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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2025.12.07. 남해 금산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5. 12. 7.

○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 걸음 : 두모계곡입구 - 남해양아리석각 - 부소암(扶蘇庵) - 부소암(扶蘇岩) - 헬기장 - 상사바위 - 좌선대 - 재석봉 - 금산정상 - 보리암 - 쌍홍문 - 도선바위 - 금산탐방지원센터


○ 남해 금산을 향하면서


남해 금산 보리암은 이태조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곳으로 유명하다.


남해 중심산인 금산 정상 아래 금강산을 방불케 하는 기암절벽의 기묘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은 보기만 해도 그 절경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보리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 푸른 바다 확 트인 조망은 가히 남한 제일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남해 금산은 여러 번 올랐다. 추억이 많은 곳이다.

산악회에서 남해 금산을 간다기에 아름다운 풍광을 보러 아련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 남해 금산

남해 금산은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해발 681m의 화강암 산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명산이자 국가 명승 제39호이다.

바다와 섬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고 보리암으로 유명해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기도·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산에 비단을 덮은 듯한 풍광에 감탄해 ‘금산(錦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거대한 화강암 산체 위로 기암괴석이 이어져 ‘금산 38경’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암봉과 바위 지형이 발달해 있다.


낙엽활엽수림과 화강암 암릉이 어우러져 가을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정상부에는 보리암이 있어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해수관음 기도처로 꼽힌다.

보리암 일대에서는 남해 앞바다와 다도해 섬들이 한눈에 들어와 일출·운해·야경 감상이 뛰어난 곳이다.

○ 남해 금산 산행 시작


두모계곡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본격 산행에 앞서 주차장 구석에 세워진 서복상을 살펴보자.

서복상

서복상(높이 2.6 m, 폭 1.2m, 무게 3톤)은 지난 2014년 11월 10일 서불과차 한•중 국제학술 심포지엄 결과 상호협력을 위한 표석으로 중국 서복회에서 2015년 5월 13일 기증한 것을 좌대와 주변을 정리하여 세우게 되었다.

서복상을 이곳 두모계곡 입구에 세운 이유는 금산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있는 거북바위 위에 서복이 지나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라는 양아리 석각이 있기 때문이다.

○ 남해 서불과차*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방사 서불에게
삼신산 불로초를 구해 오라 명하여 서불이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 위에 글을 새겨 발자취를 남겼다고 전하는 남해 양아리 석각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6호(1974.02.16)로 지정되어 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후대인들은 해독하지 못한 서불 관련 남해 암각화를 여러 형태로 분석하고 있다.  '남해도'의 저자 이청기는 거란족문자 설, 인도의 데세판데 박사는 수렵선각설, 최남선은 고대문자설, 정인보는 선사시대 각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선사석각 화설, 오세청은 중국의 금석학자 하추도가 해석한 서불기례 일출 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 서복상은 중국 서복회에서 기증하였으며 서복이 그 옛날 서불과차를 새길 것에 설치되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 서불과차(徐市過此 또는 徐福過此)는 "서불(徐市/徐福)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중국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라고 보낸 방사 서불이 한국 지역을 방문하며 남긴 암각문으로 전해진다.

서복상 기념 한 장 남기고

이제 남해 금산 보리암으로 오른다.

남해 금산 산행 입구

○ 남해 양아리 석각

'거북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에 새겨진 문자 또는 문양은 일반적으로 '서불이 이곳을 자나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차'로 해석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시종  서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주며 불로초를 구해오라 고하여, 서불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서불은 '세상에 늙지 않게 해주는 풀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하며, 이곳에서 사냥만을 즐기다 떠났다. 그때 서불은 자신이 이곳에 왔음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이 문자 또는 그림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진나라 때는 한자가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야기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둘러싼 해석은 다양하다. 단순한 동물의 발자국이라는 견해 우리나라 고대문자라는 설, 또는 거란이나 산스크리스트 문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곳 남해에서 가까운 두모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들과 유사한 문자 또는 문양을 새긴 바위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바위문자와 문양은 이곳 남해의 고대 문화와 관계를 갖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장승

청량한 숲길 완만한 오름길

부소암 1.0km

쉼터

서서히 화강암반이 나타나고

암반이 장난이 아니다.

