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봄마중 지심도 동백섬을 향하면서 (광주원산우회와 함께)

3월이면 봄마중 꽃 사랑이다. 봄마중 꽃 중에서 동백꽃의 은은함과 깊이에 절로 그리워지는 섬이 있다. 거제 지심도이다. 남녁에서 불어오는 살랑 바람 꽃 향이 코 끝을 스치울 즈음 겨우네 웅크렸던 마음을 활짝펴고 아름다운 옛 추억 따라 지심도로 향한다. 거제 지심도는 동백숲이 가장 울창하게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바닷 바람을 좋아해서 일까? 동백은 남해안 일대 완도를 비롯한 여수, 진도, 남해도 등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 시기는 동백의 진한 붉은 꽃잎 사랑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찬란히 빛나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 꽃잎 사이로 살포시 내미는 붉은 입술에 입맞춤하고픈 짜릿한 순간이 그리울 때이다.

피어서도 화려하고, 떨어져서도 화려한 그 자존심을 목숨보다도 더 귀하게 간직한 고고함에 살며시 미소 짓는 시기이다. 떨어져 추하지 않으려고 저리도 애타게 여미고 또 여미는 절제에 마음 가득 박수를 보내는 시기이다.

남해안 어디든지 동백은 잘 자라지만 이곳 지심도는 특히 동백숲으로 섬 전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원시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원래 동백은 11월에서 부터 익년 4월까지 피는 꽃이다. 피면서 지고 또 피면서 지는 동백꽃은 그 붉은 입술에서 펴져나는 향기와 은은함이 다른 꽃에서는 감히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동백꽃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한 그 모든 것을 쏟아 내는 황홀함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지심도 동백이 뚝뚝 떨어지는 날
그리움에 몸부림치던 그 추억이
어쩐다고 다시 일어나 이리도 시리운가?
동백아 너는 어찌
이다지도 아련하게 흐느끼게 하느냐?

그 날 그 포근했던 그리운 손길
오늘도 붉은 입술 동백꽃잎에 흐르고
나는 지심도 푸른 해안
하얀 포말만 아련히 바라본다.
◎ 지심도 동백섬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 휴양림, 쉼과 여유가 있는 곳,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5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원시적 자연미가 느껴지는 곳이다. 동백나무가 숲 전체의 60~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해마다 봄이면 섬 전체에 붉은 동백꽃이 만개한다. 지심도의 길은 평탄한 편으로 어린 아이도 함께 거닐 수 있다. 섬의 구석구석까지 이어진 오솔길을 걸으면서 감상하는 바다의 절경은 지심도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코스 안내 : 지심도터미널 - 마끝 전망대 - 활주로 - 전망대 동백터널 - 방향지시석 - 해안선 전망대 - 샛끝전망대(그대발길 돌리는 곳) - 전등소 소장사택 - 동백하우스 - 지심도선착장 : 3.5km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고 불리고 있다. 남해안섬들 중 어느 곳보다 동백나무의 묘목수나 수령이 압도적이어서 '동백섬'이란 이름이 여타 섬들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섬이다. 실제 동백숲을 둘러보면 현재 국내에서 원시상태가 가장 잘 유지되어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숲으로 들어가면 한낮에도 어두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동굴로 이어지고,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는 동백꽃의 특성 때문에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촘촘히 떨어진 붉은 꽃을 일부러 피해가기도 힘들 정도로 동백꽃이 무성하다.

