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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물줄기/영산강 트레킹

2023.10.29. 영산강 트레킹 1구간(영산강 하구언 - 영산강 제1경 - 상사바위 - 무안회산백련지 825번 지방도 끝자락) 22.3km

by 하여간하여간 2023. 10. 30.

1. 일자 : 2023.10.29.(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산행구간 : 목포 영산강 하구언(0m) - 남창교 - 영산강 제1경(영산석조) - 무영대교 - 상사바위 - 무안 회산 백련지 825번 지방도 끝자락

 

이번에 광주무등산이 57년만에 정상인 인왕봉이 상시 개방되었다. 강기정 광주시장의 확고한 의사 결정의 결과이다. 이에 즈음하여 광주지오트레킹에서 의미 있고 다부진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참으로 의미가 있는 트레킹이다. 해발 고도 0m인 목포 영산강 하구언에서 무등산 정상 1,187m 까지 도보로 걷는 프로젝트다. 

 

 

4. 산행 소감

 

새로운 시작을 한다.

영산강을 따라 걷고자 한다.

젊은 날 우연히 산을 알고 산에 미쳐 살아온 세월이 30년이다.

산을 오를 때 '왜 산에 오르냐?'고 물었다. '물길을 보려 산을 오른다' 라고 대답했다.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물은 생명이며, 우주 만물의 생명 탄생의 근원이다. 물길을 따라 모여서 우리네는 삶의 터전을 일군다. 물길을 따라 민초들의 숱한 사연이 도도하게 흘러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그런 물길을 걷고 싶었다.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우리네 삶의 모습과 선조들의 숱한 역사를 만나고 싶었다. 우선 영산강부터 시작한다. 호남 백성들의 진솔한 삶의 현장을 두 발로 체험해 보고 싶다. 이런 의미를 담고 걷는 오늘은 무척 설렌다.

 

◎ 영산강

전남 담양군-장성군-광주광역시-나주시-함평군-무안군-영암군-목포시 등을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발원지는 오랫동안 담양군 용면 가막골에 있는 용소(龍沼)라고 알려져 왔으나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정부 발행의 <한국하천일람>에는 수문학적 관점에서 영산강 본류보다 더 길다고 측량된 제1지류 황룡강의 발원지인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屛風山 : 822m) 북쪽 계곡을 공식적인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역사문화적, 인문지리적으로는 수문학적 발원지와 구분하여 용소를 영산강의 시원지(始源池)로 보는 견해가 많다.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담양 용추봉 아래 가막골 용소에서 발원하여  담양을 거쳐 흐르다 용천, 수북천, 오례천, 증암천, 풍영정천, 광주천, 황룡강, 지석천, 만봉천, 문평천, 고막원천, 함평천, 삼포천, 영암천, 남창천 등 호남 각지에서 흐르는 지류들을 흡수하여 149.6km 긴 여정으로 남도의 젓줄이 되어 황금 들녁을 적시고 목포를 거쳐 서해로 흐른다.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오늘 걷는 영산강 1구간에는 후고구려 왕건이 후백제 견휜과 싸움에서 이기고 고려를 건국하는 계기를 마련한 덕진포 해전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영산강의 옛 이름은 통일신라 때 나주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었기 때문에 금천(錦川)·금강(錦江)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錦江津)이라 했다. 고려 때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여 영산포(榮山浦)라는 땅 이름이 생겼으며, 조선초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작가분의 사진을 퍼옴

 

5. 트레킹 이모저모

 

출발 전 단체 인증

 

영산강 하구언에서 시작한다.

 

담양 용소 발원지 기점 149.6km 거리다.

 

영산호 카누경기장

 

2023년 전국체육대회 카누경기장

 

 

목포시 자전거 터미널

 

출발지인 부근 목포 제일풍경채 1단지 아파트가 하늘 아래 선명하고

 

영산강 기점 목포시 자전거 터미널을 지난다.

