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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물줄기/영산강 트레킹

2023.12.25. 영산강 트레킹 5-1구간(극락교 - 증심사 주차장)

by 하여간하여간 2023. 12. 26.

1. 일자 : 2023.12.25.(월), 성탄절 휴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트레킹구간 : 극락교 - 상무대교 - 치평교 - 상무교 - 무진교 - 유촌교 3, 2 - 유촌교 - 동천교 - 광암교 - 광천2교 - 두물머리나루 - 광천철교 - 광천1교 - 발산교 - 양동교 - 양동복개 - 양유교 - 천교 - 광주대교 - 광주교 - 빛고을마루 - 희경루 - 중앙대교 - 부동교 - 서석교 - 금교 - 양림교 - 학강교 - 남광교 - 학림교 - 방림교 - 설원교 - 방학교 - 원지교 - 증심천교 - 홍림교 - 운림교 - 동적교(15.8Km, 약 6시간, 점심시간 포함)

 

◎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이 57년만에 개방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해발고도 0m에서 무등산정상 1,187m까지 무동력으로(걸어서) 걷는 트레킹으로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에서 최초로 시도한 프로그램이다.

 

4. 트레킹 소감

 

광주천을 걸었다. 많은 시민들이 광주천을 운동 삼아 걷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한번도 광주천을 걸어 본 적이 없다.

 

이번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광주천을 처음 걸어본다. 무엇을 했길래 가까에 있는 광주천을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을까? 새삼 새롭다.

 

숱한 세월 광주천을 건너고 긴 시간 광주에 살았지만 정작 광주천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상은 늘 그렇다. 나만 그럴까? 대부분 그럴 것이다. 광주시민이라면 광주천을 한번 쯤 걸어 본 것도 좋을 듯하다.

 

광주천을 걸으면서 새삼 느낀다. 물이 맑다는 것을! 억새도 살아나고 오리때가 때를 지어 한가롭게 헤엄치는 광경은 광주천 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외가리나 백로가 흰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날으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광주를 가로지르는 광주천을 지나면서 광주에 대한 숱한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길 바란다. 광주를 새롭게 느끼는 하루이다.

 

구석 구석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해 주신 박옥현님(노무현재단), 임진택님, 이병두님, 트레킹 길 안내와 현위치 등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명수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5. 트레킹 추억

 

출발점 영산강 자전거길 안내센터

 

출발 단체 인증

 

준비운동하고

 

나도 극락교 옆 영산강자전거안내센터 앞에서 출발 전 인증

 

극락교이다.

 

극락강은 영산강에서 어디를 말 할까?

 

극락강이란 이름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유일하게 영산강 어느 구간을 일컬어 극락강이라고 한다. 예전에 영산강 줄기에는 동창과 서창이 있었다. 동창은 지금의 무양서원 자리이고 서창은 지금의 서창이다. 담양과 나주 지방 세곡을 저장하였다가 쪽배에 싣고 극락강을 따라 영산포로 이동하고 영산포에서 다시 큰배에 세곡을 싣고 영산강을 따라 목포를 지나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옮겼을 것이다. 이 시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극락원이 있어다고 한다. 지금의 여관급이다. 차쯤 육로가 생기고 철길이 생겨나고 화폐가 성행하면서 곡식으로 세금을 내는 일이 없어지면서 동창은 없어지고 서창만 남아 그 명백을 이어가고 있다. 극락원도 역사속에 뭍히고 그 이름만 극락강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마 산동교에서 황룡강 합수지점 아래 서창까지가 극락강이 였지 않을까 싶다.

