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 : 2024.06.09.(일)
◎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 산행 구간 : (비탐구간 : 양정-작전도로-도솔암)-음정-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도마리- 산내 실상사
◎ 지리산 칠암자 순례 산행 코스
지리산 7암자 순례길은 도솔암에서 부터 시작하여 실상사 까지 7개 절집을 지나는 산행길이다. 최근에 도솔암 구간은 비탐으로 국립공원에서 지정하여 놓았다. 이유는 반달곰이 새끼를 낳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다. 반달곰 가족 번식과 지리산 생태를 복원하는 일인 만큼 국립공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도솔봉 순례는 아쉽지만 생략하고 우리는 음정에서 영원사를 들려 상무주암을 거쳐 문수암에서 점심을 먹고 삼불사를 향하던 중 길을 놓치고 말았다. 도마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너무도 선명히 잘 정비되어 있어 선두가 마냥 하산을 하는 바람에 삼불사와 약수암을 놓치고 그냥 도마리로 하산하여 버렸다. 산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기에, 일어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 아니던가?
다만 삼불사와 약수암 기록은 선두 산우님들의 사진을 활용하여 여기 정리하였으며, 문수암에서 도마리로 바로 하산하는 바람에 마지막 실상사를 자세히 들려다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은 것은 나로서는 더 값진 산행이 되었다. 늘 지리산 7암자 순례 산행을 하였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실상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던 참이였다.
◎ 지리산 칠암자
지리산 주능선 삼각고지(1,462m)에서 북서로 뻗어내리며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이 지리산 중북부능선인데, 중간에 삼정산이 솟아 있어 일명 삼정능선(1,225m)이라고도한다.
이 능선이 품고 있는 도솔암(약 1,165m), 영원사(약 895m), 상무주암(약 1,162m), 문수암(약 1,060m), 삼불사(약 990m), 약수암(약 560m), 실상사(약 330m) 등 7곳의 암자와 사찰을 흔히 지리산 칠암자라 부른다.
도솔암과 상무주암, 문수암 등은 영원사에 딸린 암자들로 수행 정진하는 청정도량답게 고산(高山)지대의 능사면과 기암절벽을 등지고 천왕봉을 향하고 있어 앞에 막힘이 없어 조망이 뛰어나다.
삼정산능선 끝자락인 772봉 북동 방향의 아늑한 능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약수암은 실상사에 딸린 암자로 보광전의 목조탱화(보물 421호)가 유명하다.
◇ 도솔암
지금은 비탐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2019년에 들렸을 때 사진으로 대신한다.
영원사의 속암으로 이곳은 영원사에 유명한 방광사리탑을 남긴 청매스님의 수도처로 유서가 깊다.
영원사와 함께 전란에 잿더미가 됐다가 최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당이 넓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의 조망이 일품이다.
◇ 영원사 靈源寺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하며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으며. 이 절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도를 닦은 이름난 고승들도 많았다고 전하며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雪坡), 상언(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은 여순 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곳까지 찾아와 절터를 아지트로 삼으면서, 건물 등을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면서 부터다. 그 후 1971년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 상무주암 (上無住庵 )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정상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우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 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기도 하다.
◇ 문수암 文殊庵
문수암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을 모신 암자이다. 어느 때는 문수동자로 청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계시를 하고 사라지는 일화가 전국 각지에 많다.
석축 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다.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 있는 곳이다.
◇ 삼불사
비구니 사찰로 절이라기 보다는 깊은 산속 산골마을의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으로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 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도랑으로 여념집 모습을 하고 있는 고지대의 절이다.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는 15분 정도면 찾아갈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다.
◇ 약수암 藥水庵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 지리산 줄기의 작은 산중턱 1㎞ 지점에 위치해 있다.
1937년에 함양(咸陽)의 불자 한정희(韓貞熙)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의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실상사 實相寺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지리산 칠암자 순례 산행 이야기
새벽부터 설렌 마음은 산꾼만의 설렘인가? 오랫만에 지리산 자락 숲길로 접어든다는 생각에 마치 고향 찾아가는 기분으로 들떠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꼭두새벽 6시 30분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먼저 온 낮익은 산우님들이 많다. 오랜만이다. '영산강을 걷는다.' '한라산둘레길을 걷는다.' 하느라 요글래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 했기에 더욱 반가운 얼굴들이다.
