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5.01.19.(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 상오리-장각폭포-상오리7층석탑-천왕봉헬기장-천왕봉-천왕봉갈림길-상고암- 법주사 - 법주사주차장
◎ 속리산(1,058m)
속리산은 충청 북도 보은군과 경상 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1,058m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 비로봉 · 경업대 · 문장대 · 입석대 등 해발 1,000m 내외의 산봉우리를 거느린 우리나라 5대 명산 중 하나이다.
그 중 문장대는 속리산의 빼어난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승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속리산에는 법주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 진흥왕 때인 553년에 의신 조사가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인조 때인 1624년에 옛 모양을 찾아 다시 지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5호인 쌍사자 석등 및 팔상전(국보 제55호) · 석련지(국보 제64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법주사와 천왕봉 사이에 사내천이라는 계곡이 있다. 이 계곡에는 탈골암 · 복천암 · 상환암 · 하환암 · 중사자암 · 학소대 등 암자가 많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 내속리면에는 관광 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 상가 등이 밀집하여 관광 취락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에서 절까지 이르는 약 2km의 길 양쪽에는 떡갈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어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을 달리한다. 이 곳은 숲의 길이가 5리(2km)나 되어 오리숲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속리산 천왕봉(1,058m)을 오르면서
속리산은 한반도의 어머니 산이다. 한반도 젓줄인 한강과 낙동강, 금강의 물줄기가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년초에 한반도 10대 명산을 오르기로 다짐하고 그 일환으로 속리산을 오르고 있다. 거창하게 국태민안을 포함하여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나 스스로 건강을 위해 만사제치고 년초에 오른다.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냥 내 스스로와 약속이기에 실천하고 있다. 언제까지 오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오를 수 있을 때까지 올라 보려한다.
올 년초 지리산 천왕봉에 이어서 두번째로 속리산 천왕봉을 오른다. 왠지 기분이 좋다.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기쁨이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많다. 젊은 날에는 화북-문장대-신선대-천왕봉-법주사 이렇게 속리산 종주 산길을 걸었지만, 이제 나이 들어 조금은 짧은 거리인 장각폭포에서 - 천왕봉 - 법주사 코스를 택해 오른다.
우복동천 십승지라는 화북면 상오리 마을을 출발하여 용유천을 따라 오르는 길목에서 상오리 7층 석탑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이 탑을 만나는 순간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고려시대 전기 것으로 추정되나 나는 백제 석탑의 형태를 그대로 빼다 닮아서 백제의 시대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이번 속리산 천왕봉 산행에서는 상고암을 들려 왔다. 상고암 전망대에서 속리산 전체를 조망하는 기막힌 시간을 갖았다.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천년송과
원숭이 바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상고암 보덕 주지스님의 덕분이다.
상고암 보덕스님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속리산 전망대와 천년송과 원숭이 바위에 대하여 자세히 안내해 주셨다. 고맙고 감사하다. 시주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내려와서 무척이나 죄송할 뿐이다. 어젠가 다시 속리산을 오를 기회가 있으며 꼭 다시 상고암을 들려 오리라.
천년고찰 법주사의 보물들을 알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정이품송의 품격은 여전했다.
◎ 상오마을 - 장각폭포 - 상오리 7층 석탑 - 속리산 헬기장 - 천왕봉
한국천하명당 십승지 화북면 입석표지
소나무가 싱싱하게 잘도 자라고 있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상주학생수련원 정문에서 하차하여
출발 단체 인증하고
장각폭포를 향하여 상오1리 마을 안으로 접어 든다.
상오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국도 49번 도로에 있는 조선십승지 천하명당 우복동 장각폭포와 용유계곡 안내판을 담고
상오1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한참을 용유천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장각폭포가 나온다.
◇ 장각폭포
한여름에는 정말로 물이 많아 장엄한 폭포뿐만아니라 금란정의 풍치와 어울어진 풍광은 가히 천하제일이다. 겨울은 빙폭의 운치가 또 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오늘 함께한 대원님들과 기념 한 장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시작한 개울물이 장각동 계곡을 굽이쳐 흘러 6m 높이의 절벽을 타고 떨어져 작은 연못을 이루며, 주변 소나무숲과 암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한 용소로 깊숙이 떨어지니 이것이 바로 장각동구의 장각폭포다.
