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랑 : 광주 원산우회
○ 걸음 : 거림마을 주차장 - 거림탐방지원센터 - 북해도교 - 세석평전 삼거리 - 세석대피소 - 의신갈림길 - 큰새개골 - 대성민박 - 의신마을 : 15.8km

○ 지리산 세석평전으로 향하면서
하늘이 열린다. 가을 하늘이다. 아침저녁 제법 서늘해진 기온이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그 덥던 여름이 어느새 물러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스친 것을 보면 자연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지리산으로 간다. 거림에서 세석으로 오른다. 다시 대성골을 거쳐 의신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오랜만에 걸어본 길이다. 아니 수도 없이 걸었던 길이다. 돌멩이 하나, 숲 속 나무 한 그루, 폭포 한 줄기 모두 다 정겨운 길이다. 어느새 높아진 청명한 하늘을 벗 삼아 오손도손 오르리라. 지리산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겠지? 세석평전 쑥부쟁이도 잘 있겠지? 어쩌면 또 대성골을 내려오면서 지리산 빨치산들의 억울함에 목 놓아 울어 될지도 모른다.

거림마을 주차장에 도착 산행 준비하고

출발 기념 하고

거림마을을 지나

길상암과 길상선사 갈림길에서 국립공원 거림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거림 도장골 시천천 물줄기가 힘차다. 이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작은도장골을 따라 오르면 청학연못을 거쳐 촛대봉으로 오른다. 오래전 추억이 아련하다.

거림의 옛 추억 솔○○펜션

거림탐방지원센터
거림주차장에서 거림마을 거쳐 이곳까지 약 0.7km 거리이다.

거림탐방지원센터 현 위치
거림탐방길은 거림탐방지원 센터에서 세석대피소까지 6.0km이다.

거림탐방로 초입 소나무 아래에서 산길따라님과 함께 기념 한 장 남기고 거림탐방로를 오른다.

한참을 오르고 있는데, 화마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있구나. 마음이 안쓰럽다. 그래도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있어 저렇게 건강히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자연의 자연치유 능력에 감탄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천팔교를 지난다. 천팔은 어떤 의미일까? 한글로 표기하니 소리는 알겠는데 뜻을 모르겠다. 한글과 한자의 차이다. 한글을 쓰고 괄호를 처서 한자를 동시에 표시해 놓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학교 교육에서 한자와 한문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해방 후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는 주요 교과로 가르치지만 정작 우리 조상들이 쓰고 기록했던 한자와 한문을 가르치지 않으니 한글로 써 놓으면 무슨 뜻인 줄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상들이 기록해 놓은 옛 문헌을 읽을 줄 모르고 뜻도 모르니, 첨삭해 놓은 한글로 읽고 그것을 다시 뜻풀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한글사랑과 관계없는 일로,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역사를 제대로 이어받는 문제이다. 좀 더 첨가한다면 세계 각국의 언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 적어도 우리나라를 둘러쌓고 있는 이웃나라인 중국어와 일본어는 기본으로 일상 대화가 가능하게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길 바란다. 언어가 곧 경쟁력이고 공동체의 정신이며 역사이다.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한자와 한문,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그들 문화와 역사의 이수 시간을 대폭 늘려 가르치고 공부하고, 국가 주요 채용 및 승진 시험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팔교에서 동화나라님

천팔교에서 내려다본 계곡

천팔교에서 산길따라님

데크길에서 동화나라님

거림탐방길은 내대천을 따라 만들어진 거림골을 오르는 길로 비교적 완만하다. 지리산 능선으로 오르는 탐방길 중에서 비교적 완만하고 쉽게 오르는 길이 거림탐방길이다.

거림골 내대천은 세석평전의 여러 물줄기들이 모여 계곡을 만들고, 가끔은 아기자기 폭포를 만들며 흐른다.

암반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우렁차다.

북해도교

기념

동화나라님과 산길따라님

북해도교에서 바라본 계곡

북해도교에서 내려다본 계곡

북해도교
북해도교를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 오름길이다. 힘이 든다. 이곳에서부터 급경사 오름길이 거림탐방로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거칠게 오르는 급경사 오름길 중간에 쉼터가 있다.

쉼터 현 위치

쉼터에서 산길따라님과 함께

한참을 급경사 오름길을 지나니 완만한 탐방로가 나온다. 거림에서 3.9km 지점이다.

