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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23.09.03. 지리산 청학동-삼성궁-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3. 9. 4.

1. 일자 : 2023.09.03.(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상행 구간 : 지리산 청학동-삼성궁-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 산행(8.5km)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으며, 변산반도 신선봉 아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골 깊숙한 곳에 그들만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강대성이 유불선을 하나로 묶어 유교중심의 유불선갱정유도교인 일명 일심교라는 종교를 만들고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사는 곳을 청학동이라고 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하동 삼신봉아래 지금의 청학동으로 옮겨 마을을 형성하였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데, 그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갱정유도의 사회적 표상은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 이외에도, 신도는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옛 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낸다. 특히,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다. 또한, 주색초(酒色草)를 엄격히 금하나, 때로는 허용하기도 한다.

 

 

4. 산행 추억

 

출발 전 단체 인증

 

 

◎ 마고성

 

선국이라! 신선들이 사는 나라  입구로 들어간다. 여기서 선국은 마고성과 검단길 그리고 삼성궁이 있는 이곳 4만편의 부지에 있는 각종 전각과 돌탑 그리고 수련 활동을 하는 건물 등 일련의 모든 것을 말한다.

 

마고성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계곡물이 풍성하다. 시원함을 선사한다.

 

선국 입구 표지석

 

선국 입구 쉼터에 앉아 계곡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청정한 계곡 물소리에 정신이 맑아진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기 쉬면서 계곡 물소리 멍때리기도 좋을 듯하다.

 

푸른 학이 사는 곳이다. 관광객들의 쉼터인 음식점과 찻집 각종 이야깃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장소이다. 지붕에는 거대한 학 조형물이 상징적이다.

 

지리산 심산유곡에 거대한 학 한마리가 계곡을 지키고 있는 모습에 압도된다. 이 일대를 마고성이라고 한다. 무수히 많은 솟대 돌탑과 비상하는 학과 여러 생명 탄생과 관련된 여러 종교적 문양을 돌에 새겨 놓은 그림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 선국의 마고성(麻姑城)

 

마고성(麻姑城)은 신라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있는 상상 속의 지역이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씨(黃穹氏),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 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성(城)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율로 질서를 이루었다.

어느날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5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성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인 황궁씨(黃穹氏)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머니 앞에 복본(復本: 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모든 사람의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黃穹氏)는 일행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현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다.

 

황궁씨(黃穹氏)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有因氏) 그리고 유인씨(有因氏)의 자손인 한인씨(桓因氏)가 천년씩 3천년동안 복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고성의 마고는 막고와 같으며 마고는 단지 오래된 옛을 마고라 한다.

 

 

◎ 검단길

 

검은 신령 신성하다는 뜻이고

달은 땅의 옛말입니다.

검단길은 신령스러운 땅의 길입니다.

 

대원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무며 검단길을 걷는다.

 

계곡물이 우렁차다.

 

원래 있던 기암들을 이용하면서 잘 조화롭게 마고성을 쌓고 검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묘신지문

 

이 문양의 의미는 무엇일까? 

 

선녀가 구름 위를 비상하며 피리를 부는 신성한 문양

 

마고성 검단길

 

 

 

진신지문

 

사신지문

 

원래 있던 암석을 깍아 계단을 만들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유지한 싱싱한 소나무가 신기하다.

 

 

오신지문

 

마고성 검단길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이렇게 널은 뭉덩이를 파서 작고 오묘한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대단한 손길이다.

 

신비한 나라에 온 기분이다.

 

포토존

 

삼성궁 가는 옛길

 

마고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한장

 

이 많은 돌탑과 돌을 쌓아 만든 저기 돌벽 사각 굴에는 수 많은 모습의 얼굴 조각상을 깍아 모셔 놓았다. 인간의 천태만상을 새겼거나 걱정이 없은 이상향에서 살고 싶은 세상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을 새겨 놓았는지 모르겠다. 암튼 정성이 대단하다.

 

가지 가지 구조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세개의 나선 모양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세개의 점과 가운데 점을 연결하는 나선 모양의 독특한 문양은 어떤 종교적 상징일 것 같은데 해석이 궁금하다.