수량이 많아 산천을 진동하고 수십 장 애안 아래 검푸른 용소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낙수의 여파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수면을 보고 있으면 금방 용이라도 치솟아 오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폭포 위에는 금란정과 노송이 고색찬연하게 서 있어 그 풍광의 조화야말로 무궁하며 조금 밑에 양복정이 있어 산, 폭포, 정자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다.
폭포위에 세워진 금란정은 주위에 두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이로움은 쇠붙이도 끓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은 그 냄새가 난보다 향기롭다. 라는 뜻이라 한다.
금란정에서 동으로 옥녀봉과 서쪽으로는 장각동 계곡, 남쪽으로는 형제봉이 아래를 바라보고 있으며 북으로는 높이 솟은 사모봉이 있다. 장각폭포와 금란정은 사극 무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영화 낭만자객 촬영장소 이기도 한다.
◇ 상주 용유구곡
용유구곡이란 상주군에 흐르는 용유천을 따라 장각폭포를 포함 아홉 굽이를 말하는데, 조선 후기의 묵옹 송요좌가 1703년 용유동의 아홉 굽이를 정하고 용유구곡을 경영했다는데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흔히 용유동이라 하면 우복동임을 알리는 동천석에서 부터 병천정사를 지나 하류의 용추폭포까지를 말한다.
장각계곡에서 흐르는 용유천을 따라 편안한 우복동천 트레킹 길을 걷는다.
용유천을 따라 걷다가 만난 상오리 7층 석탑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였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경북 상주 땅에서 백제의 숨결을 느끼는 석탑을 만나니, 이곳이 그 옛날 백제의 땅이였나 착각을 한다. 이곳은 백두대간을 넘어 낙동강 유역인데 어찌하여 백제의 숨결이 잠겨 있는 석탑이 이곳에 세워졌을까? 삼국이 통일되고 고려시대 전기에 어쩌면 백제 석탑을 세운 석공이 이곳에 석탑을 쌓았는지 모르겠다.
◇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보물 제683호)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은 돌을 깍아 만든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7층으로 몸돌을 쌓아 올렸다. 꼭대기 장식물이 없고 1층 몸돌이 특히 높다.
기단의 짜임새나 몸돌과 지붕돌을 여러 매로 짜 맞춘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이곳에 장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1977년에 옛 모습대로 세웠다.
1층의 기단 몸돌은 크기가 다른 부재를 짜 맞춘 것으로, 남쪽 면에만 모서리 기둥이 있고 서쪽 면에는 가운데 기둥 2개가 새겨져 있다.
이를 제외한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꼭대기에는 장식물로 노반*이 남아 있다.
* 노반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
그 옛날 이곳에 백제의 석탑을 세운 석공은 어떤 사람이였을까? 어떤 생각으로 이 탑을 세웠을까? 물론 이곳은 장각사라는 큰 절이 있던 곳으로 절집에서 탑을 세웠겠지만 어쩌면 백제 석공을 불러 탑을 세운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
국태민안과 고려의 당시 통치 이념인 불국토를 구현하는 만백성의 편안과 만복을 기원하며 탑을 세웠을 것이다. 당시의 석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고을 사람인지 어떤 생각으로 이 탑을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나는 그 분의 생각이 되어 이 탑을 바라 본다.
용유천을 따라 걷는 길은 이곳까지 차가 들어오는 시멘트 길이고 이제부터는 산길이다. 장각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한참을 걸었다. 장각계곡 현위치 안내도
속리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장각계곡 현위치
장각계곡 오름길은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장각계곡 첫번째 다리를 지나고
한참을 걸었나 두번째 다리를 지나서
또 한참을 걸었나? 계곡과 헤어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급경사 오름길이 시작되는 이정표를 만난다.
겨울 나무가지 사이로 속리산 정상이 보이고
급경사 오름길을 한참을 오랐나? 숨이 헐떡일 즘 능선길에 올라 우리는 잠시 막걸리 한 잔에 쉬어 간다. 지금부터는 계속 속리산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 급경사 오름길이다.
오늘 날씨는 포근하다. 바람이 불고 추울 줄 알았는데 바람도 없고 산 아래에는 눈도 모두 녹아 산행하기에 참으로 좋은 길이다. 겨울 산길의 미끄러움을 염려했는데 양지 바른 등산로이여서 오늘 선택한 코스는 탁월했다.
산길은 급경사 오름길이다. 800m정도의 높이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니 능선길엔 아직 지난번 내린 눈이 남아 있다.
