풍경을 담았고, 조선 건국공신 삼봉 정도전도 자신의 호를 도담 봉오리에서 따올 정도로 조선의 문인들에게 단양팔경은 큰 인기를 누렸다.

당대 이름난 문인의 작품을 따라서 행하는 형태로 시문을 남겨 그를 흠모하는 것은 선비가 추구하는 올바른 자세였다. 그래서인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 금당별곡에서 전남 완도 금당도의 아름다운 풍광인 금당팔경을 노래했다.

금당별곡은 위세보의 삼종형님 위세직의 작품으로 위세보의 문집에 기록됐고, 금당별곡에서 위세직은 아름다운 금당도 팔경을 서경적으로 노래했다.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이 기행가사는 삼족당가첩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위세보의 석병집(石屛集)에 '삼종형작금당별곡(三從兄作金塘別曲)'이라는 기록에 의해 나중에야 위세직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 금당별곡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송시열과 민정중의 가르침을 받은 위세직(1655~1721)이 배로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감정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기행가사이다. 금당도의 기암괴석이 워낙에 비경(秘經)이라 주로 그 바위와 어우러진 풍광을 보고 지은 것이 <금당별곡(金塘別曲)>이다.

금당별곡은 위세직의 작품이지만 저술시기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의 종가에 보관된 모든 문적들이 화재 등으로 일실됐기 때문이다. 다만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그가 당시 장흥부의 관내인 금당 해상의 그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미루어 여지승람 장흥조를 편찬한 시기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1700년대 그의 나이 40대 중반 또는 50대초쯤으로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영향 관계를 따지면서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창작되어진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기봉의 ‘관서별곡’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관동별곡’은 ‘금당별곡’에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에, 결국 ‘금당별곡’은 ‘관서별곡’의 간접적 영향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기봉과 송강의 가사가 북방의 승경을 노래한 기행가사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남방의 해양 도서 지방의 승경을 노래한 가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금당별곡 한글가사

 

수우옹 위세직

 

