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4.01.07.(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트레킹구간 : 동적교 - 증심사 주차장 - 국립공원탐방지원센터 - 증심사 일주문 - 당산나무 - 중머리재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인왕봉 - 서석대 - 목교 - 중봉 - 중머리재 - 증심사주차장(원점)
◎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이 57년만에 개방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해발고도 0m에서 무등산정상 1,187m까지 무동력으로(걸어서) 걷는 트레킹으로 광주지오트레킹(대장 김명수)에서 최초로 시도한 프로그램이다.
4. 트레킹 소감
영포인트 트레킹 무등 1187 마지막 구간으로 무등산 정상을 향한다. 목포 하구둑에서 출발하여 영산강을 따라 걷고 광주천으로 거쳐 오늘 마지막으로 무등산 정상인 인왕봉을 오른다. 총 길이 117km이다.
영포인 트레일 무등산 1187 프로그램은 광주지오에서 최초로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총 6구간으로 나누어 걸었다. 무등산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지만 오늘은 의미를 담아 오르니 더욱 값진 산길이 되리라.
노무현재단 회원님들도 이 값진 의미를 노무현길과 함께 하고자 동행하였다. 여러모로 값진 산길이다. 광주지오트레킹 김명수회장님과 여러 임원진님에게 감사한다.
5. 산행 이모저모
동적교 수자타 출발 인증
광주천을 따라서
무등산 국립공원 탐방 센터 입구 : 무등산 깃대종(수달) 달콩이 조형물
무등산권세계지질공원센터 앞에서 한 장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김삼호 대표님의 무등산노무현길을 함께 걷는 의미의 격려사도 듣고
'내 일이 빛나는 기회의 도시 광주' 강기정 시장님의 축하 문자도 보면서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새긴다.
무등산노무현길 표지석 앞에서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김삼호대표님과 임원님들과 함께
무등산에는 노무현길이 있다. 무등산 노무현길은 문민정사 앞에서 장불재까지의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대통령에 당선되면 반드시 광주를 찾아 광주무등산을 오르겠다고 한 시민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선 된 후 대통령 재임시절 2007. 5. 19.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무등산을 오른 길이다.
무등산노무현길 표지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5월19일 현직 대통령 최초로 무등산에 오른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시민의 제안으로 광주시 고시를 통해 공식 지정된 탐방로 명칭을 기념하는 표지석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5·18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행사를 마친 다음 날 광주시민들과 함께 무등산의 대표적인 탐방로 8번코스를 탐방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등산 산행은 1991년 4월 1일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초청강연으로 광주에 왔을 때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등산에 오르겠다’는 시민들과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 광주시민들에게 깊이 인식돼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를 사랑하셨다. 광주정신을 사랑하셨다. 자유,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의 광주정신이 노무현 정신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광주의 인연은 참으로 각별하고 깊다. 2002년 3.16. 경선을 통해 광주시민은 광주정신의 적임자로 노무현을 선택했고 대통령은 줄곧 광주를 사랑하셨다.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꼼꼼히 챙기시고 아시아문화전당을 광주에 세우셨다. 문화중심도시 큰 숲을 만드셨다.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1187을 축하해 주는 걸까? 눈발이 내린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왠지 사람들은 설렌다. 하늘과 땅과 사람 마음이 통하기 때문이리라. 태평양의 기운을 안고 오늘 천지인 삼신의 무등산 정상을 오르니 하늘도 기뻐하리라.
문민정사 앞에는 하염없이 눈발이 내린다.
의재 미술관을 지나고
약사암과 증심사로 가는 갈림길
증심사 일주문
증심사 부도탑에도 하염 없는 눈이 내린다.
눈발이 성성한 눈길을 걸을 때 다들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이 생각난다.
