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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6.09.16. 충남 예산 수덕사 탐방 -1 (경내 당우 및 전각)

by 하여간하여간 2026. 9. 16.

인적(人跡)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法堂)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 북이 운다."

수덕사 하면 이 노래를 떠올린다. 60년대 중반 발표된 대중가요이다. 속세에 두고 온 님을 못 잊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흐느끼는 여승~ 사랑의 아픔을 겪은 한 여자의 기구한 운영을 여승과 대비시켜 절절하게 애절히 표현한 노래이다. 마음이 찡하다.

과연 이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수덕사의 여승일까?

노래 가사에 수덕사가 들어간 워낙 유명한 노래이기에 수덕사가 여승들이 수행하는 비구니 절집으로 아는데 그렇지는 않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일엽스님이다. 일엽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자.

수덕사하면 속세를 떠난 여승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근대 한국불교 선풍을 진작시켜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스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총림 수덕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 선종 총림으로 덕숭산 남쪽에 자리 잡은 현존하는 백제 고찰의 하나이다. 수덕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수덕사는 창건 이후 백제의 고승 혜현스님이 주석하며 법화경 강론을 펼쳤으며,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는 대웅전(국보 49호)이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중수기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 영조 27년(1751)과 46년(1770), 순조 3년(1803)에 색채보수, 부연과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보수한 기록이 있다. 1937년부터 1940까지 만공스님 대에는 대웅전 전체를 해체 보수하였고 이때 포벽에서는 고려 · 조선 양 시대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조선시대 그려진 벽화 안쪽에서 발견된 고려 벽화는 주악비천도, 공양화도, 수화도 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그려진 오불도 등이 있었지만 유실되고 없으며, 현재는 그 모사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사진자료가 일부 전해지고 있다. 현재 대웅전 건물 내부 대들보에 남아 있는 금룡도는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필치의 걸작으로 고려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편 수덕사는 경내에는 대웅전 · 청련당 · 백련당 · 조인정사 · 황하정루 · 근역성보관 · 금강문 · 천왕문 · 일주문의 당우를 갖추고 있으며, 대웅전 앞으로는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제작된 삼층석탑이 있다. 산내에는 정혜사 · 소림초당 · 향운각 · 금선대 · 전월사의 암자와 토굴이 있고, 정혜사에는 능인선원이 있으니 경허 ·  만공스님의 선맥을 계승하는 선원으로 많은 줄을 잇는 도량이기도 하다.

 

또하 덕숭산 서쪽 줄기에는 비구니 제일 선원인 견성암이 있으며, 김일엽스님이 주석한 환희대와 극락암 · 선수암의 비구니 암자가 있다. 근래에는 승가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사부중이 철야용맹정진을 하는 등 선풍을 진작하는 총림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지금부터 수덕사를 둘러보자. 우선 절집 경내를 둘러보고 산내 암자와 부속 전각들을 둘러보기로 한다. 자세한 절집 이야기를 하기 전에 수덕사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대웅전임을 우선 밝혀둔다. 채색도 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인상의 귀품이 물씬 풍긴 전각이다.

수덕사 가람을 탐방하기 전에 수덕사에 있는 보물을 미리 살펴보려 한다. 수덕사에 있는 보물은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유물 복장(보물 제1381호)이다.

◎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석가모니 삼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인데,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12대 보살, 10대 제자 등 여러 무리들이 그려진 그림이다.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란 명칭이 머리광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 주존임을 뚜렷이 나타내주고 있다. 보관과 가슴에 달린 장식, 옷의 문양, 매듭 등이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 불화는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제299호)과 같은 그림인데, 십이대보살, 십대제자, 사천왕상 등이 노사나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조금 더 복잡해진 모습이다. 십이대보살은 중단과 하단에 걸쳐서 배치되어 있으며,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 제자상은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을 보이며 상단에 배치되어 있다.
조선 현종 14년(1673)에 제작된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으로,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제299호)과 같은 도상으로 「원만 보신노사나불」이란 존명이 기록되어 있다. 대형화면에 비로사나삼신불 중 보신불인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십이대보살·십대제자·제석천과 범천·사천왕상 등이 모두 입상으로 배치된 구도로서 신원사 괘불도보다 더 많아진 협시들로 인해 복잡하다.
노사나불은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라는 존상을 강조한 것으로 보관과 가슴에 장식된 영락과 두 팔에 걸쳐진 천의와 하의의 문양, 매듭 등의 장식에서 화려함을 보여준다. 십이대보살은 문수·보현보살과 일광·월광보살, 지장·관음보살 등이 중단과 하단에 걸쳐서 배치되어 있는데 지장과 관음보살은 적색의 두광, 일광과 월광보살은 흑갑사의 두광을 지고 있어 다른 보살의 녹색 두광과 구별 짓고 있다.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제자상이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을 보이고 있는 상단에는 본존 두광 위의 불과 보살, 여섯 구의 십방제불(十方諸佛) 공양물을 들고 있는 비천상등이 배치되어 있어 신원사 괘불도보다 훨씬 복잡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 괘불탱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도상이며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문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고 있다. 화기에는 괘불도 제작에 사용된 탱·포·바탕시주와 주황·황금 등 안료시주, 식염의 공양시주 등의 시주자 명단이 명기되어 있고, 화사는 응렬·학전·석능 등 신원사 괘불도와 같다.
 
