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대 물줄기/영산강 트레킹

2023.11.19. 영산강 트레킹 3구간(동강대교 - 석관정 - 석관귀범 - 죽산춘효 - 죽산보 - 영모정 - 한국천연염색박물관 - 영산포 홍어시장) 21km

by 하여간하여간 2023. 11. 20.

1. 일자 : 2023.11.19.(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산행구간 : (영모정, 석관정, 영산강 제 3경 석관귀범, 버스로 이동) - 동강대교 - 금강정 - 영산강 제4경 죽산춘효 - 죽산보 - 영모정 - 한국천연염색박물관 - 영산포 홍어시장(등대), (21km)

 

◎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이 57년만에 개방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해발고도 0m에서 무등산정상 1,187m까지 무동력으로(걸어서) 걷는 트레킹으로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에서 최초로 시도한 프로그램이다.

 

 

 

4. 산행 소감

 

영산강트레킹 3구간을 걷는다. 3구간 출발지점인 동강대교까지 버스로 가는 중간에 영모정, 석관정과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났다. 날씨가 청명하다. 하늘이 맑고 높다. 트레킹 만족은 날씨에 좌우된다. 오늘은 날씨가 도와 준다. 떠오르는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날개로 구간 내내 펼쳐지는 억새와 갈대의 향연은 영산강 트레킹을 환상적으로 만들며 아름다운 풍광에 푹 빠지게 한다. 영모정, 석관정과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 죽산보와 영산강 제4경 죽산춘효 등 강변의 아름다움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는 구간이여서 한결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 좋은 트레킹 구간이다. 앙암바위에 얽힌 전설과 굽이쳐 휘어도는 영산강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이루말 할 수 없는 풍광이다. 누구든 영산강을 트레킹하고 싶거든 이 구간을 꼭 걸어보길 강추한다.

 

구석 구석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해 주신 박옥현님(노무현재단), 임진택님(나주임씨) 트레킹 길 안내와 현위치 등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명수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5. 트레킹 이모저모

 

버스로 이동하면서 먼저 들린 영모정과 석관정에 대하여 여기 먼저 소개한다.

 

 희경루방회도 (보물 제1879호)

영모정을 드려다 보고 싶은 것은 희경루방회도를 보고 싶어서다. 희경루방회도는 진본이 동국대학교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고 여기 영모정에 있는 것은 사본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이 희경루방회도를 보고 광주공원에 희경루를 재현하여 준공하였다.

 

 1567년(명종 22)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喜慶樓)에서 1546년(명종 1)의 증광시 문·무과에 합격한 동기생 5명이 만나 모임을 갖고 이를 기념하여 그린 계회도.

 

1546년 증광시의 문,무과 시험에 합격한 동기생들의 모임을 기념한 잔치를 1576년에 그린 것이다. 맨 윗면에는 전서로 '희경루방희도' 라 제목을 적고, 그 아래에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있었던 잔치를 묘사하였다. 연회장에는 참석자, 춤을 추거나 연주하는 기녀, 피리를 부는 악공, 나장과 군졸 등이 있다. 나주임씨 16세 정자공 휘 복, 자는 희인, 호는 풍암이시며, 증광시 문과에 합격하여 참석하시게 된 화도이다.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 세워진 희경루

 

◎ 영모정 

영모정은 나주 임씨의 종중 교류소이다.

 

영모정은 임붕(1486∼?)이 중종 15년(1520)에 지은 정자로 처음에는 그의 호를 따서 귀래정이라 하였으나 명종 10년(1555)에 후손이 다시 지으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또한 임붕의 손자인 조선시대 명문장가 백호 임제가 시를 짓고 사람을 사귀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2년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왼쪽 1칸은 온돌방, 오른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영모정은 비교적 오래전에 지었고 정자의 건축 규범을 보여 주고 있다.

 

영모정 편액(누구 글씨인지는 모르겠다.)