 

극락강, 극락초, 극락교, 극락역 등 ‘극락’이라는 지명은 바로 서창마을에 있던 극락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원(院)은 고려시대 사찰 등지를 찾아다니던 불교 순례자를 위한 숙박시설로 기능했다. 극락원은 조선시대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운영되었으며 인근에 나루터 극락진이 있었다. 이 일대는 뒤에 서창으로 불렸는데, ‘서창’이랑 서쪽의 창고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광주에는 세 곳에 곡물창고를 두었는데, 세금으로 받은 곡물을 서울로 옮기기 전 쌓아놓았던 장소다. 그 중 하나가 광주읍성 내에 있던 읍창(억만고)이다. 또 지금의 첨단지구 월계동 무양서원 자리에 동창이 있었다. 그리고 서창이 있었는데 이후 마을 이름이 서창 또는 창촌(倉村)으로 불렸다. 마을 주민들이 창등(倉嶝)이라고 부르던 언덕 인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창은 ‘극락창’이라고도 불렸다. 

  

담양댐 42.5km 지점 이정표

 

극락교를 지나서

 

광주송정역에서 서광주역을 지나 순천으로 가는 철길이다. 예전에는 광주역을 거쳐 남광주를 거쳐 지나갔지만 언제부턴가 이 철길을 따라 서광주역을 지나 순천으로 기차는 달린다.

 

강변 놀이터이다.

 

이곳에서 부터 영산강 본류와 광주천은 갈라진다. 더 정확히 말해서 광주천이 이곳에서 영산강에 합수된다.

 

합수지점 억새밭은 꽤 넓다. 

 

성무대교가 눈에 들어 온다.

 

상무대교는 광주의 제2순환도로가 광주천을 지나는 다리이다. 

 

 광주천은 저 상무대교 밑에서 영산강에 합수한다.

 

상무대교를 지나고

 

치평교이다. 담양댐으로 가는 자전거길은 이곳으로 지나 간다.

 

담양댐 41.4km 지점이정표

 

인증 한 장을 남긴다. 저기 맞은 편에는 광주환경공단 본부와 하천 사업소가 자리 잡고 있다. 광주하수도를 정화하는 거대한 시설이 있는 곳이다. 

 

광주천 표지판. 광주천은 지금은 국가하천이 되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관리한다. 

 

광주천에서 활동하는 야생동물 보호 안내판

 

광주천 하천길에도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자전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오리때가 한가로이 강물을 헤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저런 모습을 보면 광주천이 살아 있구나! 기특하다. 예전에 광주천은 오염이 되어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동안 환경단체나 시민단체가 나서서 광주천 살리기 운동을 하고 쓰레기를 줍고 깨끗히 보전하자는 운동을 꾸준히 하였고 이제 시민들도 환경을 살려야 시민 개인의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체의 환경 보전을 위해 각별히 신경 쓰는 분위기여서 광주천이 새로 살아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좋은 일이다.

 

길이 얼었다. 빙판이다. 조심 조심 

 

시청 옆 상무 소각장이다. 높은 기둥이 상징적이다. 광주소각장이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 예전엔 소각장이 혐오시설이였다. 매연이 나오고 공기질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다. 이유가 된다. 최근 강기정 시장님이 새로 시정을 맡으면서 소각장의 개념을 창의적으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5개 구청에서 서로 소각장을 유치하려고 야단이단다. 무엇이 변했길래 그렇게 혐오하던 소각장을 서로 유치하려고 야단일까? 시장님이 직접 유럽의 최고 소각시설을 둘러보고 광주 소각 시설도 기술적으로 수준 높은 소각시설을 유치하고 그 곳에 주민 편의 시설까지 확기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란다. 지도자 한사람이 바뀌니 이렇게 달라진다. 좋은 일이다.

 

징검다리

 

광주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

 

상무교

상무교는 새로 시청이 상무지구로 이전하고 상무지구의 중심도로와 앞으로 개통될 첨단산단도로(2026.12월 개통예정)와  연결하는 다리이다. 향후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구간이기도 하다. 

 

상무교 앞에서 한 장

 

상무교 표지 - 우리는 무진교를 향해 간다.