가산이 기울어 집을 팔고 해변 오두막살이를 하고 있던 어머니는 그 해 겨울방학에 광주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간 아들이 내려 온다고 하니, 하룻밤 만 아들하고 이 집에서 잘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집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허락을 받아 아무런 일이 없는 듯 부억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 배불리 먹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어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광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러 대덕 신장로까지 아들 손을 잡고 걸었던 눈길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허이 허이 어서 가라는 허망한 손짓만 하다가 끝내 버스가 사라진 신작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눈길에 아들의 손 기운이 아직 남아 따스한 온기를 가슴에 안고 아들이 밟고 지나온 눈길 발자국을 따라 한 발 한 발 딛고 돌아오는 어머님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대동강이 되어 흐르고 흘렀다.
아들은 이미 집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차마 어머님에게 물어 볼 수 없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속으로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다가 잠이 들고 다음 날 어머님의 까칠하고 따스한 손을 잡고 걸었던 눈길이 그리도 포근하고 행복했지만 끝내 아무 말 없이 광주행 버스에 올라 광주로 오는 동안 얼마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는지 모른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이 나이 되어도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 품 같은 무등을 오늘 오릅니다.
증심사 사천왕문을 지나고
증심사도 눈발에 가려 아련하다.
증심사를 지나서 당산나무를 향해 오른다.
오방 기념비
이 곳은 오방 최흥종 목사가 신림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려 1950년 4월 7일 교회 설립이 되었다. 오방 선생은 이 고장 최초의 장로, 목사로서, 북문밖교회(중앙교회)와 금정교회(제일교회), 제주 모슬포교회에 시무하였고, 시베리아 선교사로 파송 받았고, 광주 YMCA를 설립(1920) 하였다.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며, 한센병과 결핵퇴치, 빈민 운동에 힘써 봉선리 나병원(1912~1926), 애양원(1926), 삼애 학원(1974), 호혜원(1955), 송등원(1958), 무등원(1962)을 설립하는 등 사회 운동에 헌신하였다. 이에 신림교회 창립 65돌을 맞아하여 숭고한 오방선생의 뜻을 기려 이 기념비를 세운다.
신림교회, 광주YMCA, 오방기념사업회
옛 신림교회는 오방수련원으로 바뀌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오방 최흥종 목사의 거룩한 정신을 기려야 한다. 평생 어렵고 간난한 이들편에 서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분, 고아들의 아버지, 한센병 환자들의 아버지로 살아오신 오방 최흥종 목사를 마음속으로 존경하며 오방 수련원을 지난다.
대나무 숲길이 눈발에 운치를 더한다.
당산나무
수명 500년의 이상이다. 무등산에도 천제단이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천제단이 아버님 신이라면 이 당산 나무는 어머님 신이시다. 우리 나라 각지에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마을 당산나무에 금줄을 치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신성시 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사를 지낸다. 무등산 당산 나무도 그런 풍습이 남아 있다. 평소에는 산꾼들의 오르내림 쉼터이기도 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하다. 오붓한 남녀가 사랑스런 쉼을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의 건강과 자식들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들
대원님들과 함께~ ㅋㅋ~ 다리가 짧은 데 길게 담았네요 ㅋㅋ
당산나무 배경 기념 한 장
세인봉을 배경으로 한 장
새인봉을 배경으로 한 장 더
당산나무 옆 송풍정에 잠시 쉬어 간다.
또 다른 쉼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저기 떠오르는 태양의 절대적인 에너지에 의존한다. 우주의 질서가 영원불멸의 원리로 돌아가는 절대자인 태양을 짊어지고 오르는 순간을 주청옥부대장님께서 잘도 담아주셨다. 감사한다.
중머리재 인증
대원님들과 중머리재 인증
중머리재에서 노무현 재단 회원님들과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완등 기념
이제 장불재를 향해 오른다. 용추삼거리를 지나고
광주천 발원지
광주천 발원지인 이곳 샘골은 광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샘골은 옛날 화순 동복 사람들이 장불재를 넘나들 때 목을 적시는 곳이었다. 장불재에서 생성된 물이 이 샘골에 모여 비로소 지면으로 흘러나온다.
