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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물줄기/영산강 트레킹

2023.11.12. 영산강 트레킹 2구간(지방도825번 끝자락 - 몽탄대교 - 느러지전망대 - 동강대교) 22km

by 하여간하여간 2023. 11. 13.

1. 일자 : 2023.11.11.(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산행구간 : 백련지 825번 지방도 끝자락 - 몽탄대교 - 느러지전망대 - 동강대교(22km)

 

 

 

◎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이 57년만에 개방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해발고도 0m에서 무등산정상 1,187m까지 무동력으로(걸어서) 걷는 트레킹으로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4. 산행 소감

 

영산강트레킹 2구간을 걷는다.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이 주관한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산 1,187] 프로그램에 동참한다.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여유와 풍요로움 그리고 그 젓줄을 먹고 사는 소박한 우리네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따라 걷는다. 날씨는 청명하지만 강바람은 차갑다. 11월 이맘때 강변은 매서운 바람이 분다. 섬진강도 그렇고 금강도 한강과 낙동강도 그렇다. 여름내 오곡을 살찌우느라 힘을 다 소진했나 보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걷는 강변길이 무척이나 힘들다. 수확을 마친 텅빈 들녁엔 볏짚을 모아 가축사료로 사용하려고 묶어 놓은 하얀 볏짚 덩어리만 늘어져 있을 뿐 들녁엔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11월 들녁은 그래서 더욱 황망하고 쓸쓸하다. 농부들은 동네 노인정  따순 아랫목에 자리 잡고 막걸리 한잔에 밀가루 전을 안주 삼아 올해 풍성한 농사에 대한 서로의 정보를 나누고 있겠지. 안락의 시간을 즐기면서 영산강이 준 풍요로움에 감사를 드리고 있겠지. 

 

이번 영산강변길에는 후고구려 왕건이 후백제 견휜과 전투에서 밀려 후퇴하다 영산강에 가로 막혀 꼼짝 못하다  소나무 아래 잠시 잠이 들었는데 백발 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이 곳 영산강은 나들목이니 건너도 괜찮다고 일러주어 곧바로 영산강을 건널 수 있어서 큰 화를 면하고 나중에 견휜을 이기고 고려를 세웠다는 무안 몽탄과 몽송마을을 만난다. 나주 동강에는 최부가 아버지 부고를 받고 제주에서 고향 나주를 향해 뱃길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까지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았다는 최부의 표해록을 만날 수 있다.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한번도 지형을 만들었다는 느러지 전망도 할 수 있는 구간이다. 직접 거쳐오지는 않았지만 영산강의 굽이쳐 흐르는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영산강 제2경 몽탄노적과 잠시 쉬어가라는 식영정을 바라볼 수 있는 구간이다.

 

◎ 영산강 제 2경 (몽탄노적)

 

몽탄노적(夢灘蘆笛)은 ‘곡강을 휘돌아 흐르는 여울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갈대가 피리가 되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몽탄노적(夢灘蘆笛) 곡강이 감싸고 흐르는 몽탄 식영정을 나와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대치천과 약곡천이 영산강과 합류하고 그 밑에는 석정포가 있다. 곡강의 운치와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바라보는 풍광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름답다.

 

◎ 무안 식영정(잠시 쉬어가라는  식영정)

식영정이 있는 몽탄면 이산리(梨山里)는 영산강이 굽이도는 U자형의 움푹 파인 곳에 자리한다. 강 건너편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의 느러지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곡강을 따라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산강 자전거길 따라 펼쳐지는 예쁜 수국도 인상적이다.

 

느러지전망대의 ‘느러지’는 이곳에 흐르는 영산강이 나주평야를 지날 때 강폭이 넓어져 유속이 ‘느려져’ 부른 이름이다.

 

자료집에서 퍼옴

 

곡강의 매력에 빠져 정자를 세운 이가 있으니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이다. 식영정(息營亭)은 영산강의 대표적 굽이로 영산강 제2경인 몽탄노적에 자리한 이산(梨山) 마을의 언덕에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내부 중심에는 방이 갖춰져 있어 비교적 큰 크기가 특징인 정자다. 

 

 

 

무안의 식영정(息營亭)은 ‘열심히 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뜻 같다. 정자 안쪽에는 ‘鳶飛魚躍(연비어약)’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는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것으로, 만물이 저마다의 제자리를 얻고, 자연 만물이 순리대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는 ‘시경’에 나오는 말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연의 순리대로 각각 제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군왕의 덕행과 교화가 널리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안 식영정은 임연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入鄕)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이다. 임연의 증손으로 역사서인 ‘동사회강(東史會綱)’을 지은 문인학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1683~1710)이 제현(諸賢)과 교류하는 등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의 나주임씨 강학교류 공간이었다.

