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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남해바래길

2025.11.02. 남해바래길 9코스 (구운몽길) 트레킹

by 하여간하여간 2025. 11. 2.

어느새 올해도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났나? 11월이다.

온 산하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겠지만, 이맘때 남녘 바다는 파란 쪽빛 하늘 그 자체다. 짙은 쪽빛 남해가 보고 싶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 끝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어느 때고 곱지 않는 때가 없지만 이맘때 남해바다는 정말이지 쪽빛으로 물든다. 아름답다.

깨끗한 해안가 자갈밭에서 상큼한 바닷바람에 출렁이는  파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순간, 그 청아함에 홀딱 반한 황홀함은 그야말로 지금 남해로 가야 할 이유 중에 이유이다.

오늘 걷는 남해 바래길 9코스는 구운몽길이다. 구운몽길은 남해 노도에 귀양 간 서포 김만중의 순 한글소설 "구운몽"에서 연유된 길이다.

구운몽은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 남해 노도에서 어머니를 위해 쓴 한글소설이다.


남해바래길 9코스(구운몽길)

천하마을-금포마을-상주은모래해변-금전마을-대량마을-소량마을-두모마을-백련항-원천항-금평마을-앵강다숲(캠핑장)-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구운몽길은 소설 '구운몽'의 저자인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바라보며 걷는 구간이 많아 명명되었다.
천하-금포-상주-대량-소량-두모-벽련-원천바닷가 마을을 잇는 길이다. 지금의 찻길이 생기기 전 마을 주민들이 걸어서 이동하던 옛 오솔길을 걷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는 만큼 매우 아름다운 경관이 걷는 이들을 쫓는다. 일부 구간은 찻길 옆을 걷게 되므로 반드시 한 줄로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이 길은 아름다운 앵강다숲을 지나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에서 마무리된다.


천하마을에서 시작

천하마을 표지석에서 기념 한 장

남해바래길 9구간 시점, 7구간 종점, 8구간 시종점인 3개의 바래길이 만나는 안내 앞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남해바래길 9구간 시점에서 출발한다.
천하마을야영장이 있는 천하몽돌 해변을 향하여

천하마을엔 벌써 시금치가 싱그럽게 자랐다.
시금치는 남해의 특산물로 "금초"라고도 한다. 그만큼 영양분이 풍부한 채소란 말이다. 특히 겨울 해풍을 맞으며 자란 남해 시금치와 신안 비금도 시금치는 알아준다.

한 달 살기 펜션도 있고

남해 천하마을 앞 해변에는 옛날부터 방풍림을 조성하여 해풍을 막고 농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그 방풍림이 있는 곳에 야영장을 만들어 남해 천하몽돌 해변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아 야영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놓았다. 참 아름다운 곳이다.

남해바래길 9코스는  남파랑길 41코스와 일치한다.

야영장이 있는 천하마을 방풍림

방풍림 앞에서 준비운동하고

천하몽돌해변에서 단체 기념 한 장 남기고 출발한다.

천하마을 야영장에 있는 화장실

천하마을 몽돌해안에 핀 해안 나팔꽃

몽돌 해변

참 깨끗한 몽돌이다. 흰 솜을 널어놓은 것 같은 하얀 몽돌 해변
  

해안을 따라 걷는다. 방파제 위에 천하마을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기념 한 장

천하몽돌 앞바다

오전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 해안을 따라 펜션이 늘어서 있다. 고급스러운 곳도 있지만 이용객은 많지 않나 보다. 많은 이용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참 아름다운 해변에 고급스러운 펜션인데 한가한 것 같아 아쉽다.  

지나온 해안을 돌아다봤다. 자연이 만든 완벽한 포물선 해안이다. 아늑하고 차분하고 그림 같은 해안이다.
남해 해안은 이처럼 곳곳마다 포물선을 그리며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연출한다. 남해 전체가 이렇다.

금포마을로 접어든다.

금포마을회관을 지나

금포마을 팔각정

금포마을 수원인가? 마을샘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 오려 어디론가로 보낸다. 농사용인가? 아님 식수용일까?

앞산(119m)과 공산(85.1m) 사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고개에서 바라본 금포마을 풍광. 황토밭에 시금치가 싱싱하다.

오늘 함께할 나의 동반자.
그는 늘 나를 따라다닌다. 어느 때는 말없이 사라졌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 나타나 늘 동반한다.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산꾼이 되어야 할 텐데~

바람금골 둘레길로 접어든다.

이 구역은 해안 절벽을 끼고 걷는 산길로 확 트인 남해 쪽빛 바다와 해안에 잘 자란 해송 그리고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어울려 환상적인 해안 풍광을 연출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하얀 구절초가 너무나도 깨끗이 우리를 반긴다.