기념 한 장

또 거칠게 오르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 땅에 아주 오랜 옛날 역사 이전의 조상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적어도 구석기시대 수렵활동을 지나 신석기시대부터 농사를 지었다면 일정한 장소에 거주하면서 부족을 이루고 나름 질서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는 고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와 고려 후기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고대 역사를 말하지만 그 이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분명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과 사람 즉 천, 지, 인이 신으로 살아가는 시기 "신시시대"를 오랫동안 보냈을 것이다. 그 때는 하늘에 부합하는 이치를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 때는 수명이 제한이 없으며 특별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땅에서 나는 우유를 먹고 살아서 먹고 사는데 근심이 없었으며 사람들이 스스로 하늘이 내려준 규율을 지켜 차별도 다툼도 부족함도 없는 그야말로 태평성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이 오감을 맛보면서 차츰 타락하여 신성이 없어지고 탐욕이 생기고 부족간에 서로 경계를 이루고 경쟁과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하늘의 뜻을 저버리니, 아~ 통제라. 신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이 되어 수명이 짧아지고 힘들게 수고를 해야하고 남의 것을 탐내며 힘센자와 약자가 생겨서 무질서한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법을 만들어 강제하는 국가가 생겼다.

이름 없는 다리를 지나면서 세석평전의 가는 물길이 여러 방향에서 흘러내린다.

동화나라님

동화나라님과 산길따라님

이름 없는 다리 데크길

굽이굽이 오르고 올라 두 번째 쉼터에 도착했다. 세석대피소까지는 1.6km가 남았다.

망중한 쉬어가자.
푸르고 푸른것이 하늘이 아니고 까막고 까만것이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모양과 바탕이 없으며 끝과 시작이 없다. 위 아래가 없으며 둘레 사방이 없고 비워있고 비워있어 공하고 공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쌓이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무수히 빛나고 있는 저 별들을 보라. 그 수가 무수히 많고 크고 작고 밝고 어둠고 힘들고 즐거움이 다 같지가 않다. 하느님께서 무수히 많은 세계를 만드시고 그 무수한 세계를 사자를 보내어 칠백세계로 나누어 다스리니 땅이 큰 것 같지만 하나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땅은 가운데 용암이 폭발하고 흔들리어 바다와 육지가 생겼다. 비로소 눈에 보이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하느님이 김를 깊은 곳까지 불어 넣고, 해를 끌어다가 따뜻하게 하시니 움직인 것, 나는 것, 허물 벗는 것, 헤엄치는 것, 식물 등 온갖 생물이 번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세 개의 참됨을 받으니 이를 성명정이라한다.
참성품은 선악이 없으니 가장 밝음으로 통하고
참생명은 맑고 흐림이 없으니 중간 밝음으로 알고
참정기는 두텁고 얇음이 없으니 낮은 밝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성명정을 가지고 참됨으로 가면 하느님이니라.
보통 사람들은 어리석은 지경에 들어가서 세 가지 망령됨이 뿌리에 붙으니 이를 심기신이라 한다.
심은 본성에 의지하여 선악이 있으니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입는다.
기는 생명에 의지하니 맑고 흐리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쉬 죽는다.
신은 정기에 의지하니 두텁고 얇으니 두터우면 귀하고 엷으면 천하니라.
참됨과 망령됨이 마주하여 세 가지 길을 만드니 이것이 감식촉이라한다. 돌고 돌아 18지경을 만든다.
감은 희구애노탐염이오(감정과 느낌)
식은 분란한열진습이오(숨쉼과 기운)
촉은 성색취미음저이니라.(감각과 오감)
보통 어리석은 사람들은 선과 악과 맑고 탁하고 두텁고 얇음이 서로 섞어서
삼도에 지경에 감식촉에 전성18경을 쫓아가서 마음대로 살다가 떨어지고 나고 자라고 쇠약하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지고
깨달은 이는 감정과 느낌을 그치고(지감) 숨 쉬기를 고르게 하고(조식) 오감의 세계로 가는 것을 금하여(금촉)
하나의 뜻으로 행하고( 초지일관) 망령된 세상에서 돌아서서 참진리에 이르러 크게 하나님의 기운을 펴니 본성을 통하고 공적을 완수하매 인간 완성이 되느니라.
인간완성의 길
수행, 닦고 행하라
감정을 그치고, 숨을 고르게 쉬고, 오감의 부딪침을 금하라.
수많은 선과 덕을 쌓아라.

동화나라님
지리산을 오르면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터득하고 참된 사람길을 걸어 인간완성이 되길 바란다.
지리산 탐방길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터득하고 참된 인간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길따라님

두 번째 쉼터 현 위치(거림 1400 고지)

세석교

세석교에서 바라본 계곡

세석교에서 내려다본 계곡

세석교 기념

세석교

세석교에서 동화나라님과 산길따라님

세석교를 지나

무엇일까? 무척 궁금하다. 인공으로 만들어 꽂아 두었다.