이 깊은 곳에 화전민 터전이 많다.

거대한 바위

쉼터

암반사이를 지나 부소암으로


현 위치

부소암으로 올리는 수도관

첫 번째 부소암 전망대에서

조망이 터지고

남해상주해수욕장도 보이고/미세먼지가 심하다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남산 기암절벽

부소암 도착

부소암 범종

부소암 수도꼭지/저 아래 산자락에서 펌프를 가동해 이곳 부소암까지 끌어올린 물줄기이다.  

부소암

부소암 현판

부소암 지장전일까?

지장전(地藏殿)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

전각 안에는 중앙의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왕과 열 시왕을 배치

지장전은 지장보살이 죽음의 세계(명부)를 관장하므로 명부전(冥府殿)이고도 하고, 저승의 열 명의 재판관인 시왕을 함께 모시면 시왕전(十王殿)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지장전은 조상 천도재, 49재 등 죽은 이의 좋은 왕생을 비는 의례의 중심 도량 역할을 한다.

부소암에서 대원님들

부소암에서

부소암 전경

부소암 뒷마당에서 바라본 금산 정상으로 오르는 전경

부소암 뒷 암석에 마애불

부소암 뒤 암석에서 흘러나온 감로수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 53(보물 제1736호)/귀중한 유물에 대한 설명판만 부소암 뒤편에 방치되어 있다. 부소암에 현재 이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 53(보물 제1736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이 귀중한 유물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이 안내판을 뒷칸에 방치하는지 알 수가 없다.


○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 53(보물 제1736호)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종의 으뜸 경전으로,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넓고 큰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든 중생과 만물을 품어서 여러 가지 꽃으로 그들을 장식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며, 줄여서 화엄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전에는 석가모니가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보살과 중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 53 은 중국 동진의 승려 불타발라타가 한문으로 번역한 진본 60권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는 입법계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선재동자가 스승 53인을 두루 찾아다니며 수행을 완성하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살이 수행하는 열 가지 단계와 수행의 완성 과정을 설화 형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11~12세기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목판본으로 추정되며 누가 어디에서 간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표지를 제외하고 전체가 22장으로 이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1081.7cm, 세로 29.7cm이다.

경전의 끄트머리에 향나무로 된 막대를 달아 두루마리 형식으로 보관하였다. 표지와 본문에 부분적으로 손상이 있고 먹이 번진 흔적이 약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 경전은 해인사 대장경판에 수록된 대방광불화엄경 권 53과는 다른 판본이며 동일한 판본이 전해지지 않는 유일본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불교학과 서지학뿐만 아니라 당시의 목판 인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 유물이다.

부소암에서

부소암에서 산길따라님

부소암 뒤 거북바위

거북바위

부소암 절집 사이로 부소암(범왕대)

금산으로 오르는 전경

부소암

부소암 사람의 뇌모양을 하고 있어 법왕대라고도 한다. 남해에 와서 금산을 오르지 않고서야 금산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명산의 반열에 우뚝 솟은 명산, 금산을 더욱 명산답게 만드는 곳, 그곳이 바로 범왕대이다. 부소암(절집) 뒤편에 요새처럼 거대한 돌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이 천해고도 범왕대이다. 암벽 한켠에는 산신을 업고 포호하며 산을 내 달리는 호랑이 형상의 조각도 보이며 작은 암자인 부소암이 이 바위 아래 위치해 있다. 아득히 눈길 머무는 소치도, 노도가 보이고, 호구산 망운산도 지척처럼 다가오다가 두모마을 다랭이 논들도 들어온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것은 나오는 겸손한 논다랭이는 민초들의 선량한 마음처럼 아름답다. 이처럼 한점 티 없이 빛나는 부소대(법왕대) 옆에 위치한 작은 암자 부소암은 그렇게 숨어 있어 더욱 아름다우며 고려시대 제작되어 2011년 12월 23일 보물제 1736호로 지정된 '대방광불 화엄경 진본 권 53'을 소유하고 있다.

