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
○ 걸음 : 동서트레일 9구간 + 용봉산

• 동서트레일 9코스 : 충의사 - 뫼넘이고개 - 내포전망대 - 용바위 - 임간휴게소 - (용봉산 산행) - 용봉초 - 이응노생가기념관
• 용봉산 산행 구간 : 임간휴게소 - 삽살개바위 - 악귀봉 - 물개바위 - 행운바위 - 솟대바위 - 노적봉 - 용봉산 정상 - 투석봉 - 홍성 상하리 미륵불 - 용봉초
• 용봉산 산행으로 동서트레일 9구간 중 걷지 못한 구간 : 임간휴게소 - 용봉사 - 용봉사일주문 - 용봉산입구 - 하산마을 - 용봉산정보화마을 - 용봉초
○ 동서트레일이란?
한반도 남쪽 중간에서 동과 서를 연결하는 총 849km의 최초의 숲길이며, 경북 울진군에서 충남 태안군까지 5개 시도, 21개 시. 군. 구 239개 마을을 지나며, 57개 구간(본선 55, 지선 2)으로 연결되어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각 노선 구간의 처음과 끝에 농. 산촌마을이 있도록 노선을 선정하여 숲길 이용자가 농. 산촌마을에서 머물면서 먹고, 자고, 쉴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백패킹 수요를 반영한 백패킹 전용 숲길이다.
숲길 내의 다양한 생태적, 환경적,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함으로써 지역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울진금강송, 속리산 정이품, 안면송을 연결하는 소나무 대표 숲길이다.
○ 동서트레일 9구간 탐방

충의사에서 용봉산을 지나며, 이응노생가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윤봉길 의사 생가, 용봉사마애불,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등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용봉산자연휴양림에 산재한 용바위, 병풍바위 및 내포신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내포전망대 등 산림경관자원들이 풍부한 노선으로 내포문화숲길/내포역사인물길 1코스가 연결된 구간이다.
○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는 동서트레일 9코스와 일치한다.
○ 윤봉길(1908~1932)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현 광현당)에서 윤황과 김원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11세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자퇴하였다가 13세에 한문공부를 시작한 후 성주록 오치서숙에서 수학했으며 이때부터 한학과 더불어 신학문과 민족문제, 농촌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20세에는 야학교재로 3권의 농민독본을 제작하여 농본국가의 당위성을 강조하였으며, 부흥원 설립 및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문맹퇴치 운동과 농민운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농촌계몽운동만으로는 식민지의 삶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의 길을 찾아 1930년 3월 고향을 떠났다.
1931년 상하이에 도착하여 김구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된 이후, 1932년 4월 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일본군 수괴를 죽이고, 부상 입혀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12월 19일 25세 나이로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환국하여 현재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 의사를 기리고자 1972년 그의 출생지와 농촌계몽운동이 펼쳐진 지역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 윤봉길 의사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 광현당,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며 성장한 저한당, 윤봉길 의사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 윤봉길 의사 유적 종합안내

충의사 일대는 본전 지역, 기념관 지역, 성장가 지역, 생가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윤봉길 의사와 관련된 여러 유적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 충의사
윤봉길 의사 초상을 모신 사당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의거를 일으킨 후 순국하였으며, 그의 애국정신과 의거를 기리기 위해 충의사가 건립되었다.
충의사에서는 매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를 추모하는 매헌 문화제가 열리며, 이는 그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후세에 계승하기 위한 행사이다.

• 기념관
윤봉길 의사의 유품들이 전시된 곳

• 광현당
도중도에 있으며 윤봉길 의사가 1908년 태어나 4세까지 자란 곳

• 저한당
4살 때부터 23세까지 농촌 문맹 퇴치, 농민운동, 야학회 조직 등 농촌 계몽에 힘쓰며 살았던 곳

• 도중도
섬 속에 섬이란 뜻으로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광현당이 있으며, 윤봉길 의사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대치천과 호곡천 사이에 사방이 물길로 둘러싸여 섬 같이 형성된 곳으로 섬 속에 섬이란 뜻이다.
○ 동서트레일 9구간 트레킹 시작

충의사 도착 산행 준비

윤봉길 의사 사적비

윤봉길의사기념관 앞에서

단체 기념하고 출발

충의사 동서트레일 9코스 출발점
충의사는 내포천주교순례길 3~4코스의 시종점이며,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 시작점이기도 하다.

동서트레일 9구간은 내포문화숲길 1구간과 일치한다.

