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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명산

2020.03.21. 화순 모후산(918m) 블랙100+ 명산

by 하여간하여간 2020. 9. 3.

1. 산행일자 : 2020.03.21

2. 누구랑 : 원산우회지인 번개 
3. 산행구간

 유마리 유마사주차장- 유마사-용문재-모후산 정상-중봉-철철바위-계곡합수점삼거리-주차장(원점회귀)

4.  산행 개념도

 

5. 산행소감


봄이 완연하다
목련이 순백의 청아함을
머금은 채 화려하게 피었다.
산수유 매화도 이미 만발했다 
 
가까운 모후산으로 향했다.
언제나 처럼 유마사 원점 산행이다
정상을 찍고 중봉에서 철철바위로 향한다 
 
모후산을 여러번 왔지만
철철바위를 만나는 순간
지금까지는 모후산을 껍데게만 보았구나.
모후산 정상에서 부터 흐르는 계곡물이 철철바위 위로 흐르며 연출한 풍광은 기가 막혔다.

이제야 모후산의 속살을 만난 느낌이다.
이런 비경이 모후산에 숨어 있다니 감탄에 감탄이다.
오늘 선행은 철철바위를 만난 것만으로 충분하다.  
기분 좋은 하루다

 

6. 모후산 소개

모후산(母后山)

대한민국 전라남도 화순군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943.7m의 이다.

무등산 북쪽 지맥의 한 봉우리이나 규모가 크고 산세도 험한 편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복호 주암댐, 무등산, 백아산, 조계산 등이 보여 전망이 트여있다.

 

본래 라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 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유마사가 있다. 

한국 전쟁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숨어들어 백아산과 연계하여 활동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당시의 유마사 건물은 소각되었다. 새로 지은 유마사를 기점으로 산행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으나 현재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주변에 화순 적벽, 김삿갓 유적지, 남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오지호의 생가와 기념미술관이 있다. 조계산도립공원, 화순온천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모후산 하면 화순 모후산 으로 퍼뜩 떠오르지만, 모후산의 한자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화순쪽 보단 순천쪽의 역사가 더 크다 하겠다.

 

고려 공민왕 때에 홍건적의 개경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은 왕의 처가 쪽인 화순 동복오씨 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동복사람인 "김도"의 안내로 지금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되고, 어머니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 난이 어느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물었다. 이산이 무슨 산이냐? 라고 물으니, "김도" 는 예 라복산 이라 하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 라고 말하였다. 산의 크나큰 덕이 어머니 같다 란 뜻의 이말은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 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이 피신한 임시수도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은 "유경" 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이곳 송광면 왕대, 유경 마을에는 공민왕의 이야기와 함께 산넘어 주암면 대광리 용문마을에 존재하던 "대광사"란 큰절이 존재했었고(조선말 때 까지 존속 그후 폐찰 됨) 대광사 관련 불교유적 들이 송광면 삼청리, 후곡리 주암면 대광리 주변으로 남아있으며 대표적인 대광사의 유적 에는 대한민국 명승25호로 지정된 "초연정원림" 이 있고 후곡리 모후산 중턱에는 유마사 운성암 절터가 현재에도 남아있다.(한국의 폐사지 란 책자에 수록)

 

과거에는 후곡리 절터, 삼청리 절터로 불리었던 곳이다. 이렇듯 모후산은 화순군과 함께 순천시 주암, 송광면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광사 이야기와 함께 기록되어 있는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광주권 상수도 공급을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주암호 담수가 시작되고, 수몰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상수원보호구역과 함께 자연환경보전구역으로 묶여 있는 탓에 순천쪽 명성보단 화순군의 산으로 알려진 모후산이다.

 

7. 산행추억

유마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하고 모후산 정상을 본다

 

유마사 해련부도(보물 제 1116호)

 

유마사입구 이름없는 부도
유마사 입구 또 다른 부도

유마사추억

내가 처음 유마사를 찾을 때가 꽤 오래전에 아이들과 가족 피서를 왔을 때인가 싶다. 