◎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유물 복장(보물 제1381호)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에 모셔져 있는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이다.
삼불좌상은 수덕사의 중흥조(中興祖)인 만공(滿空) 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으로서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네모꼴의 각진 얼굴에는 근엄한 듯 부드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가늘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 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눈·입·코의 표현, 양손과 옷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약사불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 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비해, 아미타불은 약사불과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여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연(守衍)비구를 비롯한 7명의 화원(畵員)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須彌壇)은 고려시대 심원사(心源寺) 대웅전 불탁(佛卓)과 그 장엄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금강저(金剛杵)·삽화병(揷花甁)·목단(牧丹)·운파(雲波) 등 안상(眼象) 조각에서 고려시대 불탁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수미단의 기초는 좌우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저면 약 30㎝ 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며, 그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대웅전 건립연대(1308)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수미단은 유일하게 대좌형 수미단을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어 공예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후령통(喉鈴筒) 및 오색실·복식 등이 있다. 전적류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묘법연화경』·『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불설관세음경』 등의 경전과 진언문 및 다라니로서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판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후령통 안에는 각각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5색의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금강저, 삼족(三足)과 육족(六足)의 번(幡)을 의미하는 형태의 직물이 들어 있었다. 오색실은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청색·흰색·홍색·자주색·황색의 실이다. 복식은 조선 중기 포(袍)에서 두루마기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모든 직물의 색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 중기 직물사 및 염색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제 수덕사 가람을 살펴보자.
 

수덕사 가람 배치도

산문 : 덕숭산수덕사

수덕사 선문 :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

선문[禪門] : 참선을 통한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에 의하여 자기 심성의 본원을 깨달을 것을 주창한 불교 종파
 

덕숭산수덕사 선문은 4개의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다. 마치 일주문 같이 생각되어 착각하기 쉽다. 일주문은 안쪽으로 더 올라가면 있다. 여러 절집을 보아왔지만 선문이 있는 것은 덕숭산수덕사가 처음이다.
 

일주문 : 덕숭산수덕사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덕숭산수덕사 편액은 소전  손재형 서예가의 글씨이다.
 

일주문 편액 : 동방제일선원(소전 손재형 서)

일주문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용머리가 흥미롭다.

덕숭산수덕사사적비

금강문(편액 : 설정 송원대종사 서)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나오는 문이다.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금강역사가 모셔져 있는 문이다. 금강역사에는 밀적금강역사와 나라연금강역사가 있다.
 

밀적금강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이 있으므로 밀적금강이라 한다.

나라연금강

나라연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힘은 코끼리 백만 배나 된다. 나라연과 같은 힘으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천왕문(편액 : 법현스님 서)
 
사천왕문은 절에 들어설 때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지나게 되는 세 번째 문으로,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귀의(믿고 따름)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기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지국천왕, 남쪽에는 증장천왕
 

서쪽에는 광목천왕, 북쪽에는 다문천왕이 있다.
 

남방 증장천왕(장도)

수미산 남쪽에 살며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서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증장이라고 하며,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 준다. 손에는 칼을 잡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비파)

수미산 동쪽을 수호하는 신으로 한 손에 비파를 들고 있다. 노래를 전문으로 부르는 건달바를 거느리고 계시며, 평화의 노래가 넘치게 해서 밝은 지혜를 준다.

북방 다문천왕(보탑)

수미산 북쪽을 지키며 부처님의 설법을 빠짐없이 듣는다 해서 다문천왕이라고 한다. 손에 보탑과 창을 지니고서 불법을 수호하며 나찰과 야차를 권속으로 부린다.

서방 광목천왕(여의주)

눈을 부릅뜨고서 서쪽을 수호하며 손에 여의주와 용을 쥐고 있다. 온 우주 모든 생명의 마음을 본다고 하며, 큰소리와 웅변으로 온갖 악귀를 물리친다.