덕분에 겨울 눈길 산행도 맛본다.
나무가지 사이로 속리산 정상이 가까이 다가오고
천왕봉 1.0km 지점을 지나간다.
힘들게 올랐다. 천왕봉 헬기장에 힘겹게 올랐다.
비닐 텐트를 치고 산꾼들이 점심 식사가 한창이다.
천왕봉 헬기장에서 천왕봉까지 300m 거리이다. 어서 정상을 찍고 내려와서 점심을 먹자
속리산 정상인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 조망터가 있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천왕봉
상주군 화남면 방향 산군들이 굽이 굽이 산그리매를 그린다.
드디어 속리산 천왕봉(1,058m)
속리산 천왕봉에 2년만에 왔다. 작년에는 알현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올해는 10대 명산 등반 중 두번째로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산을 오르고 수도 없이 많은 산을 올랐지만 이제는 하산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에 오늘의 속리산 정상 천왕봉이 더욱 정겹고 가슴 뭉클하다. 내년에 또 올 수 있을지~는 알수가 없다. 다시 만나길 기대하지만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인증 한 장 남기고
◇ 세갈래의 물줄기, 삼파수
천왕봉에서 떨어진 빗물이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을 기준으로, 동쪽은 낙동강, 남쪽은 금강, 서쪽은 남한강으로 흐르는데 이를 가르쳐 삼파수라고 한다.
"산자분수령 :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산지의 능선을 경계로 물길을 나누고 있는 우리 전통의 산수관에 따르면 속리산 천왕봉은 세 물줄기가 시작되는 경계이다. 속리산 천왕봉에 내린 빗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 남쪽으로는 금강,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을 이룬다.
◎ 천왕봉 - 천왕봉갈림길 - 상고암 - 세심정 - 세조길 - 법주사
천왕봉에서 속리산 능선 조망.
저기 하늘금에 뾰쪽 서 있는 기암이 관음봉이며 그 오른쪽으로 문장대가 보인다. 영암 월출산 만큼이나 속리산 전체가 기암들의 수석 궁궐이다.
화북방면 속리산 능선길을 한없이 바라보며 망중한 시간을 보낸 후 이제 천왕봉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다.
속리산 천왕봉아 잘 있거라. 내년에도 너를 보러 올 수 있길 바란다. 민족의 큰산 속리산아 어머니 같은 큰 마음으로 온 백성이 자기의 삶을 편안하게 잘 살 수있도록 살피고 또 살펴주길 바란다. 내년에 보자. 안녕~
천왕봉갈림길(천왕봉삼거리) 현위치. 천왕봉과 헤어져 한참을 내려왔다. 이곳 천왕봉갈림길에서 이제 법주사로 하산하는 길로 접어든다.
또 한참을 내려오니 상고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반긴다. 상고암은 아직 한번도 들린적이 없는 곳이다. 늘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가 보고 싶은 암자였는데 시간에 쫒겨 그냥 지나쳤던 암자이다. 오늘은 꼭 들려보자. 큰 맘 먹고 상고암으로 향한다.
상고암으로 가는 길목에 굴법당을 만난다. 처음가는 길이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 동굴 법당을 세워 놓았다. 약사전이다. 상고암의 약사전이다.
심생멸문
약사전에는 문이 두개 있는데 하나는 심생멸문이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문이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고 어떤 마음이 사라질까? 어느 때 마음이 일어나고 어느 때 마음이 사라질까? 불가에서 말 하는 마음에 관한 문이다. 이 문의 이치를 터득하면 득도를 한 샘이겠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생겼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기에 일반 신도들이 드나들은 문인가 보다.
심진여문
또 하나는 심진여문이다. 진정한 마음의 문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일 때 이 문을 드나들 수 있을까? 심진여문은 굳게 닫쳤다.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문인가 보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진여의 마음을 득도한 자만이 드나 들 수 있는 문인가 보다.
약사전 안 약사여래불상
약사전 앞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중생들의 건강을 빌면서 인증 한 장 남기고
동굴법당 약사전에서 바라 본 조망은 하늘이 훤히 열리고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는 여여한 세상이다. 나의 마음도 저 광대한 우주 공간처럼 여여하여 "하여간"이 되리라.
◇ 보은 법주사 상고암 마애불상군(충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상고암에 도달했다. 첫번째 만남이 상고암 마애불상군이다.