남원시 산내면을 거처 함양군 마천면 음정에 아침 8시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상큼하고 맑고 깨끗하다. 답답한 속이 확 뚫린다. 산중 공기는 다르다. 특히 지리산 공기는 그 깊이가 다르다. 나만의 느낌일까? 오랫만에 안겨본 여인의 속살 같은 상큼함으로 다가온다. 물소리가 청량하다. 음정 마을 돌담을 타고 기어 오른 담쟁이가 반갑게 손짓 한다. 그립고 정겨운 고향 같은 풍광에 마음 한켠 진하고 아늑하다. 풀 냄새가 온 몸을 휘어 감고 도는 이 정겨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늘 그리운 지리산 자락에 안기면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영원사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오늘 날씨는 화창하지도 않고 비가 오지도 않다. 약간은 흐리면서 선선하다. 이럴 때 지리 계곡을 타고 새털 같은 안개가 하늘로 피어 오른 풍광은 천지신 만이 창조해 내는 참으로 아름다운 걸작이다. 지리계곡에서만 볼 수 있는 찬연한 아침 풍광을 바라보며 고사리 밭을 지난다.
영원사를 들려 가기 위해 깊은 산중으로 접어 든다. 오늘은 지리산 삼정산 줄기에 자리 잡은 7개의 절집을 순례하는 산행이다. 어찌하여 지리산 삼정산 자락에 유독 많은 절집이 있을까? 우선은 지리적으로 절집이 들어설만한 공간이 있어서 일 것이고, 주변 풍광이 수도하기에 고즈넉하고 조용하며 산중이 깊고 청량하기 때문이리라.
지리품에 안기면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만의 습관일까? 잘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를 생각한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 다르기에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 어렵지만 나이 들면 자동적으로 알아지는 삶의 이치를 그리 아웅 다웅 잘 난척 못 난척 하였을까? 사랑, 배려, 행복, 여유, 정의와 평화 등 온갖 인간이 가지는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마음의 긴 여정을 들여다 보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는데 실제 삶속에서 그리도 애타게 안달 복달 하고 사는지?
삼정산 능선길 어느 골짜기에 흐르는 계곡물이 청량하기 그지 없다.
푸르른 녹음은 6월의 태양을 머금고 나날이 짙어지고 그리운이 추억 실어 마음 둥실 따라 가니 그 곳이 어디인가?
저만치 아른 아른 잡힐 듯 잡힐 듯 숙명 같은 그림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는 그 사연에 말 없이 따라 오네.
그가 처음부터 산을 좋아 산속으로 들어 온 것은 아니였다. 그는 여유로운 집안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부족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형제들의 관심속에 건강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회지로 떠날 때 푸른 꿈을 안고 광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시골을 떠나 그 화려한 도회지 생활을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하루 하루 변하는 세상을 따라 잡기 위해 정신없이 도시 사람이 되어 갔다. 청년의 가슴에는 거대한 희망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꿈이 컸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하리라는 굳은 신념으로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여 자격증도 취득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해 열심히 직장 생활하다가 창업에 뜻이 있어 대기업을 사직하고 자동차 부품 가공 제조업 회사를 꾸려, 한 때 년 매출 10억원을 달성하는 등 잘 나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차도 외제로 바꾸고 그럴사한 집도 마련하고 매주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장을 들락거리며 개발도상국의 신흥 상류사회를 구가하며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나날이 희망이고 행복이였다.
그럴 때 쯤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 오붓한 데이트에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시절은 꿈속 같이 행복한 나날이였다. 세상이 온통 내 것 같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 같았다. 결혼을 하였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삶의 연속이였다.