만공기념관

만공대선사방어송덕비

만공기념관

만공선사 항일정신

조선총독부 어전회의에서 총독에게 일할하다. 만공대선사(1871~1946) 

1937년 3월 11일 마곡사 주지 당시, 전국 31본사 주지와 전국 13개 도지사가 모인 조선총독부 어전회의에서 교화의 방편이 여범하거늘 일본불교와 합하여 잘 될 필요가 없으며, 정부에서 종교를 간섭하지 말라. 진흥책은 정부에서 간섭하지 않는 것 만이 유일한 진흥책이다. 이에 스님이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등단하여 크게 호령하여 이르되 「청정이 본연커늘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나왔는가?」하고 좌중에게 물었다. 이에 죄중은 물을 끼었은 듯 조용하였다. 
스님이 큰 소리를 떨쳐 한번 할을 하니 그 소리와 위엄이 장내에 넘쳤다. 이 일이 있은 후 8년 뒤 광복을 맞이하게 되어, 그 기념으로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떨어진 무궁화 꽃으로 세계일화를 남겨,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휘호는 지금도 수덕사에 보존되어 있다. 말년에 덕숭산 산정에 한 칸의 띳집을 지어 전월사라 이름하고 홀로 달을 굴리다가 어느 날 목욕단좌 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낄낄 웃고 입적하니 때는 병술년(1946. 음 10. 20) 일이었다.

수덕사칠층석탑(충남 문화유산자료)
 
이 탑은 1931년 만공 대선사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기단 면석 밖으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면석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옥신 대신에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각 층의 면석과 지붕들은 별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면석 마당에는 우주와 창방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2단의 지붕돌 받침을 가지고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하다. 상층부에는 찰주, 보주, 보륜이 올려져 있다.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코끼리 석등
 

포대화상
 

황하정루 앞 현판 : 선지종찰수덕사(편액 : 원담 진성스님 서), 덕숭총림(편액 : 원담 진성스님 서). 계단 : 대선탈장/ 무슨 뜻일까?
 

황하정루

황하정루(편액 : 원담 진성스님 서) 뒤쪽에 편액이 붙어 있다.
 

덕숭총림 수덕사율학승가대학원
 

조사정사(편액 : 성당 김돈희 서)/조사선원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 저 끝에 있는 세 개의 블록은 무엇을 뜻할까? 불, 법, 승을 상징할까?

황하정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대웅전 앞에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시원하다.
 

감로수
 
범종루에는 범종, 홍고, 운판, 목어 이렇게 사물이 있는데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수덕사에는 특히하게 범종과 나머지 홍고, 운판, 목어를 각각 따로 설치하였다. 일반 절집과는 사뭇 다른 가람배치다.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범종각(편액 : 원담 진성스님 서)
 

범종만을 위한 범종각을 따로 세웠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한다.

법고각(편액 : 원담 진성스님 서) : 홍고, 운판, 목어를 설치한 법고각이다.
 

홍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홍고 아래 홍고를 받치고 있는 조형물이 참 흥미롭다. 머리는 용이고, 몸통은 거북이며 다리가 4개인 짐승이다. 어떤 의미일까?

조인정사(종무소)/수덕사(편액 : 성제 김태석 서)

대웅전 앞 풍광

대웅전 앞 풍광

대웅전 앞 풍광

세계일화 : 세계일화 현판은 청련당 건물에 걸려있다.

이제 한 단을 더 올라 대웅전이 보이는 단으로 오른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청련당과 백련당이 자리 잡고 있고,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청련당(편액 : 만공 원면스님 서)

백련당(편액 : 만공 원면스님 서)
 

대웅전 앞 수덕사 삼층석탑

수덕사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유산)
 
수덕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돌탑이다. 흔히 불가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일종의 무덤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사리를 탑 속에 보관하라는 말을 남긴 뒤부터 승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든 목탑을 세웠으나 삼국시대 말부터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덕사 삼층석탑은 바닥돌부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아래층 바닥돌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부는 3층인데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의 양쪽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다가 끝부분이 살짝 들려져 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구슬 장식이 올려져 있다.
 