상고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간, 조선 고종 13년(1876)에 인명대사가 중창하였다. ' 고 기록되어 있다. 법주사 창건 당시에는 목재를 보관하던 창고였기 때문에 상고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상고암 마에불상군은 극락전 맞은편 서쪽으로 자연 암반에 상하 2단으로 6구의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칼과 보탑, 용, 방망이, 비파를 손에 들고 있는 사천왕상 4구가 나란히 서 있고,
오른쪽에는 양손을 가슴에 모은 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위쪽에는 이들 마애불상군 중 조각이 가장 뚜렷한 불상이 있는데,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고 목에는 영락이 장식되었으며, 양손에는 긴 줄기가 달린 연꽃 봉우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 법주사 상고암
상고암은 법주사 설립 당시에는 나무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던 곳이다. 속리산에서 윗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이다. 나중에 이곳을 암자로 새로 중창하였다. 지금은 법주사 산내 암자이다. 상고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요사체는 암자의 주지 스님인 보덕 스님이 거처로 사용하고 계신다.
◇ 법주사 상고암 극락전
상고암의 중심 건물인 극락전과 극락전 앞 9층탑이다. 설명 안내가 없다. 속리산 서쪽 아늑한 품에 위치한 상고암은 고즈넉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암자이다. 보덕스님이 주지하고 계신다. 혼자 거처 하면서 오래동안 방치 되었던 암자를 새로 정리하고 있다고 하신다. 스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진다.
보은 법주사 상고암 극락전이다. 건물로 보아 최근에 새로 세운 듯하다. 눈이 쌓여 가까이 가기가 어렵지만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 법당을 들여다 본다.
상고암 극락전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봉안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시주를 하고 싶어 호주머니을 뒤졌는데 아뿔사! 지갑을 산악회 차에 두고 왔다. 황당하고 죄송하다. 겸염쩍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계신 보덕스님께서 '마음이 중요하다'고 위로해 준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왠지 스님께서 우리 형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인연이 있나보네' 하고 호감을 보여주신다. 나도 '그랑께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우리동네 형님 아니시요' 했다. 스님께서 껄껄껄 웃으신다. 순간 어찌나 마음이 따뜻한지 울꺽 눈물이 나려 했다. 서로 통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한 순간 한 마디면 다 알아듣는다. 다음부터 스님의 손을 꽉 잡고 놓기가 싫었다. 왠지 상고암이 어릴적 노닐었던 고향집 같다. 언젠가 다시 속리산을 오를 때는 꼭 상고암을 들리리라 다짐한다.
◇ 법주사 상고암 관음전
관음전은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다. 관음전 내부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오면 꼭 들여다 보리라.
◇ 법주사 상고암 영산전(靈山殿)
눈길을 헤치고 영산전을 향하여
영산전은 사찰에서 석가모니 일대기를 여덟 시기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화를 봉안하는 불교건축물. 팔상전 이라고도 한다.
영산은 영축산(靈鷲山)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산불국(靈山佛國)을 상징한다. 영축산정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聖地)를 영산전을 통하여 현현시킨 것이며, 이곳에 참배함으로써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이 된다.
영산전 내부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오리라.
영산전에서 내려다 본 상고암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곳이 속리산의 서쪽 품에 자리한 명당인가 보다.
◇ 법주사 상고암 산신각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
산신각에서 내려단 본 상고암 전경
◇ 그 밖의 상고암 요사체 들
◇ 상고암 전망대
보덕스님께서 친히 전망대를 안내 해 주신다. 아마 보덕스님이 안 계셨으면 이곳을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어찌나 따뜻하고 친절한지 처음 뵈었지만 오래전에 뵌 스님처럼 격의 없이 대해주신다. 고맙고 감사하다.
정말이지 이곳 상고암 전망대에 서는 순간 와~ 이런 곳도 있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속리산을 여러번 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속리산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상고암 전망대에서 바라 본 비로봉 암군
상고암 전망대에서 바라 본 속리산 전경
왼쪽 뾰족한 바위가 관음봉 - 문장대 - 창법대 - 신선대 - 입석대 - 비로봉의 속리산 암릉 라인이 한눈에 조망되는 장엄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속리산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우는 없었다. 아~ 기막힌 조망터이다.