오늘 산행에 동행한 원산우회 회원님들
그러던 어느날 나라가 빚덤이에 앉아 나라 빚을 못 갚고 부도가 나는 바람에 온통 난리가 나버렸다. IMF는 긴급 달러를 빌려주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나라 경제가 온통 말이 아니게 허물어져 갔다. 수 만개의 회사가 부도가 나고 실업자가 속출하고 소상공인은 거리로 내 몰렸다. 온 국민이 고통의 나날을 감수하며 금모으기를 하는 등 IMF를 극복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부도가 나버린 회사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의 회사도 거대한 국가부도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40년을 힘써 세워 온 회사가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나고 은행 빚과 급전으로 빌려 쓴 사체가 빚으로 남아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납품이 안된 것도 아니다. 모회사가 망하니 그 아래 하청 업체가 줄도산이 난 것이다. 나의 잘 못도 아니다. 내가 경영을 잘 못한 것도 아니다. 내가 낭비를 일삼아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도 아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억울하고 환장하겠다. 어떻게 하지. 그동안 사용한 어음을 비롯한 빚쟁이들은 날마다 전화질이고 틈만나면 집으로 찾아와 죽이니 살리니 협박이다. 절망적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죽어버리거나, 어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영영 숨어버리는 것이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며 못들을 소리를 듣고 협박을 당하고 나면 정말이지 죽어버려야 겠다고 맘 먹고 죽으려고 몇 번을 시도 하였지만 질긴 것이 목숨인가 차마 처자식이 눈앞을 가려 극단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거리를 헤메고 있었다.
그럴 쯤 나를 살려준 것이 산이다. 어느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무작정 이름도 모른 깊은 산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마음이 확트인 조망이 있는 어느 암자에 한 스님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바다도 아니고 호수도 아니고 강가도 아닌 이 깊은 산중에 왠 낚시여! 참으로 진기한 모습에 숨을 죽이고 한참을 바라다 보았다. 스님은 빈 낚시대를 끌어 올리며 '와따 실한 놈이 잡혔네' 하며 연신 즐거워 하고 있었다.
하도 신기하여 가만히 가 스님께 물었다.
'스님 낚시로 고기를 잡으셨나요'
'응, 이곳은 낚시가 참 잘 되는 곳이다네'
'제 눈에는 고기가 안보이는데요'
'자내가 보는 고기는 어떻게 생겼는가?'
'네, 강이나 호수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사는 고기입니다'
'허허, 자네는 자네가 보고픈 고기만 보고 있군. 자네가 보는 고기는 자네의 고기고, 하늘이 보는 고기는 하늘의 고기고, 구름이 보는 고기는 구름의 고기가 있다네. 나는 지금 나의 고기를 낚고 있네'
'스님, 스님께서 낚고 있는 고기는 어떤 고기입니까'
'허허, 오늘은 세상만사 시름을 다 짊어지고 허우적 거린 대어가 한마리 스멀 스멀 기어 오르길레 그놈을 낚아 보려 하네. 그럼 자네는 무슨 고기를 낚고 싶은가?'
'네 스님, 낚을 수만 있다면 돈을 낚고 싶습니다. 제 회사가 나의 잘못도 아닌데 나라가 부도나는 바람에 망해서 빚덤이에 앉아 살맛이 안납니다.'
'그럼 이리와서 낚시대를 드리우소. 낚시대를 드리워야 돈을 낚든지 할 것 아닌가'
'스님 농담할 기분이 아닙니다. 어떻게 허공에 대고 낚시대를 기울려 돈을 낚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싫으면 그만 두고'
참으로 싱거운 스님도 있네. 죽지 못해 산을 찾는 사람을 잡고 농담이나 하고 자빠진 한심스런 스님에게 실망하며 가던 길을 가려다가 생각하니 딱히 산행 목표도 없는 산길에 할일도 없는데 그냥 스님이 하라는데로 밑져야 손해 볼 것도 없는데, 재미 삼아 낚시나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 낚시대를 주세요.'
'왜, 낚시를 한 번 해 볼려고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밑져야 본전인데, 낚시나 한 번 해보고 가렵니다.'
'잘 생각했네 밑져야 본전인데, 그럼 한 번 해보소'
'자네 저기 산능성이에 흘러가는 구름이 보이는가?'
'네 스님,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저 구름이 어떻게 생겼다. 어떻게 사라진지 보이는가?'
'아이 참 그것은 기온차가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면 공기 중 수증기가 응결하여 물방울이 되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 구름이 되었다가 또 기온차로 이동하다가 이슬점 이상이 되면 다시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요.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것입니다.'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말이야 그 기온차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 그거야 태양의 힘이지요. 태양이 비치면 열을 받아 공기가 더워지고 태양 빛이 없으면 공기가 차가워져 기온차가 생기지요'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말이야 태양 빛을 비추고 안 비추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거야 태양 빛은 변함없이 비추고 있지만 지구상에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면서 비추고 안 비추고 하는 것이 하나 있고, 지구가 자전하면서 밤낮이 있어 낮에는 태양이 비추고 밤에는 안 비추고, 지구가 공전을 하는 바람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기온차가 심하지요'
'자네 말이 맞네. 그럼 구름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은 태양 때문인가? 지구 때문인가?'