 

영모정 아래 모셔져 있는 귀래정 나주 임붕 유허비

 

 

영모정에서 바라 본 영산강

 

영모정에서 바라본 영산강

 

영모정에서 바라 본 회진 마을 앞 영산강

 

나주 임씨 문중 총무님과 회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나주 임씨 교류소인 영모정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영모정

전라남도 기념물 제112호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90번지

 

귀래정공을 위한 정자

 

귀래정공 임붕(1486~1553년)은 자는 충거, 호는 귀래정으로 문과에 급제, 벼슬이 승지를 거쳐 경주부윤에 이르고 광주목사 재임 중 작고하신 분인데 문학과 덕망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 공의 부친 참판공 휘 평께서 돌아가심에 이 자리에서 거려를 하시고 이 곳에 정자를 세울 뜻을 가졌으나 미처 이루지 못한채 돌아가시었다. 그 때 공의 제자들 중에 맏 아드님인 장수공 휘 익은 돌아가신뒤라 정자공 휘 복이 절도공 위 진, 첨지공 휘 몽과 함께 역시 이 자리에서 거려하며 3년 상기를 마친 다음 드디어 이 정자를 세웠다. 명종 11년에(1556년)의 일인데 정자 이름은 어버이를 길이 추모 한다는 의미에서 영모정이라 한 것이다. 원래 건물은 정유재란 시(1597년) 소실되었던 바 광해군 14년(1622) 중건했으며 이후 수차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매년 음력 10월 1일 이 곳에서 나주 임씨 대종중의 삭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정자는 회진 마을을 옆으로 하고 영산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기와 팔작지붕에 4가 3칸인데 서편으로 1간은 방, 나머지 2간은 대청이다. 여기는 예로부터 명승으로 이름이 알려져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았으며, 이 정자를 두고 읊은 시편들 또한 많이 전한다.

 

 

백호 임제선생 기념비

 

호남제일명 개회진

 

영모정에서 단체 인증 한장

 

영모정을 지키고 있는 보호수 팽나무

 

◎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 石串歸帆 ) - 버스로 이동

영산강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황포돛배가 영산강을 따라 돌아오는 모습을 석관귀범이라 한다.

 

석관(石串)이란 바위가 뛰어나온 돌곶을 한자어로 표현한 말이다. 동당리 석관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편이 바로 금강정이 있는 공산면 신곡리다. 조선시대에는 동당리와 강건너 신곡리를 오고가는 나루가 있었는데, 이를 '석관정 나루'라고 불렀다. 오후에 금강정을 둘러보고 지나갈 때 맞은 편 강변에서 석관정의 풍광을 바라보리라.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 표지석

 

석관귀범의 아름다운 풍광은 보지를 못했다. 조망처에 어느 몰직한 사람들이 주차를 하고 차박을 하고 있어서이다. 양해를 구했지만 막무가내이다. 젊은 친구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남을 배려하는 맘이 전혀 없이 자기 주장만하는 모습에서 슬픔을 느낀다.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물러났다. 

 

석관정 나루에서 바라본 영산강 - 다른분 블로그에서 퍼옴

 

◎ 기다리는 아낙

 

석관정 오른 길목에 기다리는 아낙 작품이다. 이별바위에서 떠나간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을 작품화한 것이다.

 

◎ 석관정

 

나주시홈페이지 사진자료

 

다시면 동당리 동백마을에 위치한 ‘석관정’(石串亭)은 조선시대 신녕 현감을 역임했던 함평 이씨 석관 이진충이 낙향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영산강 절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하는 곳으로 특히 강 쪽으로 ‘나주제일정’, ‘영산강제일경’이라는 현판이 있어 이곳이 왜 나주 12경중에서 으뜸인지 알려준다.

 

석관정 

 

석관정 옆에 있는 동백나무에 빨간 동백이 예쁘게도 피었다.

 

떠나간 님을 기리며 기다리는 여심일까? 영산강을 바라보는 동백이 유난히도 붉다.

 

그 옛날 선인들은 이곳에서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석관정에서 옛 선인이 되어 영산강을 굽어 보고 있노라니~ 

 

강 맞은편 산자락에 금강정이 있다. 금강정에서 바라본 석관정의 풍광은 영상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른다. 