 

자료집에서 퍼옴

 

 

1643년 임연이 지은 복거록(卜居錄)에는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혹시 식영정에 있는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조나무(둘레 3.2m)와 팽나무(둘레 3.4m)는 똑같이 수령이 510년이고 높이도 12m다.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자료집에서 퍼옴

 

 

어디를 가든 나무가 주인이다. 수령 510년이 된 보호수 팽나무에 문안인사를 들였다.

 

 

귀중한 문화재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무례를 범했다. 죄송한 마음이다.

 

 

5. 트레킹 이모저모

 

다시 지방도로 825번 도로 끝에 왔다. 

 

영산강 트레킹 2구간 출발 인증

 

일주일전에도 아름답던 영산강변 억새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하늘거린다. 아름답다. 하늘금엔 영암 월출산과 은적산이 아련히 손짓을 한다. 늘 그리운 님이시여!  영산강을 끼고 바라 본 월출산과 은적산은 하염없는 그리움으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잔잔한 영산강은 참으로 넓고 한가하다.

 

함께하는 대원님들!

생각이 같을까? 오늘 이 시간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걷는 저 발걸음은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겠지.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저 다리는 무안 일로읍과 영암 시종면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것 같다. 완성이 되면 무영대교와 영산강대교 사이에 설치된 교량으로 무안과 영암 사이의 물류를 더 빠르게 담당할 것 같다.

 

무안 회산백련지에서 내려오는 물길일까? 방향은 비슷하나 이 물길은 무안군 일로읍 상신기리에서 시작하여 무안회산백련지 위쪽 주변 물길을 담아 이곳으로 흐른다.  

 

지방도로 825번 도로 옆 자전거 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지만 강바람은 차갑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걷기에 무척 힘이 든다.

 

 

지나온 영산강변엔 억새의 향연이 한창이고 하늘금엔 아련히 월출산이 부르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영산강 물결비늘이 아름답다.

 

삼포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풍요롭고 넓다. 삼포천은 영암 신북면에 있는 백룡산(420.8m)에서 발원하여 영암 신북과 반남을 거쳐 시종과 동강의 여러 물줄기를 모아 영산강으로 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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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산강 트레킹 길은 영산강대교를 향한다. 강변은 매서운 바람이 차갑다. 내년을 위한 또 하나의 용트림을 하나보다. 영산강이 용트림을 하면 청명한 하늘도 움직이고 구름도 움직이고 온 천지 생명이 다 그 울림에 귀 기울리고 있는지 모른다. 저기 불어오는 바람은 틀림없이 영산강이 용트림을 할 때 불어오는 바람이다. 영산강이 용트림을 하면 다음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할아버지는 자주 말하곤 하였다. 어느 때는 북쪽에서 매섭게 불어오다가 어느 때는 남쪽에서 따스하게 불어오기도 한다. 남쪽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던 날  서울로 돈 벌이 하러 오래전에 떠났던 순이 엄마가 돌아왔다. 손에는 커다란  보자기를 들고서~~~ 그 날 순이는 해맑은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었다.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엄마 품이 그리웠나 보다. 

 

수확을 마친 텅빈 들녁엔 볏짚을 모아 가축사료로 사용하려고 묶어 놓은 하얀 볏짚 덩어리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을 뿐 들녁엔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11월 들녁은 그래서 더욱 황망하고 쓸쓸하다. 농부들은 동네 노인정  따순 아랫목에 자리 잡고 막걸리 한잔에 밀가루 전을 안주 삼아 올해 농사에 대한 서로의 정보를 나누고 있겠지. 안락의 시간을 즐기면서 영산강이 준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있겠지. 

 

강변을 걷는다.

영산강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끼며 걷는다.

영산강에 수천년 뿌리 내리고 사는 민초들의 숱한 애환을 그리며 걷는다.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갔을까?

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스쳐지나가는 민초들의 숱한 사연은 또 어떤 모습으로 피었다 질까?

 

갈대밭이 참 잘 발달해 있다. 매섭게 스치는 강바람에 흐들거린 저 갈대잎을 보라.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다시 바람이 불어 오면 또 흔들리겠지! 삶은 늘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라고 노래한 도종환 시인도 삶은 늘 흔들린다라고 하였다. 바람이 불때는 흔들리다가도 그 바람 그치고 나면 꼿꼿이 하늘을 향한 그 당당함이여!    