 

무진교가 보이는 광주천 물길이 살아 움직인다. 가끔은 천 중간에 보를 설치하여 물길의 속도와 수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무진대교가 눈앞이다.

 

무진대교는 광주에서 무안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무진대로의 시작지점에 있다. 광주고속 터미널을 지나 기아자동차 대로를 지나 곧장 이 무진대교를 거처 무안 국제공항으로 가는 물류 도로이기도 하다. 향후 광주공항이 무안으로 옮긴다면 이 무진대교는 물류뿐만이 아니라 광주시민에게 하늘을 열어주는 주요 다리 기능을 하리라 생각한다. 

 

광주광역시 의회 옆을 지나고

 

광주천 종합안내판 현재 위치

 

광주시청 옆을 지난다.

 

무진대교 옆을 지나

 

광주천에서 활동하는 야생도물 안내

 

광주시청을 뒤로하고 광주천을 걷는다.

 

광주시청 건물은 5.18을 상징한다. 의회가 5층이고 시청이 18층이며 이를 연결하는 복도가 1층으로 되어 있다. 또 시청 건물은 배를 상징한다. 광주에 꿈을 싣고 서해로 향하는 상징이다. 오대양 육대주로 향하는 광주의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광주가 민주, 인권, 평화, 통일, 자유의 꿈을 싣고 오대양 육대주로 푸르게 푸르게  전진하길 바란다. 

 

무진교 밑을 통과해

 

바닥엔 눈이 하얀게 쌓였지만 광주천을 따라 걷는 길은 봄날처럼 아늑하다. 

 

무진교를 뒤로 하고

 

유촌 2,3,1교

 

빛고을대로가 지나는 중심다리는 유촌3교이다. 광주천과 주변 도로의 복잡함으로 해서 유촌3교 양 옆으로 1교와 2교를 가설해 놓았다.

빛고을대로는 호남고속도로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첫번째 관문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광주상무지구에서 첨단산단을 거쳐 담양으로 가는 고속화 도로로 그 기능이 참으로 다양하고 중요하다.

 

유촌교 물빠짐 배관에 고드름이 인상적이다.

 

유촌1교 3교 2교를 지난다.

 

유촌교이다.

 

유촌교는 광주극락초에서 유촌동을 연결하는 오래된 옛 다리이다. 

 

긴 천변길이 봄날이다.

 

장리 커피점이다. 커피 애호가들이 들리는 곳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커피점인데 맛이 일품이다. 지나가는 사람은 이곳을 꼭 한번 들려 가길 바란다. 광주천변 이런 운치 있는 커피 솝이 많이 들어와 시민들이 언제나 쉬고 싶을 때 광주천의 아늑함을 즐기며 커피 한잔에 새로운 힘을 얻길 바란다.

 

어쩌면 광주천변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애호가들이 들리는 곳이 되면 좋겠다. '세적인 명품 커피를 마시려면 광주천변으로 가라' 하는 익사이팅이 되길 바란다. 세계적인 수제 커피 체험관이나 커피 박물관 등이 들어서면 좋겠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속에 고전의 깊은 사색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시민 모두가 그런 세계적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 광주천의 기능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등산의 조망이다. 광주 어디에서든 광주 무등을 바라 볼 수 있는 조망을 유지하는 것은 명품 광주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세계 어디에도 무등산 같이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광주천의 아늑함과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한 무등을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한 일이다. 쉼이 있는 도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있는 도시! 낭만의도시! 그런 광주가 되길 바란다.

 

광주천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를 건넌다. 

 

광주천 물이 깨끗하다. 이런 광주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물에 생명을 부여하려는 의도인가? 계단을 두어 물의 흐름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물이 숨을 쉰다. 산소를 머금고 맛있다고 경쾌한 소리로 흥얼거린다. 기분이 좋다.