돈나무

돈나무 열매

해송 사이로 그림 같은 남해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이런 풍광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해를 찾는다. 기가 막힌다.


붉은 색깔이 연하게 감돈 해안 구절초와 어우러진 해안의 풍광에 반한다. 한참을 사진 놀이에 푹 빠졌다.

해안 절벽에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싱그런 둘레길이 환상이다.


이런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바래길이 더 행복한 것은 동화나라님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늘 건강하길 기원한다.

한참을 걸었나. 잘 자란 해송이 우람한 곳에 무슨 군부대가 있나 보다. 아름다운 풍광을 몇 장 담았는데 검문에 걸려 삭제를 당했다. 이곳을 지날 때 사진 촬영 금지다.

다시 해안 바래길을 따라 부지런히 걷는다. 검문받느라 일행과 많이 떨어졌다.

담장에 바위취 꽃이 유난히 노란빛을 발하며 예쁘게 피었다

해송과 여러 수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싱그런 바래길은 계속되고

이제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

상주해수욕장 해안길에 도달하고

해안길을 따라 학창 시절 추억이 많은 상주은모래 해수욕장으로 접어든다.

상주은모래 해안을 배경으로 동화나라님이 추억 몇 장을 담아준다. 늘 고맙고 감사한다.

상주은모래 해안에서 금산을 배경으로 한 컷

상주은모래 해수욕장

학창 시절 "조개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합창을 하고 손뼉을 치며 그저 좋았던 추억 하나 없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상주은모래해수욕장을 걷는다.

학창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중반 이곳까지 교통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보통 2박 3일 일정이었다.


남해 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몇 번인가 갈아타고 간신히 도착한 이곳은 당시엔 환상의 피서지였다. 아름다운 추억이 아련하다.
  

나의 친구

그림 같은 해수욕장 앞바다. 오늘은 썰물이다. 모래톱이 길게 드러나 있다. 학창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상주은모래 해수욕장 주변으로 아름들이 해송이 울창하다. 어디나 그러하듯 이곳 상주은모래해수욕장도 여름피서객들의 쉼터를 잘 마련해 준다. 특히 상주은모래 해수욕장은 당시나 지금이나 모래가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마음씨 착한 김○재 사장님과 한 컷
그는 늘 겸손하고 배려심이 깊다.  제과점을 운영하며 특급 제빵제과 기능장을 소유한 분이다. 직접 만든 빵을 팔기 때문에 그 맛이 일품이다. 인기가 높다. 사업이 더 번창하길 빈다.

상주은모래 해안은 금산 보리암 아래 드넓게 펼쳐진다. 상주은모래 해안에서 올려다보면 금산 정상부에 기암들이 즐비하고 그 기암들마다 어울리는 절집과 암자가 많다.

바래길은 금전마을로 향하고

금전마을을 지나 고개를 오르면서 바라본 상주 방파제와 은모래 해수욕장 쪽빛 앞바다

현 위치

기막힌 조망터를 지난다. 확 트인 코발트 빛깔 남해 바다에 윤슬이 내린다. 해송 사이로 감상하는 기막힌 조망이다.

남해의 매력은 이래서 좋다. 너울너울 햇살에 윤슬이 빛나는 쪽빛 바다는 환상이다. 혹여 그대 삶이 지치거든 남해로 가라. 그리고 확 트인 남해 쪽빛 바다를 보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냥 며칠 바라보거라. 그래도 아직 기운이 생기지 않으면 한 며칠만 더 있어보거라.  

이제 바래길은 고개를 넘어 대량마을로 향한다.

남해는 온통 바다와 하늘이 이어지고 적당한 높이의 산 아래 옹기종기 이웃하며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이 정겹다. 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온 산하를 어루만지고 그 바람결에 싱싱한 생명들이 익어가는 모습은 환상 그 자체이다.

파란 하늘이 열어주는 상당히 긴 바래길을 따라 대량마을로 향한다.

꾸지뽕이 주렁주렁

가을배추가 익어간다.

이제 봄에 거둘 시금치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면, 한겨울 싱그런 남해바다 바람을 맞으며 영양가 풍성한 남해 "금초" 시금치가 풍성하게 자라나겠지?

바닷가에 있는 대량마을로 굽이돌아 내려간다.
  

대량마을에는 시금치 농사를 준비하느라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바래길은 마을 샛길을 통과하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독특한 모양의 제사터가 있다.

당산나무일까? 남해의 독특한 제사터를 지키고 있다.

  남해 대량마을을 지켜주는 독특한 제사터

대량마을 앞바다 포구

대량마을 회관을 지나고

환상의 바다 바람에 두 여심이 훨훨 춤을 춘다. 늘 맑은 영혼으로 건강하길 바란다.