조선 시대 현종 때 15 가구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에도 상주하는 주민들이 펜션, 식당 등 지심도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업, 요식업에 종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1개 중대가 주둔하였고, 그로 인해 일제가 남긴 군사시설의 흔적이 곳곳에 존재한다. 광복 이후에는 해군에서 관리하였으며 2017년 거제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 범바위 호랑이와 인어공주 이야기
거제 장승포항 동백섬 지심도터미널에서 출발하여 15분 내외 배를 타고 지심도선착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인어공주 상이다. 이곳 인어 공주가 있는 바위가 범바위인데, 이 범바위에는 아름다운 호랑이와 인어공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 범바위 전설
범바위는 예전에 옥림마을 뒷 산에 숫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호랑이가 하루 해변에 어슬렁거리다가 이상한 동물을 보았다. 이 동물이 바로 인어였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인어를 보는 순간 반하여 사랑을 고백하였다. 인어는 지심도 바다밑 용궁에서 살던 공주였다. 어느 날 수달이 베숲개 마을의 감성돔 너렁에서 감성돔을 너무 많이 잡아 먹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용왕은 인어 공주에게 수달로 부터 감성돔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였다. 인어 공주는 그 임무를 가지고 나왔던 찰나 호랑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때 호랑이의 사랑고백을 받은 공주는 용왕님에게 허락을 받아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용궁으로 갔다. 인어 공주는 호랑이에게 감성돔을 못 잡아 먹게하고 수달도 오지 못하도록 임무를 맡겼다. 이에 호랑이는 오늘이나 올까 내일이면 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인어공주의 약속만 믿고 기다렸지만, 약속대로 오지 않았고, 그리움과 배고픔에 지쳐 바위에 누웠다. 호랑이는 인어공주를 그리워 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은 호랑이는 파도에 밀려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는 죽어서도 가죽을 남겨 놓고 인어공주 당신을 기다렸다' 는 표시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그 때 새겨진 그림이 천상 호랑이였다는 것이다. 천년 만년 변하지 않을 바위가 바로 범바위라고 한다.

범바위 위에서
바위 위에 잠든 범아 다시 한번 일어서 어흥 어흥 울어보렴
행여나 뉘 알손가 인어공주 찾아 올 줄 천년만년 자지 말고 다시 한번 울어 보렴!
범바위 바위숲에 미역따는 여인네야 흰 저고리 검은 머리 동백 꽃이 너무고와
성창호 낚시꾼들 감성돔도 잊었는지 여인네만 바라보네
◎ 지심도 동백꽃 봄마중 시작

셀레임으로 가득한 동화나라님

지심도 섬을 둘러보는 둘레길은 간단하다. 지심도 둘레길은 비교적 평편하기에 둘레길 안내 표시를 따라 쉬엄 쉬엄 쉬어가며 걷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섬 전체는 온통 활엽수와 동백나무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가끔씩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안 기암 절벽과 파도치는 하얀 포말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일상의 찌든 마음을 훌훌 털고 싱그런 활엽수 숲속 실바람에 너울 거리며 붉은 입술 동백꽃 봄마중에 흠뻑 젖어 보는 아름다운 힐링 길을 걷는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싱그런 바닷 바람에 실려오는 동백향 맡으며 나무가지 사이로 드리워진 햇살 속 동백 꽃잎에 입맞춤하는 순간 환희와 편안함으로 가득한 완전 힐링 숲길이다.

떨어져 더 고운 자태는 어떤 자부심인가?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고귀함이란 저런 모습을 두고 한 말이겠지. 겨우내 찬바람 끗끗히 이겨내 온 삶이 당당하기에, 화려하게 피어날 때도 아름답지만 저렇게 땅에 떨어져도 더 고귀하니, 진실한 사랑, 열정, 불멸의 사랑을 상징하나 보다.

동백 꽃잎을 보면 돌아가신 내 누님이 생각난다. 전쟁통에 지아비를 잃고 봇짐 장사로 근근히 4남매 새끼들 끼우느라 언제 거울 한번 들여다 보지 못하고 얼굴에 분 한번 마르지 못 했지만 누나의 얼굴엔 항상 웃음이 가득했고 하얀 피부는 왜 그리 고운지~ 나는 늘 누나가 참으로 좋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은 저 동백 꽃잎 마냥 곱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금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없는 누나를 생각하면 왜 이리 마음이 시린지~ 해맑은 웃음 저 편엔 여자로 아름다워지고 싶어 분 한번 마르고자 했던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이나 아리고 먹먹해 온다.