그 때는 절이 거의 황폐하여 무슨 절이 이다지도 쓸슬한가? 하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몇 차례 절집을 찾을 때도 여전히 인적이 없는 곳이다, 비구님들이 수양하는 곳이다라고만 알았다.

최근에 유마사는 증축하고 여러 절집들이 들어서고 그래도 절집다운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신도들이 시주를 많이 해서 그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 전쟁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숨어들어 백아산과 연계하여 활동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당시의 유마사 건물은 소각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곳을 기피하였나 보다. 그래서 오랫동안 방치하였나 보다. 한국전쟁의 깊은 상처는 피아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에게는 깊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였는가? 역사의 수래바퀴를 바로 잡을 때, 이 전쟁의 역사적 진실을 바로 잡을 때, 우리는 피아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서로를 용서하고 민족 화합으로 나아가 통일 조국을 이루고 세계 여러나라 앞에 당당히 자주적 통일 독립국가로 거듭나리라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다.

 

유마사 봉향루
오늘 함께한 산우님들
나뭇가지 사이로 유마사 전체를 담아 본다

 

늘 잘 생긴 주유님 그는 참 친절하고 배려가 깊다. 왠지 끌리는 매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언제나 친절하고 똑똑한 신변(신광식 변호사)님 그는 참 탁월한 인간관계 능력을 가지고 있어 부럽기 짝이 없다.

 

용문재 오르는 길에 계곡 골치기를 해보기로 했다. 골치기는 약간의 긴장과 새로움을 주기에 가끔은 한번씩 해 봄직하다. 
용문재를 지나 느슨한 등로를 오르다 보면 아름다운 소나무와 모노레일을 만난다. 모노레일은 정상에 기상관측소가 생기고 부터 새로 만들어 졌다.

 

산우님들은 솔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모노레일로 인해 등산길은 숲이 없어지고 땡볕을 받으며 숨을 헉헉 거리며 오르게 된다.

 

모후산 블랙 100+ 명산 인증

 

모후산 정상에 설치된 기상 관측소 하얀고 둥근 돔이 호남 어디에서 봐도 잘 보이기에 모후산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모후산은 주암호를 끼고 있다. 주암호 넘어 저 멀리 하늘금으로 조개산 자락을 보면서 한 컷 /1991년 이전에는 주암호가 없었을 때 산골 자락의 조상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주암호가 만들어지고 수몰지역에 삶의 뿌리를 둔 민초들은 얼마나 애달펐을까? 지금은 먼 옛날이 되었지만~~
모후산은 호남정맥 연산에서 뻗어나와 기후산--성덕산-차일봉-매봉-밤실산-운월산을 거치면서 동복호 물줄기를 주암호로 흐르게 하는 모후지맥의 중심산이다. 사진은 모후지맥의 일부분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과 주암호, 저 멀리 조개산 자락/ 조개산을 지나 아련히 보이는 하늘금이 호남정맥이다.

왕대마을

고려 공민왕 때에 홍건적의 개경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은 왕의 처가 쪽인 화순 동복오씨 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동복사람인 "김도"의 안내로 지금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되고, 어머니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 난이 어느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물었다. 이산이 무슨 산이냐? 라고 물으니, "김도" 는 예 라복산 이라 하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 라고 말하였다. 산의 크나큰 덕이 어머니 같다 란 뜻의 이말은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 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이 피신한 임시수도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은 "유경" 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산길에 원래계획은 집계봉을 거치려 했지만 오늘은 철철바위가 궁금하여 철철바위로 향한다.

 

급경사 하산길을 내려오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모후산
하산 길은 급경사이고

 

중간쯤에서 옛날 절집이 있었나 상당한 절집터가 보이고

 

데크다리를 건너고
이정표를 지나면서 부터
바로 철철바위가 나온다

 

지금은 물이 조금 흐르지만 수량이 많으면 가히 명품 폭포가 되리라
몇 단의 폭포 흐름을 보면서 이런 비경이 모후산에 숨어 있어었구나

 

철철바위 표지판 오늘 철철바위 비경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산행이다.
내려오는 길에 유마사 입구 표지석을 담았네요

 

모후산 유마사 일주문

 

유마사 보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