참으로 아름다운 대량마을 해안에도 가을이 물들어간다
저기 바다 가운데 섬이 노도이다.

이 순간 나의 동반자와 함께 가고 싶다.

대량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지나온 대량마을을 돌아본다. 환상이다.

돌아본 가을이 물들어가는 대량마을 앞 포구를 담았다. 아름답다.

대량마을에서부터 보이는 저 드넓은 바다가 앵강만이다.

차도에 세워놓은 대량마을 표지석을 지나서

대량을 '큰 양아'라고 한다. 양아가 무슨 뜻일까?

'양아'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 경기도 임진강가에 있던 '양아리(陽阿里)'라는 마을에서 약 400년 전 남해로 이주한 사람들이 그 지명을 그대로 가져와 붙인 것이다.

소량 마을로 접어든다

남해의 '큰 양아'와 '소량(작은 양아)'은 모두 같은 뿌리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방언이나 은어, 속어의 의미와는 무관하다.

현대 한국어에서 흔히 쓰이는 '양아치'라는 속어는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 또는 '넝마주이, 고물장수'라는 다른 뿌리의 말에서 온 것인데, 남해 대량·소량마을의 '양아'와는 어원이 완전히 다르다

소량마을

원 바래길은 저 아래 소량마을 해안을 거친다.

나는 차도를 따라 소량마을로 접어든다. 후발자는 해안을 따라 걷길 바란다.

소량마을 버스정류장

차도에 세워 논 소량마을 표지석을 지나

저기 보이는 바다 가운에 있는 섬이 노도이다. 이 구간을 걷는 동안 노도를 어디서든 바라볼 수 있다.

두모마을 해안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섰다. 원래 바래길은 이곳에서 두모마을 해안으로 향해야 한다.
선두는 이미 해안을 따라 두모마을에 도착해 있다. 우리는 선두와 함께 두모마을에서 점심을 하기로 약속했다. 시간이 없어 차도를 따라 바로 두모마을로 내려간다. 후발자는 꼭 두모마을 해안으로 바래길을 걷길 바란다.

차도에 있는 두모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

두모마을회관 앞에서 점심을 한다

두모마을 회관

두모마을 회관 앞에서 점심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두모마을 시금치밭에 시금치가 이제 새싹을 틔우고 있다.

구운몽길 설명 안내 현 위치

두모마을 해안을 따라 걷는 바래길을 돌아본다.

두문마을에서 이제 벽련항으로 향하면서 윤슬이 기막힌 남해 환상에 푹 빠진다.

상당히 긴 해안 절벽길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한참을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걸었을까? 앵강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저편 높은 산은 설흘산이고 오른쪽은 호구산이다. 바래길 10코스 앵강다숲길 구간이다.

벽련항이 눈에 들어온다.

벽련항

이곳 벽련항에서 노도로 가는 뱃길이 있다.

벽련항에 있는 서포 김만중 선생 기념 상

하늘에 계신 김만중 선생이 이 모습을 보면 좋아할지 궁금하다.
아마 내 생각으론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김만중선생은 이곳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어머님과 가족이 있는 한양을 향해 마음 깊이 그리움을 애태우다 유배지 노도에서 어머니를 위한 순 한글소설을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썼다. 결국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노도(蘆島) 유배지에서 1692년(숙종 18년) 4월 10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많은 노도 유배지이다. 그런 김만중 선생을 사후에도 이곳에 유배를 보내 놓고 있으니 얼마나 한스러울까?  그것도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벽련항에 쓸쓸히 세워 두었으니 얼마나 외로울까? 어서 한양으로 보내드려야 한다.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려야 한다.

서포 김만중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바래길은 벽련항을 지난다

노도에는 남해바래길 지선으로 노도섬바래길이 지정되어 개발되어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길 바란다.

https://lyj1749.tistory.com/m/695


벽련항 노도섬바래길 안내

벽련마을 마을나무(보호수) 설명

벽련항은 앵강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벽련항에서 바라본 앵강만. 그림 같은 앵강만 풍광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 순간을 추억으로 담고 있는 김명수 회장님

어떻게 담아야 벽련항에서 바라본 앵강만을 멋지게 담아낼 수 있을까? 나의 핸드폰 실력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가 없다.

기울어가는 오후 햇살에 윤슬이 아른거리고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 위엔 고깃배만 말없이 앵강만을 지키고 있다.
저기 왼쪽 섬이 노도이다. 그리고 오른쪽 앵강만 맞은편에  높은 산은 설흘산이다.  남해바래길 10코스 앵강다숲길 구간이다.

