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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1.12.16. 전남 승주 선암사 승선교(보물400호), 선암사삼층석탑(보물 395호), 선암사북승탑(보물1184호), 선암사동승탑(보물1185호), 선암사 대웅전(보물1311호)를 찾아서

by 하여간하여간 2021. 12. 17.

승주 선암사를 찾아서(2021.12.16)

아침부터 날씨는 잔뜩 흐리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선암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충동질을 한다. 그래 이참에 그냥 가보자. 선암사 승선교와 삼층석탑 그리고 동-북승탑 무엇보다도 대웅전이 보고 싶다. 호남 5매 중의 하나인 선암매는 잘 있을까? 선암사는 여러번 가 보았다. 그때는 그냥 절에 한번 둘러 보러 가는 생각으로 다녀 갔다. 승선교의 아름다움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절집 이야기를 하러 선암사를 찾는다.,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세세히 둘러 보리라?

호남정맥인 조계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둘 있다. 승주 선암사와 송광사이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하나는 태고종 본산인 선암사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인 조계종 승보사찰인 송광사이다. 송광사는 나중에 다시 찾는 기회를 가져 보리라!. 천천히 여유롭게 살펴 본 선암사의 오랜 역사는 가히 불국정토로 옷깃을 여민다. 동-북승탑과 선암매와 원통전을 볼 수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으로 유서 깊은 이곳 선암사에서 수많은 대사님들이 인간의 궁극적 존재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불도의 길을 걸었구나! 스스로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참다운 길을 많이도 걸었구나! 수천년이 지난 오늘! 한 우매한 중생도 구도의 길은 아니지만 선지자들의 마음을 따라 천천히 선암사로 가는 길을 걷는다.      

 

선암사 소개 (선암사 홈피 퍼옴)

임제선풍의 대쪽 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량이자 천년고찰 한국불교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단아한 사찰이다.

 

백제성왕 5년인(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선암사를 창건하였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 사찰명을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이창주 도선국사께서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해지고 있다.

삼창주 의천대각국사께서 대각암에 주석하시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대각국사께서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셨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 소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의 기록은 김극기(1171-1197)의 시에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전기의 선암사의 기록은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정유재란때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1660년에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세분의 대사에 의하여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괄목할 중수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쟁이전의 상태를 복구하는데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하신 분은 호암약휴(護巖若休)스님이었다. 호암스님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원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이후 법당 8, 전사(殿舍) 12, 중료(中寮) 16, 산암 13, 부속암자로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년) 봄에 선암사는 또 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상월새봉(霜月璽封)스님과 서악(西岳)스님이 다음해인 1760년에 재건 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아도화상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스님은 중창불사 뿐만 아니라 1734~35년 두 차례에 거쳐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해진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정조 13(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스님이 대각암에서 100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편액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순조 23년(1823년)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스님 등이 제6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의 규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복칭(複稱)하기에 이른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등의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1919년 본발사법에 의하여 전국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현재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써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선암사 이모저모

조계산 선암사 표지 입석
선교쌍종 대본산 표지 입석
전통야생차 체험관 가는길
호법선사 표지 입석
방생쟁계 표지 입석
방생쟁계 옛 나무 표지
호법선계 옛 나무표지
승선과 앞 교량
대한민국 보물 제400호 승선교
승선교
승선교과 강선루

 

보물 제400호.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 길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虹蜺)를 쌓았는데, 결구 솜씨가 정교하여 홍예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의 계곡 기슭까지의 사이에는 둥글둥글한 냇돌을 사용하여 석벽을 쌓아 막았다. 다리 좌우의 측면석축도 난석(亂石)쌓기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으며 원형을 잘 지니고 있다.

기단부에는 아무런 가설도 없이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다. 홍예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석축에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다리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즉,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강선루
승선교 옆 바위에 새겨진 승선교 표지
강선루
선원교
강선루 아래 바위 세개는 무엇을 의미할까?
강선루에서 바라본 승선교
선암사 골짜기
편백 숲에 누워 있는 고목
삼인당
선각당
대웅전 가는길과 송광사 가는 갈림길/ 대웅전으로 향한다.
오래된 고목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범종루
뒤에서 본 범종루
범종각
종 아래 공명을 이르키기 위해 홀을 만들어 놓았다. 종소리가 장엄할 것 같다.
대웅전으로 가는 계단
만세루
대웅전 앞 마당
선암사 삼층 석탑

보물 제395호. 높이 470cm. 대웅전 앞에는 규모가 같고 양식이 동일한 석탑 2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이루어졌다. 하층기단은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4개의 긴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하층갑석의 윗면은 약간 경사가 져 있으며 중앙에는 3단 굄이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도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상층갑석은 하층갑석과 마찬가지로 밑에는 부연이 있고, 비스듬하게 경사가 져 있는 윗면 중앙에는 3단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신의 각 면에는 우주만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이며, 처마 끝이 편평하며 비교적 수평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원형의 석재들이 남아 있는데, 원래 석탑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986년 8월 해체·복원할 때 동쪽에 있는 탑 1층 탑신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청자·백자 등이 출토되었으며 보물 제955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
대웅전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인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 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높이 1m로 쌓은 기단 위에 주춧돌을 배열하였는데, 앞면에는 3단으로 굄을 둔 둥근 주춧돌을, 뒷면·옆면에는 덤벙주춧돌을 놓았다.