 

(10) 가수진홍주 - 내사랑 석관정 - - YouTube

석관정 인증 한 장

 

◎ 이별 바위

 

수백 번은 오갔을 물길 위의 이별바위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사랑과 헤어짐의 장소였다. 이별바위는 석관정 아래쪽에 위치한 바위이다. 전쟁 때마다 영산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배로 장정들을 실어가면서 이곳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배에 몸을 싣고 떠나는 남편, 아들, 임을 보며 연인과 가족들은 강변을 따라 왔다. 그런데 이곳 이별바위에서 부터는 강폭이 크게  넓어져 더 이상 건너지 못하고 이별하거나 강물에 투신했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아마도 함평이나 나주 다시 등지에서 이곳까지 왔던 사람들이 고막원천이 합수되는 이곳의 강폭이 넓어져 더 이상 건널 수가 없었나 보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님이 배에 실려 영산강을 따라 바다로 떠날 때 이 이별 바위에서 목놓아 부르고 흐느끼다가 돌아서곤 했을 것이다. 한 없이 맘이 아프고 쓰라린 곳이다.   

 

이기열 고문님과 함께

 

이제 본격적으로 영산강 트레킹 3구간 트레킹을 시작한다.

 

◎ 출발점 동강대교 앞에 섰다.

 

출발 단체 인증

 

동강대교 밑으로 자전거 길을 따라 걷는다.

 

저기 뾰족한 산(150m) 왼쪽으로 23번 지방도로를 따라 흘러 내려온 함평천이 영산강과 합수되는 지점이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합수점을 보지 못하고 가지만 함평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중요한 지점이다.

 

함평천은 영광 불갑산 용천사에서 발원하여 함평일대의 물줄기를 품어 흐르면서 무안읍 감방산에서 발원한 무안천과 만나 영산강 본류와 만난다. 무안과 함평의 물줄기를 담아서 영산강으로 흐르는 천이다. 나로서는 참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나중을 기약한다.

 

날씨는 청명하고 하늘은 파란고 햇살은 따스하다. 억새와 갈대가 힘차게 휘날리는 기분 좋은 출발이다.

 

기분 좋은 출발 축하해요. 안전하게 즐겁게 트레킹 하세요.

 

강변이 짙다. 개절을 모르고 피어난 버드나무 푸르름으로 강변 숲은 무성히도 우거졌다. 생명이 살아 숨쉬다. 어쩌면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자연을 보호하는 것인지 모른다.

 

자연(自然) 이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 저절로 이루어지는 도의 세계다.  

 

자연은 가만히 두면 스스로 일어나 저절로 이루어지며 도를 완성한다. 인위적인 것과 반대이다. 사람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완성하는 세계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상응하는 댓가를 치룬다.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좋은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은 그 만큼 댓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인간이나 모든 생명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토종 닭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무슨 종류의 닭일까? 

 

강변길을 함께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청명한 파란 하늘 늦가을 햇살은 걷는이로 하여금 따사로운 기운을 복둗운다.

 

 

동강면 운산리 쉼터를 지난다.

 

유난히 은빛 찬란한 억새와 대화를~~ 김명수회장님 무슨 대화를 하셨나요?

 

나도 따라서 한장

 

 

넓게 펼쳐지는 영산강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강변에서 사진 놀이 삼매경

 

 

 

 

 

잠시 쉬어간다.

 

 

◎금강정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봉곡마을에 위치한 금강정은 광산 김씨인 봉곡 김시중의 아들 김상수가 부친의 노년 휴식을 위하여 영산강변에 건립한 정자이다. 규모는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형 구조이다. 건립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조선후기 즉, 19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이민선의 기문고 임철주의 상량문 그리고 14수의 원영시가 전한다.

 

금강정은 공사중이다. 금강정에서 강 맞은편 석관정을 바라보는 풍광이 제일인데 아쉽다.

 

 

 

◎ 금강정 아래 영산강변에서 바라 본 석관정과 이별바위

 

금강정 아래 나루에서 바라 본 영산강 상류쪽 풍광

 

금강정 아래 나루에서 바라 본 석관정과 이별바위 그리고 고막원천 합수지점

 

다시 트레킹 길로 돌아와 바라 본 강변 억새 너머 석관정 

 

이번 구간은 영산강이 유난히 휘어도는 곡강이 많아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여름 홍수가 졌을 때 아마도 저기 쓰레기 덤이 있는 곳까지 물이 찼나 보다. 영산강이 범람할 때 어떤 모습일까?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본 트레킹 길

 

나주영상테마파크 아래를 지난다. 절벽위에 주몽 촬영 셋트장을 나주시에서 영상테마파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오른쪽 수학산(116.8m)에서 구수봉(150m)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이 영산강 물길을 막어 영산강은 굽이쳐 돌아 흐른다.

