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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물줄기/영산강 트레킹

2024.04.14. 영산강 트레킹 9구간(가마골 입구 - 용소 - 치재산 - 용추사 - 용연폭포 1,2 - 가마골)

by 하여간하여간 2024. 4. 15.

1. 일자 : 2024.04.14.(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트레킹구간 : 영산강 시원 가마골 입구(가족소풍캠핑장) - 용소 - 치재산 정상 - 용추사 - 용연폭포 1,2 - 가마골 입구 

 

영산강트레킹 9구간 산행 후기를 정리하는 데 자료와 사진을 제공해 주신 김명수 회장님, 박옥현 노무현재단 공동대표님, 임진택 산행이사님, 이병두 산행이사님과 예쁜 야생화 해설을 해주신 박미경 숲해설가님께 심심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4. 트레킹 소감

 

 

오늘은 영산강트레킹을 완주하는 날이다. 목포 하구언에서 시작하여 담양 용소까지 350리 호남 젓줄을 걷는 영산강 트레킹을 완주하는 날이다. 우리나라 5대강 줄기를 걸어보고 싶은 소망 중 첫번째 영산강 줄기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가슴이 벅차다. 용소가 있는 가마골을 거쳐 호남정맥이 흐르는 용추봉까지 계획하였으나 대원님들에겐 무리한 욕심이여서 치재산에서 용추사를 들려 용연 1, 2폭포를 만나고 마무리 하였다. 4월 초록이 온 산하를 물들이고 하늘도 청명한 트레킹 하기 좋은 봄 날 행복한 발걸음으로 사뿐 사뿐 걸었다. 

 

 

 가마골은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산우님들과 참으로 많이도 가보았던 곳이다. 한여름 이곳에 발을 담그고 가족들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용소에 대한 설화가 재미있다. 옛날 원님이 가막골 경치에 반해 가막골로 유람을 할려 하기 전날 밤 백발노인이 나타나 내일 승천하려 하니 가막골로 행차를 하지 말라 이르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원님은 가마골로 행차하였고 지금의 용소에 도달하는 순간 거대한 용이 하늘로 승천하다 그만 중간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물론 원님도 같이 죽었다. 그 후 사람들은 용이 하늘로 승천한 못이다 하여 용소라고 하였단다. 영산강의 시원은 용으로 시작하여 영산강의 끝자락 목포 하구언 남악에 오룡리가 있고 영산강은 용으로 끝난다. 결국 영산강은 용이 담양 용소에서 나와 350리 호남 젓줄을 꿈틀거리며 적신 용의 강이다.

 

 

작년 10월 억색가 흐드러지게 은빛 물결을 연출할 때 목포 하구언에서 출발하여 겨울에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에 올랐고 다시 따스한 봄과 함께 영산강 350리를 모두 마무리하니 개인적으론 감회가 깊다. 영산강 트레킹 9구간을 아무 사고 없이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은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하기엔 힘든 일정이다. 함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계획하고 준비하고 앞서 리딩 해준 김명수 회장님을 비롯한 지오트레킹 임원님들께 감사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5대강 물줄기를 따라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간의 산따라 물따라 이야기가 더욱 풍성했으면 좋겠다. 영산강을 오르면서 호남의 자연 생태 환경, 지리, 역사, 인물, 문화, 고을 이야기 등 등 소소하고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여기 담을 수 있어 더욱 감회가 깊다. 

 

 

5. 트레킹 이모저모

 

가마골 입구 

 

단체 인증

 

연록색 초록이 온 산하를 물들리고 있는 좋은 봄 날

 

가마골로 향한다. 오늘이 목포 하구언에서 담양 가마골 용소까지 350리 영산강 트레킹을 완주하는 날이다.

 

어찌 기쁘지 않겠느가? 가마골 입구 부터 신선한 공기가 상큼하다. 발걸음이 사뿐 사뿐~

 

3일전 까지만 해도 활짝 핀 벗꽃은 모두 지고 이제는 연초록 세상이 되고 있다. 나는 이 연초록 새 잎을 좋아 한다. 어린 아이 처럼 순수하고 싱싱하고 생명력을 갖고 하루 하루 자리기 때문이다.