내 누님도 저 동백꽃 마냥 아름다웠다. 붉은 입술에 맑은 미소로 세상을 살고 싶었던 내 누님의 영혼이 저리 생생하게 새로 탄생하고 있는 걸까? 마치 내 누나를 보는 것 같이 반갑고 기쁘다. 아름답다.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오른다.

동백나무로 울창하게 우거진 지심도 둘레길.
◎ 동백꽃 전설

옛날 어떤 나라에 임금인 형과 성주인 동생이 있었다. 임금인 형은 성품이 나빴으나 성주인 동생은 성품이 좋았다. 하필 임금은 자식이 없고 동생에게 두 아이가 있어, 임금은 동생이나 동생의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할까봐 동생을 늘 경계했다. 임금은 동생과 동생의 아이들을 죽일 기회를 노리다 동생의 두 아이들을 궁으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동생은 형의 생각을 내다보고 자기의 진짜 아이들을 숨긴 채 양자들을 형에게 보냈다. 임금은 나중에 동생이 자기를 속였음을 알고 동생 가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임금은 동생의 진짜 아이들을 동생 손으로 죽이라고 명령했다. 임금의 동생이 자기 아이들을 죽이려 할 때 아이들은 새가 되어 날아갔고 동생은 임금이 준 칼로 자결하며 이 때 붉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직후 임금의 나라는 망하고 그 자리엔 동백나무가 피었으며 그 꽃이 빨간건 동생이 붉은 피를 토하며 죽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새가 된 동생의 아이들은 동박새가 되었다.
◎ 주인이 친절한 '황토' 가계에서 잠깐 휴식

주인의 정성인가? 떨어진 동백꽃을 가지런히 놓았다. 서로서로 아지자기 동백꽃 피는 시절 이야기 꽃을 피우는가 보다.

사랑의 동백꽃. 절실하고 정직하고 간절한 사랑이기에 열정을 다 받쳐 붉게 붉게 찬란히 피워내고,
그 정열 다해질 때 통째로 떨어져 그리운이 고이 접어 깊이 간직한 저 순결한 고운 자태,
조선 여인의 절개를 지킨다.

떨어져 더 아름다운 동백꽃이여~
붉디 붉은 꽃잎에 아로새긴 사랑의 깊은 사연!
그 누가 다 알려는가.
그이와 찬란했던 사랑의 시간들!
이제는 다 떠나보내고 순수한 빈 마음에
돌아갈 곳 찾아 돌어눕는 아름다움.
미련없이 불태웠던 열정의 사랑이여~

'황토' 가계 주인 센스가 빛난다. 우리 광주원산우회 방문을 기념하여 동백꽃으로 '광주원산' 꽃 장식을 해 놓았다.

이렇게 섬세한 가계 주인의 '황토'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오랫만에 함께 한 김석준 고문님께서 해삼과 멍게 한 사발을 사셨다. 주인장 하는 말 '막걸리는 공짜요' 기분 좋은 쉼을 맛보는 것도 힐링이다.(하여간, 김석준고문님, 동화나라님, 강소아님)

유난히도 아름답게 피어난 '황토' 앞 동백꽃과 헤어지고 이제 마끝전망대로 향한다.

보면 볼수록 예쁜 동백이여!
동백하면 여수 오동도, 부산 동백섬, 울산 동백섬, 제주 서귀포 동백(4.3추모) 등이 유명하며, 그 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웅진 대청도, 강진 백련사, 서천 마량리, 고창 선운사, 광양 옥룡사, 거제 학동리, 나주 송죽리 금사정, 창경궁 대온실 내, 제주 신흥 동백군락, 제주 위미 동백군락, 경남 충렬사, 거제 외간리, 해남 서동사 동백 군락지가 유명하다. 개인적으론 장흥 천관산 동백도 참으로 화려하고 예쁘다.