내포문화숲길 1구간 안내판 앞에서 출발 기념 한 장
동서트레일 9코스 시작점 안내판을 찾지 못했다. 아쉽다.

덕산온천로를 건너서

만유문/저한당/매헌윤봉길월진회

예산 윤봉길의사 유적 안내

매헌 사적지(사적제 229호)

의거 기념탑과 윤봉길의사 동상
윤봉길의사 동상 앞에 묵념을 드려야 함에도 늘 시간에 쫓겨 들리지를 못하고 멀리서 마음속으로만 추모를 하고 지나간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애국정신을 지키고 서 있다. 마치 윤봉길 의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 저한당

윤봉길 의사가 4살 때부터 23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저한당은 '한국을 건저 내는 집' 이라는 뜻이며,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4세였던 1911년에 아버지 윤황을 따라 이사와 살던 집이다. 5남 2녀 가운데 장남인 윤봉길 의사는 동생들과 우애가 남달랐고,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여러 학문을 익혔다.
윤봉길 의사는 1930년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며 민족운동을 꾸준히 펼쳤다. 따라서 1932년에 윤봉길 의사가 순국하고 1945년에 해방이 되던 날까지 저한당은 일제의 탄압과 감시를 받았다.
1972년 8월까지 윤봉길 의사의 유족이 이곳에서 살았으며, 10월에 저한당을 비롯한 윤봉길 의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 낡고 헌 부분을 수리했다.

대치천을 따라

충의사에서 0.2km 이정표

도중도교를 건너고

도중도교에서 바라본 대치천 하류방향

도중도에 있는 광현당

충위사 출발 0.3km, 용봉사까지 5.4km 이정표

도중도
윤봉길 유적 도중도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의 '도중도(島中島)'라는 지역으로,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 자란 장소이다. 도중도는 '섬 속의 섬'이라는 뜻으로, 집 주변에 사방으로 냇물이 흘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어 윤봉길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도중도에는 윤봉길 의사 생가인 광현당과 농촌계몽을 위해 설립한 부흥원이 있다.

도중도를 끼고돌아

이제 윤봉길 의사 유적지와 헤어지고 오전 햇살이 빛나는 길을 따라 수암산 방향 트레일을 걷는다.

지나면서 돌아보니 하늘아래 덕숭산이 아련하다.

지나온 길을 조금 더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저기 하늘금엔 가야산군이 아련하다

호곡천
호곡천은 대치천으로 흘러들고 대치천은 덕산천과 만나 흐르다가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아산만을 거쳐 서해로 흐른다.

호곡천 상류방향

동서트레일 9코스 길은 호곡천을 지나 우측으로 급하게 꺾여

이정표

국도 45번인 윤봉길로 수암교 밑으로 지나고

수암교 밑으로

수암산을 왼쪽에 두고 들길을 지난다.

수암산을 왼쪽에 두고 숭덕산이 보이는 들길을 지난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너른 들녘길을 따라

수세미도 주렁주렁

수암산 쪽 좌측으로 덕산 참숯랜드 참숯가마를 지나

콩밭에 콩이 많이도 열렸다.

이제까지 들녘길이던 트레일은 수암산을 향하여 둔리임도로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즐겁게 둔리임도를 오른다.

오름길은 계속되고

붉은 단풍이 물든 길을 걸어

함께 걸어 즐거운 시간

늘 함께한 동화나라님

올 추수를 마치고 여유롭게 함께한 산길따라님

트레킹의 즐거움

숭덕산을 바라보고

편안한 길도 있어 한참을 걸어서

수암산과 용봉산 사이에 있는 뫼넘이고개로 진입하는 초입에 도착

동서트레일 9구간 현 위치

잘난 체하고

기념 한 장 남기고

뫼넘이고개를 향해 완만하게 오른다.

뫼넘이고개 도착

동서트레일 9코스는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와 일치

뫼넘이고개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내포전망대를 향해 오른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산길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른 대원님들. 잠시 쉬어간다.

충의사에서 4.4km 지점이다.

중간에 기암도 만나고

수암산 등산로 현 위치

내포전망대 도착

내포전망대 현 위치

내포전망대에서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를 조망하면서 점심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

용바위 도착

용바위 현 위치

충의사에서 5.0km 지점이다.