 

용추사로 오르는 입구 표지석! 나중에 용추사를 들려 오려 한다. 예전엔 이곳 가마골을 지날 때 용추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산행을 하고 절집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자세히 살펴보고 정리하면서 가마골에도 절집이 많고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들의 활동 본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아픈 사연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따라 용추사가 새롭게 다가 온다. 어떤 절집일까? 

 

용추사로 가는 길을 뒤로 하고 가마골로 곧장 진행한다.

 

보리수 꽃이다. 많이도 피었다. 어릴적 동내 어귀에도 보리수 나무가 있었다. 포리똥이라고 불렀다. 가을에 붉으스래 열매가 익으면 떱떠름 하면서도 달작지근한 맛이 우리에겐 최고의 간식 거리였다. 하얀 보리수 꽃이 아름답다.

 

해 뜨는 집이 문을 닿았다. 혹시 여름에 다시 장사를 하려나? 가마골로 산행할 때 꼭 이곳 해뜨는 집에서 오리탕과 백숙을 시키고 하산 후렴을 하던 추억이 새록 새록 한 곳인데~ 세상이 많이 변해가 듯 이곳 장사 경기도 예전 같지 않나 보다.

 

붉은 겹벗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가마골을 지나서

 

단풍나무에도 새싹이 부지런히 피워나고 화려한 노오란 봄꽃은 산꾼을 반긴다. 봄기운에 만물이 바쁘다. 올 가을엔 화려하게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하겠지!

 

가마골 생태공원 버스 정류장과 가마골 관광 안내도를 지나

 

가마골 청량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가마골 계곡의 싱그러움도 감상하고  

 

올라야할 가마골을 향하여 들뜬 발걸음을 즐겁게 제촉한다.

 

관리사무소

 

용소를 지나 3등산로 입구에서 쉬어바위를 들려 치재산 정상을 찍고 정광사 입구를 거쳐 용추사 갈림길에서 용추사를 탐방하고 용연제2폭포와 용연제1폭포를 거쳐 다시 가마골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를 잡았다.

 

담양 가마골은 국가지질공원이며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질질공원 지질명소에 포함된다.

 

 

◎ 담양 가마골

 

 - 중생대 백악기 말의 진안분지에서 일어난 산성질 화산 활동을 잘 보여주는 지질명소

 - 절리와 단층, 둘서렁(테일러스), 폭포 및 폭호 등도 함께 관찰할 수 있어 지질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평가됨

 - 울창한 수림,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이 지질명소를 따라 분포하고 있어 경관적 가치가 높고, 6.25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이 최후까지 저항하던 항거지로도 알려져 있어 역사적 가치도 높은 지질명소

 

◇ 지질의 특성

 

 - 지체구조적으로 옥천대 내에 분포하는 여러 함몰대 중의  하나인 순창함몰대의 중부에 해당됨

 - 순창함몰대의 화산암류는 크게 백양사 화산암류와 내장사 화산암류로 크게 구분되는데, 가마골 지질명소 일대는 내장사 화산암 류에 해당되는 데사이트질 내지 유문암질의 화쇄류암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음

 

용연 1폭포로 오르는 제1등산로 입구이다.  제1등산로는 이곳 관리사무소에서 용추사 갈림길까지 1.4km를 말한다. 

 

오늘은 이곳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제1등산로 입구 인증 한장하고

 

단체 인증도 한장

 

제1등산로 입구를 지나 조금 오르면 갑자기 눈앞에 깊은 협곡과 함께 출렁다리와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수려한 경관이 나타난다.

 

용소 표지석도 보이고

 

용연교를 지나면 용이 하늘로 솟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용소가 나타난다. 