추울 수록 더 진하고 큰 꽃잎을 피우고, 붉은 색 치고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모양의 꽃잎,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지 않고 통째로 떨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인이나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였다.

동백꽃이 질 때/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질때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 소리를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 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했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

한반도에서 고려 때부터 자생한 동백은 수줍음과 정열, 인내를 노래하였다.

'황토' 가계를 지나 곧장 오르면 마끝전망대를 향해 간다.

마끝전망대 갈림길
◎ 마끝 전망대

마끝전망대

마끝전망대

마끝전망대

마끝전망대에 선 햇살 총무님

마끝 전망대이다. 주변 기암절벽과 어울러진 풍광이 멋지다. (퍼온 사진)

마끝 전망대에서 동섬으로 가는 지심도 둘레길을 하늘에서 바라 본 사진(퍼온 자료).
국방 연구소와 활주로 동섬이 한 눈에 들어 온다.
◎ 발전소

발전소는 출입금지 구역이다.
◎ 다시 돌아와 '황토' 가계 앞에서 샛끝전망대로 향한다.

쌈밥 대원님이 다시 돌아와 '황토' 가계 앞 동백꽃을 배경으로 기념 한 장 남기고 이제 샛끝전망대로 향한다.

새끝 전망대를 향해 걷다 보면 구 일우초등학교 지심 분교 옛터를 만나고 그 자리에 지심도 마을회관이 자리 잡았다.

지심도 주민마을회관

옛 지심분교 자리에 동백꽃봉우리가 붉게 딩군다. 마치 그 옛날 아이들이 희망을 안고 재잘 재잘 뛰어 노는 것만 같다.

저 붉게 물든 동백 꽃잎을 보라. 새악시 볼에 찍어 바른 곤지 보다 곱고, 풍성하면서도 여유로운 여인의 농후함은 성스러움을 넘어 생명 탄생의 신비감 마저 들고 있지 않는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성스럽고 신비하고 마음 따뜻해 오는 기쁨이여~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아름다움이여~

동백꽃이다. 동백의 아름다움에 늘 마음을 뺏앗기지만, 한편으로 저 아름다운 꽃잎을 보면서 제주 4.3의 아픔을 동시에 생각하니 발걸음이 어수선하다.

붉은 빛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하지만 제주사람은 저 동백이 떨어질 때 4.3이라는 아픈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저 동백이 뚝뚝 떨어지 듯 그 어느 때 역사의 잘못으로 죄 없는 제주 사람들의 목숨이 뚝뚝 쓰러져 갔다. 그래서 4월이 되면 제주에서는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추념식을 한다. 제주4.3의 상징은 동백이다.

동백을 볼 때마다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넋이 붉은 꽃잎되어 핏빛으로 떨어지는 저 동백은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피고 진다.

오늘 지심도의 동백은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영원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동백이지만 핏빛으로 뚝뚝 떨어지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동백이다. 더구나 이곳 지심도에는 일본 침탈자들의 군사 기지 흔적을 바라보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있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포진지 갈림길

국방과학연구소 앞
1945년 광복 이후 지심도는 미군이 점령하게 되고 일본군으로부터 포진지와 각종 무기 등을 접수한다.
이후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왔지만 한동안 관리되지 않다가 1995년 섬 중앙에 국방과학연구소 해상시험소가 건설된다.
이러한 지심도에 인근 어민들이 어업활동을 하기 위한 교두보로 임시거주를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를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 오면서 다시 민간인이 사는 섬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문이 잠겼다.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소유권을 반환받기 위해 2005년 '지심도 이관팀'을 구성하고 4만 8743명이 동참한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국회 청원 등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2008년 8월 제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청원서가 폐기되면서
지심도 반환사업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거제시는 2011년 6월 13일 국방부에 이관 건의를 시작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국방부, 환경부 등 12개 기관과의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지심도에 있던 국방부 해상시험소를 섬 밖으로 이전 완료하고,
2017년 지심도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섬 주민을 내쫓고 군사기지화 한 이후 81년 만에 이로써 지심도는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포진지 갈림길
◎ 포진지 (구 지심도 일본군 포대)
일제는 1935년 지심도 일대의 토지를 국방용으로 매입하면서 주민들을 지세포와 대동마을로 강제 이주시키고 포진지
구축은 1936년 7월 10일 시작되어 1938년 1월 27일 완성된다.
◇ 첫번째 포진지