4대 강 사업의 일환으로 4대 강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4대 강변 자전거 길을 이용하여 자전거로 하루에 담양 용소에서 이곳 목포시 자전거 터미널까지 영산강을 끼고 달린다.

나는 이길을 걸어서 무등산 정상까지 가고 싶고 또 담양 용소까지 걷고 싶다.

 

자전거 길 종주 영산강하구둑 인증 센터

 

영산강 자전거길 안내도

 

역사를 품고 생명을 담아 미래로 가는 영산강

 

자전거 터미널 입구에서 인증

 

영산강 하구언을 뒤로 하고 영산강변 자전길을 따라 걷는다.

 

영산강 하구언이 바다 같이 넓다. 삼호방조제가 생기고 영산강 하구언이 담수호가 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밀려 올 때, 영산강 하구는 지금보다 3배는 더 넓었다고 한다.

 

돌아본 목포 부주산(158.1m) 목포의 신개발지역이다.

 

목포는 한참 개발 중이다. 전남도청이 옮겨지고 무안군 삼향면 남악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저기 살포시 보이는 봉우리가 오룡산(227.9m) 이다. 다섯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오룡산이다. 전남도청은 저 오룡산 아래에 터를 잡았다.

 

영산강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남도의 하늘을 날아 서해로 향하는 모습이다. 전남도청 뒤 오룡산은 용의 뿔에 해당된다.(내 생각) 

 

이곳 무안군 삼향면과 일로면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 영산강에 안개가 끼면 용이 꿈틀거리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일까? 

 

억새와 갈대가 아름답게 어울러진 영산강 하구언의 풍광

 

함께 걷는 대원들

 

목포와 무안군의 경계를 지난다. 자전거로 달리고 맨발로도 달리고 트레킹으로 걷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무안군 삼향면이다. 전남도청은 무안군 삼향면에 있다.

 

새로운 기운이 꿈틀거린 시가지에 타운하우스가 이채롭다.

 

오룡 택지개발 구역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새 아파트 택지와 연결하는 다리 공사중이다.

 

남창천을 건너기 위하여 남창대교를 지난다. 

 

남창대교 앞에서

 

남창대교

 

남창대교에서 영산강 방향으로 바라본 남창천의 모습

 

남창천 남창대교의 현재 위치

 

현 위치에서 바라 본 남창천 : 남악신도시와 오룡지구 사이를 흐른다.

 

오룡지구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

 

남창대교를 지나 다시 영산강변 방향으로 걷는다. 저기 보이는 철길은 대불산단으로 연결된 영산 철교이다.

 

영산호는 한가롭다. 평온하고 잔잔한다. 하늘거린 갈대 숲 넘어 아스라이 보이는 저기 산군은 해남 화원면에 있는 올망 졸망 산군들이다.

 

출발 1시간만에 만난 쉼터/ 막걸리 한잔~ 

평화로운 영산강 하구언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왼쪽에 우뚝 선 봉우리가 해남 화원면의 일성산(336.7m)이며 오른쪽으로 하늘금에 높이 솟은 산은 운거산(318m)이다.

 

강변엔 갈대가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고 있는 가운데 가끔 억새가 흰 너울로 가랑잎 춤을 춘다. 

 

영산강 트레킹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는다. 줄곧 아스팔트 도로이다. 걷기에 무척 팍팍하다. 이럴땐 대원님들과 세상사는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이 좋다. 어떻게 걷는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만난 별나팔꽃

 

꽃잎이 앙증맞다. 별처럼 조그마한 나팔꽃이 수줍게 피었다. 

 

저 멀리 하늘금에 영암 은적산이 거대하게 다가온다.

 

강변으로 길게 자전거 길이 나있고, 강변엔 흰눈이 내린 것 처럼 억새가 흔들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사이 한쪽은 황금 들녁 풍요를 선물한다.

 

참으로 풍성하고 한가하고 아름답다.

 

억새와 갈대가 어울려 강변 특유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억새 사이로 들녁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끝없이 긴 강변길은 어쩜 트레킹의 인내를 부르기도 한다.