일신에 병이 들어 만사에 흥미 잃어

죽림 깊이 원()과 학() 벗 삼으니

십년 서창의 옛사람 시 뿐이다

일생호인 명산 노래 우연히 기리 읊어

만고의 시 문호를 역력히 세어보니

여덟 시선, 천년 후 이을 사람 그 누군가

강산풍월 한가한지 여러 해라

분분한 세상사 나도 싫어 풍월주인 되려하여

명승 선경 반세를 늙어있다

앞 산 아침 비에 봄빛이 빼어나니

산꽃 피는 곳이 흥미도 하고많다

학과 같은 벗 선자들을 이때에 만나보아

황금단 지어내어 참동계 묻자하여

송료를 받쳐내어 일엽편주 실어두고

만 리 안개 물결 임의로 띄워내니

옆서 화담은 눈 앞의 가경이요

흰 마름꽃 붉은 여귀꽃 노 위에 향기롭다

산형도 좋거니와 수세도 가이 없다

청강 백구야 묻노라 가는 길이

삼신산 내린 활기 이리로서 어디 멀며

도원도 지난 곳은 어느 물로 내리는고

월계수 노 흘리저어 가는 대로 놓았어라

연거푸 돌아보아 곳곳이 가리킬 제

상서로운 구름 하나 바다 위에 검어 있다

온자한 학의 소리 십리에 들리거늘

향기로운 노 빨리 저어 날듯이 들어가니

부용화 피는 거동 반공에 솟았는데

올 때 듣던 그 소리 이 땅에서 날세라

평사에 닻을 내려 고운 노을 헤쳐보니

묘 아래 물 위 그 사이가 천 척이다

기상이 만천하니 파릉이 이 같은가

대저 그 이름 이제 보니 과연하다

안개 속에 배를 내려 석로로 올라가니

아름다운 풀과 꽃이 곳곳에 피어있고

옥 같은 궁전에 금경이 골마다 널려있다

한제의 금경을 언제 여기 옮겼으며

와황보천은 어이하여 해천에 떨어진고

좋고도 맑은 기상 갖음도 갖으시고

돌로 만든 연꽃 운작대는 이런 데 이름이라

아미산 적벽강에 추경 춘상 이러한가

적송자 안기생은 우화등선 이러한가

반산에 흘러 쉬어 제일봉 올라가니

일진 선풍 양 겨드랑이 비껴 불어

양 옷자락에 표표히 불어 심신 청랭하니

봉래산 소식을 거의 아니 들을소냐

왕자요대에 벽도만 늙어있고

낭옹의 돌 절구에 노을만 잠겨있다

돌 모서리 높이 베고 바다 경치 다시 보니

어렴풋한 바다 위에 만첩강산 여기저기

창망한 운해가에 일편 어주 오락가락

눈 아래 모든 경치 색색이 자랑하니

건곤의 이 조화를 뉘라서 알아보리

성관 쓰고 월패 차기 꿈에나 보자하여

소나무 뿌리 높이 베고 낮잠을 잠깐 드니

푸른 옷 동자 나를 잡아 봉래산 건너 뵈네

송요주 가득 부어 나 잡고 저 권할 제

장생에게 묻는 말을 반튼 채 못 들어

구고 일성에 선몽을 놀라 깨니

긴 연기 하나 허공에 오른 데 흰 달이 천 리로다

안개 낀 물가 파도 잦고 물길도 끝이 없다

상아 돛 다시 꾸며 만화도로 내려가니

산 그늘 눈오는 밤 자유의 큰 흥이라

석강 추월에 백야의 시정이라

지난 경치 좋거니와 야경이 더욱 좋다

모래 사장 자던 기러기 조수 소리에 절로 깨어

삼강 연월에 함께 놀자 우는 듯

물 아래 놀던 상아 거문고 꺼내 탈 제

남풍 오현의 성음을 전하는 듯

노 두드려 물길에 올라 타 (흥에 겨워 머무를 제

서산에 달이 지고 동쪽 골에 날이 나니

금빛 물결 넘실거려) 온 강이 어지러울 제

안개 낀 물가 배를 매고 낙화를 따라가니

새벽 안개 찬이슬이 초의에 젖을세라

산아래 벽도는 옛봄을 그저 띄어 뒷주인을 기다리고

골짜기 그윽한 난은 바람 끝 향기로 날려 아뢰는 듯

해객은 무심하여 백구를 따르거늘

선인은 어디가고 황학만 남았는고

온갖 꽃 향기 흩은 곳에 옥소를 비껴 부네

벽해 청천에 백학이 날아든다

어화 황홀하여 내 아니 신선인가

일배주 자조 부어 취하도록 먹은 후에

삼화루 빗겨 앉아 물밑을 굽어보니

월계에 씻던 비단 어느 물에 밀려오며

낙포에 날던 선녀 어이하여 잠겼느뇨

수색도 기이하다 다시금 살펴보니

호산에 피는 꽃이 물아래 비칠세라

갓 없는 이 경개를 일폭에 옮겨내어

서시와 안기 만나 대동전에 보냈던들

오룡이 그린 가릉 이 산수와 어떨런고

풍광도 한이 없고 의사도 끝이 없다

애 닳을사 이 내 몸이 선녀와 연분 없어

속세에 미련 있어 향관을 생각하여

강산에 기약하고 백구와 맹세하여

빈 배를 다시 타고 오던 길로 찾아오니

못다 본 남은 경을 글귀에 영량하고

도기려지 호구는 천만고에 과연하다

산창을 다시 닫고 초조히 누었으니

만리 강천에 몽혼만 잦아있다

어이타 갑 없는 강산풍월을 절로 가게 하는고.

 

 

금당별곡 각주본

 

내용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기행가사. 필사본. 가칭 ≪삼족당가첩 三足堂歌帖≫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후에 위세보의 ≪석병집 石屛集≫의 ‘삼종형작금당별곡(三從兄作金塘別曲)’이라는 기록에 의해 위세직으로 밝혀졌다.

 

이 작품은 배를 타고 금당도(金塘島 :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및 만화도(萬花島)를 거쳐 돌아오기까지의 자연경물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해양기행가사이다.

 

형식은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총 200구가 되며, 말미에 3·8·4·3조의 낙구(落句)를 취하고 있다.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간혹 4·3조, 3·3조도 보인다. 4음절로 된 한자숙어에 우리말 조사를 취하여 2·3조나 2·4조도 비교적 많다.

 

내용은 아홉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단은 아직 금당도로 떠나기 전에 평소에 지녔던 작자의 심경을 토로한 서사(序詞)로서, 벼슬에 뜻이 없어 풍월주인으로 반세를 늙어간 자신을 돌이켜보는 회고의 서술이다.

 

제2단은 봄비로 아름다워진 강산에 흥이 일어 배를 띄워 금당도에 이르기까지의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제3단에서는 금당도에 닻을 내리고 기암절벽이 늘어선 자연 속에서 선경을 연상하고,

 

제4단에서는 산봉우리에 올라 아름다운 산색과 바다의 경치를 굽어보며 천지간의 조화를 감탄하고 있다.

 

제5단은 잠시 선잠을 자는 동안 꿈에 선인을 만나 선경에 노닐다가 문득 잠을 깨어 달빛에 비치는 해변과 끝없는 수로의 장관을 굽어보는 광경을 읊었다.

 

제6단은 여장(旅裝)을 꾸려 만화도로 가는 동안의 야경(夜景)을 노래한 것이다.

 

제7단은 만화도로 노를 저어 가는 동안 날이 새어 물가에 배를 매어놓고 새벽 이슬에 옷을 적셔가며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데, 골짜기 경치에 옛 선경을 상기하고, 퉁소를 부는 장면이다.

 

제8단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며 삼화루(三花樓)에 앉아 물밑을 굽어보면서 자연의 형색이 다함 없이 기이함을 감탄하였다.

 

제9단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의 결사(結詞)로서, 뒷날을 기약하고 돌아와서는 명상에 잠기는 애틋한 심회의 표출로써 끝을 맺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사작품은 수백 편이나 그 중 해양과 도서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은 10여 편에 불과하다. 그 중 남해를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작품과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 萬(謾)言詞> 등이 있다.

 

그러나 <속사미인곡>과 <만언사>는 타의에 의한 유배가사들인 데 비해 자의에 의한 해양기행은 <금당별곡>뿐이다. 다만, 도서생활의 현실적인 소재나 격동하는 바다의 사실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유람의 심경이라 전원가사에서 보이는 정적(靜的)인 정취를 맛보며 해도의 자연을 관조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서술 체재나 그 시상(詩想) 및 조사법(措辭法) 등에 있어서 정철(鄭澈)의 <관동별곡>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