 

거대한 돌탑 사이로 운치 있는 검단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마고성

 

 

어디를 보아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한참을 올라왔나. 이제 삼성궁으로 가는 길목에 장승들이 여럿이다.

 

◎  배달민족 성전 청학선원 삼성궁

 

 

청학동 해발 850m에 자리한 삼성궁은 우리민족 고유의 예와 도를 행하여 왔으며, 우리민족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실현하고자 연마하는 배달의 성전이다.

삼성궁은 고조선시대의 소도(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지)를 현대에 복원한 곳으로 그 시대에는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잡아갈 수 없을 만큼 신성하고 특별한 공간이다.

 

지금도 매년 10월이면 한풀선사(삼성궁 창조자)는 국조 단군왕검이 고조선의 개국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통의 맥을 이어가며 개천대제를 지낸다. 예로부터 땅의 생명력이 충만하여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고 기름지며, 이곳의 우물물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신라 최고이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과 도선국사를 비롯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동방 제일의 성지'라 일컫는 곳이 바로 청학동 삼성궁이다.

 

 

삼성궁은 배달민족 성전으로 한배인(한인), 한배웅(한웅), 한배검(단군) 및 역대 우리나라을 건국하신 태조 각 성씨의 시조, 나라를 빛낸 현인 무장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민족의 성스러운 순례 참배지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근원 없는 강물이 있을 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민족의 조상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소도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천하고 땅에 제지하며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강독했으며 삼륜, 오계, 팔조, 구서의 덕목을 가르쳤다. 또한 소도에는 경당을 세워 국자랑들에게 충, 효, 신, 용, 인 등 오상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 습사, 치마, 예절, 가락, 권박 등 육예를 연마시켰다.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정통사상인 선도의 도맥을 이어받아 고조선 천지화랑들이 수행하던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고유의 수도 도량이다.

 

또한 민족정신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되찾아 민족혼을 일깨우며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 대화합의 장을 여는 민족의 성전이다.

 

 

◎ 삼성궁의 창조자 한풀선사

 

한풀선사는 낙천선사(한풀선사의 스승)로 부터 "한풀아, 너는 앞으로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거라. 그러면 누군가 일부러 갖다 넣지 않아도 거기에는 작은 피레미가 생길 것이고, 미꾸라지나 붕어도 생기고, 못된 가물치나 메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목마른 자들이 샘을 찾듯 뿌리를 잃은 수많은 자들이 쉬어서 목을 축이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가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50년이 넘는 새월동안 1500여개의 솟대돌탑을 쌓아올렸다. 

한풀선사는 고대의 소도를 상징하는 돌탑과 조형물들로 4만평이 넘는 감탄 할만한 대작을 그려내었고 삼성궁의 잠재력은 해마다 아름답게 모습이 바뀌며 우주의 섭리를 재연하는 창조의 진행에 있다.

 

 

◎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어우러진 삼성궁의 사계

 

삼성궁은 계절마다 다양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봄에는 푸르른 생명력이 싹트고, 여름은 하늘과 물이 만나 에머랄드빛 거울이되고, 가을은 무지게빛 단풍이 삼성궁을 감싸 안고, 겨울의 설경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간직한 백의민족의 정서가 잘 나타나는 장관이 사계절 내내 펼쳐지고 있다. 

 

늘 함께한 찬찬님과 추억 한 장

 

유난히도 아름다운 하늘과 삼성궁을 배경으로 한 장

 

찐빵도사님

 

웃는길 앞에서 활짝 웃는 대원들! 역시 사람은 늘 웃어야 한다. 

 

 

◎ 삼성궁 - 상불재 - 불일폭포 산행길

 

상성궁에서 상불재를 오르는 길은 평범한 산길이다. 녹음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싱그러운 산길을 걷는다.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산길이다. 힐링 길이다. 

 

 

◎ 불일폭포

 

이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써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불일폭포에 여러번 왔는데 이번이 가장 수량이 많아 장엄하다. 60m의 폭포 물줄기가 그 앞에 서면 정말이지 감탄의 연발케 한다. 

