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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2026.02.12. 고창 방장산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6. 2. 12.

봄기운이 온 천지의 새로운 생명을 뜨워내느라 야단이다.
1000m 이상에는 아직도 흰 눈이 그림같이 쌓여 있어 겨울과 봄의 경계지절로 애매한 시기, 가고 오는 두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 어디일까? 하다가 평소 늘 함께한 목요팀과 고창 방장산으로 향한다.

오늘 코스 : 장성 갈재 - 515.5봉 - 쓰리봉(734) - 서대봉(675.9) - 연자봉(685) - 봉수대(715) - 문바위재(695) - 방장산 정상(743) - 고창고개(525) -   억새봉(625) - 벽오봉(640)  - 방장사 - 양고살재 : 10.2km

장성 갈재에 도착

장성 갈재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에 위치한 역사적인 고갯길로, 삼남대로의 대표적인 구간이다.
해발 276m 높이로, 갈대가 많아 '갈재(葛岾)' 또는 '노령(蘆嶺)'으로 불리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삼남대로 갈재)으로 지정되었다.

장성 갈재에 도착 산행 준비하고 아직 흰 눈이 남아 있는 방장산을 오른다.

장성 갈재는 고려 현종이 거란 침입을 피해 나주로 피난할 때 이 고개를 넘었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룡촌 전투 승리 후 농민군이 정읍으로 이동하며 이용했다.
고갯길 정상에는 1872년 장성 부사 홍병 위를 기리는 불망비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삼남대로로서 행정·상업적 중요성을 가졌다.

갈재의 이름 '노령(蘆嶺)'은 기생 '노아(蘆兒)' 또는 '노화(蘆花)', '갈애(渴愛)'*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한다. 목란주점 딸 갈애가 과거 유생이나 관리들을 유혹해 벌을 받은 후, 얼굴이 찌그러진 '갈애바위'가 생겼다는 이야기로, 마을 사람들이 위령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 갈애(渴愛) : 누군가를 몹시 사랑함

'갈애바위'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잔설이 수북이 쌓여 있는 눈길을 밞으며 한참을 올랐나? 쓰리봉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방장산은 700여 m 산이지만 서해에서 눈구름이 한반도 내륙으로 넘어오면서 유난히도 많은 눈을 쏟아 부여 아직도 산길에는 겨울산만큼이나 눈이 수북이 쌓여 겨울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눈길 편백숲 사이로 불어오는 아늑한 바람아~

너는 아느냐?

말없이 떠난 그대
그리움만 남기고
서러움에 겨워
먼 하늘만 쳐다본다.

갈재 목란주점 갈애의 첫사랑 애처로움을~

차갑기보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상쾌한 눈길이 되고

한참을 올랐다. 무슨 산성이었을까?

첫 번째 봉우리다. 515.5m 영산기맥을 지나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눈길이라 힘이 두 배는 더 든다.

거대한 쓰리봉이 눈앞에

눈 속에 묻힌 산죽 밭을 지니고

쓰리봉을 향해 급경사 오름길을 힘들게 오르지만.

급경사 오름 눈길은 노 산꾼의 발길을 잡는다.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나 다시 미끄러지고~

간신히 기어올랐다. 쓰리봉 바로 아래 전망대 갈림길에서

첫 번째 전망대에 섰다.
기막힌 조망이다. 장성 입암산과 백암산 그리고 정읍 내장산 산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산기맥은 정읍 내장산에서 장성 백양사로 이어지는 호남 정맥의 가운데쯤인 순창새재에서 분기되어 장성 새재를 거쳐 입암산 - 장성 갈재 - 방장산 - 문수산 - 축령산 - 불갑산을 거쳐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영산강 물이 서해로 흐르지 않고 목포로 흐르게 하는 산줄기이다.

방장산은 영산기맥의 첫 번째 산이다.

방장산 능선길에 접어드니 북사면에 아직 상고대가 남아 있다.

찬란한 아침 햇살에 영롱한 상고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방장산 쓰리봉 정상석

‘써레봉’ → ‘쓰리봉’ 설

농기구 ‘써레’처럼 길게 갈라진 암릉과 단애 모양에서 ‘써레봉’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쓰리봉’이 되었다.

원래 해발 약 764m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높이가 깎여 734m가 되면서, 방장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 ‘쓰리(3) 봉’이 되었다.

방장산 정상석 쓰리봉에서 오늘 함께한 대원님들과

방장산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봉수대 인근에서 바라보면 쓰리봉의 윤곽이 뚜렷한 세 봉우리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에서 쓰리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오늘 오른 방장산은 영산기맥의 들머리 격인 장성과 고창사이에 위치하면서 장성호에서 흘러오는 황룡강 물줄기와 정읍 동진강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가르다가 고창을 지나면서부터는 황룡강과 서해로 흐르는 여러 천의 물줄기를 가른다.

고창 방장산은 해발 743m이지만 고창지역에서 보면 참으로 거대한 산군으로 보인다.  
그래서 방장산이라고 하였다.

고창 방장산은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일컬어져 예로부터 신성이 깃든 산으로 추앙받았다.

삼신산은 선인이 살고 불로불사의 영약이나 과실, 금·옥으로 지은 누각이 있다는 신선 사상이 결합된 공간으로 인식된 산이다.