부소암(금산 제34경)

부소암 절벽

기암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기막힌 부소암(절집)과 부소암(바위)을 뒤로하고 헬기장으로 오른다.

헬기장 현 위치

헬기장 쉼터

점심

상사바위를 향하여

상사바위로

상사바위 가는 길 현 위치

상사바위에서 한 폼 잡는 동화나라님

상사바위에서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보리암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금산

금산 기암과 보리암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보리암

상사바위

상사바위 설화는 조선 선조 봉강 조겸(1569년)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아래로 굽어보면 너무 높아 땅이 보이지 않아 사신암이라 부르고 "속세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상사자가 오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상사암이라 붙인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한 젊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려 여인과 바위에서 사랑을 맺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사바위에 있는 기암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기암 능선

기념 셀카

상사바위에서 기암군을 배경으로

기막힌 기암군이다.

기암군을 배경으로 기념 한 장 남기고 이제 좌선대로 향한다.

좌선대로 가면서 바라본 일월봉

좌선대로 가면서 바라본 일월봉

좌선대 오름길에 바라본 금산산장

좌선대 오름길에 바라본 제석봉과 일월봉

좌선대 오르는 길목에 기암

좌선대 오름길 기암

좌선대 오름길 기암

좌선대(금산 제20경)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세 사람이 수도하면서 앉은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바위에는 이들  삼사가 앉은자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하여 좌선대라고 부른다.

금산산장

금산산장

금산산장

금산산장

금산산장

금산산장을 지나 제석봉으로 향한다.

제석봉(금산 제19경)

일월봉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산의 빼어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바위에 하늘 임금인 제석이 내려와 놀다 갔다 하여 제석봉이라고 부른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일월봉

제석봉에서 바라본 상사바위

제석봉에서 바라본 보리암

제석봉에서 바라본 일월봉

제석봉을 뒤로하고 금산 정상으로 오른다

다시 헬기장 갈림길까지 올라와서

현 위치

금산 정상으로 향한다.

금산정상 삼거리

줄사철나무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상록성 덩굴나무로 사철나무와 닮은 모양이지만, 줄기가 덩굴지며 가지에 있는 볼록한 검은 점이 특징이다. 꽃은 5~7월에 피고 열매는 10~12월에 붉게 익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남해 금산에 자생하고 있는 줄사철나무는 수고 3.8m, 수관폭 3.6m, 근원직경 8.5cm이며, 수령은 약 150년으로 추정된다. 외줄기 독립수(1주)로 바위에 의지하여 주변식생이나 기후환경에 적응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어 2022년 10월 20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대나무 군락을 지나

금산 정상 망대

망대(금산 제1경)

금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축조한 봉수대로 사방의 전망을 가리는 것이 없으며, 넓고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망대라고 불린다.
망대에 오르면 금산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본 장엄한 일출의 모습은 뛰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남해 금산 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봉수대는 주변을 살피기 유리한 높은 산에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정해진 신호를 보내는 근대 이전의 군사 통신 시설이다.
금산(해발 681m) 정상에 있는 둥근 형태의 이 봉수대는 둘레는 26m이고 높이는 4.5m로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고려 중엽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연대 앞쪽에서는 건물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연대*와 연통, 나선형의 계단 시설 등은 2000년대 들어 복원한 것이다.
오늘날의 부산지역의 동래와 서울을 연결하는 제2봉수 노선 중에서 간봉**에 속한 봉수대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봉수대로, 북쪽으로는 대방산 봉수대, 서쪽으로는 설흘산 봉수대에 연락을 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연대 : 봉수에 설치한 대. 대의 둘레에는 참호를 파고 위에는 가건물을 지어 각종 병기와 생활필수품을 보관하였다.