 

용연교 인증

 

용소

 

드디어 용소에 도달했다. 영산강 발원지 용소이다. 목포 하구언에서 담양 가마골 영산강 발원지 용소까지 350리 호남 젓줄인 영산강 걷기를 마무리하면서 감개무량함이 이루 말 할 수 없다. 또 다른 환희다.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해보고자 한 작은 몸부림의 순간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미친짓이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순간이 소중한 추억이다. 그냥 좋다. 그냥 행복하다. 아~ 세월이 흐른다 해도 난 이 순간 누구보다 행복하다. 무엇인가 하고 있으니까~

 

영산강의 시원 용소 표지석

 

◎ 담양 가마골의 유래

 

옛날 담양 고을에 어떤 부사가 부임하였다. 가마골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하여 이곳 경치를 구경하고자 관속들에게 예고령을 내리고 그날 밤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 내일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부사는 이튿날 가마골로 행차했고 갑자기 그 못의 물이 소용돌이 치고 황룡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러나 황룡은 다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를 본 부사도 기절하여 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사람들은 용이 솟은 못을 "용소" 라고 하고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을 "피잿골" 그리고 그 일대 계곡을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하여 "가마곡"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골"로 불려졌다고 전해 온다.

 

용소 단체 인증

 

영산강 트레킹 완주 기념 인증 한장

 

 

신중 동국여지승람 담양도호부편에 나오는 기록 "추월산 동쪽에 두 개의 석담이 있다. 아래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구멍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공중에 뿌리고 이 물이 쏟아져 큰못을 이루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바위구멍은 용이 뚫은 것이라 하는데 마치 용이 지나간 자취처럼 암면이 꾸불꾸불 패여있다. 

 

옛적에 전라도 안겸사가 이곳을 찾아와 용의 모습을 보고자 청하자 용이 머리를 내밀었다. 안겸사와 그를 따라 왔던 기관이 용의 눈빛에 놀라 죽어 용소 아래에 안겸사와 기관이 묻힌 그 무덤이 있다." 용소에 나오는 소개자료 "용소"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이곳 암반으로 형성된 물목을 통과하는 동안 억만겁의 세월을 통해 암반을 깍고 깍아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자국 마냥 홈을 이루었다.  

 

이 홈이 중간에서 석질이 강한 암반에 걸려 이를 뚫지 못하자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분수처럼 솟구친 물이 암반 밑에 쏟아져 시퍼런 용소를 이루어 놓았다.

 

또 한적한 가마골을 걸어서

 

중용교를 지나고

 

화사한 복사꽃 꽃마중도 즐기고

 

조그마한 폭포도 감상하면서 가마골을 오른다.

 

상류로 오를수록 계곡은 깊어지고 

 

싱그러움은 더해 즐겁기만 하다. 중간 중간 이렇게 넓은 쉼터가 있다. 지금은 쉼터로 활용하지만 6.25한국전쟁 중에는 빨치산들의 본거지가 되었겠지?

 

소설 ’남부군’의 현장 6.25 격전지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던 곳 중 하나가 가마골이다. 1950년 가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전남ㆍ북 주둔 북한군 유격대 패잔병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은거하면서 약 5년 동안 유격전을 펼쳤다. 당시 유격대들은 이곳 가마골에 노령지구사령부(사령관 김병억, 장성 북하면 출신)를 세우고 3개 병단이 주둔하면서 낮이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고, 전투가 장기화됨에 따라 병기시설인 탄약제조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 및 정미소까지 설치해 놓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다가 육군 8사단, 11사단과 전남도경 합동작전에 의해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955년 3월 완전히 섬멸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그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가끔 탄피, 수류탄, 무기 제조에 쓰인 야철, 화덕 등이 발견되어 그날의 참화를 말하여 주고 있고, 당시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사령관 계곡을 등산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원시림 너머 가마골에는 완전 무장한 빨치산이 450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서울이 수복이 되고 1년이 지나도 가마골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 군경은 전남북 합동작전을 펼쳤다. 가마골에 도착한 차일혁은 가마골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공불낙이라고 생각했던 적들은 반영구적인 건물을 지어 놓았다. 집집마다 노획한 식량으로 술을 담아 놓았다. 인민학교도 있었고, 발동기며 그라인더도 설치되어 있었다. 밭농사와 논농사도 깨끗이 되어 있고 곳곳에 퇴비가 쌓여 있었다. 자동차도 4대 있었다."  차일혁의 '진중기록' 중에서 

 

제3등산로 입구에서 치재산 정상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섰다.