 

불일폭포 앞에서

 

지친 산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불일 폭포! 너무나 행복한 순간

 

 

 

◎ 불일암

 

고려 희종재위 때 보조국사 지눌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가 불일암이라 불렀다. 

 

불일암

 

불일암 마당에서 바라 본 선경

 

불일암 스님

 

불일암 뒤에 있는 대웅전

 

 

 

◎ 청학동 불일산방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여러번 지났다. 불일산방은 양철지붕이였을까? 기억이 희미하다. 암튼 벽은 황토를 발랗고 귀신 모양의 신비로운 나무조각상이 눈길을 사로 잡았던 인상적인 곳이였다. 이런곳에 사는 사람은 신선이 되나 보다. 어떤 때는 여자 혼자서 이 산방을 지킨다고도 했다. 그 때마다 산방 주인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고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지리산 심산 유곡에 이렇게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 안쓰럽기도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만난 불일산방은 완전히 달라 있었다. 추억의 옛날 모습은 온대 간대 없고 이곳도 현대 문물이 접어들어 영 생소하게 변해버렸다. 어린시절 고향을 그리며 갔던 고향이 완전히 변하여 실망하고 안타까운 쓸쓸함이 밀려오는 그런 기분이다.  

 

 

 

◎ 지리산 청학동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곳을 우리나라에서는 청학동이라 불렀다.

청학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260년 이인로의 "파한집"에 나온다. " 옛 사람이 전하기를,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엎드려 몇 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농사짓기에 알맞다. 청학이 그곳에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고 부른다."

 

청학은 예로부터 태평한 세월을 상징하는 길조로 여겼으며,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청학을 불러 놀았다는 설화가 있어 청학동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전쟁과 가난과 질병을 피할 이상향을 갈구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최치원 설화가 깃들어 있는 이곳 불일폭포와 불일평전을 청학동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곳에서 발원한 청학동의 개념은 지리산 산간마을 의신, 매계, 묵계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마음으로 그려낸 살기 좋은 이상향

 

사람은 누구나 이상향을 꿈꾼다.

이상향이란 사람들이 마음으로 그려낸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서양의 이상향으로는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쓴 소설의 이름에서 유래한 유토피아(Utopia)가 있다. 그 뜻은 "어느 곳에도 없는 좋은 장소"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란티스가 있는데 기원전 1500년 경 화산폭발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기독교의 이상향으로 이스라엘 에덴동산이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이상향은 무릉도원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무릉에 있는 복숭아 꽃이 활짝 핀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천국과 같은 이상향으로 여겼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이상향은 청학동이고, 이외에 우복동, 이어도, 태평동, 율도국 등이 있다. 전국에 창학동으로 여긴 장소나 지명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지리산의 북일폭포-불일암, 세석평전, 덕평 등을 청학동이라고 여러 옛 문헌에서 기록하고 있다. 

 

 

◎ 환학대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다. 이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바위이다.

 

최치원(857~?) : 신라시대 학자, 자는 고은, 경주 최씨의 시조, 868년 당나라에 유학, 874년 과거에 장원급재하고 항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서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다. 885년 귀국, 태안군, 함양군 군수를 역임했다. 이후 난세를 한탄하여 지리산을 비롯한 각처를 유랑하다가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청학 : 붉은 머리, 검은 날개, 자줏빛 다리를 가졌고 햇빛 아래서 보면 깃이 모두 푸르다고 전해지는 상상 속의 새

 

하산길 계곡물이 시원하다. 

 

올 여름 마지막 계곡 물놀이 피서

 

 

◎ 쌍계사 금당

쌍계사 금당은 좀처럼 열어주지 않는다. 일정기간만 개방하고 대부분 스님들의 안거를 위해 문이 닫혔있다. 지난 쌍계사 탐방 때도 닫혀 있었다. 오늘은 용케 개방되어 있어 이 얼마나 좋은 시간인가? 만사를 뒤로 하고 금당으로 들어간다. 소중한 시간 조심히 살펴보리라.