수덕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인 665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 방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므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 단을 오르니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채색 없이 단아하면서도 담백하고 단순미를 자랑하며 그 귀품이 주변의 여러 당우들을 앞도하는 당당함을 자랑하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만공스님 주석)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고려 충렬왕 34년)에 건립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 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정면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 합문이 있고 , 측면에는 맨 앞 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점으로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국보 제49호 수덕사대웅전 표지석
 

고려 충렬왕 때 세워진 대웅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손꼽힌다. 긴 세월 속에 예전 화려했던 단청은 거의 사라져 볼 수 없지만 덕분에 목재 본연의 색과 질감, 전통적인 건축 기법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정면보다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이런 특징들이 잘 드러난다. 건물을 옆에서 보면 기둥 가운데 부분이 약간 불룩한 배흘림기둥임을 알아챌 수 있다. 특히 부드럽게 휘어진 맞배지붕의 처마선과 조화를 이루는 박공은 짜임새와 비례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경향신문 2026.07.04. 기사내용발취)
 

수덕사 대웅전 내부 천장, 보와 도리 그리고 서까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보와 도리 그리고 서까래에 남아있는 단청의 흔적이 분명히 보인다. 자연광으로만 대웅전 내부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 화려한 단청이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저 흐릿한 단청은 언제 마자막으로 칠한 걸까? (오마이뉴스 2024.01.06. 기사내용 발취)
 

대웅전 건물 내부 대들보에 남아 있는 금룡도는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필치의 걸작으로 고려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금룡도를 보지 못했다. 단청이 오랜 세월 동안 바래서 분간이 어렵다.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보물 제1381호)
 
조계종 제7교구 본사 대웅전이지만 삼존불만 모시고 일체의 화려함을 마다하고 너무도 소박하고 단순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순함이 그 어떤 화려함보다 더 귀품이 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서일까? 어쩜 중생들이 더 차분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어떤 대웅전 보다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은 이 단순함과 소박함일 것 같다. 저기 아산 들녘에서 김매기 하던 농부도 주눅 들지 않고 소탈한 마음으로 편하게 와서 잔잔히 미소 짓고 있는 부처님 품속에 안겨 위안을 받고 갈 것 같다. 
 

대웅전 옆 면에 걸려 있는 탱화
 
절집의 벽면에는 탱화가 많이 걸려 있다. 나는 탱화 속에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탱화 속의 이야기를 안다면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을 텐데, 설명이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 나의 카친 한 분인 반○○실님이 탱화 작품을 그린다. 그의 정성스럽고 세밀한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대단한 생각이 든다. 나는 탱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카친님의 탱화 작품을 그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 탱화를 그린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탱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고귀한 어떤 작가의 질긴 노력으로 탄생한 작품임을 알기에 이제는 작품 앞에서 숙연해진다.
 

대웅전 옆 한 켠에 있는 나무로 만든 청소도구 보관통이다. 재미있다. 오늘날과 같이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옛날 선인들은 나무나 대나무 또는 볏짚을 이용하여 삶에 필요한 여러 생활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대웅전 앞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명부전
 

명부전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명부(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가는 세계)의 10대 제왕인 시왕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수덕사 명부전에는 후불탱화와 시왕 대신 후불과 양 옆의 시왕을 나무로 조각한 작품을 배치해 놓았다. 특이하다.
 

대웅전 뒷 언덕엔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관음보살상과 관음바위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설화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두 가지 중 하나인 전설은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가 관세음보살이 헌신하는 성역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심상궁곡인 수덕사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 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 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관음바위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 속으로 사라진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지자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수덕사는 근대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찰로서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를 더 이상 구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의 심원(心願)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이 성역에 참배 기도하는 이에게 관음의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가피(加被)가 얻어지기를 기원하며 근래에 관음상을 봉조하게 되었다.(수덕사 홈페이지 자료 발취)
 

삼성각

개산조 대덕지명법사 비

심우당

산하동천

장독대

요사채

수덕사 구석 구석

황하정루 풍광

수덕사 근역성보관 : 성보관 문은 닫혔다.
 

수덕사 선문을 지나 들어오면 숲 속에 부도전이 있다.
 

 

혜암대종사탑
 

벽초대종사탑
 

원담대종사탑
 

?
 

한쪽에 4개의 부도가 있는데 이름이 없다.
 

 

덕숭총림 제3대 방장 원담대선사탑

 원담 법어
 
수덕사에 대한 느낌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깨끗 소담스럽고 청아한 느낌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고 한적하면서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절집이란 느낌을 받았다. 치장보다는 수행을 깊이 하는 절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 수덕사에 오면 좋을 것 같다. 주변 소나무와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어울려 한적하면서도 차분하며 수려한 여백의 선물을 듬뿍 받고 갈 것 같다.
 
수덕사가 거느린 산내 암자와 선원이 많다. 이곳에서는 수덕사 경내만 정리하고 산내 암자와 선원은 따로 정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