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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19.09.28. 담양 산성산(603m) - 강천사계곡 - 강천사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3. 12. 21.

1. 일자 : 2019.09.28.(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 금성산성입구-남문-동문터-북바위-운대봉-산성산(연대봉)-비룡폭포-구장군폭포-강천사-주차장

 

 

 

◎  금성산성

전남 담양 금성산성(潭陽 金城山城)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과 전북 순창군 팔덕면의 도계에 위치한 해발 603m의 산성산(山城山)에 쌓은 전라도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전남 장성 입암산성(長城 笠岩山城), 전북 무주 적상산성(茂朱 赤裳山城)과 함께 호남 3처산성(三處山城)으로 불렸다.

 

금성산성은 포곡산성(包谷山城)으로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구 침입에 대비해 개축됐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 태종 때 개축하여 세종 때 폐쇄됐고 정유재란 때 다시 수축했다. 광해군 때 외성을 개축하고 내성을 수축하고 관청(官廳)을 건립했다.

 

효종 때 관아(官衙)와 군창(軍倉)을 신축하고 성벽 위에 성첩(城堞)을 쌓았다.

 

남쪽으로 무등산, 북쪽으로 추월산과 강천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영산강이 담양호에 머물다가 지나간다.

 

‘보국문(輔國門)’은 외남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 누각으로 망루 밑은 금성산성의 정문이다.

 

‘충용문(忠勇門)’은 내남문으로 보국문의 100m 안쪽 위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외곽을 둘러쌓은 외성(外城)에는 옹성이 설치된 서문과 동문을 비롯한 6개의 성문과 성첩, 장대 등이 있고 외부를 살피기 좋은 곳에 축성된 내성(內城)에는 동헌, 내아, 창고 등이 있다.

 

일제가 파괴하여 지금은 동문, 서문, 남문, 북문 터만 남아 있고 대한민국 사적 제353호로 지정됐다.

 

◎ 전란의 보루, 금성산성

조선조 중기에는 성내에 130여가구가 살았으며, 이웃한 담양·순창 등지에서 거둬들인 군량미가 1만 2000~2만여석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호남지역의 군사 요충지로 자리 잡으면서 숱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유재란 때는 왜군과의 공방전으로 남문 앞 '이천골(二千骨)'이란 협곡에 아군과 적군의 시체 2000여구가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골 곡(谷)자' 대신 '뼈 골(骨)자'를 쓴다.

 

한국전쟁 때는 미처 북으로 후퇴하지 못한 빨치산의 은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산성산이 이처럼 전투의 거점으로 자리한 것은 봉우리와 협곡으로 이뤄진 산세 때문이다.

금성산성은 외곽이 30m가 넘는 수직 바위로 둘러싸여 전략적 요충지로 손색이 없는 지형이다. 주변에는 성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은 산이 없어 천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있다.

 

항아리형 분지로서, 전체 면적은 120여만㎡(36만여평)이다. 외성의 둘레는 6486m, 내성은 859m이다. 이곳에는 외성·내성·옹성·성문·망대 등을 비롯해 관아·사찰·민가·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외적의 침입 등으로부터 장기 농성(城)과 방어가 쉬운 입지 조건을 갖췄다.

 

◎  산성산(603m)

 

산성산[山城山, 603m]은 담양군 금성면과 용면에 걸쳐있으며 삼국시대 처음 축성되었다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에 개축된 담양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있다.

 

주봉은 철마봉이며 산의 형세는 능선이 가파르다. 서쪽에 담양호가 있다. 북쪽 강천산(584m)과 주봉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다. 금성산성 산성길을 따라 보국문, 충용문을 지나 노적봉에 이르고 정상인 철마봉에 오르게 된다.

 

정상에 이르면 주변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며 무등산과 추월산이 보인다. 

 

 

 

 

4. 산행소감

완연한 가을 산행 
좋은분들과 산행은 보약이다
오늘도 좋은 보약으로 충전한다

 

5. 산행 추억

금성산성을 오를 때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동학농민혁명군 전적지 비석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이 곳 금성산성은 고려 때 산성을 축성하고 나서부터 조선을 거쳐 근 현대에 이르까지 우리나라의 외침과 역사적 격변기 때 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곳이다. 동학농민혁명군 전봉준 장군이 이곳에서 금성산성 전투를 지휘하다가 순창 쌍치면 피노리에서 체포되기까지 이곳 금성산성을 중심으로 담양, 광주, 장성, 순창 지방의 1천여 동학농민군을 지휘하였던 곳이다. 

 

1894년 갑오 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이 이곳을 한때 점령했다.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은 금성산성과 북쪽으로 이웃한 순창군 쌍치면 피노마을에서 체포되기 이전까지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농민전쟁 당시 성내의 민가와 관아·대장청 등 모든 시설이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보국문

 

 

 

 

충효문

 

충효문에서 바라 본 담양댐

 

충효문에서 바라본 담양댐 방향 풍광

 

충효문에서 바라본 보국문

 

충효문에서 바라 본 보국문

 

동자암

 

동문을 향하여

 

동문터

 

강천사 갈림길

 

운대봉 가는 길 

 

운대봉

 

연대암 삼거리

 

 

 

산성산 정상 연대봉(603m)

 

북문가기 전 쉼터

 

 

강천계곡 구장군 폭포