 

치재산 정상으로 오르는 제3등산로는 초입부터 급경사다. 트레킹에만 익숙한 대원들이 무척이도 힘들어 한다. 등산과 트레킹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오늘은 등산을 포함한 종합세트 트레킹이다.

 

구간 구간 오르는 산길이 무척이도 힘드나 보다. 모두들 숨을 헐떡이고 죽을 힘을 다해 오른다. 첫번째 조망터를 만났다. 하늘이 열리고 주변이 확 트인다. 

 

덜꿩나무

 

쇠물푸레나무 꽃

 

참나무 순혹벌충영(벌레집)

 

기가 막힌 조망이 터지고/ 용추봉 방향 조망

 

임도가 나 있는 호남정맥 산마루 뒤로 추월산 산줄기가 하늘금을 긋는다.

 

모두들 힘들어도 조망이 확 터지는 순간!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 그랬냐 싶게 다 사라지고 깊은 울림의 환희가 밀려온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가 보다.

 

임진택 산행이사님께서 이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 삼아 깊은 추억을 담아 주셨다. 감사한다.

 

사진놀이 삼매경에 빠지다가

 

쉬어바위에서 한장

 

고깔제비꽃

 

알록제비꽃

 

저 깊은 골짜기에서 한국전쟁 전 후 빨치산들이 순창 여분산을 중심으로 순창 회문산과 이곳 용추봉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이념의 노예가 되어 경찰 - 국군 연합 토벌대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끝도 없는 증오의 싸움을 하였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든 이념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렇게 인간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죽고 죽이는 피맺힌 적개심의 반복으로 원수는 원수를 낳고 억울하게 죽어간 민초들의 피맺힌 희생은 무엇으로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고 민족은 분단되어 동네마다 집집마다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하고 씻을 수없는 원수지간이 되어 산산히 찢어졌다. 북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현장에서 즉결 처단을 한 것도 모자라 연좌제라는 멍애를 씌워 빨갱이로 사회적 진출을 막아 한 시대를 암울하게 했으니 그 한이 얼마나 깊겠는가? 전쟁을 하였지만 결과는 온 국토가 만신창이가 되고 민족은 분열되어 원수지간이 되었다. 전쟁을 하기 전이나 후나 정치적으로 그리 별반 차이가 없다. 전쟁은 종전되지 못하고 휴전 상태를 유지한지가 벌써 반세기이다. 전쟁을 하지 않았어도 남북은 이념 대결로 결국은 분단상태를 유지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족의 큰 상처와 희생은 없었을 것 이다. 혹여 협상이 잘 풀려 단일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을 겪으면서 처단해야 할 일제 앞잡이들은 반공세력이 되어 완장을 차고 기득권으로 거리를 활보하였으니 얼마나 역사적 아이러니인가? 역사 앞에 처단해야 할 일제 앞잡이 놈들에게 역사적 단죄를 면제해 준 전쟁은 지금도 그 휴유증 속에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놈은 안전한 벙커에서 살아나지만 전장에 나아간 민중은 피아가 총부리를 마주하고 죽이고 죽는 희생양이 된다. 어떤 명분으로든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추종세력은 역사 앞에 철저히 단죄해야 한다. 자기 주장과 이념에 따라 정치적 색깔은 다를 수있다.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고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것은 가장 비열하고 증오스런 폭력이다. 전쟁은 가장 비열한 폭력이며 어떠한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미소의 이념 전쟁에 휘말려 치러진 한국전쟁의 억울한 죽음과 희생이 그 얼마만인가? 누군가는 전쟁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왜 전쟁을 했는지?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과 죽음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 민족은 비록 남북이 정치적 상황으로 분단되었을 지라도 큰 희생 없이 새로운 세상을 맞아 각자의 색깔로 더욱 발전하고 융숭한 세상을 살았을텐데 말이다. 당시 미소가 세계대전을 끝내고 새로운 냉전 체제로 세계 질서를 만들었다 하드라도 김일성과 이승만의 정치적 야욕만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남북 분단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민족은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였을 것이다. 민주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자유시장경제든 어떤 형태로든 우리 스스로 정치적 권력 구조를 만들었을 것이고 사회질서를 잡아 부강한 나라로 나아갔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러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민족지도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어느 때나 지도자들 몇 사람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정세를 악화시켜 역사를 뒤로 가게 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니 이 일을 어찌하랴? 한 나라의 지도자는 세계적 정세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외교 역량을 발휘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지나간 역사적 인식을 올바로 하고 현재를 바르게 판단하여 미래에 대한 국가적 가치와 방향을 바르고 정확히 제시하여야 한다.