지심도는 한때 일본군의 요새로 사용되었고, 그 당시의 포대와 탄약고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동백꽃 군락지로 유명하며, 매년 겨울이면 붉은 동백꽃이 만개하여 섬을 장식한다.
◇ 두번째 포진지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락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연방비
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였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등을 각각 배치 했다.
◇ 세번째 포진지


포진지가 잘 보존 되어 있다. 억울하고 가슴아픈 일제 침략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여 후세들에게 일본 침략의 역사적 교훈을 잘 가르쳐야 한다. 다시는 나라 잃은 일이 없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외세에 대비하여 국력을 키우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세계 국가들과 당당히 겨루어 한치의 밀림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 탄약고

탄약고.. 터널속을 관통하게 되어 있다.
1935년 11월 30일 ~1936년 1월 25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
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역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6년 5월 7일 현재 38식
기관총 고사포구 38개.. 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활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모든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다시 국방연구소 삼거리로 와서 활주로로 향한다
◎ 활주로

활주로
일제가 이 작은 지심도에 활주로를 만들어 놓았던 곳이다. 지심도에는 일본 침략 기지로 만들기 위해서 탄약고와 포격대 등 전쟁 기지로 만든 흔적이 참으로 많다. 일제의 침략상에 치를 떤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할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군의 재무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아시아 민중에게 저질은 끔직한 만행을 일본은 잊고 있는가? 우리와 아시아 전체는 일본의 잔인한 학살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 조상들이 저질은 만행을 통렬히 반성하고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자자손손에 약속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은 영원히 주변국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결국은 자멸 할 것이다. 작금의 일본의 상태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시라도 일본의 역사 왜곡과 잘못된 망상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반드시 그들의 잘 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야한다.

함께하는 대원님들과 기념 한 장

러브러브 형상물도 만나고 이제 동백숲으로 향한다.

동심으로 돌아온 김석준 고문님과 대원님들. 지금 이 순간 같이 늘 기쁘고 행복하길 바란다.
◇ 동백나무

주로 바닷가 근처의 산지와 마을에 나는 상록 소교목으로 겨울(동)에도 잎이 푸르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 되었다. 생태적으로 온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조매화, 즉 새(동박새)의 도움으로 가루받이를 한다.
잎은 광택이 나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며 털이 없다. 꽃은 이른 봄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붉은색이다.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이 퍼지고, 수술은 많으며 꽃잎에 붙어서 함께 떨어진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3~4cm로서 검은 갈색의 종자가 들어 있다. 중국, 일본 및 우리나라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남해안과 도서지역에 주로 서생한다.

동백 터널

동백 숲 오솔길을 지나고

동백 터널
◎ 동박새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무척이나 좋아 해서 '동백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겨울에는 수분을 도와 줄 곤충이 없어 향기 보다는 강한 꽃의 색으로 동박새를 불러들여 꽃가루 받이를 한다.

동백 터널을 지나면
◎ 지심도 곰솔 할배

지심도 곰솔 할배를 만난다.

활엽수로 가득한 지심도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양 가지를 벌리고 서 있다. 나도 한가로운 포즈를 취해 본다.