◇ 임경업 장군과 속리산의 이야기
몇년 전 신선대에서 경업대로 하산할 때 경업대에서 바라 본 풍광이 이와 비슷한 풍광이었는데, 이곳 전망대에서 그 경업대가 바로 앞에 훤히 보인다.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말을 타고 훈련을 한던 곳으로 유명하다. 실제 이 험한 속리산을 말을 타고 질주하며 활을 쏘고 산천을 누볐을까? 그 시절에는 참으로 대단한 훈련을 하였고 대단한 능력을 보유하였던 것 같다. 속리산은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와 함께 심신을 연마하고 훈련을 했던 곳으로 임경업 장군과 관계가 깊다. 특히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며, 관음암 아래 장군수라는 샘이 있는데, 이는 임경업장군이 속리산에 14살 때부터 주석해서 7년을 관음암 운여대사님과 함께 낮에는 검술 연습을 하고 밤에는 속리산 60리 일대를 7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연마하고는 아침을 해먹고 힘이 세어져서 이 물을 장군수라 전해내려오고 있다.
속리산 입석대
우리에게 고전소설 "임경업전' 으로 잘 알려진 임경업 장군은 누구인가?
임경업은 1594년에 충주에서 태어나 1646년 6월 20일 심기원사건에 연루되어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국법을 어겼다는 죄를 뒤집어쓴 채 형리(刑吏)의 모진 매를 이기지 못해 마침내 숨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53세였으며 고향인 충주의 달천에 장사지냈다.
임경업장군이 살았던 시기는 어떤 시대였는가?
조선이 명과 청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명을 섬겨야 할 유교국가에서 어찌 청을 섬길 수 있는가? 하고 명분을 앞세울 때 실리를 추구하며 명청 등거리 외교를 하려는 광해군을 인조 반정으로 몰아내고 인조가 왕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이다.
청은 중국 북방의 고구려 후예인 만주에 기반을 둔 몽골 민족의 기마병 나라로 새로 힘이 커지고 있는 나라이고 명나라는 한족으로 중국 본토를 지키고 있지만 오랜 기간 부패로 망해가고 있는 나라였다.
광해는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둘러 세자 책봉되었지만 명나라 내부 사정으로 광해군의 세자 책봉 주청(奏請)은 무려 다섯 차례나 거절당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은 어렵게 즉위하였다. 하지만 명나라는 국왕 책봉을 또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장자 임해군의 병세가 과연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차관을 파견하는 등 새 국왕 광해군에게 씻기 힘든 수모를 주었다. 결국 책봉을 받기는 하였으나, 장자도 적자도 아니라는 출생 신분은 광해군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광해는 역모에 민감했고 계축옥사를 통해 영창대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목숨이 죽어 나갔고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역모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 광해는 마침 명과 청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청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세계정세에 어두운 조선의 신료들이 오직 주자학에 빠져 숭명배금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명나라만을 섬겨여 한다고 우겨대면서 인조반정으로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하고 청나라에 대항하다가 결국에는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 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에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굴욕의 항복을 하고 청의 온갖 부당한 요구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역사적으로 오욕의 시대이다.
임경업도 이 시기 명나라를 섬기는 유교국가 조선의 장수였으며 청나라가 명을 치고자 한 여러 명분으로 조선에 군사와 군량미를 부당하게 요구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조선군의 선봉에 서서 명을 치러 가지만 한번도 재대로 된 전쟁을 하지 않고 물밑으로 명과 내통하여 그 때마다 청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였고 이를 알고 있는 청에서 심양에 잡혀온 소현세자를 통해 그 부당함을 항의 하였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참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여 청나라 시대가 된다.
1642년에 임경업의 청나라에 대한 비협조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청나라로 압송 도중 11월 6일 일행이 황해도 금천군금교역(金郊驛)에 이르렀을 때 임경업은 밤을 틈타 도망하였다. 그는 붙잡히기 전에 심기원(沈器遠)을 만나 그에게서 은 700냥과 승복(僧服) 및 체도(剃刀)를 얻어 기회를 노리다가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명나라로 망명할 기회를 잡기 위해 이런 저런 과정을 숨어서 결국 명나라로 망명에 성공하였다. 명나라에서 관직도 받아 살다가 조선으로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그가 그토록 섬긴 명나라는 청나라에 패하고 말았다. 결국 임경업은 조선의 심기원 사건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잡혀와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임경업은 당시 친명반청의 사회분위기와 함께 우국충정에 뛰어난 충신이요 무장이었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장수였다. 명성을 떨치면서도 한번도 청나라와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 못한 불운의 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분위기대로 의리와 명분에 투철하고 고집 센 무장이었지만, 당시 실제적인 국제정세 즉 역사의 흐름에는 어두운 장군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의 무능이 아니라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그의 조국인 조선이 무능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망해 가는 명나라와 힘을 합쳐 청나라에 저항해 병자호란의 부끄러움을 씻으려 했지만 조국인 조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당시의 백성이나 조정의 감정과 함께 충의와 지조 그리고 용기 등으로 점철되어 민족의 마음속에 자리했으니 뒤에 그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고대소설 『임경업전』이 널리 읽혀졌다.
