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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역사명품길

2025.10.16. 거창 수승대 - 수승대출렁다리와 Y자 출렁다리 트레킹

by 하여간하여간 2025. 10. 17.

거창 수승대를 둘러보면서


거창 수승대는 전에 여러 번 들렸던 곳이다. 볼 수록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위천이 월성, 황점, 북상의 물줄기를 모아 위천면으로 흘러들 때 금원산-기백산과 호음산 사이의 골짜기가 협곡을 이루고 그 수려한 협곡사이를 돌고 돌아 수승대에 도달한다.


화강암 암반 위로 깨끗하고 청정한 위천이 유유히 흐르고 계곡 주변에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어우러진 풍광은 가히 천하동천이라 할 수 있다.


요 며칠 가을비가 많이도 내렸다. 추수를 앞둔 농부의 마음은 타들어가도 전국 유명산의 계곡에는 계곡물이 철철 넘친다.

거창 위천면 수승대관광지 주차장에 주차하고

수승대트레킹길을 따라 수승대로 향한다.

◎ 거창 수승대(명승 제53호)
심산유곡의 산수를 즐기다.

수승대는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이름난 '안의삼동*'의 하나인 원학동에 위치한 명승지이다. 화강암 암반에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국의 시인 묵객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기며 즐겨 찾았던 곳이다.

*안의삼동 :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

이곳은 신라. 백제 간 국경 지대였던 당시, 사신이 떠날 적에  안위를 걱정하며 근심을 보냈기 때문에 '수송대'라 하였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이 일대의 빼어난 경 관이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 하기 때문에 '수송대'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이후 1543년(중종 38).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이웃 영승마을에 내방하였다가 수송대를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급한 정무로 떠나면서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 여겨 수승대로 바꾸고 오언율시를 남김으로써 '수승대'로 불리게 되었다.    

거북바위 벽면에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시. 갈전 임훈(1500~1584)과 요수 신권(1501~1573)의 화답 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이름난 학자들이 수승대의 경치와 감회를 노래한 시 및 25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수승대는 거대한 거북바위와 구연, 섬솔을 중심으로 연반석, 장주갑, 돌대구멍 등 자연경물 및  구연서원 관수루, 요수정, 함양재 등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우리나라 전통 명승의 정수를 부여주는 곳이다.

정부는 이 일대를 2008년 12월 26일 국가지정 명승 제53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원학동은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알려진 ‘안의삼동’ 중의 하나다.

안의(安義)는 오늘날 함양군과 거창군의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줄기의 동쪽에 자리한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은 매우 험준한 지세를 형성하고 있다.

원학동은 위천을 따라 월성계곡의 아래 지역에 위치한 동천이다.

조선시대에 동은 오늘날과 같은 행정지명이 아니라 동천을 의미하는 글자로 맑은 계류가 흐르고 산수가 아름다우며 경치가 좋은 계곡을 뜻하는 용어로 쓰였다.

이러한 원학동천의 중심에 바로 수승대가 자리하고 있다. 수승대의 계곡은 덕유산에서 발원한 갈천이 위천으로 모여 구연(龜淵)을 이루면서 흐르는 물길이 만들어 놓은 비경이다.

수승대는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의 가운데 위치한 거북바위(龜淵岩)가 중심이다.

계곡의 건너편에는 요수정, 계곡의 진입부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과 서원의 문루격인 관수루(觀水樓)는 요수정의 반대쪽에 마주하고 있다.

요수와 관수는 모두 계곡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즐기는 풍류의 멋을 음유하는 말이다.

요수정과 관수루에서는 거북바위가 위치한 수승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승대 주차장에 주차하고 위천을 따라 수승대로 향하다 보면 첫 번째 문이 나온다.

요수신선생장수지지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신권(1501~1573)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지냈던 곳이라는 요수신선생장수지지라는 문이다.


신권(1501~1573) 선생은 거창 위천면 황산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거창, 호는 요수이다. 일찍이 벼슬은 남에게 받은 것이고, 내게 간직된 인품은 하늘이 준 것이니 어찌 내게 있는 것을 버리고 남에게 있는 것을 구할 것인가? 하고 숨어 살면서 안빈낙도에 힘썼다.


1529년(중종 25) 수승대 일대를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쓰는 장소로 정해, 함양재와 요수정을 건립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썼다.

◎ 거북바위


거북바위는 수승대에서 가장 중요한 경관 요소다. 구연대, 또는 암구대(岩龜臺)라고 하는데, 높이는 약 10m, 넓이는 50제곱미터에 이른다.


구연대라는 명칭은 마치 바위가 계류에 떠 있는 거북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비록 키는 작지만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노송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는 거북바위에는 수승대의 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는 많은 글들이 새겨져 있다.

퇴계 이황이 이곳을 수승대라고 이름 지을 것을 권한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라는 시와 이에 대한 갈천 임훈(林薰)의 화답시 〈갈천장구지대(葛川杖廐之臺)〉, 더불어 옛 풍류가들의 시들로 가득 차 있다.