'그거야 지구 때문이지요'
'그럼 지구에 구름이 생기고 밤 낮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것은 어떤 힘에 의한 것인가?'
'그거야~ 그거야~ 딱히 잘 모르겠는데요'
'자네가 보는 고기는 딱 거기 까지네'
'딱히 잘 모르겠지만 밤낮이 있고, 봄여름가을거울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게 하는 어떤 절대힘은 있다는 것은 알겠는가?
'네'
'조금 더 세상 만물의 이치를 살펴보면 수도 없이 많은 현상들이 어떤 절대 힘에 의해 돌아 간다는 것도 유추 할 수 있겠는가?'
'네'
'그 절대 힘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알면 돈도 낚을 수있고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낚을 수 있다네. 자네 부도가 났다고 했는가'
'네'
'자네 때문이 아니고 나라가 부도나는 바람에 회사가 망했다고 했는가?'
'네'
'억울하겠구먼'
'무척 억울하고 죽고 싶습니다. 오늘도 죽지 못해 이곳을 올라오는 중입니다.
'그럼 다시 살나나는 것도 자네 때문이 아니라 나라가 살아나면 살아나겠구먼'
'글쎄요. 나라가 일어나도 이미 망해버린 회사를 어떻게 살려냅니까?'
'세상만물의 현상이 내 의지대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고 어떤 절대 진리에 의해 대부분 돌아간다네. 죽지 말고 버티소. 그럼 곧 회사가 살아날 것일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가 망했듯이 내 의자와 상관없이 회사가 살아난다네.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으면 그리 될 것이니 그냥 잘 버티고 있어 보소'
'네'
뜬 구름 같은 스님의 말이라고 생각해도 회사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마음이 가서 실같은 희망이 용솟음치고 하늘의 뜬 구름 같은 기쁨이 마음속에 이글거리며 주체 할 수 없는 용기가 이상하리 만치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괜히 눈물이 나고 허공에 대고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 내 회사가 살아 날 수 있다.' 한 바탕 포호를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길 바다 같이 편안해 졌다. 주의를 둘러보니 암자와 스님은 온대 간데 없고 텅빈 허공만 맴돌고 있었다.
이상하다. 꿈을 꾼 것 같다. 분명 회사가 살아난다는 말에 나의 마음은 희망으로 용솟음 치고 마음속 기쁨은 바다가 되어 흘렀건만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변했는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고 그냥 텅빈 하늘만 아련하다.
그래, 스님이 나보고 낚으라는 고기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구나. 그 고기를 나에게 물려주고 홀연이 떠나버렸구나. 그래 버터보자. 죽지 말고 버터보자. 죽기 살기로 버터보자. 죽으려고 올라간 산길이 살기 위해 내려오는 산길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라가 빛을 갚고 모회사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옛날의 기술과 신뢰를 잊지 않고 다시 나에게 오더를 준 모회사가 생기고 은행 대출을 받아 회사를 다시 차리고 지금은 다시 옛날의 영광을 찾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그날 나에게 낚시를 드리워 준 절집을 오늘도 오른다.
'그 곳이 바로 오늘 순례하는 문수암이란 곳이다' 라고 후배 한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더듬으며 문수암으로 향한다.
◎ 백초월 스님과 영원사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 스님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불교 독립운동가이시다. 초월스님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년에 출생하셨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셨다. 해인사의 강원과 선원에서 수학을 하셨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셨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과 강백이셨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의 불교 강상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셨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1917)를 주관하셨다. 그 이후에는 용화사(법주사 청주 포고당)에서 포교에 전념하셨다. 이때, 3.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불교계 민족대표이셨던 백용성스님과 한용운스님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시자, 초월스님은 중앙학림에 불교의 독립운동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였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제공하셨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내셨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다. 초월스님은 출옥하신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드셨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시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1939년 10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셨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시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셨고, 안타깝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셨다. 초월스님은 입적하신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던 참다운 보살, 큰 스님이셨다.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에 위차한 진관사 칠성각 보수를 하다 초월스님이 사용하신 태극기와 독립운동 자료가 발견되면서, 초월스님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초월스님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천사, 출생), 함양군(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스님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였다.