용추계곡을 따라 흐르다 용추폭포에서 힘차게 떨어져 제2수원지에 잠시 머물다가 광주천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모이게 된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보면 중머리재에서 냉천정을 거쳐 입석대로 향하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정찬훈 이사님과 함께 장불재 기념 한 장
장불재에서 박미경 대원님이 멋진 포즈를 잡아 준다. 감사하다.
장불재에서 서석대를 배경으로 한 장
장불재 표지석에서 김경환 노무현재단 산행대장님과 함께
장불재 표지석 인증
입석대 인증
입석대를 지나면서
승천암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
승천암에서 바라 본 백마능선
승천암에서 바라 본 무등산 정상
서석대로 오르는 길
저기 보이는 장군봉은 여성의 젓가슴을 상징한다.
서석대 기암군에서 바라 본 남도의 산군들! 날씨가 좋으면 월출산 등 남도의 거대한 산들이 조망된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출발할 때 눈발은 어디로 가고 오후엔 파란 하늘이 맑다.
광주시내 방향 풍광
장불재 방향 풍광
올망 졸망 남도의 산군들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저기 사이 사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삶을 영위하고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문화를 꽃피우고 역사를 만든다.
무등산 정상
무등산은 호남의 진산이다. 호남정맥의 중심 산이기도 한다. 저기 정상을 향하여 오른쪽(화순 이서 방향)으로 흐르는 물은 동복댐에 잠시 머물다 주암호로 흐르고 다시 압록에서 섬진강과 만나서 하동으로 흐른다.
왼쪽(광주시가지 방향)으로 흐르는 물은 원효천을 따라 광주댐에 머물다 영산강으로 흘러서 남도를 적시고 목포로 향한다.
이렇듯 두 물 줄기를 가르는 호남정맥길이 57년만에 무등산 정상과 함께 상시 개방되었다. 지금까지 호남정맥을 걷던 사람들은 서석대를 찍고 장불재로 다시 하산하여 규봉암을 돌아 신성대로 가곤 했다. 무등산 정상이 군부대로 막혀 출입이 통제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곳 무등산 정상을 지나 누애봉을 거쳐 신성대로 가는 정통 호남정맥길이 곧 열릴 것 같다. 기대가 된다.
산 기운으로 말한다면
한반도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원한 기운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장안산과-팔공산-부귀산을 거치고 주화산에서 다시 갈라져 호남정맥을 타고 남쪽으로 뻗어내리면서 정읍 내장산과 - 장성 백암산 - 광주 무등산을 거쳐 - 장흥 제암산- 일림산을 거치고 승주 조계산 - 광양 백운산을 거쳐 망운에서 마감한다. 그 중심에 무등산이 있다. 이곳 무등산의 정상부인 서석대는 백두대간에서 부터 흐르는 산 기운이 가장 세게 작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인왕봉 오르는 길목에 바람이 세차서 설화가 피었다. 순백의 아름다움이란?
기가 막히다. 아름답다.
겨울산행은 역시 설화가 으뜸이다. 다행이 무등을 오르면서 설화를 볼 수 있어 행운이다.
아직 무등산 정상은 완전 개방되지 않았다. 천왕봉과 지왕봉과 인왕봉 3봉우리 중에서 인왕봉만 상시 개방 되었다. 나머지 2봉우리도 곧 상시 개방된다고 한다. 인왕봉이 개방 되는데 57년이 걸렸다. 2~3년 기다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차분히 기다릴란다. 그래도 어서 빨리 개방되길 기대해 본다.
57만에 상시 개방된 무등산 인왕봉 정상 인증
대원님들과 함께
산 정상이 천지인의 이름을 가진 산은 광주무등산 뿐이다. 다른 산들은 왕을 나타내는 천왕봉이 다수다. 그러나 무등산은 등급이 없다는 평등의 세상이고, 차별하지 않고 자식의 모든 것을 품어 안은 엄마 품이고, 우주 만물의 질서가 통하는 산이다. 이 위대한 무등산에 섰다. 태평양의 기운을 목포 앞바다에서 품어 안고 영산강을 따라 이곳 무등의 정상에 섰다.