1697년(숙종 23) 12월 숙종의 특명으로 복관되었다. 충주의 충렬사(忠烈祠), 선천의 충민사(忠愍祠), 백마산성의 현충사(顯忠祠) 겸천(兼川)의 충렬사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보덕스님의 손은 따뜻했다. 잔잔한 미소가 무척이나 포근하다. 수행이 깊고 도를 터득한 분들은 그 자체로 부처이다.
상고암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법주사에서 계시다가 상고암을 맡아 홀로 이곳에 오셔서 청정도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하신다.
'세상 살다가 혹여나 마음이 힘들거나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서 하룻밤 자고 가라' 고 하신다. 나도 늘 그렇고 싶다. 살면서 힘들고 어렵고 괴로울 때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그냥 참고 견디고 그렇게 그렇게 보냈다.
이제 차츰 세상살이에 철들어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힘들고 괴로울 때 이곳에 와서 속리산의 수려한 풍광을 벗삼고 청정한 상고암의 고요함으로 심신을 추스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더구나 보덕스님과 격의 없는 대화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 상고암 천년송
이곳 상고암에는 천년송이 있다고 한다. 보덕스님은 손수 안내를 마다 하지 않는다.
천년송을 접하는 순간 그 기품은 대단했다.
바위에 뿌리를 얹고 천년의 긴 세월 동안 세상사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며 말없이 저렇게 홀로 속리산을 지키고 있나 보다.
한없는 경외로움에 이 삶이 끝나고도 더 오랜 수 없는 천년 동안 이 불상한 영혼은 놓지 말고 잡아 주소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보덕스님은 그저 잔잔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보덕스님이 가르쳐 준다. 저 아래 내려가다 보면 원숭이 바위가 있으니 살펴보고 가라고~
영락없는 원숭이다.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 자연의 사물은 신비하게도 여러 형태로 닮은 것이 많다. 우리는 그런 바위를 찾아 이름을 짓고 기념을 하고 표기를 한다.
원숭이 바위를 보는 순간, 아~ 보덕스님이 살펴보라고 한 것이 원숭이 바위인가를 살피라고 한 것인가? 원숭이 같이 생긴 바위를 원숭이 바위라고 한 것은 굳이 살펴보라 하지 않아도 이 길을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것을~
원숭이 같이 생긴 바위라고 인식하고 이름을 붙여 살피고 있는 나의 허상을 살피라는 따끔한 가르침을 준 것 같다. 그래 주변 바위도 다 똑같은 바위인데 어찌하여 원숭이 모양의 저 바위만 살피고 있는가? 인간 스스로 인식하는 카테고리 안에서 차별의 부질없음을 살피라고 한 것이 아닌지~ 깊은 가르침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고 하면서 나는 이곳까지 원숭이 바위만 생각하고 내려왔다. 다른 바위들은 무시한 체. 아~ 아직도 멀었다. 말로만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라고 하지 나의 인식의 내면에는 차별과 무시와 우쭐거림으로 위선의 굴레를 둘러 쓰고 썩은 냄새가 풀 풀 나는 쓰레기 같은 나를 살피라는 준엄한 가르침에 고개를 숙인다. 보덕스님의 그저 잔잔한 미소 앞에 한없이 부끄럽다. 보덕스님의 얼굴이 스쳐 간다.
비로산장을 지나고
상고암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산을 하면 상환암을 거쳐 내려온 하산길은 이곳에서 만난다. 반대로 법주사에서 상환암을 거쳐 천왕봉을 오르고자 한 사람은 이곳에서 갈려져 상환암으로 오른다.
상환암 갈림길 현위치
◇ 속리산 세심정 휴게소
세심정휴게소를 지나고
문장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문장대로 가고자 한 사람은 이곳 세심정 휴게소에서 갈라져 왼쪽을 택해 오르면 된다. 반대로 문장대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이곳에서 법주사로 하산하는 길과 만난다.