 

광주천에서 볼 수 있는 물억새, 갈대, 왕버들, 수양버들, 잉어, 붕어 등 다양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광주천

 

동남아파트와 다이아빌 아파트

 

용비어천가 추억의 음식점이다. 빛고을 초교 앞에 있는 용비어천가 휫집은 내가 여러번 갔던 곳이다. 주인이 친절하고 음식이 맛깔난다. 싱싱하고 맛있다. 왠지 반갑다.

 

맞은편에 광천교회

 

나라키움 광주통합청사 앞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호남지방통계청과 광주전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

 

이곳에 나라키움 정부통합청사가 최근에 들어 왔다. 시민의 입장에선 여러가지로 편리하고 중요한 기관이다. 주변 상가도 활성화 되고 일거 양득이다.  

 

쉬면서 커피 한잔 하느라 중요한 동천교를 담지 못하고 지나쳤다. 

 

노무현재단 김경환님과 정찬훈님이 동행하였다. 귀한 분들과 동행길을 기념한다.

  

동천교를 지나 광주천을 걷는다.

 

광주천은 살아 숨쉬고 

 

광암교를 향하여 지난다.

광암교는 호남고속도로 서광주 나들목에서 곧바로 광주고속터미널로 연결하는 다리이다. 교통의 요지이다.

 

광암교를 지나서 억새가 아름다운 천변길을 걷는다.

 

천변엔 지난 계절 억새가 무성히도 잘 자랐다. 숲이 살아 있는 증거다. 저 억새 밭 사이로 각종 철새들이 노닐다 먹이를 구하러 이곳 저곳을 날은다. 광주천에 붕어나 미꾸라지 등 여러 물고들이 살아나서 먹이사슬이 형성되있어 다행이다. 또한 억새는 공기를 정화하기도 한다.

 

제2광천교가 눈에 들어 온다.

 

제2광천교는 국도 1번 도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나주에서 백운동을 거쳐 순환도로를 지나 저 다리를 통과하고 운암동으로 향한다. 운암동을 지나 장성으로 가는 국도 1번 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인다.

 

우리는 광암교 - 광천2교 - 광천철교(한국아데릴움2단지)를 지나는 순으로 광주천을 걷는다.

 

천변은 억새와 갈대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어디 아름답기만 한가? 자연을 정화하고 생명을 불어 넣느라 쉼없이 움직인다. 하늘도 구름도 햇살도~

 

두물머리이다. 일곡지구에서 설죽로를 따라 흐르는 천이 이곳에서 광주천과 합수되는 두물머리이다. 

 

 

 

저기 보이는 다리가 광운교이고 천을 가로지른 낮은 다리는 두물머리를 건너기 위한 다리이다. 우리는 저 낮은 다리를 지나 광주천으로 향한다.

 

두물머리 합수부

 

낮은 데크 다리를 건너고

 

낮은 데크 다리에서 바라 본 합수지점과 제2광천교

 

낮은 다리에서 바라본 광운교 방향! 이 물줄기는 일곡지구에서 발원하여 설죽로를 따라 흘러온 천이다. 광운교를 지나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나온다. 

 

광주폴리2 공간

 

광주천으로 돌아와서

 

광주폴리스2 조형물 앞에서 잠시 쉬었다 

 

단체 기념 한 장 담고 다시 트레킹길 시작

 

이곳은 임동과 광천동 사이로 구 도심이 낙후되어 새로운 아파트 재개발이 한창이다.

 

광천철교(한국아델리움2단지)을 지나고

 

광천 1교를 지난다.

 

천변도로 밑으로 나 있는 천변길을 따라 걷는다.