문은 모두 빗살을 둔 4분합문(四分閤門)이며 위에 교창(交窓 : 창문 위에 두는 낮은 창)을 두지 않았다.

내부는 천장을 井자 모양의 반자로 막은, 이른바 우물천장으로 하였고, 고주(高柱) 2개를 세워 그 앞에 불단(佛壇)을 마련하는 한편, 후불벽(後佛璧)을 세워 후불탱화(後佛幀畵)를 걸고 앞에 본존불을 안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출목수가 많아서 처마 끝이 심하게 휘어 올라갔으나 날렵하기보다는 장중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대웅전 불상/ 협시보살이 없다. 뒤에 있는 장군봉이 대웅전 불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신검당
설선당
지장전
지장전 부처님
응향각
초겨울에 핀 팔손 꽃
팔상전 앞 전원
팔상전
무우전/ 각황전
불조전
조사당
원통전
첨성각
장경각
응진당
달마전
진영당
미타전
삼성각
와송
무량수각(천불전)
불교강원/한국불교태고종립 선암승가대학/불교전문교육원
창파당
적묵당
뒤간
해천당
성보박물관

 

순천 선암사 선암매
중수비
동-북부도 가는길
동부도 가는길
동부도

 

승탑은 바닥돌부터 상륜부까지 단면이 모두 8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계승한 셈이다.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바닥돌에는 윗면에 굄을 돋을새김하고서 다시 그 위에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조각된 또 다른 높직한 굄을 두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구름 무늬가 조각되었고, 윗면에는 약간 튀어나온 1단의 반전형(反轉形) 굄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받침돌과 윗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가운데받침돌의 윗부분에는 물결 무늬가 조각되었다. 윗받침돌에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8개를 큼직하게 둘러 새겼으며, 그 위로는 제법 높직한 굄이 있다.

몸돌은 윗부분이 아래부분보다 좁은 편으로, 맨 아래부분에 높직한 굄이 있다. 8각의 각 면에는 네모난 테두리를 소박하게 둘렀는데, 앞면에는 안쪽에 봉황을 새긴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있고, 그 좌우 옆면에는 인왕상이 돋을새김되었으며, 뒷면에는 문고리만을 장식한 문비가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얕고 넓은 편으로, 밑면에는 너비가 제법 차이나는 2단의 받침이 있다. 윗면인 낙수면은 전체적으로 평박(平薄)한 편이지만, 각 모서리마다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뚜렷하고, 전각(轉角)에는 귀꽃이 두텁게 장식되어 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지붕돌 꼭대기에 마련한 굄 위에 놓여 있는데, 앙화(仰花), 보개(寶蓋), 보륜(寶輪), 보주(寶珠) 등이 차례로 올려져 있다. 다만 단면이 8각인 보개의 각 모서리마다 귀꽃이 큼직하게 장식되어 화사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승탑은 지붕돌 모서리가 일부 파손되었지만, 대체로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함께 구름 무늬와 연꽃 무늬 등의 새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조성된 석조물을대표하는 우수한 승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부도 올라가는길
북부도

승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계승하였다. 단면 8각의 바닥돌 위에는 높직한 굄이받침돌을 받치고 있는데, 옆면에는 한 면씩 걸러서 모두 4마리의 사자가 조각되었다. 8각의 아래받침돌에는 구름 무늬가 모든 면에 걸쳐 굵게 돋을새김되었고, 윗면에는 테두리를 따라 널찍한 홈이 파여 있는데, 그 가운데부분에 높직한 굄이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윗받침돌과 함께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북을 옆으로 뉘어 놓은 고복형(鼓腹形)의 모습이다. 아래부분에는 너비가 좁은 받침이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4개의 꽃잎을 가진 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8각의 윗받침돌에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8개가 각 모서리마다 큼직하게 돋을새김되었는데, 윗면에는 굽처럼 생긴 굄과 아래로 꽃잎을 내린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가 조각되었으며, 다시 그 위에는 2단의 굄이 조성되었다.

몸돌은 단면이 8각으로, 각 면마다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門扉)가 마련되어 있는데, 문비 안에는 자물통이 조각되었고, 앞면 문비의 좌우면에는 돋을새김된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8각의 지붕돌은 꼭대기부분이 다소 경사져 있지만, 가운데부분은 평박(平薄)한 편이다. 윗면인 낙수면의 각 면마다 합각(合角)이 뚜렷하고, 각 모서리의 전각에는 큼직한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개(寶蓋) 등을 갖춘 모습인데, 그 외의 부재는 깨지거나 없어져 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재만으로도 원래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다.

이 승탑은 바닥돌 위의 굄에 조각된 사자상이 특이하며, 상륜부가 다소 파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온전한 상태이다. 사자상의 조형과 함께 구름 무늬, 연꽃 무늬, 인왕상 등의 조각 수법, 각 세부의 조성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승탑 가운데 우수한 승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부도전
서부도전
선암사 입구 차밭
선암사 뒤쪽 차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