 

넓은 강변엔 휴식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다. 가족들과 한번쯤 이런곳에서 한가한 쉼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쉼터가 많다. 목가적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 될까?  운치 있을 것 같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진입로 입구

 

바라본 강변 맞은편  풍광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여유로움

 

죽산보가 보이고

 

강변 맞은편에 장춘정이 있다. 들리지는 못했지만 혹시나 강변 맞은편으로 트레킹을 한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  

 

◎ 장춘정

 

장춘정은 나주시 다시면 화동마을에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제201호)인 나주 장춘정(羅州 藏春亭)은 1561년(명종 16)에 고흥유씨 유충정(柳忠貞, 1509∼1574)이 세웠다. 1818년(순조 18)에 중수를 거쳐 1930년에 다시 중건한 건물로 옛 모습을 잘 보전하고 있다. 장춘정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장절(四時長節)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는 정자’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춘정

 

장춘정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기문(記文)인 <장춘정기(藏春亭記)>(1561), 송순(宋純, 1493∼1583), 오상(吳祥, 1512∼1573), 박순(朴淳, 1523∼1589), 임제(林悌, 1549∼1587), 안위(安瑋, 1491∼1563), 임억령(林億齡, 1496∼1568) 등의 <장춘정제영(藏春亭題詠)>이 걸려 있다. 유충정은 1534년(중종 29) 무과에 급제해 부안·강진현감, 김해·장흥·온성부사 등 수령을 지낸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강상(江上)에 장춘정을 지었다.

 

 

지나온 영산강변 풍광

 

나주시 왕곡면과 공산면 경계표시를 지난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기 아스라이 죽산보가 보인다. 갑자기 하늘이 확 열린다. 드 넓은 나주 평야가 한 눈에 들어 온다.

 

하늘은 맑고 드넓은 나주 평야를 가로 지른 영산강을 따라 걷는다.

 

죽산보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영산강이 범람할 때 물높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조절 하천이 있다. 

 

차츰 다가오는 죽산보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방향 풍광

 

◎ 영산강 제4경 죽산춘효

 

드디어 죽산보에 도착했다. 죽산보에서 바라본 영산강 풍광을 죽산춘효라고 한다.  영산강 제4경이다. 

 

죽산춘효란 죽산에서 바라본 영산강의 봄날 새벽 풍광을 말한다. 봄날 아침 안개가 피어오른 영산강의 풍광은 몽한적이고 환상적일 것 같다. 

 

셀카 한장

 

나주 지인 나종경님과 함께

 

죽산춘효에서 한 폼 ㅋㅋ 

 

점심을 먹고 오후 출발 단체 인증

 

이현종교장샘과 함께

 

이현종 교장샘은 늘 자전거로 이곳을 들린단다. 자전거 인증도 하시면서~ 건강하시다. 나도 저렇게 건강했으면 좋겠다. 늘 자문해주시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교장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 죽산보 (竹山洑)

죽산보(竹山洑)는 나주평야 일대 농업용수 확보 등을 위해 전체 공사비 1635억원 가량을 투입해 2년만인 2011년 10월에 완공했다. 보 길이는 184m, 보의 교각 상부에는 공도교(公道橋)와 관리용 전망대가 있다. 4대강 보(洑) 중에서 유일하게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통선문(通船門)이 있다.