세심정휴게소 현위치
법주사에서 이곳 세심정휴게소를 지나 복천암까지 세조길이라는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이곳 세심정휴게소에서 부터 법주사까지 세조길을 걷기로 한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에 오른 뒤 그 심란한 마음으로 피부병에 걸려 고생을 하던 중 이곳 법주사 복천암에 거주한 신미대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 세조길이다. 세조는 복천암에 기거하면서 신미대사와 허심탄회한 대화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 법주사 계곡 사내천 맑은 물에 목욕을 하면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길이다.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려고 심산 계곡을 찾은 이야기는 많다.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알현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에도 문수보살을 알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조길에는 소나무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싱그런 솔향을 맡으며 걷는 산책길은 가족들과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달천 상수도 수원지
◇ 거북바위가 있는 수정봉
달천 상수도 수원지에서 바라본 수정봉
당나라 태종이 세숫물 속에서 거북 형상을 보고 이상히 여겨 술사에게 물으니, 동쪽 나라에 큰 거북이의 형상이 당나라의 모든 재물을 그 나라로 흘러가게 하니 찾아서 없애라고 했다. 그리하여 속리산에 있던 거북바위를 찾아내 목을 자르고 등에 10층의 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탑을 없애고 잘려나간 목을 다시 이어 붙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수정봉은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바로 뒷산이다.
수정봉은 법주사가 있는 뒷산이다.
법주사에서 출발한 세조길 입구
◎ 보은 법주사
보은 법주사에 대해서는 너무나 유명한 절집이라 나의 블로그에 정리한 내용을 대신한다.
2022.01.16. 충북 보은 법주사-속리산 문장대-신선대-천왕봉의 기운을 담아 세운 호서 제일가람 법주사 탐방
2022.01.16. 충북 보은 법주사-속리산 문장대-신선대-천왕봉의 기운을 담아 세운 호서 제일가람 법
충북 보은 법주사를 찾아서(2022.01.16) 년초 속리산을 간다기에 만사 제치고 산악회 버스에 올랐다. 어제 덕유산 향적봉을 오른터라 온몸이 피곤하다. 더구나 작년 봄에 다친 고관절이 무리한 산
lyj1749.tistory.com
금강문
천왕문
금동미륵대불
천왕문
팔상전
대웅보전
쌍사자석등
금동미륵대불
원통보전
대웅보전
호서제일가람 법주사 일주문
◎ 정이품송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하려고 법주사 복천암에 거주한 신미대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청주를 출발한 세조 일행은 말티재 아래 대궐 터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다음날, 고갯길을 넘어 평지로 내려섰을 때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세조의 눈에 들어왔다. 전설은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 일행이 편안하게 지나가도록 했다고 하는데, 세조가 소나무의 덕을 기려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세조를 위해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정이품송이 600년 전처럼 법주사를 목전에 둔 자리에 서있다. 이 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활짝 편 모양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졌고, 또 이후 폭설 피해로 서쪽의 남은 가지들조차 적지 않게 상하고 말았다. 수백 년간 같은 자리에서 비바람을 견뎌온 노구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고 한쪽마저 축 쳐진 가지를 받침대가 부축하듯 받치고 있다.
◎ 속리산 천왕봉 산행을 마무리 하면서
년초 10대 명산을 오르는 나와의 약속으로 오늘 속리산 천왕봉을 올랐다. 나와의 약속 한가지를 해 낼 수 있어 기분이 좋다. 특히나 오늘은 상오리 7층 석탑인 귀한 보물을 만났고 속리산에 꼭꼭 숨어 있는 상고암의 전망대에서 속리산 전체를 조망하면서 임경업 장군의 이야기를 살필 수 있었고 천년송과 원숭이 바위는 상고암 보덕 스님이 아니였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원숭이 바위에서 나의 허상과 위선을 깨달은 순간, 참으로 부끄러웠고 차별과 무시와 우쭐함이 없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신 보덕스님께 참으로 감사한다.
늘 어디를 가든 새로운 것을 만나고 또 많은 것을 배우지만, 이제 이 나이에 또 중요한 것이 건강이며 건강은 부질없는 욕심을 버릴 때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더욱 더 겸손하고 겸허하여 영육이 건강하길 바라며, 거대한 우주 질서 속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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