**간봉 : 조선시대에 전국의 봉수망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에 위치하고 있지 않는 작은 봉수 조직

금산 정상에 있는 문장암

남해금산 바위글 이야기

바위글의 유래는 우리나라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위에 사냥이나 전투와 관련된 그림이나 글, 그리고 역사적으로 주요한 인물의 기록, 종교적•지리적 정보와 법률 및 규칙 등을 바위에 새긴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바위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이곳 금산에도 약 70여 곳의 바위글에 옛 선조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해 금산 정상석

남해 금산 정상 기암

○ 남해 금산(명승)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보광산에서 기도하면서 보광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오르게 되자 은혜를 갚기 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뜻으로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을 금강산과 비교하여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으로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산은 으뜸봉인 망대와 자연 동굴인 쌍홍문을 비롯한 38경이 빼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정상에는 크고 작은 섬과 넓은 바다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정상에는 쌍계사에 속한 암자인 보리암이 있는데,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처로 불린다.

현 위치

보리암

해수 관음 성지 보리암

한국의 해수 관음 성지는 예로부터 남해 보리암, 영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을 꼽아왔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런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돼지바위

감로수

극락전으로 향한다.

극락전은 2층 전각이지만 전각 앞에 여유가 없다. 옆에서 전경을 담아 본다.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이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무량수전·아미타전·미타전 등으로도 불린다. 아미타불의 수명이 한량없음을 중시해 ‘무량수전’이라는 이름이 특히 자주 쓰인다.

극락전 안에는 중앙에 아미타불을,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며,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관해 고통에서 구제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깨우친다는 상징을 지닌다.

보리암 동종


○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은 독립적인 관음보살상과 선제동자 용왕이 협시한 불감 형식의 작품이다. 현재 불감의 윗부분은 없어졌고 남아있는 형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외 같은 형식은 서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불감(1637~1644)을 시작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행하였다.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통통한 빰 보발이 없는 점 대칭적인 연판 양측면에 늘어진 옷자락 등에서 조선 전기적 특징을 계승 한 조선 후기 17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한 관음보살 삼존의 도상적 특징을 지닌 점과 사례가 적은 목조불감 형식, 17세기로 추정되는 제작시기 등 자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불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향나무 금분칠로 좌고 46cm, 슬폭 23cm로 조성되었다.

보리암 범종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건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남해 보리암 전 삼층석탑은 보리암 앞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채우기 위해 세우는 비보탑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탑의 높이는 2.3m이며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몸돌과 지붕돌을 놓고 구슬 모양의 머리 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불꽃과 연꽃을 나타낸 안상 두 개를 얇게 새겼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위층 기단과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밑면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며, 이 탑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저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두꺼운 지붕돌과 3단으로 된 지붕돌 밑면 받침 등을 보아,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수관음상

일월봉

해수관음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월봉

해수관음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엄봉

보리암 요사채


음성굴(금산 제 13경)

만장대 바로 위쪽의 높이 2m, 길이 5m의 바위굴로 성음굴이라고도 불린다.

음성굴에서 울러 퍼지는 소리는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장군암

이 바위는 장군이 검을 짚고 봉우리를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고 불린다.

또한, 금산의 첫 관문이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허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장군암


쌍홍문

금산의 관문이며 옛날에 천양문이라 불러왔으나 신라중기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게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선대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는 네 신선이 이 암봉에서 모려 놀았다 하여 사선대라 부른다.

하산길

올라올 때도 장승을 보았는데 하산길에도 장승이 있어 감사한다.

현 위치

도선바위

금산탐방지원센터/오늘의 산행종점에서 기념 한 장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바라본 상사바위를 비롯한 금산의 기암들



○ 남해 금산 보리암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남해 금산은 오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미세먼지가 심해 파란 쪽빛 남해바다를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남해의 기암들을 오르내리면서 힘찬 기운을 받는다. 나비의 섬 남해의 주산인 금산의 기암절벽과 해수관음 기도처인 보리암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면서 늘 힘차고 건강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