 

다행히 남쪽은 올바른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북쪽은 아직도 왕조시대나 가능했던 세습 체제를 갖고 있으니 언제나 온전한 나라가 될지? 역사 앞에 한탄과 걱정이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조망 놀이 삼매경에 빠지다가 다시 급경사 오름길을 두어번 더 오르고 나서 드디어 치재산 정상에 선다. 치재산 정상 표지목이다.  이곳부터는 호남정맥길이다. 호남정맥을 종주한 산꾼들의 표지기가 정겹다. 나도 이 길을 2006.12.03. 광주태일산악회와 함께 지나갔다. 밀재에서 오정자재까지 18.8km를 걸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추억이 새록 새록하다.  

 

18년전 추억을 되새기며 치재산 정상 인증 한장. 감회가 새롭다.

 

치재산 정상 단체 인증하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원들에겐 힘든 구간이지만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급경사 하산길 조심조심

 

노루발 꽃대가 힘차게 올라온다.

 

정광사 갈림길

정광사 갈림길 이정목을 지나 평평한 길을 따라 약 200m 정도를 걷다 보면

 

정광사 입구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호남정맥 길이다. 계속하여 용추봉으로 호남정맥을 따라 가고 싶지만 대원님들의 체력 상태가 염려가 되어 이곳에서 하산길로 접어 든다. 

 

 

용추봉으로 가는 호남정맥 길과 헤어지고 

 

이제 용추사로 향하는 내리막 길로 접어 든다.

 

봄맞이

 

이곳에서 신성봉으로 가는 제2등산로로 접어든다. 반대로 가마골에서 제2등산로를 오른다면 신성봉을 거쳐 이곳에 도달한다.

 

용추사로 향하는 하산길은 초록으로 물들은 포근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쉼이 있는 길이다. 여유로운 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

  

이 순간을 박옥현 노무현재단 광주지역 공동 대표님께서 담아 주셨다. 감사한다. 

 

붉은 산벗꽃이 부른다. 산길을 걷다가도 이 순간은 모두는 하나가 되고 즐겁기만 하다.

 

예쁜 산벗꽃

 

금창초 

 

용추사 갈림길에 도달했다.

 

용추사로 오르는 길엔 자주괴불주머니 꽃이 만발하였다.

 

용추사 입구 표지석

 

처음 와 분 용추사 입구 표지석에서 인증

 

용추사로 가는 길엔 노오란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쇠뜨기 생식줄기

 

용추봉 아래 깊은 골짜기에 분지처럼 넓은 평지가 있고 이곳에 용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용추사 입구 요사체

 

 

◎ 용추사 천불전

 

다른 절집은 주 불전이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이거나 극락전이나 또는 대적광전 등 인데 이곳은 천불전이다. 해남 대흥사에 천불전이 있고 가끔 절집에 천불전이 있지만 주 불전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주 불전으로 천불전이라 했다. 어떤 연유일까? 설명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용추사는 주불전인 천불전과 뒤쪽에 삼성전과 요사체가 있다. 처음와 본 용추사는 기대 보다 초라하고 이제야 어느 주지 스님이 발원하고 복원하나 보다. 