 

영암 하은적산의 산마루가 하늘금에 선명하고 강변 황금 들녁은 누런 황금 빛으로 물들었다. 

 

강변의 아름다움을 담아 본다. 어쩜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풍광이 연출 될 것 같다.

 

어느 사진작가님의 아침 안개가 피어오른 영상강 일출 몽한적 풍광

 

잠시 쉬어 간다. 영산강 1경이다.

 

 

◎ 영산강 제1경 영산석조 

 

 

저녁 노을에 물든 아름다운 영산강 하구언

 

서쪽에서 해가 뜨는 진귀한 풍경은

오직 영산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매력!

영산호에서 일출과  일몰 모두를 감상해 보자.

 

어느 작가님의 일몰 풍광(영산석조)

 

영산강 제1경 영산석조 표지석 앞에서 단체 인증

 

노무현재단 지인님과 한장

 

영산강 제1경 영산석조 앞에는 넓은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비박 장소로 딱이다. 이곳에서 1박하면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하는 행운을 얻길 바란다.

 

영산강 제1경 영산석조에서 추억 한장을 나기고 다시 길을 떠난다.

 

재미있는 구조물이다.

 

무안과 영암을 연결해 주는 무영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자전거 길과 헤어져서 강변을 따라 걷는다. 향후 이곳으로 자전거길을 내려고 하나보다. 공사가 한창이다.

 

아들은 서울로 떠나고 빈집은 세월을 안고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 옛날 아버지는 이곳에서 아들을 낳고 강변에서 고기를 잡아 아들을 정성껏 키웠다. 도회지로 유학 떠난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허리가 휘고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건만 자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오늘도 내 자식이 돌아올까? 강변 나루를 서성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른다. 그러다가 지쳐 또 하늘로 올랐다가 내일 또 내려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릴지 모른다. 떠난 자식이 돌아와 저 헐어져가는 집을 바로 세우고 향불을 피우고 돌아가신 아버님께 제를 올려야 이승의 인연을 버리고 훨훨 저승으로 떠날텐데! 구천을 떠도는 아버님은 언제나 훨훨 저승으로 떠나갈까?

 

남도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시골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서울로 떠난 분들이 많다. 쓰러져 가는 저 모습이 우리 고향 산천이 쓰러지는 느낌으로 마음이 무겁다.  

 

강변에 물배추가 한창이다. 싱싱한 생명을 본다. 자연의 생명력이다. 가만히 두면 저렇게 스스로 싱싱한 생명을 유지하련만~ 강이 살아 있음이다.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지 사이로 하늘이 청명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강변에 그 옛날 고기 잡이하는 나룻배가 멈춰 섰다. 강가엔 부레옥잠이 만발하고 강물은 하염없이 흐르건만 어부의 출항은 어제나 일까?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어부의 출항을 기원하며 아름다운 영산강 풍광을 담았다.

 

영산강 풍광

 

영산강 풍광

 

영산강 풍광

 

영산강을 가로지른 무영대교와 하은적산(304.2m) 하늘엔 흰구름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영암 근지산(107m)이다.

 

무영대교 아래 현위치

 

현 위치에서 잠시 쉬어 간다. 무영대교(일로~영암) 아래는 자전거 전용 도로를 새로 만들고 있다.

 

상사바위로 가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담았다.

 

강변 잔도가 설치 되기 전에는 상사바위로 가는 길은 없었다. 강변에 잔도를 놓아서 이제는 상사바위를 온전히 바라볼 수있게 되었다.

 

상사바위가 있는 절벽이다. 아름다운 풍광이다. 새로 잔도가 만들어져서 이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 볼 수 있어 행운이다.

 

아름다운 상사바위를 바라보며 대원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 상사바위 전설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우비마을에는 강변쪽으로 우뚝 서 있는 바위 한 쌍이 있다.