   

지금부터 무안군 몽탄면이다.

 

◎ 무안 몽탄에 얽힌 왕건 이야기

 

몽탄면의 ‘몽탄(夢灘)’이란 지명은 고려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공략하다가 현 나주 동강면으로 퇴각했으나, 영산강이 막혀 건너지 못하고 있던 중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앞의 호수는 강이 아니라 여울[灘]이니 빨리 건너라고 해서 현재의 몽탄나루를 건너 견훤군과 싸워 대승을 거둬서 몽탄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무안현 박곡면이었다가 1939년에 몽탄면으로 개칭했다.

 

제로하트님과 사진놀이 한 장

◎ 무안 몽탄은 이조 백자와 분청사기의 주요 도요지였다.

몽탄면 몽강리 일원은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옹기와 질그릇을 생산하던 주요 도요지로 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어 왔다. 1960년대에는 마을주민 약 90여 호가 옹기생산에 참여했고, 4개의 가마와 7개의 공방이 운영됐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옹기 등은 배편으로 전국 각지에 판매됐다. 점토와 고령토를 강 건너 나주시 동강면에서 들여와 원료와 완제품이 완벽하게 유통되는 요충지가 바로 석정포나루였다.

 

 

 

저기 보이는 산이 나주시 동강면 옥룡산(132.9m)이다. 저 산 넘어에 몽송마을이 있다. 

 

억새의 찬란함을 잘도 담았다. 임진택님 작품이다.

 

 

손에 손잡고 걷는 길은 우정이고 동지고 힘이고 사랑이다. 이 길이 아름답길 바란다.

 

◎ 나주 동강 몽송마을

 

왕건이 나주 동강면으로 퇴각하여 잠시 소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다는 마을이다. 지금도 마을 일대는 소나무가 유독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자생하고 있다. 소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은 지반이 암반이라는 것이다.  몽탄과 동강 주변에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것은 이 암반들 때문이다. 나주평야를 거쳐 흐르는 영산강은 비교적 반드시 나주평야를 가로질러 내려오다가 나주 다시에서 부터 동강과 무안 몽탄 지역에서 굽이쳐 흐른다. 이것은 영산강의 이 지역이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강물이 암반을 따라 흐리기 때문이다.  

 

농촌마을인 몽강리(夢江里)는 영산강의 풍부한 물줄기 영향으로 기름진 땅을 갖고 있다. 자연마을로 신촌, 언동, 청수동마을이 있다. 신촌마을은 질그릇의 적지라고 하여 ‘점촌(店村)’이라 불렸으나, 후에 신촌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언동마을은 따뜻한 곳이라고 ‘온동(溫洞)’이라고 불리던 것이 변음돼 언동(彦洞)이 됐다. 청수동(淸水洞)은 이곳의 물이 맑고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강대교는 무안 삼향면 남악에서 나주로 연결하는 지방도로 49번이 지나고 있다.

 

영산강대교를 지나면 곧바로 몽탄대교가 손짓을 한다.

 

몽탄대교

 

몽탄대교를 지난다.

 

몽탄대교를 지나면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담아본다. 수천년 이 땅의 백성을 말없이 바라보고 앞으로도 바라 볼 저 영산강은 한없이 인자하고 여유로우면서도 말이 없다.

 

모든 것을 담아 안아 주고 구진 것이든 좋은 것이든 오면 온대로 가면 간대로 말없이 허락하고 포용하면서도 잘했니 못했니 구별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으며 칭찬하지도 않는 저 영산강은 오늘도 말이 없다. 여여로움으로 말없이 스스로 흐를 뿐이다. “해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 날 저물면 돌아와 쉰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으니 제왕의 권력인들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노래하는 경지다. 무위의 경지이다.

 

몽탄대교에서 바라 본 영산강! 하늘금엔 무안군 몽탄면 연장산(302.1m)이 우뚝 다가온다. 

 

 

몽탄대교를 지나 이곳 부터 나주시 동강면이다.

 

옥룡산 아래 아늑한 마을

 

지나온 몽탄 대교를 바라보고

 

가야할 느러지 전망대를 향하여

 

내수 어업을 위해 허가 받은 어선들일까? 풍요로운 영산강 물고기 잡이가 잘 되길 바란다.

 

바람을 피해서 옥룡산 아래 아늑한 마을입구에서 잠시 쉬어 간다.

 

잠시 쉬어가는 마을 언덕에 나팔꽃이 피었다. 시절을 모르고 피었다. 지구의 이상 기온으로 식물이 정신을 못차린다. 어디 식물 탓인가? 사람들이 탄소 배출을 많이 하여 지구에 이상 기온이 생기고 그로 인한 이상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2050 탄소 중립이 실현되어야 할 텐데. 

