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득(自得)의 처방(處方)
세상을 살다보면 정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부귀(富貴)와 빈천(貧賤), 환난(患難)과 두려움(恐懼)은 모두 나의 정신적 안정감을 깨고 무너뜨리는 요소다. <중용(中庸)>에는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외부적 충격에 대한 든든한 방어망으로 ‘자득(自得)의 정신경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自)만의 답을 얻어내는(得) 정신적 방어체계다. 자득(自得),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윗자리에 있든, 아랫자리에 있든 자득의 경지에 이르면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자는 자득의 경지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다. 운명을 원망하지 마라! 두려운 것은 가혹한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에 굴복당하는 자의 마음이다.
“군자는 자신의 운명에 합당한 행동을 하나니 그 밖에 것을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 부귀한 운명이 오면 부귀한 자의 행동을 하고(素富貴行乎富貴), 빈천한 운명이 오면 빈천한 자로서 합당한 행동을 하고(素貧賤行乎貧賤), 오지의 운명에 처하면 오지의 문화를 즐기고(素夷狄行乎夷狄), 환난의 운명을 당하면 환난의 길을 걸으리라(素患難行乎患難). 군자는 어떤 상황이 다가오든 그 상황에서 답을 찾는다(君子無入而不自得焉).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上不怨天), 아래로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下不尤人). 군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君子居易以俟命), 소인은 조급하게 요행을 바란다(小人行險以幸).” 필자가 늘 외고 다니는 <중용>의 구절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정조 대왕이 승하하자 나이 40에 전남 강진 해남 등지로 18년간 유배당하는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다산은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궁벽한 곳에 있더라도 정신적인 충만감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3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주변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는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모두 환난과 빈천에 무너지지 않는 자득(自得)의 정신 경계가 피워낸 문명(文明)이었다. 역경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자득은 새로운 문명과 꽃을 피워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긍정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과 긍정의 힘만 있다면 그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군자에 대한 정의 중 ‘부지불온(不知不)’이 있다. 이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니, 진정 군자의 모습이 아니런가(人不知不不亦君子乎)’라는 구절에서 왔다. 어떤 사람의 어떤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으며, 남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천만 명 앞에서라도 당당히 맞설 수 있고, 스스로 반성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저 저잣거리의 걸인 앞에서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자득(自得)의 인간형과 닮아있다. 죽을 용기와 힘이 있다면 그 용기와 힘으로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도 있다. 자득(自得)의 처방(處方)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淸夜吟
月到天心處 월도천심처: 달은 하늘 한 가운데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물위에 바람 부는데,
一般淸意味 일반청의미: 이 평범한 의미를
料得少人知 요득소인지: 아는 이 드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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