용바위

용바위 사진놀이 삼매경

용봉산 설명이 이곳에 있다.
○ 용봉산은?
홍성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홍성 여행의 필수 코스인 용봉산은 산세가 용의 형상과 봉황의 머리를 닮은 데에서 유래하였으며, 또한 8개의 산봉우리로 형색을 갖췄다고 하여 팔봉산이라고도 한다.
홍성군 홍성읍과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있으며 해발 381m로 그리 크거나 험하지 않지만, 수려한 자연경관과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병풍바위, 장군바위 등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이 많아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용봉산 정상에는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예당평야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어 경치가 일품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지 않으며 새롭게 조성된 충남도청 내포신도시를 한눈에 내려볼 수도 있다. 더불어 정약용도 유람한 용봉사와 고려시대의 불상인 보물 제355호인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사 마애불, 상하리미륵불, 상하리마애보살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가 산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명산이다.

한참을 걸어 임간휴게소 도착
이곳에서 동서트레일길은 90도 꺾여 용봉사로 내려간다.
그러나 우리는 용봉산을 처음온 대원님들이 많아 그분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용봉산 기암괴석을 보러 용봉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용봉초까지는 용봉산 산행길이다.
대신 임간휴게소에서 용봉사를 거쳐 용봉초까지 동서트레일 9구간은 나중에 땜방하기로 한다.
○ 용봉산 산행

악귀봉으로 오른다.

급경사 암릉구간이다. 힘든 구간이지만 대원님들은 신났다.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삽살개바위를 만난다.
처음 온 사람들은 바위틈에 숨어있는 이 삽살개바위를 놓치기 일쑤이다.
나도 처음 용봉산을 오를 때는 이 삽살개바위를 보지 못했는데, 두 번째 오를 때 비로소 만났다. 오늘은 내가 먼저 올라 처음 용봉산을 오른 모든 대원님들에게 용봉산 삽살개바위 추억을 담아 드렸다.

산길따라님도 한 장

나도 한 장

삽살개바위 표지안내

다시 바위틈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서

악귀봉에 도착하여 표지석을 담고

악귀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산줄기

악귀봉 바로 아래 있는 물개바위 사진놀이

장군바위도 지나고

편안한 산길도 걸어

다시 급경사 암릉길에 행운바위를 만난다.

돌을 던져 저 바위 위에 올리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바위이다.
나도 행운을 얻고자 돌을 찾았지만 주변엔 돌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주어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솟대바위

솟대바위를 지나

가파른 암릉을 기어오른다.

가파른 암릉을 올라서면 조망이 터지고 지나온 악귀봉을 배경으로 추억 한 장 남긴다.

옆으로 자란 소나무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에 감동한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지도 못하고 옆으로 뻗어가는 저 소나무의 강인함을 알게 하소서!

누군들 저런 질긴 강인함으로 세상을 살면 이까짓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다고 한들 저 소나무 보다 힘들까? 다시 정신을 가다듬자. 건강히 열심히 살자! 주어진 귀한 생명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바위틈에 저 소나무도 사는데~~ 추운 겨울 서해에서 부는 칼바람을 이겨내고 강인하게 살아가는데~~~

노적봉 도착. 표지석에서 기념 한 장

노적봉 이정표

노적봉에서

나르샤 놀이도 해보고(최수하 님 작)

기암
언젠가 이 기암에 올라 의기 당당했을 때가 있었다. 반갑다. 추억을 담는다.

용봉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은 가끔 이렇게 편한 구간도 있어 숨을 돌린다.

껍질이 다 볏겨진 소나무 한 그루.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도 생명은 귀중한 것이기에 포기할 수 없어 있는 힘을 다해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들 이웃이 그렇고 민초들이 그렇고 백성이 그렇다.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잘 자란 소나무 사이로 급경사 계단을 오르고

노적봉과 악귀봉 조망

붉은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행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드디어 용봉산 정상석
오랜만이다. 용봉산 정상석에 어린 추억이 많다. 여러 번 올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 언제나 누구나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곳 용봉산 정상석 381m에 최고봉 이정표가 있다. 당연히 정상은 최고봉일 텐데 특별히 최고봉이라 표시하여 놓았다.

용봉초로 하산길에 만난 기암. 햇살이 기우러 가고 있다.

투석봉을 지나고

투석봉에서 대원님들

하산길 암릉 조망터에서

하늘금엔 백월산과 우리가 걸어야 할 용봉천이 흐르는 중계리 들녘과 이응노생가기념관이 아련하다.