 

임동 천변도로 밑을 지난다. 천변도로 옆에는 일신방직과 전남방직 부지가 있다.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은 1970년대 광주 중심 산업이였고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해  시골 동생들 공부가르치고 부모님 부양한다고 취직해 허리가 휘도록 낮에는 열심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공부한 우리시대 누나들의 한과 설러움 그리고 애틋한 사랑이 뭍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야학을 가르치며 전두환 일당의 잔악무도한 광주학살에 항거하여 민주와 정의 횟불을 들고 광주민주화운동에 선봉에 선 윤한봉 열사가 자취하며 야학을 한 곳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산업환경이 바뀌고 이곳 방직 산업이 사양 산업이 되어 광주의 후미진 곳으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민선 8기 강기정 시장이 들어오면서 이곳을 새로운 복합 쇼핑물과 재개발로 광주의 중심이 되도록 개발하려는 청사진을 갖고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사업이 완성되면 근사할 것 같다. 기대가 된다.

 

광천1교가 눈에 들어온다. 광천1교를 지나서

 

양동교가 반긴다.

 

양동교를 지나고

 

양유교가 보인다. 양유교는 양동복개 상가에 맞붙어 있어 마치 양동복개상가인 줄 안다.

 

양동복개 상가 터널을 지난다. 언젠가 이곳도 철거를 해서 광주천이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양동시장을 지나면서

 

송정홍어집을 소개한다. 양동에서 가장 맛있고 싱싱한 홍어를 파는 곳이다.

주인은 백두님인데 대한민국 산꾼 중에 두번째 가라하면 서러운 분이다. 산에 대한 조회가 남다르다. 

사모님이 무쳐준 홍어회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모든 산꾼들이 맛있다고 평가를 내린 광주명품 홍어회이다.

혹여 집안 대소사나 행사가 있을 때 홍어가 필요한 사람은 이곳 송정 홍어집에서 홍어를 사시기 바란다. 틀림없다.

 

태평교는 양동복개상가 한 쪽 끝이다.

 

점심을 이곳 임동 재개발 지구 안에 있는 뼛다귀회장국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단체 매식을 했다. 이제부터 오후 광주천 트레킹이다.  여기서 부터는 광주시 중심가를 지난다.

 

다시 오후 트레킹을 시작한다.

 

천교를 지난다.

 

천교 이름표

 

광주천에는 수양버들이 무성하다. 수양버들은 2월 초에 푸른 잎을 피우면서 봄을 알린다. 물가의 수양버들 축 늘어진 가지에 사연이 많다. 가슴 시린 애환과 사랑의 간절함, 이별의 아픔을 노래할 때 사람들은 수양버들을 소재로 많이 노래했다. 수양 가지 흐드러짐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나 보다.

 

이 추운 겨울 한가운데 비둘기 들이 집단으로 먹이 활동을 한다. 신기하다.  광주천변  저 초록  잡초들 사이에 먹이들이 많나 보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광주대교

 

광주대교를 지나면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이 나온다.

 

저기보이는 다리가 광주교이며 천변에 정자 하나가 있는데  석서정이다.

 

석서정

 

석서정

석서정은 고려 우왕 때 광주목사 김상이 광주천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지금의 금교 근처에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석서정이라 명하고 양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고려 때 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은 석서정 기문에서 "석서정은 매년 한 여름에 장마가 들면 급류가 싸납게 쏠려 잦은 범람으로 가옥을 파괴하고 전답을 깍아가서 광주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광주천의 수세를 줄이기 위해 분수원(지금의 동구 지원동 원지교 일대)을 두어 물의 형세를 감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석축으로 읍성을 쌓고 물결을 조금 서쪽으로 돌렸다가 북쪽으로 흐르게 하니 지세가 북쪽으로 조금 나려간지라 물이 천천히 흐르고 백성의 피해를 막았다. 물의 옛길에 정자를 짓고 그 한 중간을 거점으로 해서 보의 물을 양쪽으로 흐르게 하니 사면으로 정자가 두른 것이 마치 벽수의 모양처럼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정자의 전후에 흙을 모아 작은 섬을 만들어 두 곳에 모두 꽃나무를 심고 부교를 놓아 출입하게 하니, 그 가운데에 앉아 휘파람을 불며 마치 바다에서 뗏목을 타고 앉아 섬들이 안개와 파도 사이로 출몰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즐겁다." 라고 적고 있어 수중의 정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서란 이름은 '돌을 깍아 만든 물소' 즉, 돌물소라는 뜻으로 치수로 유명했던 고대 중국의 이빙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돌은 산의 뼈임으로 물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고 믿음으로서 광주사람들의 치수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이곳은 광주공원과 사직공원이 있는 구역으로 광주공원에 있는 관덕정, 사직공원에 있는 양파정, 광주천변의 희경루와 석서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오늘은 천변에 있는 석서정과 희경루를 살펴 보고자 한다.