차도 가에 세워진 벽련마을 표지석을 지나

이제 차도 옆으로 설치된 데크길을 걷는다. 예전엔 이곳은 차도를 걷는 구간으로 위험했다. 남해에서 데크길을 잘 만들어 놓아 안전한 바래길이 됐다

앵강만 맞은편에 호구산도 보이고

원천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수산물 가공 공장인가?

차도를 따라 걷는다

원천마을로 접어든다.

원천마을 해안차도를 따라 걷는다.


앵강만 해안이 참으로 아름답다.

긴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이곳 해안길가에도 펜션들이 즐비하고 각종 유락시설이 많다. 가족들과 함께 온 힐링객들이 많다. 좋은 곳이다.
  

남해 해안에는 육지에서 흘러들어온 각종 폐기물을 걸러 바다를 보호하는 이런 구조물이 흔히 있다.

기울어가는 앵강만의 낭만이 기가 막히다. 시간이 없어 할 수 없지만 할 수 만 있다면 이곳에서 노을 진 앵강만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에 깊은 낭만을 맛보고 싶다.

볼 수록 아름다운 앵강만

이제 이 다리를 건너면 금전마을로 접어든다. 오늘의 바래길은 마무리되어 간다.

  마지막 금전마을 앞 해안길을 따라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금전마을 앵강만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해안 숲길은 너무나 좋다.

앵강다숲길 해안길

저물어가는 앵강만을 담아 본다.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 앵강만 윤슬을 바라보면서 오늘 남해바래길 9코스(구운몽길)를 마무리한다.

남해바래길 9코스 종점, 10코스 시점 안내

9코스 종점 안내판이 있는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9코스 종점, 10코스 시점 안내판 앞에서 기념 한 장 남기고 마무리한다.

남해바래길 9코스(구운몽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나 그렇지만 남해는 환상의 섬이다.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파란 하늘, 잔잔한 호수에 윤슬이 아롱지고 흰 파도가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 자연이 그린 포물선을 끼고 옹기종기 살아가는 남해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 싱싱하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상큼함.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힐링 만땅 환상의 길이다.

드넓은 앵강만 푸른 바다를 어루만지는 흰 파도의 춤사이에 그 누가 맘 뺏기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무한한 황홀경에 빠진 행복한 하루이다
  

참고로

○ 한글 소설 구운몽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자

구운몽(九雲夢)은 서포 김만중이 지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몽자류 고전소설로, 주인공 성진이 꿈속에서 인간계의 부귀영화와 사랑을 모두 경험했다가 결국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꿈임을 깨닫고 불법으로 귀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육관대사의 제자인 성진은 용궁에 다녀온 뒤 팔선녀와 인연을 맺으면서 속세의 욕망을 품게 된다.

이로 인해 죄를 얻은 성진은 인간계에 양소유로 환생하여, 팔선녀 또한 각각 다른 여인으로 환생하게 된다.

양소유는 과거에 급제하고 전쟁을 평정하는 등 뛰어난 입신양명을 이룬 뒤, 여덟 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며 승상의 지위에 오르며 화려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말년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꿈에서 깨어나 다시 성진이 됨을 자각한다.

결국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허망한 꿈을 깨닫고 불도에 정진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생의 무상함과 인간적 욕망의 덧없음, 부귀영화의 허망함이 주제로, 불교적인 공(空) 사상을 강조한다.

꿈(몽) 속에서 인생을 보여주며, 이중적 구조(현실-꿈-현실)와 아름다운 문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팔선녀, 육관대사, 용궁 등 유교 · 도교 · 불교적 세계관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구운몽은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인생의 부귀와 쾌락도 모두 덧없는 환상임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한국 고전소설이다.

○ 구운몽 한글소설을 쓴 서서포 김만중에 대하여 알아보자

김만중(1637년 ~ 169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한글 소설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강화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김익겸이 병자호란 때 순절한 후 어머니 윤 씨의 엄격하고 남다른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665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서인 계열로 숙종 대 환국 정치를 겪으며 유배와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김만중은 한문학 중심의 당시 사회에서 한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한글로 쓴 문학이 진정한 국문학이라고 여겼다. 대표작으로는 한글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있으며, 특히 『구운몽』은 유배지에 있을 때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작품으로, 불교적 색채와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문학은 불교 용어를 사용하고 주자학의 논리를 비판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담고 있어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형 김만기는 숙종의 장인이자 서인 세력의 대권자로 활약했으며, 김만중과 함께 서인 정치세력의 일원이었다. 김만중은 1692년 남해 유배지에서 사망했으며, 『사씨남정기』도 유배지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만중은 한글문학의 발전과 조선 후기 문학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