한반도에는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으로 여겼고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이라고 했다.

삼신산이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한다.

고창 방장산의 옛 이름은 반등산(半登山, 半燈山)·방등산(方登山, 方等山) 등으로 불렸다.

산세가 깊고 계곡 수량이 풍부해 크고 작은 폭포와 계곡이 많고, 서쪽 기슭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용소, 용추폭포와 용추계곡이 있다.

서대봉(675.9)

방장산은
호남평야와 서해를 내려다보는 장벽 같은 능선이 길게 뻗어 조망이 뛰어나며, 방장산 정상 - 봉수대 - 억새봉 등 주요 조망지에서 무등산, 내장산, 백암산, 선운산, 모악산과 서해 바다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675.9봉 기념

겨울에는 서해에서 유입되는 눈구름이 산줄기에 걸리며 많은 눈이 내려 ‘눈꽃 산행지’로도 유명하다.

연자봉(685)을 지나

백제 시대부터 산세가 험하고 수림이 울창해 도적떼가 숨어 살던 곳으로 전해지며, 남편을 기다리는 부녀자의 원망을 노래한 가사 「방등산가(方等山歌)」의 배경이 된 산이다.

용추폭포로 가는 고개 갈림길을 지나

봉수대 정상 오름길에 돌아보니,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쓰리봉이다.

봉수대 오름길에 바라본 장성 입암산 산군들

봉수대(715) 도착, 정상목을 배경으로

봉수대 정상목에서 기념 한 장

문바위재(695)를 지나

방장산 정상 오름길에 돌아본 봉수대(715) - 685봉 - 쓰리봉 라인

방장산(734) 정상에 올라 정상목 기념

방장산 정상 아래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간다.

한참을 눈길 하산

첫 번째 고창고개(525)와

두 번째 고창고개를 지나

억새봉 오름길에 산성터가 있고

억새봉 도착

억새봉(636)

억새봉 활공장에서

억새봉에 있는 동학농민항쟁 기념 조형물

억새봉 활공장에서 바라본 고창읍내 방향 조망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이곳 활공장은 확 트인 조망 덕에 일몰 풍광이 기가 막힌 곳이어서 비박을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활공장에 서면 확 트인 조망 앞에 마음이 뚫리고 긴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기념 한 장 남기고

대원님들과 함께

억새봉 활공장에서 방장산 정상을 배경으로 힘찬 희망을 날린다.

벽오봉을 향하여

방장산 장상 배경 억새봉

벽오봉 이정표

방장산가비문도 들여다 보고

방등산가비
 
方登山 在羅州屬縣 長城之境 新羅末 盜賊大起 據此山 良家子女
多被擄掠 長日縣之女 亦在基中 作此歌以諷其夫不卽來救也
방등산 재나주속현 장성지경 신라말 도적대기 거차산 양가자녀
다피로략 장일현지녀 역재기중 작차가 이풍기부즉래구야.

방등산은 나주의 속현인 장성의 경계에 있는데 신라 말 도적이 크게 일어나 이 산에 웅거 하였다. 양가 자녀들이 많이 붙잡혀 갔는데 장일현의 여인도 그 안에 있었다. 이 노래를 지어 남편이 즉시 와서 구해 주지 않음을 원망하였다.
 
방등산가비(고창군과 고창문화원)

방등산가는 신라 말에 지어진 백제 후예의 노래이다. 가사는 전해지지 않으며 위와 같은 내력만 전하는데 정일현을 장성이라 추정한 옛 기록도 있다. 또한 방등산은 반등산 또는 방장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고창 고을의 진산이 되며 예로부터 영산으로 받들어져 왔다. 이제 아스라이 천년 세월이 흘렀으나 이 노래에는 당시 고단한 삶을 살던 민초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기에 그 태자리가 되는 이 산에 군민들의 마음을 모아 삼가 이 노래비를 세운다. 
 
방등산은 예전에는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서 반등산(半登山)이라 불리기도 하고 방등산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인조 때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 방장산의 의미는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이다.

산악자전거 종합안내도

벽오봉(640)에 올라

고창공설운동장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갈미봉도 지나고

마지막 능선길을 따라 부지런히 하산이다.

양고살재 하산 중 방장사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방장사 대웅전만 쳐다보고 바로 양고살재로 하산이다.

양고살재 도착 임공사 절집 입구 표지석

양고살재 현 위치

미소사와 방장사 절집 안내석

양고살재를 지나면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이다.

양고살재에서 공설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애향천리마실길 표지

영산기맥으로 내려 뻗는 산줄기에 양고살재(395) 표지

○ 고창 방장산 산행을 마무리하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눈길을 줄곧 걸었다. 방장산은 여러 번 왔지만 눈길을 밟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산은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영산기맥 들머리 산으로 장성과 고창을 가르며 전북과 전남의 도계를 이룬 산이기도 한 방장산을 완주하여 기분이 좋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산행이 점점 힘들지만 그래도 천천히 힘닿는 대로 이렇게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과유불급' 유의하면서 건강을 잘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나의 할 일이다. 오늘도 좋은 분들과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걷는 길은 마음 따뜻한 힐링 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