우주만물의 질서는 하나로 통한다.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니고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어김없이 절대적인 힘에 의해 그대로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저 인간은 그안에서 허우적 거릴 뿐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라.
한줄기 바람이 일었다가 사라지고 한줄기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지듯이 인간사 모든 것은 이와 같으니라. 너무 집착하지 마라. 너무 애착하지 마라. 지금 아무리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쓸모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우주 질서이다. 너무 애태우지 마라. 이 또한 지나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공허한 것이 되는 것을!
아름다움도 추함도 모두가 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허상임을 알아야 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다가 흔적없이 사라진다. 끓임없이 변하므로 항상하는 것은 없다. 그러니 너무 애태우지 마라. 있고 없고도 다 마음에 달렸다. 행복하고 불행하는 것이 다 마음에 달렸단다.
무엇이 두려워 철조망을 치는가? 두려움도 절망도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스스로의 족쇄이니라.훨 훨 털어버려라. 아무쓸모 없는 이념이나 가치관에 매몰되지 말길 바란다. 훨 훨 털고 나면 그저 우주를 나르는 자유로운 하늘이 반기리라.
한참을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서석대로 하산한다.
다시 서석대로 돌아와 서석대 정상석 인증
이제 목교로 하산
서석대에서 바라 본 설화
사양능선
설화
서석대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의 서남쪽에 병풍처럼 서 있는 서석대는 해발 1,050~1,100에 위치해 있다. 87~85만년 전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석영안산질 응회암이 1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를 거쳐 지표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긴 시간 비바람을 맞으며 현재의 수려한 주상절리와 주변의 너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무등산이 예로부터 서석산이라 이곳 전망대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녁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하산 중 주상절리
목교
군부대 이전지 복원 안내
중봉으로 가는 길
중봉 인증
돌아본 무등산 정상
중봉에서 바라 본 무등산 풍광
중봉에서
중봉 인증
무등이 묻는다. 자네 뭐하러 여기 올랐나? 무등이 여기 있기 때문이네
무등은 꼭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무등은 어디에도 있지. 이왕이면 근사한 여기 있는 무등이 좋다네. 그냥 좋다네.
그냥 좋은 무등은 여기 있지만 그냥 안좋은 무등은 어디에 있는가? 그냥 안좋은 무등도 여기 있네
보이는 무등은 어디 있고 안보이는 무등은 어디 있는가? 보이는 무등도 여기 있고 안보이는 무등도 여기 있네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고 안들리기도 하고, 손에 잡힐 듯 하기도 하고 안 잡힐 듯 하기도 하고, 생각속에 있기도 하고 생각속에 없기도 하고, 의식하기도 하고 의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마음이 가기도 하고 마음이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한 무등이네. 무등은 그렇게 그냥 있네.
그런 무등을 그냥 올랐다네
또 한번의 잡생각을 하다가 하산을 한다.
중봉에서 하산하면서 바라 본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무등산 정상 풍광
기암들
조망터에서 바라 본 중머리재와 세인봉 라인
용추계곡과 제2수원지 방향 풍광
장불재 방향
이정표
중봉에서 하산 중 기아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촬영 명품 소나무
[주인공인 채근(안성기)은 "저는 1980년 5월 계엄군으로서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쏜 살인자입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며 양심고백을 시작한다.]
중봉에서 하산 중 명품 소나무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영포인트 트레일 무등 1187] 총 6구간을 완주하였다. 참으로 뿌듯하다. 영산강을 걸었고 걸으면서 만난 민초들의 삶과 그 속에 오랜 시간 지나간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만나면서 남도 사람들의 정서를 느껴보려 애썼다. 그러나 그 것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고 순간의 것인가?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났다가 금새 사라진배나 다름없듯이 감히 남도를 이야기 하고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그래도 미약하나마 내발로 걸어서 느꼈고 순간이지만 느낀 것은 사실이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늘은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다. 하산주나 거나하게 마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