드디어 세석평전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세석대피소 까지는 0.5km이다. 완만한 평지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세석평전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숲길, 휴~ 살 것 같다. 이렇게 편할 수가~ 고생 끝에 맛보는 편안함이다.

세석대피소 아래 세석평전 야생화 천국

동화나라님

드디어 세석대피소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 하산길을 내려온다.

짚신나물

쑥부쟁이

구절초

산오이풀

구절초

세석대피소 천상의 화원

세석대피소 이정표
세석대피소에서 의신까지 9.1km 하산길이다.

산오이풀

동자꽃

투구꽃

투구꽃

수리취

용담

다시 세석평전 갈림길을 지나 의신으로 하산이다.

용담

의신으로 하산하는 숲길

지리산 백두대간 영신봉에서 한줄기 산줄기가 갈라져 낙동강 남쪽으로 쭉 이어지는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고 한다.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을 따라 내려오면 이곳 음양수 암반 위에 옛 도인의 수행터가 있다.

수행터라?

이곳에 앉아 깊은 수행을 했을 도인을 생각하며 잠시 쉬어간다.

하늘이 열리고 발아래 산하에 뭇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치를 수행했을 도인의 경지는 어떠했을까?

산길따라님
새로 장만한 스틱을 들어 올렸다. 오래오래 잘 사용하길 바란다.

음양수
이곳 음양수는 천왕봉 아래 천왕샘처럼 바위틈에서 철철 흐른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른 법은 없다. 신비하리만치 시원하고 청량하다.

음양수라?
음과 양의 이치를 담아내는 감로수이다. 원래 하나에서 둘이 갈라져 나왔는데 그것이 음과 양이다. 하늘이 양이면 땅은 음이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밤과 낮 등 자연의 이치를 음과 양으로 그리고 오행으로 해석한다. 주역이야기다. 암튼 그런 음양을 품고 있는 신비한 물이니 얼마나 몸에 좋은 약수인가? 한 모금 떠서

기념하고

목을 넘긴다.
아 시원하다. 보약을 먹는 것 같다. 물맛이 최고다. 살아있는 음과 양을 다 마신 기분이다.

동화나라님도

신비한 물이다. 돌틈에서 철철 흐른다.

음양수(1,450m) 이정표

음양수 바위와 도인의 수행처

의신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까지는 낙남정맥길이다.

중간 전망대에 서서

저기가 영신봉이네요

세석평전을 바라보고

반야봉과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남정맥길에는 마가목이 지천이다.

영신봉 - 세석평전 - 촛대봉 라인
촛대봉 아래 저기 어디쯤에 청학연못이 있다. 청학들이 노닐던 연못이다. 청학은 신선을 태우고 다니는 신조로, 사람의 얼굴을 하고, 학의 부리, 여덟 개의 푸른 날개를 달고, 다리는 하나이고, 붉은색을 띠며, 꼬리는 아홉 개로 되어 있는 새로, 신선을 태우고 다니며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나는 새이다.
낙남정맥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삼신봉이 있고 그 아래 청학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신선들이 청학을 타고 살았다는 이상향인 동네이다.

의신갈림길이다.
이제 낙남정맥과 헤어지고 대성골로 하산이다. 의신까지 6.5km이다. 이정목에는 지리(경남) 2-13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맨 나중 13이 의신에서부터 13번째 이정표이다란 뜻이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가 500m이니 13이면 6.5km이다. 이정표 번호만 보아도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한참을 급경사 하산길을 내려왔다. 중간에 멋진 폭포를 만났다.

큰새기골 다리도 건너고

다리에서 바라본 큰새기골

한참을 내려 오니 작은새기골 다리

대성골은 큰새기골과 작은새기골 물이 합쳐져서 대성골이라는 거대한 계곡을 만들며 흐른다. 하산길에 만난 작은새길골 다리이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작은새기골

한참을 내려왔나? 마치 통천문 같이 바위 사이로 지나는 길이 있다.

원대성안전쉼터

안전쉼터를 지나고도 한참을 내려오니 대성골 마을에 도착했다.

대성골 마을은 화마에 휩쓸렸다.

그 언젠가 불일폭포를 지나 삼신봉을 거쳐 이곳 대성골에서 1박을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날 거나하게 취한 술자리는 시간 간 줄 모르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때 만난 산우도 어디론가 떠나고 그 아기자기했던 대성골 주막집도 화마에 휩쓸려 온데간데가 없다.
세월 참 야속하다.
그래도 흐르는 것이 세월이니 그 또한 어찌하랴?