 

 

죽산보 앞에서

 

죽산보를 지난다. 4대강 사업에 대하여 옳거니 그르거니 말이 많았다. 환경을 파괴한다. 강물을 관리해야 한다. 등 서로 다른 시각에서 찬반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4대강 사업은 완성되었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영산강 죽산보도 완성되었다가 해체가 결정 되었다가 다시 해체가 취소되었다. 정권에 따라 국가의 큰 결정이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 된 일이다. 국가적으로 물 관리는 필요하지만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수준은 더 큰 재앙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추진해야할 사업들이다. 이왕 설치된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는 더 장기적으로 관찰하여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자연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대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정 다감 트레킹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죽산보를 지나는 사이에 빛내림이 시작된다. 이순간을 놓치지 말아야지~

 

죽산보에서 바라본 영산강변 억새 군락! 장관이다.

 

 

 

 

죽산교부터 자전거길과 헤어져 죽산교를 지나 이제는 지금까지 걸었던 강변의 맞은편 강변길을 걷는다. 다시면 쪽이다. 한국천연염색박물관과 영모정을 거쳐 지나고 구진포와 억새길을 걷고자 해서이다.

 

죽산보가 있는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는 풍수지리상 와우(臥牛)형국이라고 전하나 이곳 출신 금호그룹의 창업자 박인천(朴仁天)은 ‘거북지형(地形)’이라고 했다. 즉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형태로 소요정이 그 머리이며, 돌캐산 다섯 봉우리가 거북의 알이다. 동산의 창고 터는 일명 ‘사석바우’라 한다. 죽산리는 죽지(竹池), 산두(山頭), 조등(鳥嶝), 절구(杵九), 화동(化洞) 등 다섯 마을로 구성돼 있다.

 

지나온 강변을 돌아보며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을 향해 가면서 -뒷걸음 대원님들 그저 즐겁다.

 

문평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나주 다시 문평 방향 문평천

 

하늘금엔 신걸산(371.1m)이다. 저기 신걸산 아래 다시면 소제지가 아련히 보인다. 금호그룹 창업자인 박인천씨는 고향 다시가 면사무소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버스정류장을 세웠다. 고향사랑이 지극하신 분이다. 

 

유장하게 펼쳐지는 끝도 없는 영산강변 억새 향연

 

억새밭 사이로 데크길이 나 있다. 억새 숲 사이로 숨어보자.

 

갈대와 함께

 

외래종 갈대인가? 나주에서 일부러 길가에 심었다. 외래종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토종을 잡아 먹는다. 생태변화가 얼어나면 어쩌나?

  

한국천연염색박물관 입구에 은빛 찬연한 억새가 춤을 춘다.

 

◎ 한국천연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부터 호남의 웅도거읍(雄都巨邑)으로 역사문화의 중심지이다. 지리적으로 영산강 중하류가 나주지역의 중심을 관통하는 평야지대로서 각종 물산이 풍부하여 생활의 터전을 형성할 수 있는 천혜의 지역이다.

 

특히 영산강 유역을 배경으로 천연염색과 직물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는데, 지형적 자연 환경이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여 섞이는 곳으로 쪽 재배의 유리한 환경이 자연적으로 형성돼 천연염색 발달의 최적지였다. 이로 인해 천연염색의 전통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 115호 염색장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은 천연염색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염색 산업의 진흥과 대중화를 통해 국민들의 보다 나은 문화적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더불어 천연염색박물관은 나주시에서 출연한 공립박물관으로 다양한 상품 개발과 전시, 교육, 체험, 대중문화 활동을 통하여 관광자원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트레킹 길은 영모정을 거쳐 가는데 이미 앞에서 자세히 언급하였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 구진포 나루

 

구진포 나루는 한 때 민물장어로 유명한 곳이다. 장어탕이나 장어구이 음식점이 즐비하였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한 두 식당에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예전같지가 않다.  영산강하구둑이 만들어지기전에는 이곳은 바닷물이 들어 왔던 곳으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민물장어 서식지로 적지였다. 

 

 

구진포 나루터에서 대원님들과 함께

 

 

 

◎ 앙암바위

앙암 바위는 구진포 나루 맞은편에 있다.