◎ 수승대 너럭바위


너럭바위에 물이 넘쳐흐른다. 평상시에는 너럭바위가 훤히 보이지만 오늘은 요 근래 내린 비로 계곡 수량이 많아 너럭바위는 물에 잠겼다.

수승대는 영남 최고의 동천(경치 좋은 곳)으로 이름나 많은 시인묵객과 선비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 명소이다.


특히 물 가운데 놓인 너럭바위에서 시회를 열어 학문과 풍류를 즐기고 여름에는 탁족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곳곳의 자연물에 세필짐, 연반석, 장주갑 등의 이름을 지어 그 뜻을 더하였다.

세필짐(洗筆㴨) : 졸졸 흐르는 물에 붓을 씻는 곳
연반석(硯磐石) : 자연반석 벼루, 먹을 갈던 곳
장주갑( 藏酒岬) : 자연석 술동이로 술을 부어 놓은 곳 

◎ 구연서원과 관수루

수승대의 동쪽에는 구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요수 선생이 1540년(중종 35)에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1694년(숙종 20) 구연서원으로 명명되었는데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 등이 배향되어 있다.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는 1740년(영조 16)에 세워졌다.

관수(觀水)는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등장하는 문구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흘러간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며 물의 속성을 강조한 글이다. 군자의 학문은 웅덩이를 채우는 물과 같아서 한 웅덩이를 가득 채운 후 비로소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학문의 방법을 담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동천의 계곡에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물을 관조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 심오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 요수정

계곡의 건너편에는 벼슬보다는 학문에 뜻을 둔 학자로 향리에 은거하며 소요자족했던 요수 신권(愼權, 1501~1573)이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던 요수정(樂水亭)이 서 있다.

이 정자는 구연대와 그 앞으로 흐르는 물, 뒤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수승대의 경관을 동천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요수는 아름다운 원학동 계곡에 살던 신권의 성정을 짐작하게 하는 정자의 명칭이다. 요수는 《논어》의 〈옹야(雍也) 편〉에 나온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글로 옛 선비들이 심산유곡의 산수를 즐기며 늘 마음에 두었던 문구다.


요수정은 1542년 구연재와 남쪽의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중건한 뒤 다시 수해를 입어 1805년 현 위치로 이건 했다.

◎ 수승대 출렁다리

거창 수승대를 탐방하고 최근 설치해 놓은 출렁다리로 향한다.

지자체장들이 지역마다 출렁다리를 설치해 놓아 탐방객으로서는 좋은데 모든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출렁다리를 설치하는 바람에 출렁다리 세상이 되었다.

이곳에도 출렁다리가 있다. 수승대트레킹길을 만들면서 새로 출렁다리를 설치하였다.

조금은 힘이 들지만 관광객들에겐 수려한 원학동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수승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출렁다리를 꼭 올라보고 가는 곳이 되었다.
    

출렁다리를 돌아 이제 다시 수승대로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시원하고 싱그런 소나무향 그윽한 힐링 산책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수승대교가 비치고

수승대교를 지나

유유히 흐르는 위천 물결 따라 '흐르는 물은 물 웅덩이를 다 채우고 흐른다'는 선비나 학문한 사람의 자세에 대한 요수선생의 가르침을 되뇌며 오늘 수승대 탐방을 마무리한다.

거창 우두산 Y자 출렁다리

시간이 조금 남아서 이왕 거창에 왔으니 거창의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우두산 Y자 출렁다리를 탐방하고 가자고 한다. 우두산을 산행할 때 늘 왔던 곳이지만 오늘은 관광 모드로 편한 마음을 가지고 Y자 출렁다리로 향한다.

견암폭포는 고견 폭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계곡 상류에 위치한 절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폭포에서 약 1km 상류에 있는 고견사는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효가 절을 창건할 때 전생에서 와 번 곳이라 해서 고견사라 불렀으며 종종 '견암'이나 '견암사'라고도 불렀다.

견암폭포

기념 한 장

견암폭포 앞에서

함께한 대원님들과

Y자 출렁다리

Y자 출렁다리

가조 3경 용소

가조면 수월리 가정곡 들머리에 위치한다.
길이 100m에 이르는 협곡의 바위틈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이룬 소이다.
물이 깊어 용이 산다고 하여 용소라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명주실을 풀면 해인사 용소에서 나온다고 전한다.
가조고을  경암 변종식은 아래와 같은 시 한수를 남겼다.

이 못은 잠용의 변화로 이루어져
바람과 구름 제 뜻데로 오고가는 소리일세
가뭄들면 공사간에 기우제를 올리던 곳
단비 내려 세정이 흡족하였다네

기념 한 장

우두산 출렁다리와 용소

급제바위

거창 수승대를 탐방하고 우두산 Y 자 출렁다리를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산행이라기보다 관광을 하는 기분으로 여유롭게 거창 탐방 트레킹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