 

 

용추봉 아래 가마골 깊은 골짜기에 있는 용추사는 위치가 고즈넉하고 하늘이 열려 절집으론 제격이다. 한국전쟁 때 아마 이곳이 빨치산들의 본거지로 사용하였을 것 같다. 나중에 빨치산 토벌 시 이 절도 전소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 뒤로 오랜 기간 방치되다가 이제 절집을 복원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천불전 안을 들여다 보았다.주 불은 석가모니 불과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를 하고 있다. 후불 탱화가 근사하다. 불전에는 천불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텅 비어 있다. 내부 치장도 없다. 이제 시작하나 보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언젠가 화려한 옛 용추사의 번영을 복원할 시간이 올 것을 기대한다.

 

용추사 삼성각

 

◎ 용추사 龍湫山龍湫寺/전통사찰

 -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용추봉 아래에 있다.

 

526년(백제 성왕 4)에 혜총(惠聰)과 혜증(惠證)이 창건.

624년(백제 무왕 25)에는 원광(圓光)이 원당(願堂)으로 삼아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타버렸고, 1630년(인조 8)에 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1949년에 빨치산들이 이 절을 점거하자 국군이 전략상 소각하였다.

1961년에 본래 절터에서  300m 가량 올라간 곳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절집 주변 환경이 매력적이다. 이곳 용추사가 앞으로 크게 번창하길 기원해 본다.

 

천불전 앞에서 용추사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며 인증 한장

 

언젠가 다시 올 것을 다짐하며 셀카 한장

 

◎ 참고로 2010년의 용추사 전경이다. 

 

2010년경에는 천불전은 채색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천불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지장보상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를 하고 양 옆으로 천불상에 있다.

 

담양 용추사 삼성각

 

삼성각 안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산신이 모셔져 있다.

 

 

 

용추사에서 깊은 계곡을 내려가다가 양봉농가를 만나고 양봉농가 뒷 수풀속에 용추사 부도전이 있다.

 

◎ 담양 용추사 부도군

 

담양 용추사 부도는 소요당, 월파당, 춘담, 연봉당, 태원당, 일곡당 6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988년 1월 초에 5점이 도난되었다가 이듬해 7월 6일 1점을 회수하였다.

현재 4점을 회수 하지 못한 상태로 문화재로서의 기능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가,

도난으로 인한 가치 상실의 사유로 1992년 3월 9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용추사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이제 가마골 제1등산로 종점인 관리사무소까지 내려간다.

 

흰고깔제비꽃

 

자주괴불주머니

 

자세히 보면 볼수록 예쁘다. 세상에 모든 것은 그 나름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시각으로 함부로 그 가치를 말하지 말라. 자연의 위대함은 보면 볼수록 크게 다가 온다.

 

용연 2폭포 이정목이다. 용연 2폭포는 길에서 조망하기엔 깊숙한 계곡에 숨어 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옹색스럽게 담아 본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아쉽다.

 

한참을 내려 오다가 용연 1폭포를 만난다. 폭포 상단에 섰다.

 

위에서 내려다 본 용연1폭포

 

일찍 내려간 박옥현 노무현재단 광주지역 공동대표님께서 폭포 상단에 서는 순간을 담아 주셨다. 감사하다.

 

용연 1폭포의 위용! 대단하다. 가마골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비경 중에 비경이다.

 

폭포 물속에 말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대원님들 얼굴엔 행복히 가득하다.

 

인증 한장 남기고 오늘 영산강 줄기 따라 걷기 완주 트레킹을 마감한다.

 

영산강 트레킹 9구간을 오늘 마감하면서 가슴에 밀려오는 환희가 넘친다.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는 감회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주는 환희이다. 앞으로도 건강히 자연 속에 뭍히고 싶다. 걸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며 축복이며 환희이다. 마음을 비우고 새털 처럼 가볍게 건강이 주어지는 한 훨 훨 날아 갈 수 있는 한 갈 수 있길 바래 본다.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