 

광주교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을 다시 담아 본다.

 

이런 창의적인 공간이 있어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기회가 많이 오길 바란다. 젊은 세대들은 광주의 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창업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 할 수 있는 IT 세대들이다. 광주의 젊은 세대들이 가장 광주다운 남도의 멋으로 세계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광주공원 입구이다. 광주공원은 일제가 만든 공원으로 공원에 신사을 짓고 저기 보이는 계단을 올라 일본 천왕 신사 참배를 강요한 곳이다. 지금은 신사 자리에 충혼탑을 세워 국가 기념일에 기관장님들이 오셔서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들이는 곳으로 바뀌었다. 광주에 심장이기도 하다.

 

광주교는 원형의 조형물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빛고을 마루 표지석

 

광주교를 지나 온 이유는 희경루를 들러 보기 위해서다.

 

 

◎ 희경루

 

희경루는 1450년부터 1451년(문종 1년) 무진군수 안철석이 옛 공북루 터에 건립했던 누각이다.

때마침 무진군이 광주목으로 승격, 복호됨에 따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함께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는 뜻의 ‘희경(喜慶)’이라 이름 지어진 호남 대표 누정이다. 당시 신숙주는 ‘동방(東方)에서 제일가는 루(樓)’라 칭했다.

 

 

광주시는 지난 2009년 ‘희경루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희경루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는 데 노력했다.

건립의 타당성과 의미를 현재에 되살려 건축하는 ‘중건(重建, Recreate)’으로 방향을 정하고 사업을 추진했으며 철저한 고증과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희경루 중건 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희경루의 원래 위치가 충장우체국 일원으로 파악됐으나 지리적 환경과 접근성, 사업 가능성 등을 고려해 광주공원에 중건하기로 결정했다.

 

희경루 현판(정면은 한자현판)

 

희경루 현판(뒷면은 한글현판, 강기정시장이 썼다.)

 

희경루의 외관은 동국대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9호 ‘희경루 방회도(榜會圖)’를 바탕으로 당시의 모습을 고증했다. 희경루 정면 현판은 1451년 광주목 복호와 희경루 낙성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 문종공순대왕실록’에서 집자했으며 후면 현판은 필문 이선제 선생의 후손인 이남진 서예가의 지도를 받아 강기정 광주시장이 썼다.

 

희경루에 대하여 문화해설을 해 주신 박미경 해설사님이시다. 정말 박학다식하고 친절한 명품해설이다. 감동이다.

 

열심히 문화해설을 듣고 있는 대원들도 대견하다.

 

희경루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근대역사의 산실인 양림동을 잇는 문화명소로 앞으로 새로운 문화향유의 공간으로 관광객에게는 예향광주의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

 

 

 

◎ 광주민주화운동 류동운 열사 추모비

 

광주민주화운동 류동운 열사 추모비

 

이 추모비는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5월 27일 산화하신 류동운 열사의 민주화 염원을 기리고자 그가 청념시절을 보내고 부친 류연창 목사께서 시무 하시던 신광교회터에 이 추모비를 세웁니다.

 

 

류동운 열사 추모비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그의 민주화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며 묵념을 올린다.