옛날 영산강변에 위치한 우비마을에는 황씨 80여호가 자작일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 마을 제일 부잣집인 황씨 슬하에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미모가 뛰어나고 얌전하여 소문이 자자 했다. 어느 봄날 황 낭자는 영산강변에 굴을 따러 갔다가 바위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이웃 마을인 각골에 사는 추씨 총각이 황 낭자를 구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얼마 후 추씨 총각은 황 낭자와 장례를 약속하고, 서해 바라도 조업을 나갔으나, 조업 중 큰 태풍을 만나 배가 뒤집혀 죽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황 낭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같이 강변 바위에 나가 울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구름이 덮이고, 낭자가 서 있는 바위 밑에서 섬광이 비치고 천둥이 울리더니 강물에서 큰 구렁이가 나타나 황 낭자를 감고 유유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뛰어나온 황 낭자의 부모들이 강변에 이르자 두 마리의 큰 구렁이가 물속에서 나타나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을 사람들은 두 남녀의 혼신임을 알고 혼례식을 거행하니 두 마리 구렁이는 인사를 한 후 물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 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못다 이룬 두 남녀의 사랑을 애뜻하게 여겨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르고 있다.

 

 

늘 즐겁고 활력넘친 대원들

 

1구간에서는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상사바위 앞 잔도 쉼터

 

긴 잔도와 상사바위 풍광이 어울어져 영산강의 아름다움이 더욱 익어간다.

 

추억 한장 남기고

 

 

◎ 두령량광장

 

두령량은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주룡마을과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마을을 연결하는 물길을 지칭. 

 

 

강건너 맞은 편은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마을이다.

 

◎ 주룡나루

 

대동여지도에서 '주룡진은 남쪽 50리에 있으며 영암의 경계로 통한다.' 고 되어 있는데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주룡마을과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마을을 왕래하던 나루이다.

 

 

주룡은 두령량으로도 불렸는데 두령량 물길은 동쪽의 영암 은적산과 서쪽의 무안 주룡산 상사바위 사이를 흐르는 영산강 중상류의 물들이 모두 지나가는 약 448m의 좁은 협수로로 물살이 매우 빨라 뱃길에서는 위험한 곳이다.

 

 

적벽정

 

주룡형상 구조물

 

'주룡'의 지명과 관련해서는 '용이 머물만한 곳'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왕건이 머물렀던 것에서 '용이 머문 곳' 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영산강을 용의 형상으로 보고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용호정

 

이곳 주룡나루는 1980년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면서 나루 기능이 상실되었으며 옛 나루터의 석축 흔적만이 남아 있다.

 

 

나루터 쉼터에서 점심

 

막걸리 한잔에 곁들인 점심은 꿀맛이다. 커피도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걷기를 시작한다.

 

 

 

새로 건설되고 있는 목포에서 부산까지 고속철도

 

다시 자전거 길을 만나서 다시 걷는다. 

 

억새가 흔들거린 강변을 그 옛날 아버지는 막걸리 한잔에 흥을 실어 육자배기 한곡을 목청껏 부르면서 이 길을 걸었으리라. 고단한 세월을 흐느적 거리면서~

 

무슨 기도처인가?  처음엔 식당인가? 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기도처이다.

 

메리골드가 한창이다.

 

 

황토 염색 체험장을 지나고

 

조도를 지난다.

 

현재의 위치 : 소댕이나루

 

한국농어촌공사

 

영산강 물을 끌러올려 농업용수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영암천이 흡수되는 합수점이다. 강폭이 무척이나 넓다. 

 

여기서 잠깐!

 

◎ 후백제 견휜과  후고구려 왕건과 궁예의 '덕진포 해전'의 역사 현장을 들어다 보자.