 

다시 걷는 영산강 트레킹

 

갈대밭이 아름답다.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일대 영산강변을 따라 걷는다.

 

휘어 도는 강변에 넓은 갈대밭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맞은편은 무안군 몽탄면 몽강리이다. 하늘금에 아른거린 산줄기는 승달산 자락이다. 저 곳이사천천과 약곡천이 합류하는 석정포가 있던 자리다. 이조백자와 분청사기 등 무안 도요지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싣고 나르는 물류거점 항구였던 석정포이다.

 

넓은 갈대밭 맞은편에 임연이 지었다는 나주 임씨 교학교류 공간인 식영정이 있는 곳이다.  곡강의 아름다움을 바라 볼 수 있는 영산강 제2경인 몽탄노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변 갈대밭이 드넓게 형성되어 운치가 그만이다. 곡강이 만들어 낸 강변의 운치이다. 

 

트레킹 길에 보라색 예쁜 꽃이 눈에 띤다. 처음 본 꽃이다. 치커리 꽃이란다.

 

곡강을 따라 느러지 전망대로 향한다.

 

갈대와 억새가 어울러지고

 

느러지 전망대로 가는 잔도길

 

느러지 한반도 지형의 모습을 기대하며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을 따라 걷는다.

 

느러지 전망대 가는 잔도길에서

 

잔도길에서 바라 본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꿈여울 느러지 

 

 

 

느러지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

 

느러지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는 수국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한여름 이곳을 지나면 아름다운 수국을 만끽하리라.

 

느러지 전망대로 오르면서 서서히 한반도 지형이 드러난다.

 

 

◎ 나주 동강 느러지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한반도 지형

 

느러지 전망대

 

느러지 전망대에서 사진 놀이 몇 장

 

 

느러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꿈여울 느러지 한반도 지형(임진택님 작)

 

 

◎ '중국 3대 기행문' 표해록 쓴 최부

  - 제주에서 고향에 가다 풍랑 만나 표류... 중국 도착 

  - 136일 동안 중국 8000리길 생생하게 적은 기행문 

  - 동국통감 집필한 성리학자 임금 앞에서도 할 말 해

 

표해록 따라 걷는 곡강, 최부의 길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 는 조선 전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고 가까운 성지마을에 묻혔다.
 
제주에서 나주로 향하다 표류
 
최부는 1488년 초에  아버지 최택(崔澤)의 부고를 받고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 나주로 가는 배의 돛을 올렸다. 호송원과 기록관, 키잡이, 뱃사공, 호송군까지 합쳐 43명이 동행했다. 그런데 배는 출항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거센 풍랑을 만나 노가 부러지고 돛이 찢어졌다. 끝내 큰 바다로 흘러가 표류하게 된다. 난파 위험과 배고픔, 갈증이 그들을 괴롭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들 두려움에 떨며 통곡하고 울부짖었다. 배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최부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고 홑이불을 찢어 자기 몸을 여러 겹으로 감아 배 한가운데 가로목에 묶었다. 죽은 뒤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최부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무사히 선산에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사이 해적을 만나기도 했다. 글을 써서 소통하는데 두목이 눈을 부릅뜨며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최부의 머리카락을 끌어다 거꾸로 매달더니 작두를 들어 목을 향해 내리쳤다. 다행히 칼날은 스쳤지만 오른쪽 어깨에 큰 상처를 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는 이어졌다. 생지옥이었다.

 

배는 13일 동안 바다를 표류하다 중국 절강성 삼문현 우두외양(牛頭外洋)에 다다랐다. 우여곡절 끝에 최부 일행은 중국 관원들에게 넘겨졌다. 관원들과 함께 북경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중국 대륙을 아래에서 위로, 서에서 동으로 횡단했다. 임해~염파~항주~소주~양주~회안~서주~제령~창주~천진~북경까지 8000리 길이었다.

중국 관원들에게 심문을 받고 이런저런 고초를 당하지만 조선 선비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언행을 신중하게 했다. 효(孝)와 충(忠)이라는 유교 정신을 중국 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는 사이 관원들은 점점 최부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존경하게 됐다. 그 덕분에 일행은 잘 지낼 수 있었다.