상하리 미륵불
홍성 상하리 미륵불
유형문화재 87호
미륵불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미래의 부처이다. 이 미륵불은 용봉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벽 밑에 우뚝 솟은 자연암석을 활용하여 조각한 입상이다. 머리는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며, 귀는 직선으로 턱 밑까지 내려왔다. 가늘고 긴 눈, 넓적하고 낮은 코, 입은 비교적 작으나 얕게 평면적으로 돌을 새김 한 은은한 미소는 자비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얼굴에 비해 더욱 평면적이어서 가슴 부분에 두 손을 아래위로 나란히 대고 있는데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은 약간 떨구었다. 이외에 광배나 신광 대좌 등의 다른 부분은 생략하였다. 고려에 조성된 충청도 지방의 불상 양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삶이 고달플수록 힘든 삶을 구제해 주는 미래의 미륵 부처를 갈망했는지 모른다. 이곳 충청지방은 유난히도 미륵불이 많다. 논산에도 관촉사라는 절이 있는데 은진미륵불이 있다. 전북 금산사에는 미륵전이라는 3층의 거대한 전각이 있다. 모두가 농경지역으로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겐 힘든 삶을 구제해 주는 미륵불이 그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종교가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나 불교는 물욕에 빠져 썩을 대로 썩어 있는 자의 우쭐거림의 장이 된 지 오래이고, 어렵고 힘든 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 현실이 안타깝다.

유형문화재 제 87호 홍성 상하리 미륵불 표지석

미륵불 앞마당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여심들이 이 가을을 만끽한다.

이제 용봉초를 향해 내려가자.

완만한 산책길 같은 편안한 길이다.

하산길에 넉넉하게 단풍도 즐기고

돌아본 용봉산

저기가 용봉초 입구다.

용봉초 정문 앞에 노란 은행나무에 가을이 가득하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다.
아직도 나무에는 노란 은행잎이 한가득인데 땅에도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환상이다.

오늘 함께한 대원님들
추억 한 장 남기고 이제 이응노생가기념관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동서트레일 9코스로 이응노생가로 가는 길은 들길이다.

용봉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이응노로를 따라 중계리로 향한다.

지루한 들녘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걸어서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에 도착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 이응노의 집

동서트레일 9코스 종점 이정표

동서트레일 9코스 종점 안내

기념 한 장 남기고 동서트레일 9코스를 마감한다.
○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노 화백'은?

고암 이응노 화백은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그는 동양화의 전통 필묵을 활용하면서도 서양화의 사실성과 표현주의를 접목하여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했다. 1937년 일본 유학 시절 서양화의 사실적 기법을 배우고, 귀국 후에는 전통 미술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다방면의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 이후에는 문자추상과 콜라주 기법 등 실험적 추상화 작업을 했으며,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많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응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형상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특히 1980년대 후반의 '군상' 시리즈에서는 붓의 움직임을 통해 수천 명의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해 예술적 절정을 이루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앵포르멜(informel) 회화를 흡수하고 동양적 감성을 가미한 독자적 추상미술을 개발했다. 또한 교육자로서 홍익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파리에서는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했다.
1989년에 심장마비로 별세했으나, 그의 작품과 예술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탐방

이응노 생가

가을 분위기에 물씬 젖은 억새 또한 기울어가는 저녁 햇살에 은빛 찬란한 날갯짓을 하고

연방죽으로 향하는 나그네도 저녁 햇살에 기울이고

잘 정돈된 연방죽에는 지난 여름 한창 푸르른 잎을 펼쳤을 연잎이 그 생명력을 다하고 꽃처럼 연대에 매달려 있다.

연은 죽어서도 저리 당당하고 예쁠까?

가을색이 한껏 발하는 연방죽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내면서 오늘의 추억 쌓기를 마무리한다.
○ 동서트레일 9코스를 마무리하면서
오랜만에 동서트레일을 걸었다.
충남 홍성군 덕산면 윤봉길 의사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용봉산 자락을 돌아가는 동서트레일 9코스이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윤봉길 의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의 성장과 짧은 생을 살았던 유적을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25살 나이에 온몸을 바쳐 조국의 광복과 독립에 헌신 애국영웅 앞에 옷깃을 여미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홍성 신경리마애여래입상과 용봉사마애불이 궁금했는데, 용봉산을 처음 올라본 대원님들의 의견을 받드느라 트레일 길을 중간에서 바꾸는 바람에 이번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아쉽다. 다음에 이른 시간 안에 보충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응노생가기념관은 잘 보존되고 있고 현대미술의 거장 이응노 화백의 작품세계를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용봉산을 올라 기암괴석을 다시 만나니 기쁨이 두 배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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