덕진포는 지금의 영암 덕진으로 영암천의 상류이다.  그 때는 영암천이 깊고 넓었을 것 같다. 백제 왕인박사가 일본에 사서 삼경 등 문명을 전할 때도 이곳 영암천 상류인 영암 구림 산대포 항구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영암천의 상류가 모두 실개천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영암벌에서 생산된 곡물을 영암천을 거처 영산강을 통해 서울로 옮기고 서해안 해산물을 육지로 보급하는 물류 중심의 항구 기능을 하는 큰 항구였을 것 같다. 그 때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을 것 같다. 서남해 영산도 사람들이 왜구의 침탈을 피해 육지쪽으로 와서 거주한 곳이 지금의 영산포이며 그 때는 바닷물이 나주 영산포까지 들어 왔을 것으로 추측한다면 영산강 줄기인 영암천 상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임을 추측하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월출산이 하늘금에 나타나고 영암천의 합수지점이 넓다.

 

나주를 중심으로 한 서남해안은 후백제의 뒷마당에 해당한다. 후백제 입장에서 이곳을 점령하지 못하면 목 뒤에 비수를 든 적을 두고 있는 셈이다. 덕진포 해전은 909년 1차, 912년 2차에 걸쳐 일어났으며 1차 해전은 견훤왕과 왕건이, 2차 해전은 견훤왕과 궁예왕이 붙은 싸움이다. 1차 덕진포 해전을 위해 견훤왕은 직접 선단(船團)을 이끌고 서해를 거쳐 영산강 내해로 진입했고 무주 성주 지훤은 육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수륙병진정책을 전개한 것이다. 

 

견훤왕은 서남해 부속도서를 먼저 점령한 후 영산강 하구를 거쳐 내해로 진입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궁예왕은 바다를 잘 아는 왕건을 나주지역으로 파견했다. 당시 왕건 가문은 송악과 그 일대 서해안의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부를 축적한 호족이었다. 왕건은 서해를 따라 내려오다 염해현(鹽海縣 지금의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 부근)에서 진용을 정비했다. 이곳에서 후백제군과 교전을 하지 않고 염탐활동을 하다 견훤왕이 중국 오월국으로 보내는 국서를 휴대한 선박을 붙잡아 마진으로 돌아갔다.

 

내친김에 궁예는 왕건에게 2500여 군사를 주어 다시 내려보냈다. 왕건은 진도와 고이도를 점령한 후 영산 내해로 진입했다. 그때 이미 후백제군은 목포(지금의 나주 영산포)와 반남현 석해포, 그리고 주력부대가 포진한 덕진포 등 3곳에 배치돼 있었다. “견훤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함들을 포진시켜 목포에서 덕진포에 이르기까지 전함이 서로 종횡으로 연결되고, 바다와 육지에 군사의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다. 그것을 보고 우리 장수들은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태조(왕건)는 ‘근심하지 말라’ 며 (중략) 급히 공격하니 적선들이 조금 퇴각하였다. 이에 바람의 흐름을 타서 불을 놓으니 적들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는 자가 태반이었다. (중략) 견훤은 작은 배(小舸)를 타고 도망했다.”(<고려사> 권1)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이다. 나중에 고려를 세운 왕건의 입장에서 정리한 고려사에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휜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승자의 입장으로 정리하였을 것이다.

 

몽탄지역에 내려오는 설화 역시 왕건 편이다. 몽탄은 지금의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 사이를 연결하는 나루다. 설화에 따르면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 영산강의 한 구간인 몽탄강(夢灘江) 부근에서 포위되었다고 한다. 그날 밤 꿈에 신이 나타나 강물이 빠졌으니 피하라고 해서 허겁지겁 도망해 살았다는 것이다. 이후 왕건은 자신을 추격하는 후백제군을 파군천(破軍川)에서 격파했다.

 

돌아본 은적산 : 강변에 갈대가 은빛 물결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1차 덕진포 해전 이후 후백제군은 석해포-성주산-자미산성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다음 해인 910년, 견훤왕은 패전의 치욕을 씻기 위해 나주성을 공격했다. 여기서 나주성은 후대에 축성된 나주읍성이 아니라 금성산성으로 추정된다. 나주성을 10여일 동안 맹렬히 공격하자 궁예는 수군을 보내 후백제군의 배후를 기습했다. 또다시 후백제군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후백제군이 열세에 몰린 것은 오다련 등 서남해 호족세력을 끌어안지 못한 게 원인이 아닐까 한다. 