 

최부는 제주도를 출발할 때 상복을 입고 있었다. 일행들이 상복을 벗는 게 좋겠다고 권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북경에 도착해 중국 황제를 만났을 때도 상복을 입고 있었다. ‘군신의 예’보다 부자간 의리가 먼저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중국 고위 관리가 물었다. “그대 나라 국왕의 성과 이름이 무엇이오?” 최부가 대답했다. “효자는 차마 부모님 이름을 거론하지 못하오. 그래서 사람의 허물을 듣는 것을 부모의 이름 듣는 것처럼 하라고 했소. 하물며 신하가 임금의 이름을 경솔하게 남에게 말해서야 되겠소?” 중국 관리가 다시 재촉한다. “국경을 넘었으니 상관없소.” 그러자 최부는 버틴다. “조선의 신하된 자가 국경을 넘었다고 나라를 등지고, 행실을 다르게 하고, 말을 바꿔서야 되겠소?” 국왕 이름을 외국인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조선의 법을 끝까지 지켜 왕과 조선의 자존심을 지켰다.

 

 

최부의 길 기념탑 앞에서

 

살아 돌아와 중국 견문기 작성

최부 일행은 북경에 도착한 뒤 간단한 심문을 받고 풀려났다. 풍윤~영평~산해관~광령~요동을 거쳐 국경을 넘었다. 일행 43명은 136일 동안 중국 대륙을 걷고 또 걸어 7월쯤 의주를 지나 무사히 한양에 도착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가다 표류한 지 6개월 만이다.

성종은 그가 보고 겪은 일을 ‘견문 일기’로 기록해 바치라고 했다. 최부는 아버지를 여윈 상주(喪主)로 하루빨리 고향 나주로 가서 삼년상을 치르고 싶었다. 맘이 급한 최부는 어명을 받고 8일 동안 청파역에 틀어박혀 일기를 기록해 바쳤다. ‘표해록’이었다. 5만4000자에 이르는 3권짜리 기행문이다. 그가 중국 각지에서 그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모두 기록해 놓았기에 가능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까지도 모두 글로 남겼다.

 


중국 역참과 사적은 물론 산천과 풍토, 습속과 중국인 생활상을 세세하게 적었다. 지식인 최부는 이 책을 통해 자기 교양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원인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중국 3대 기행문’으로 유명한 '표해록'을 우리는 지금 읽을 수 있게 됐다.

 

곡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강

 

느러지 전망대 입구 최부의 길 앞에서 단체 인증

 

다시 자전거길을 따라 내려와서 영산강변을 따라 걷는다.

 

나주 느러지 입구 쉼터

 

쉼터에서 바라본 몽탄면 방향

 

잠시 쉬어 간다.

 

걷고 

또 걷고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이 길

 

그래도 걷는다. 살아 있으니 걷는다. 걸을 수 있어 살아 있다.  ㅋㅋ 앞으로도 끝이 없는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이제 동강대교까지 지루하고 긴 길을 걷는다. 기울져 가는 햇살이 잠시 빛내림을 한다. 환상이다. 가끔은 이런 순간이 있어 지루한 트레킹 길이 화려하게 되살아 난다.

  

빛내림 사진 놀이 몇 장

 

 

 

 

해는 기울고 차쯤 걸어야 할 종점이 다가온다. 다리는 지치고 발바닥은 따끔거린다. 

 

풍요로운 나주 동강 들녁을 지나면서

 

맞은편에 무안 몽탄 산자락을 벗 삼아

 

긴 영산강변을 걷는 오늘이 소중하고 건강하고 귀하고 즐겁고 보람차다.

 

오늘 영산강 트래킹 2구간 종점이다. 동강대교에서 마무리한다.

 

동강대교

 

영산강 트레킹 2구간 종점. 휴~ 다 왔다.  많이 힘들어요 ㅋㅋ

 

종점에서 이병두 이사님과

 

종점에서 대원님과 함께

 

종점에서 김명수 대장님과 함께

 

종점에 도착하니 해가 서산에 너울 너울~

 

동강대교를 담으면서 오늘 영산강트레킹 2구간을 마무리한다. 

 

 

영산강 트레킹 2구간에는 나주 임씨의 강학교류 공간인 식영정과 영산강 제2경인 몽탄노적, 몽탄과 고려 왕건에 얽힌 이야기, 몽송마을, 느러지 한반도 지형 전망, 최부의 표해록(세계 중국 3대 유람기)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마주한다. 무엇보다도 말없이 흐르는 영산강의 무위 세계를 따라 걸었다. 백성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행복하다. 과도한 세금을 거두거나 억압하고 통치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나 그 악행을 쓸어 없애버린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다. 영산강을 걸으며 노자의 무의 세계의 천도를 생각해 본 하루다. 몸은 힘들지만 보람차고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