 

◎ 옛광주적십자병원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

 

광주적십자병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사적지이다. 전두환 일당이 민주화를 바라는 광주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진압을 가하면서 부상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부상자 치료에 급하게 피가 필요할 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섰고 수 많은 시민이 헌혈에 동참한 나눔과 헌신의 광주공동체를 만든 현장이였다. 지금은 병원 경영상 적자로 어느 개인에게 팔려서 병원기능은 사라졌지만 5.18 광주민주화 사적지로써의 의미가 큰 곳이기에 잘 보존하여 광주정신을 되새기는 곳이 되길 바란다.  

 

다시 광주천으로 돌아와서

 

오리때가 한가로이 물살을 가른다. 먹이가 풍성한가 보다. 광주천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광주천을 따라 오손 도손 걷다보니

 

양림교를 지난다.

 

남광주 아이파크 아파트가 보이고

 

학강교가 눈앞이다.

 

학강교를 지나서 남광주고가도로가 다가온다.

 

남광주고가도와 남광주철길

 

◎ 남광주철길

호남선이 서광주역을 거쳐 송정역으로 옮겨지고 남광주역을 거쳐 광주역으로 가던 철길은 푸른길로 재 탄생하여 시민들의 산책길이 되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철길이 저기 보이는 남광주 철길 다리이다. 광주천을 가로지른 철길을 남겨 보존하고 있어 다행이다. 남광주역은 순천 고흥 보성 나주 화순 등 남도민들이 생산한 농수산물을 싣고 기차로 광주로 들어오는 관문이였다. 

 

남광주시장

 

한때는 참으로 융성한 물류 중심지였다. 지금도 그 명백이 남아서 농수산물의 유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도 아낙들이 이른 새벽 기타를 타고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생산물을 팔고 이곳 상인들은 시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던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왁짝지껄 사람냄새가 나는 풍경이 늘상이던 그 때가 그립다. 학창시절 이곳 남광주에서 막걸리 추억이 많았다.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남광교 명표

 

이제 무등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건너서

 

맞은 편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이 보이고

 

◎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

백범 김구선생이 일제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중 이곳 백화마을에서 몸을 피신하고 있을 때 이곳 주민들의 빈한한 생활상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독립자금을 풀어 이 곳의 주민들의 궁휼함을 달래준 적이 있다.  백범 김구선생이 광주에 기거하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여 백범기념회(회장 안종일 초대광주광역시교육감)에서 뜻 있는 분들의 유지를 모아 이곳 백화마을에 백범기념관을 세우고 백범 정신과 그의 일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기록들을 전시하고 교육하고 있다. 뜻 깊은 곳이다.

  

치마봉을 담았다. 치마봉에는 한쪽에는 숭의과학기술고등학교와 숭의중이 있으며

 

또 한 쪽엔 동일미래과학고등학교와 설월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원지교 부근이다. 원지교는 화순에서 광주로 들어 올 때 건너는 다리이다.  

 

원지교 부근에서 두 줄기 물줄기가 만난다. 무등산 증심지구에서 내려온 증심천 물줄기와 용추계곡에서 내려온 광주천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류한다. 영포인트 무등산 1187트레킹이라면 여기서 화순 방향의 용추폭포 계곡 물줄기인 광주천을 따라 걷는 것이 옳은 일이다. 

 

용추계곡에서 흘러내려운 광주천 물줄기이다. 

 

학동 재개발 기념 조형물

 

증심지구에서 흘러내려 온 증심천 물줄기

 

우리는 노무현길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광주시민과 약속을 지키려고 무등을 오른 길이 노무현길이다. 평화 민주 인권 통일의 노무현 정신을 세기며 노무현길을 걷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수자타를 거쳐 노무현길을 따라 무등산 정상으로 오르려고 증심지구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증심천변 옛 주택 벽면을 미술작품으로 채우고 머굴마을이라 했다.

 

증심천을 걷다보면 유리 빛 예술 작품을 만난다. 