 

이후에도 영산강을 둘러싼 공방전은 계속되다 912년 제2차 덕진포해전이 일어난다. 견훤왕은 나주와 서남해안을 잃음으로써 항상 뒷마당이 불안했다. 912년 다시금 군사를 일으켜 덕진포에서 격돌하게 된다. 이번에는 궁예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이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나 결국 후백제는 영산강 일대를 내주고 만다. 또 914년에는 견훤왕이 군소 호족세력을 포섭해 반기를 들도록 하자 궁예왕는 다시 왕건에게 3000명의 병력을 주어 평정케 한다. 이후 후백제는 15년이 지난 929년에야 서남해 일대를 차지했다. 1차와 2차 덕진포해전에서 사용한 후백제 배는 재목이 울창했던 부안 검모포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가을을 안고 딱딱한 자전거 길을 즐겁게 걷는다.

 

덕진포는 지금 조그만 하천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월출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이는 등 마한 백제 때 꽤 큰 항구였다고 한다. 김한남(76) 영암문화원장은 “이곳은 해남 등 남해안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며 “다리가 없어 불편했는데 통일신라 말(후백제)에 강변에서 주막을 하는 덕진이라는 여인 덕분에 다리가 놓아졌다”는 설화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1.5㎞ 떨어진 곳에 장보고가 태어난 선암마을이 있다고 알려준다.

 

현위치

 

?

 

 

 

당시에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곳 전장으로 끌려와 서로를 향해 불화살을 쏘고 수륙 나타전을 벌이면서 죽어갔을 것이다. 왜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명령에 따라 힘든 여정을 짚신에 의존해 이 길을 걸었을 후백제와 후고구려 백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전쟁을 일으킨 놈은 정말로 나쁜 놈이다. 백성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면 절대로 하지말아야 할 것이 전쟁이다.

   

 

◎ 몽탄진등표

 

 

트레킹 길은 회산 백련지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타고 걸어야 한다.

 

단봉을 앞에 두고 길고 긴 직선길을 걷는다.

 

저기 단봉을 지나 회산 백련지에서 흘러 내린 천을 가로 질러 트레킹 길은 계속 된다.

 

축사

 

현위치

 

잠시 쉬어가자

 

숨 한번 돌리고

 

무안 회산백련지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다시 길게 뻗은 트레킹 길

 

마지막 종점을 눈 앞에 두고 

 

잠시 쉬었다가 

 

현위치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 시간쯤이면 다리도 아프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 초보자도 나타난다.

 

드넓은 영산강 강변에 억새의 향연이 펼쳐졌다. 아름답다. 자연의 걸작이다. 기우는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영산강 억새 풍광

 

영산강 억새 풍광

 

영산강 억새 풍광

 

영산강 억새 풍광

 

영산강 억새 풍광

 

오늘 하루 긴 트레킹에 대한 보상일까? 억새 향연으로 마지막 종점에서 마음의 피로를 푼다.

 

825번 지방도로 끝자락 - 이곳에서 종료한다.

 

22.3km를 영산강을 따라 걸었다. 해발 0m 에서 무등산 정상(1,187m) 까지 걷고자 한 프로젝트의 첫 구간이다. 설레인 마음으로 걸었다. 월출산 천황봉에서 은적산과 영암천과 서호 들녁의 장관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저곳을 걸어야지 했는데 오늘 직접 걸어 본 것이다. 남도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바라 보며 쉼없이 걸었다. 영산강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걸었다. 이 땅의 질긴 백성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걸었다.  아름답고 수려한 영산강 줄기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단함과 기쁨 그리고 사랑과 행복 숱한 사연을 그리며 걸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지나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순간이 되는 마음으로 영산강을 걸었다. 아련하지만 아물 아물 알 듯 말 듯 그런 묘연함으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영산강을 걸었다. 행복한 하루다. 함께 걷고 사진을 담아주고 자료를 만들어 준 김명수 회장님과 임진택이사님 그 외 여러 회원님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