지심도에는 어디든지 동백꽃이 흐드러져 있다.
◎ 이미자 가수님의 동백아가씨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돌연 이 곡에 방송금지 조치를 해버렸다. 이유는 일본의 엔카와 비슷하여 왜색풍이 짙다는 것. 당시 정부는 한일수교를 추진하고 있었는 데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저항이 심하였던데다가, 관료들이 한일수교를 계기로 일본 문화의 유행을 우려하여 《동백아가씨》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 방향지시석

방향지시석은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것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 방향(長承浦方向),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
절영도(絶影島, 현 영도), 쓰시마 남단(對馬島) 등 총 5개만 남아 있다.

◎ 지심도 곰솔 할매

곰솔할매
◎ 해안선 전망대

지심도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는 바위가 무척 독특한 형상을 가진 '용머리 바위'다. 이 바위는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듯해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은 지심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는 몇 안되는 포토존이다. 저기 보이는 용머리 바위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딪치는 파도와 해안의 기암절벽이 어울러져 만들어낸 그림이 환상이다.

해안전망대에서 인증 한장 남기고

함께한 대원님들과 (산길따라, 햇살, 동화나라, 마루)

늘 함께하며 우정을 나누는 산우님들(산길따라, 하여간, 동화나라)
◎ 망루

망루에서 바라 본 망망대해는 대한해협이다. 저 바다 끝에 아마 일본 땅 대마도가 있을 것이고, 더 가면 일본 후쿠오카에 닿으리라.

망루에서 대한해협을 배경으로 한 장
◎ 샛끝 전망대

동화나라님

망중한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 나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하나?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놔두어라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이쁜 사랑도 지나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놔 두어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오면 온대로 가면 간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저 변함 없이
그 자리 묵묵히
허 허 허~
샛끝 전망대에서 담은 동영상
샛터전망대는 '그대발길 돌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 오던 길을 지나 다시 돌아가야 한다.
◎ 지심도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하여 교쿠지쯔키(욱일기)를 게양했던 곳이다. 교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일장기)의 태양 문양 주위에 펴져나가는 햇살을 붉은 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육군국기로써, 1889년 해군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함께 해체되면서 사라졌다. 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깃발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게양대 위치는 당시 양지암 통신대, 부산 영도 포대, 쓰시마 등지를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
현 위치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망루를 따로 설치하여 주변 경계를 서기도 했다. 현재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계양하고 있다.
◎ 국기 계양대

광복 70주년을 맞아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지심도 역사의 아픈 흔적을 지워 버리고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섬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욱일기 게양대를 세웠던 곳에 지심도 주민들의 뜻을 모아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다. 우리가 사랑하는 거제도, 내가 살아고자 하는 지심도를 위하여 ....


국기게양대

서치라이트 보관소

지심도 홍매

지심도 홍매
◎ 지심도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됐다. 전등소에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현재 발전소는 피싱하우스에서 사용하는 민박 건물이나 일부 개조하여 내부 구조를 알 수 없다. 전등소는 탐조등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현재 전등소와 가까운 거리에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설치되었다. 탐조등은 야간에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하여 설치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거리는 약 7~9km정도였다.
전등소란?
요즈음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발전소라 부르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전등소 도는 전기소라 불렀다.


전등소 소장 사택

전등소 소장 사택 주변 막사

전등소 소장 사택 주변 둘레길에는 일본이 조선을 약탈하기 위해 설치한 전진기지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는 세월 속에 동백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오늘도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 동백하우스

동백하우스 앞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아픈 역사를 둘러보면서 지심도 동백길을 하염없이 걸어 다시 처음 출발한 선착장으로 왔다. 인어공주가 반긴다.
◎ 범바위와 인어 공주

범바위와 인어공주 기념 한 장 남기고

국립공원의 시작 지심도
사랑의 섬 지심도
마음을 닮은 동백섬 지심도!
아름다운 지심도 동백꽃 봄마중을 마무리 한다. 오랫만에 동백꽃 사랑에 흠뻑 취했다. 붉은 동백 꽃잎에 새겨진 추억을 가슴에 쓸어 안고 흐느적 거린 나그네 발걸음에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는 그리움이 가득한 지심도 동백섬 봄마중이다. 참으로 아련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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