대성골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현상을 비롯한 남로당 빨치산들은 북으로 올라가는 것을 마다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견디다 보면 그네들이 추구하는 해방세상이 온다고 믿고, 지리산에서 무장 투쟁을 계속했다. 어제나 올까 기다린 해방세상은 오지 않고 죽음과 같은 혹한의 지리산 겨울을 세번이나 보내면서 사무치는 가족과 산아래 두고온 형제 자매가 그리울 때 추석이 다고오고 있었다. 이맘 때일까? 산생활의 고달픔도 풀고 그동안 산생활 동지들도 보고파서 지리산 빨치산들이 대성골로 모여들었다. 군경은 휴전 후 지리산에 남아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빨지산들을 소탕하는 공비토벌 작전을 세워 지리산 빨치산을 제거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리산 빨치산들이 대성골로 모여든다는 첩보를 입수한 군경 토벌대는 포탄을 동원하여 대성골 빨치산들을 향해 퍼부었다. 아늑히 추석분위기를 접해보려는 빨치산들에게는 왠 날벼락이 날아들었다. 혼비백산 살아서 달뜨기 능선으로 기어 오른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몰살을 당한 것이다. 이현상은 소중한 동지들을 잃은 책임을 지고 인민재판에서 계급장을 띠고 여수에 사는 애인에게로 피신하러 내려가다가 의신골 너덜에 숨어 잠복하고 있던 군경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로써 지리산 빨치산은 우리 역사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남에서는 소탕의 대상이 된 지리산 빨치산들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먼 훗날 민족이 하나가 되고 나면 일제로 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남과 북으로 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지리산 빨치산들의 역사적 평가를 냉철하게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이념적으로 남로당 핵심 인물들에 대해서 별도의 평가를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고 산으로 들어간 일반 백성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억울한 죽음과 역사적 평가는 달리 해서 복권해 주어야 한다.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만큼이나 이땅의 암울한 역사가 할퀴고 간 억울한 흔적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는 대성골을 지나면서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슬픈 울음이 울대를 타고 소리없이 흐른다.

무척 긴 하산길 9.1km를 어떻게 걸어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예상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차츰 짐이 되는 신세가 되어간다.

의신 현 위치

의신마을 항일투사 33 인총
항일 강제병합이 있기 2년 전 1908년 2월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며 결사 항전하다 최후를 맞이한 항일 무명 영웅 30인이 이곳 지리산 화개면 의신마을 공동산에 잠들었다. 이곳에 묻힌 항일의병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맹활약하다 1908년 1월 말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의병들은 마을 서당에 본부를 두고 배명고지(지리산 역사관 뒤 능선)에 초병을 세우고 벽소령 길목을 경계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베 조각을 나누어 주면서 토시와 길목(발 등덮게)을 만들게 하고 음력설을 쇠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월 2일(음력 설날 아침) 승려로 가장한 일본군이 철골(용화정사 터) 마을 주막으로 오는 것을 발견하고 발포하였으나, 일본군의 유인 작전이었다. 일본군(변장대)은 마을에 침투하여 의병을 향해 기습공격을 했다. 항일의병 80여 명은 일본군에 맞서 이틀 동안 격렬히 저항했지만 일제의 막강한 화력 앞에 의병 50여 명이 전사하고 생존자는 산청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때 주민 일부도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

이후 의신마을 주민들은 항일의병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산재등, 진평전 및 계곡 산허리에 묻어 주었으며, 이곳 30여 명의 무명 항일영웅들의 묘는 그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봉분이 훼손됨에 안타까워 하동군민의 정상을 모아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삼가 항일의병 비를 세웁니다.
2011년 8월 15일 광복 60주년 하동군민이 세움
거룩한 영웅님들 앞에 삼가 고개 숙여 묵념을 드린다.

의신마을 입구 이정표 세석대피소까지 9.1km이다.

의신마을

의신마을 탐방로 입구

의신마을

선학정
가을문턱에서 산길은 선선했다. 처서가 지난 산길은 제법 가을 중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석평전도 가을 색깔이 엷게 물들고 빠르게 찾아오는 가을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숲 속 나뭇가지엔 가을 단풍이 엷게 번지고 있었다. 어느덧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하물며 들녘도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데 지리 세석 평전을 말해 무엇하랴. 산길은 어디라도 그 나름 운치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문화가 있다. 오늘은 거림에서 세석으로 오르고 의신으로 내려왔다. 차츰 나이 들어 안전하게 천천히 걷지만 이제 다른 산우님들에게 짐이 되어간다. 10km 이상은 무리이다. 과유불급이다. 스스로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차츰 높아가는 지리산 청명한 하늘에 또 하나의 추억을 새긴 하루이다. 세석평전의 천상의 화원 야생화를 만나는 즐거운 산행이지만 힘든 산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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