 

영산강 황포돛배를 타거나 포구 쪽으로 걷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56m높이의 큰 바위 절벽이 보이는데 이 바위가 앙암바위다. 이 바위에는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는 아랑사와 아비사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온다. 바위 절벽을 유심히 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눈에 잘 보이는 사람은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앙암바위 - 다른분 블로그에서 퍼옴

 

그 경관이 아름답고 바위 아래 강물은 소용돌이 치면서 깊은 소(沼)를 만든다. 사람들은 이 앙암바위 아래에는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 바위는 영산강의 절경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물에 영산강을 다니던 많은 배들이 침몰한 곳이다. 해서 예부터 이곳은 제주도나 중국으로 가는 배들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용진단에서 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곳은 백제 시절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가 맴돌고 있는 곳이다.

 

다른분 블러그 퍼옴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앙암바위의 허리쯤에 진부촌이 있고, 그 맞은편에 택촌이 있다.  하루는 택촌에 사는 아랑사라는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는데, 강 건너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진부촌에 사는 아비사라는 처녀였다. 그녀는 홀아버지가 병들어 있는데 물고기를 잡수시고 싶다 해 강가에 나왔으나 물고기를 잡을 길이 막막해 울고 있다 해 아랑사는 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처녀에게 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은 밤마다 앙암바위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곤 했는데, 진부촌 젊은이들이 이를 시기해 아랑사를 속여 앙암바위 아래로 떨어뜨려 그만 죽이고 말았다.

 

앙암바위 남녀 모습

 

그 후 아비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얼굴이 수심이 가득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비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쁨이 넘쳐나는 걸 보고 이상히 여긴 마을 젊은이들이 처녀의 뒤를 밟아보니 강에서 바위를 타고 올라온 커다란 구렁이와 아비사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을 젊은이들은 이를 나쁜 징조라 여겨 그들을 바위 아래로 굴려 버렸다. 그 일이 있고부터 이상하게도 서로 얽힌 두 마리의 구렁이가 밤마다 진부촌에 나타났고, 진부촌 젊은이들은 시름시름 앓다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노인들이 협의해 무당들을 불러 음력 8월에 씻김굿을 해 아비사와 아랑사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한 뒤부터는 화를 면했다고. 아랑사와 아비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깎아지른 암벽을 소재로 해 지금도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 석양 노을 햇살에 나부끼는 억새 향연

 

햇살은 서서히 기울고

 

억새밭 사이로 강변의 운치를 바라보며 걷는다. 

 

기념도 하고

 

 

기우는 햇살에 억새의 당당함을 담았다. 구슬픈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억새 너울

 

이 가을 마지막을 휘어 잡고 흐느끼고 있는가?

 

억새밭에서

 

 

◎ 사진을 담지는 못했지만 맞은편 강변으로 영암 활성산 자락에서 발원한 금천이 나주 다도면 덕룡산 기슭에서 발원한 만포천을 만나 영산강변으로 흘러 들어 온다. 

 

◎ 영산포 등대와 영산포 황포돛배 탑승지

 

영산포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 한장

 

◎ 영산포 등대

1915년 영산강의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한국의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 측정과 등대의 기능을 겸했으며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영산포 선창은 일제 강점기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의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영산포 등대는 흰색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아파트 3층 정도로 다른 등대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며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산 홍어와 추자 멸치젓 배가 왕래해 지금도 선창가에는 어물전들이 남아서 그 옛날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며, 밤이 되면 등대는 불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산포 등대 바로 앞 선착장에는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장이 있고, 주변에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영산포 황포돛배 탑승지이다. 옛날 이곳 영산포에서 제주로 떠나는 황포돛배가 출항을 하였다. 정약용의 형님이시고 '자산어보'를 쓴 실학자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향을 갈 때도 이곳 영산포에서 흑산도 홍어배를 타고 떠났다.  그 때는 지금보다 강폭이 3~5배는 넓었을 것이라고 한다. 저 멀리 하늘금 가야산(190.5m) 기슭에 붉은 노을 속 지친 해가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오늘 영산강트레킹 3구간을 걸었다. 호남 들녁에 넉넉한 젓줄을 공급하고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걷는 행복한 길였다. 나주 임씨 종중 영모정과  석관정 그리고 석관귀범, 죽산보와 죽산춘효, 구진포와 앙암바위에 얽힌 사랑이야기 그리고 걷는 내내 강변으로 넓게 핀 억새와 갈대의 향연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고 힐링이다. 영산강의 아름다움을 원없이 맛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