 

 

◎ 하동 쌍계사 청학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청학루는 진감선사가 창건당시에 세운건물로서 처음 승려가 되는 이들이 수도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인계화상 우하화상 범성화상 등이 새로 고쳐 지었고, 지금의 건물은 1930년에 쌍계사 주지 손민 화상이 손질하여 고쳤다. 청학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산의 경계면에 지어서 앞에서 보면 2층의 다락집 형태인 누각이며 뒤에서 보면 1층이다. 거대한 자연석 주춧돌 위에 둥글고 굵은 참나무 기둥을 세워 마루를 얹었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1979년에 고산화상이 손질하여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하동 쌍계사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나 조각상을 모시는 전각이다. 쌍계사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으로 지어졌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대웅전과 같은 웅장함이 느껴진다. 건물 안의 기둥머리에는 장식이 많은데, 그 장식들을 안쪽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어 공간이 웅장하고 화려해 보인다. 또한 천정은 격자 모양으로 짜맞춘 우물 정자 청장이며, 가운데로 갈수록 점차 올라가는 층단을 두어 시야가 트이게 하였다. 불상을 모셔 둔 불단 뒤에는 진정 국사가 처음 세우고 나서 여러 차례 손질하고 고쳤는데, 지금의 건물은 1978년에 고산 화상이 고친 것이다.

 

 

◎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제 925호)

 

쌍계사 팔상전 영상회상도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바탕 재질은 비단이며 크기는 가로 273cm, 세로 410cm이다. 화면 가운데에 본존인 석가여래가 결가부좌하였고 양옆으로 사천왕, 보살, 분신불, 팔부중, 제자 등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이 형상에 일그러진 부분이 없고 문양 등 묘사가 치밀하며 붉은색계와 녹색계가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안전된 느낌을 주는 우수한 그림이다. 그림에 기록된 기록에 따르면 숙종 14년(1688)에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17세기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불화이다.

 

 

하동 쌍계사 팔상전 팔상도

 

 

◎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두상) 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25호)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의 개산(처음으로 산문을 연 것) 설화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삼범과 대비 두 화상이 신라 성덕왕 23년(725)에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 대사의 정상(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감화처(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 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와 정상을 봉안하고 산문을 연 데서 유래한다. 그후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이라 하였다. 

 

건물 안에 있는 육조정상탑은 7층으로 용담선사가 세웠다고 하며, 주변 옥암사 터에서 옮겨 왔다고도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 없이 툇마루를 두어 지면과 떨어뜨린 것이 특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다. 

 

 

기둥 간격이 매우 좁고 낮아 건물이 작은데 비해, 기둥머리의 장식이 많고 커서 화려하고 장중해 보인다. 천장은 낮지만 건물안의 기둥장식들을 중앙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었고, 탑의 위쪽에는 작은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고산 화상이 1979년 고쳐 지은 것이다. 쌍계사 건물 가운데 균형미가 가장 돋보인다.

 

혜능대사 존영

 

◎ 봉래당

 

 

◎ 하동 쌍계사 영모전

 

 

영모전은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진영(동치2년, 1863)을 비롯하여 지눌대사의 진영, 사명,부휴,벽송,소요 호원 대사 등의 진영을 모신 곳으로, 인조 19년(1641)에 벽암이 고쳐 지었고 1978년 고산 화상이 새로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모전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여러 큰 스님의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단층 홀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포작을 짜지 않은 간결한 도리집으로 정면에는 모두 2분합의 세살문을 달았다.

 

◎ 서방장

 

 

◎ 동방장

 

 

◎ 영주당

 

◎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 석탑을 끝으로 산행을 마루리 한다.

 

이런 저런 추억을 담다 보니 산행이 항상 예정 시간보다 많이 걸려서 기다리는 산우님들에 미안하다. 서둘러 종점을 향한다. 오늘 산행은 삼성궁과 불일폭포가 관심거리였는데 예상 밖으로 쌍계사 금당 구역을 둘러보게 되었다. 예기치 않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행운의 시간이다. 이번 산행 코스는 늘 다녀보았던 구간이기에 익숙하고 편안한 산행이였다. 아름다운 추억을 정리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