◎ 지리산 영원사
지리산은 예로부터 명산(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중에서 그 첫 번째로 영원사는 이 명산 한 복판에 천이백년 전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영원조사께서 창건한 고찰이다. 이곳은 부용,서산,사명,청매조사와 화엄보살인 설파노사 등 고승들이수행 정진하시고 경종을 울려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던 법보 명찰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청매조사께서 수십년 수도하신 도솔 내원궁 같은 도솔암이 있고, 북쪽에는 절송선경인 상무주암이 있는데 이 상무주암은 보조국사께서 김천에서 제일이라고 예찬하셨고, 구곡각운선사는 암송설화를 짓다가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명찰이다. 그 가운데에 자리한 명성고찰 영원사는 여순민중항쟁과 6.25 한국전쟁 때 공비토벌작전수행 중 아군에 의해 방화 소실되어 쑥대밭에 빈터만 남게되었다. 그러던 중 상무주암에서 십여년 용맹 정진하신 던 대일 큰 스님께서 어느 날 조사님의 선동의 말씀을 듣고 큰 원을 세워 초막을 짓기 시작 사십여년을 단신으로 불사를 하시어 오늘에 이르게되었다. 영원사는 특히 109 분의 조사님들 안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절로서 매년 구월 십팔일 지장재 일에 109 분의 영재를 봉행하는사찰로 유명하다.
영원사 중심 절집은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 앞에는 109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셔 놓았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 무량수전(無量壽殿), 극락전(極樂殿) 이라고도 한다.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極樂殿)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다.
◎ 지리산 영원사 109 아미타여래 봉안 연기문
지리품에 안긴 영원사의 고즈넉한 풍광
영원사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바라보면 절집 담장 너머로 지리산 덕평봉에서 내리 뻗는 산줄기가 하늘금을 그리며 여유롭게 다가온다.
저기 짙어가는 녹음은 가만히 두어도 더욱 짙어가고 골짜기 피어오른 뭉개구름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어디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던가? 나와 상관 없이 그냥 짙어지고 그냥 일어났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거늘!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절대 진리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며 끝임없이 변하지만 우주 전체는 변함 없는 무한한 세계가 아니던가!
구름 한 점 일어났다 사라지고, 바람 한 점 불었다가 사라지 듯 인간 또한 우주질서의 한 부분으로 끝임없이 탄생하고 자라고 살다가 병들고 죽어 없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구름이 생겼다 사라진다고 불평하지 않듯이, 바람이 불었다 사라진다고 불평하지 않듯이, 우리네 인생도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다고 불평할 것이 없다. 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 것은 모두가 절대 진리인 우주가 알아서 한 일이니 우리네 인생도 주어진 시간 하늘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그저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의 경지가 아닐까 한다.
영원사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빈 물병에도 생수를 가득 채운다
◎ 영원사 방광사리탑
◎ 함양 영원사 승탑군
영원사에 남아 있는 부도(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는 모두 5기로 부도의 주인임을 밝혀주는 승려의 호가 탑신에 새겨져 있다. 부도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좌측부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 탑 순으로 가로로 세워져 있다. 부도의 위치는 약간의 선후 관계를 두었는데, 가장 뒷쪽에 있는 것은 좌측에서 두번째 부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좌측에서 네 번째, 다섯번 째, 세번째, 첫 번째 순으로 정성하였다.
부도 가운데서는 설파당이 규모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의 주인은 조선 후기 화엄학의 대가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있는 영각사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겨 영각사에 봉헌한 설파상언(1707~1791)대사이다. 나머지 4기의 부도는 주인들의 생존 연대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 삼정산 능선 빗기재를 향하여
영원사와 헤어지고 다시 삼정능선 빗기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상당히 긴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 삼정산 능선에 올라서면 빗기재 이정목을 만난다.
붕어님이 힘겹게 짊어지고 올라 펼쳐 놓은 수박을 보는 순간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배려를 가지고 있구나! 감히 누가 이 험준한 산길에 수박을 통체로 짊어지고 올 생각을 하겠는가? 수박은 수분이 전부여서 무척이나 무겨운 식품이다. 큰 맘 먹지 않고는 상상이 안 되는 깊은 배려이다.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산우님들을 생각하며 준비하였을 거이고 산우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하며 무겁게 짊어지고 왔을 붕어님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붕어님이 문수보살이다.