 

 

증심천을 따라 오른다.

 

행복재활원이다. 이곳의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홍림교이다.  홍림교는 일명 '배고픈 다리' 라고도 한다.

 

 

홍림교에는 5.18 민중항쟁사적 13 배고픈 다리 일대 표지가 있다.

 

표지석을 지난다.

 

'5.18 민중항쟁 사적 13 배고픈 다리 일대' 표지석

 

삼애회관이다. 삼애회관은 어려운 아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삼애정신을 제창하고 한국전쟁 후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무등산 증심지구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돌 본 광주 기독교의 창시자이며 고아들의 아버지 고 최흥종 목사의 정성이 깃들어 세워진 곳이다.  고 최흥종 목사의 삼애 정신을 우리 광주시민은 다시금 한번씩 새겨 봐야 한다.

 

삼애회관은 우리들의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한 곳이다. 누구든 뜻이 있으면 이곳에 들려 감사와 기부를 하길 바란다.

 

차생원 옆을 지난다.

차생원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선생이 연진회를 만들고 연진회미술원에서 제자들을 기르면서  한국화의 대를 이어  전통 남종화 정신과 그 기법의 철저히 계승하여 그 제자들에게 교육 및 전수를 하는 동안 손수 무등산 춘설차를 길러 차로 만들어 대접하던 곳이다. 

 

연진회미술원 버스 정류장 너머 제2순환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한국제다는 의재 허백련 후손들이 선생의 전통을 이어 받아 무등산 녹차인 춘설차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의재 허백련 선생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몇 안되는 광주의 의인이다. 무등산 증심사 지구에는 고아들의 아버지 고 최흥종 목사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선생의 삼애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무등산을 오른 자는 이곳을 지날 때 이 두분을 꼭 기리고 그의 숭고한 봉사 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박애정신을 생각하며 걷길 바란다.  

 

광주광역시교육청 과학창의융합교육원이다. 나는 이곳에서 재직시절 1년을 원장으로 근무한적이 있다. 정이 가는 곳이다.

 

운림교를 지나면서 증심천을 바라본다. 증심천물은 점차 적어져서 실개천이 되고 있다.

 

운림중학교 앞 버스정류소이다.

 

마음속을 채워주는 진한 울림이 있는 운림가든이다. ㅋㅋ 얼마나 울림을 줄까? 안내는 그럴싸 한데 실제는 영 아니다. 그들만의 축제이다.

 

이제 종점을 향해 간다.

 

우재길 미술관을 지나간다.

 

우재길 작가는 광주의 유명한 비구상 작가이다. 그는 광주여상 미술교사로도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들어가 수준 높은 비구상 작품을  창작하고 세계적 화가가 되어 광주를 빛낸 인물이 되었다. 

 

종점 수자타이다. 

이곳에서 동적골을 따라 약사암 삼거리로 올라 중머리재로 향하려던 원래 코스를 노무현길로 변경하여 걷기로 했다.

 종점에 도착 시간이 여유롭다. 대원들이 이왕에 왔으니 조금 더 진행하여 증심사주차장까지 가서 마무리 하잖다. 대원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좀 더 진행한다. 

 

증심천을 따라 걷는다.

 

이 목교는 지난 시절 탐방객이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다가 떨어져서 인명사고가 난 다리이다. 그래서 지금은 철 파이프 보조를 하여 놓았지만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트레킹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제 마무리를 한다. 저 다리를 건너면 증심사 종점 버스주차장이다.

 

오늘 뜻 깊은 광주천을 걸었다. 평소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소홀이 한 시간들 속에 귀중하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마는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나마 잠시 하루를 이 소중한 추억들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였고 뜻 깊은 광주천이였다. 영산강변을 걸어보고 무등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설렌다. 다음 코스는 이곳에서 부터 무등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다. 늘 오른 길이지만 느낌은 남다를 것 같다. 다음 코스가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