삼정능선 빗기재 이정목 앞에서 기념 한 장을 남기고
상무주암을 향해 가는 사이 만난 기암(앞)
상무주암을 향해 가는 사이 만난 기암(뒤)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은 삼정산 능선길에서 뻗어 내린 깊은 계곡에 쌓여 아슬 아슬한 산길을 걸어간다.
상무주암으로 가는 사이 삼정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있다. 삼정산은 비탐지역이다. 그러나 대다수이곳을 지나는 산꾼은 삼정산을 거쳐 온다. 그러나 나는 삼정산 정상 가는 것을 생략하고 바로 상무주암으로 향한다.
상무주암에 도착
상무주암 절집안으로는 출입금지이다. 탐방객 출입이 수행 중 방해가 되어 출입을 금지하나 보다. 스님의 수행에 행여 방해가 될까 숨 죽여 조용 조용 상무주암을 지나 간다.
상무주암 스님들이 비탈진 급경사 공지에 손바닦만한 채소 밭을 일구어 정성스럽게 채소를 가꾸고 있다. 한눈에 정성이 느껴지는 관경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수행하는수행처이기도 한 것 같다. 숙연해 진다. 지리산 화엄사에 웅장하고 찬란한 절집과 풍요로움에 비한다면 이곳은 얼마나 소박하고 왜소한 수행처인가? 진리는 이렇게 어렵고 가난하고 소박한 곳에서 꽃이 피어나나 보다. 상무주암에서 바라 본 지리산 천왕봉은 구름속에 숨어버렸다. 참으로 환상적인 조망을 볼 수 있을 텐데 오늘은 허락하지를 않는다.
상무주암을 지날 때 갈증을 달래주는 시원한 생수 한모금을 마실 수 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천연수의 맛이 이럴까? 깨끗하고 청량하고 시원하여 마시는 순간 무슨 보약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상무주암 생수로 목을 축이고
상무주암 앞을 지나면서 곧게 자란 소나무 군락 앞에서 함께 동행한 대원님을 담았다. 저들도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마음이 늘 청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길 기원한다.
상무주암에서 문수암으로 가는 산길은 지리 삼정산 능선 자락을 돌고 돌아 고준령을 넘고 깊은 하산길을 헤쳐 내려 간다. 문수암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관중 군락지를 만나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가슴이 확트인 조망이 시원한 문수암이 나타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삼봉산과 -백운산- 금대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자락이 아득히 보이는 명당 중에 명당에 자리 잡은 문수암이다.
석축 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다.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 있는 곳이다.
거대한 바위를 뒤로 하고 아담하게 자리 잡은 문수암
문수암에 도착하여 문수암 아래 너른 공터에서 점심을 한다.
예전 문수암 모습
예전에는 이렇게 허술한 양철지붕의 전각이 2동 있었다. 바위 앞에 있는 전각이 문수암이고 저기 쓰러져가는 전각은 요사체로 사용하던 것 같다. 지금은 저 전각을 철거하고 넓은 공터를 만들어 놓았다. 문수암 전각도 새로 단장하여 그 모습이 절집 같이 정갈하다.
문수암 해우소
문수암
천명의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동굴이 있는 거대한 바위를 뒤로 하고 석축을 쌓아 만든 아담한 곳에 문수암이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삼정산 능선이 병풍이 되고 앞으로는 거칠 것 없이 확트인 조망이 수행자에게 진리의 세계를 열어준 것 처럼 기가 막히게 수행하기 좋은 곳이다. 참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암자이다.
문수보살을 주불로 섬기는 암자이리라.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는 문수사리의 준말로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부처 사후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보현보살과 더불어 비로자나불의 양 협시보살로 등장하거나 대웅전 좌측에 봉안하는데, 대체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643년 신라의 고승 자장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에 적멸보궁을 건립하여 이곳을 문수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만들면서 문수신앙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일반적으로 절집의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에는 주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에는 문수보살과 우에는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거나 또는 지장보살을 협시로 보시기도 한다. 문수암은 주불을 문수보살을 모시는 암자이다.
문수암 금낭화
문수암에는 금낭화가 참으로 예쁘게 핀다. 개화시기가 지나서 많은 꽃망울이 시들었지만 몇 송이의 아름다운 금낭화를 만날 수 있어 천만 다행이다. 청명하고 깨끗한 곳에서 피어서 일까? 꽃 색깔도 예쁘고 그 모양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처음 보았을 땐 푹 빠져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년 석가탄신 일에 지리산 칠암자 순레길을 산행하곤 했다.
자세히 보아라. 순수하고 청순하고 청초롬하고 귀엽고 우아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조선 왕비의 자태가 아닌가? 그 언젠가 내 마음의 사랑하는 그리운 이의 자태가 저러했거를!
문수암 금낭화에 푹 빠져 한참을 둘러보고
문수암 금낭화
문수암에서 바라 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봉산과 백운산 - 금대산 라인
참으로 조망이 확트이고 이렇게 마음이 시원할 수가 없다. 지리산 고산준령을 넘어 험준한 산길을 헤쳐 걷다가 깊고 깊은 지리산 산골을 헤쳐 걸어 이곳 문수암에 이르면 하늘이 열리고 확 트인 세상을 만날 수 있으니 이곳이 천당이 아니고 어느곳이 천당이랴. 참으로 수행하기 좋은 곳이다.
도마리로 하산하며 만난 생명이 살아 있는 지리 순례길
도마리로 하산하며 만난 생명이 살아 있는 지리 순례길
도마리로 하산하며 만난 생명이 살아 있는 지리 순례길
도마리로 하산하며 만난 생명이 살아 있는 지리 순례길
문수암에서 도마리로 바로 하산하는 바람에 삼불사로 가는 길을 놓쳤다. 문수암에서 삼불사 까지는 15여분이면 간다는데, 아뿔사 잘 정비된 하산길을 따라 내려 오다 보니 삼불사로 가는 길을 놓치고 이곳에서 삼불사로 오르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곳에서 삼불사를 오르려면 850m 더 올라야 하는데, 어찌하나 그냥 내려갈까? 올라갈까? 대부분 대원님들이 그냥 하산하자고 한다.
그래 오늘만 날이냐 다음을 기약한다. 차라리 빨리 하산하여 늘 보고픈 실상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산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기에, 일어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 아니던가?
하산길에 돈을 많이 들려 만들었을 민가를 지나서
도마마을로 하산한다.
도마1교를 지나 곧장 가면 실상사로 가는 순례길을 따라가지만, 우리는 도마리에서 기다리는 산악회 버스로 향한다.
도마리 노인정
도마리 마을 버스 정류장을 지나서
도마리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악회 버스를 타고 실상사로 출발한다.
◎ 실상사 탐방
실상사 탐방을 자세히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여기서는 실상사의 주요 부분만 소개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절집이야기에서 더 다루고자 한다.
◎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에서 만난 야샹화
금낭화
영원사에서 만난 자주닭개비
꿀풀
인동초
노루오줌
엉겅퀴꽃
돈나물꽃 / 신기하다. 기린초와 비슷한데 돈나물에서 꽃이 핀 것은 처음 본다.
고사리
호두
금개국
개망초
감자꽃
오늘 지리산 7암자 순례 산행을 마무리 한다. 도솔암이 아쉽고 삼정산 정상이 아쉽고 삼불사와 약수암이 아쉽지만 실상사를 자세히 살필 수 있어 다행이다. 문수암에서 확트인 조망이 압권이였다. 빗기재 까지 수박을 통체로 짊어지고 온 붕어님이 문수보살이였다. 늘 걸어도 어머니 품속 같은 지리 품에 안긴 행복한 산길이였다.
영원사와 도솔봉이 여순사건과 6.25 한국전쟁 당시 국경의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전소되었다는 사실 앞에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전쟁 상황이라도 한 민족의 문화재는 절대로 손실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차라리 적을 놓치는 일이 있드라도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한 전쟁수행 목적이 될 것이다. 상대나라 문화재도 마찬가로 소중하게 지켜주어여 한다. 하나의 문화재는 문화재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오랜 역사의 시간이 함께하기 때문에 한 번 손실된 문화재는 그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긴 시간을 잃어버린 꼴이 되고 잃어버린 시간은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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